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13)
검은 머리 영국 의사-213화(213/505)
213화 독이다, 독 [4]
“빨리 와!”
“으…….”
조금 기다리고 있으려니 죄수 셋이 끌려왔다.
그…….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모습하고는 상당히 달랐다.
진짜 벌을 받고 있구나!
뭐 이런 느낌이 팍 든다고 보면 될 거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일반인들조차 못 먹고 못 씻는데 죄수들은 어떻겠나.
아마 죄수들은 먹는 거 그래도 괜찮다더라는 소문이 나면 자수하는 사람들로 연일 북적댈 거다.
그만큼 19세기 런던은 진짜…….
“이 새끼들 멀쩡히 움직이네?”
“복지가 너무 좋지. 대영제국의…… 어두운 면일세. 이런 것들 해 먹일 돈이 있으면 식민지 하나만 더 만들어도 될 텐데 말일세.”
물론 우리 찐 19세기 런던분들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리스턴은 일단 죄수가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이 있는 게 불만이었다.
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특히 런던 병원에 있다 보면 사람이 못 먹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 너무 잘 알게 되거든.
매일…….
문자 그대로 매일 병원 문 앞에는 굶어 죽어 가는 빈민이 스스로 또는 버려진 채 발견된다.
‘이건 근데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네.’
비료를 만들어서 식량 생산을 늘려?
근데 아마 빈민들이 굶어 죽는 게, 식민지도 아니고 런던에서라면 그런 걸로 해결은 안 될 거다.
아예 분배가 안 되고 있어서 그런 거야, 이건.
아무튼, 죄수들은 이미 죽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 몰골을 한 채, 각자의 방 앞에 섰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채였다.
그럴 거다.
비소 벽지가 재료가 비소라서 그렇지, 색도 영롱하고 진짜 이쁘긴 하거든.
21세기에서도…….
저런 건 못 봤다.
이제 돈과 명예를 좀 얻어 볼까 하던 찰나에 죽어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아무튼, 진짜 고급스러워.
“이, 이게 뭡니까?”
그중 녹색 벽지로 치장된 방 안에 들어가 드레스까지 입을 운명인 죄수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녀석을 끌고 온 경찰은 바로 대답해 주는 대신 이것을 주관한, 내가 편의상 부서장이라고 부르기로 속으로 결심한 경찰을 바라보았다.
부서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답이 이어졌다.
“몰라도 된다.”
죄수 입장에서는 딱히 의미 있는 답은 아니었을 거다.
미안……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잡힐 정도로 강간, 살인을 했다면, 어?
진짜 미친놈이다, 이 말이다.
“이건 뭡니까……?”
이번에는 녹색 드레스만 놓여 있는 방 앞에 있던 죄수가 물었다.
드레스다, 드레스.
옷이 아니라.
경찰들이 이거 뭐 정성스레 남성복으로 바꿔 놨겠나?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부분이랑 목, 팔 들어갈 부위만 가위로 터놨다.
깡마른 죄순데 그런 게 필요하겠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 시대는 진짜 장난 아니다.
가슴 수술이 있는 시대도 아닌데, 잘록한 허리에 가슴은 풍만한데 동시에 목과 팔은 또 가는 것을 선호했다.
‘아니…… 수술이 있나?’
아니, 없을 거다.
그런 거 했다가는 다 죽을 거 아냐.
빈민을 대상으로 했다가 죽으면 의도가 좋았으니 무죄지만, 귀족을 대상으로 했다가 죽거나 잘못되면 의도가 어찌 되었건 유죄다.
“입힐까요?”
“그래, 슬슬 시작하지.”
“입어라.”
“이걸……요?”
죄수는 참담한 얼굴이 되었다.
아마 이 새끼들이 자신들을 구경거리로 삼는구나 싶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의자가 주르륵 놓여 있고 거기에 우리가 앉아 있잖아.
심지어 조금 뒤에는 제이미 경이 앉을 푹신한 소파도 마련되어 있었다.
실제로…….
‘구경이긴 하지?’
엄밀히 말하면 관찰이 되겠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아무튼, 죄수는 찡찡대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하긴 했다.
누가 봐도 너무 고급스러운 드레스긴 하거든.
술도 달렸고, 치렁치렁하고, 막 치맛자락이 어마어마해!
그렇지만 너무한 건 저 새끼다.
아마 피해자들도 이렇게까지 할 게 있냐는 생각을 하지 않았겠어?
“입어, 새꺄.”
비슷한 생각을 리스턴도 했는지, 칼을 찬 채 저벅저벅 다가갔다.
“어어, 지금 죽이시면.”
경찰이 말렸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말마따나 지금 죽을래? 아니면 입을래?”
오히려 리스턴은 경찰의 만류를 활용해서 협박했다.
“이, 입겠습니다. 입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리스턴의 협박은 참으로 잘 먹혔다.
죄수는 부리나케 드레스를 아무렇게나 입었다.
여기저기 가위로 터놔서, 입기가 수월한 모양이었다.
원래 이 시대 드레스는 누군가 무조건 입는 걸 도와줘야 하는데, 혼자서도 뚝딱 입었다.
리스턴 때문에 벌벌 떨긴 했지만…….
“넌 왜 안 입어.”
“이, 입겠습니다!”
옆방 앞에 서 있던 녀석도 부리나케 녹색 드레스를 입었다.
이쪽은 좀 더 캐주얼한 느낌의 드레스였다.
뭐가 됐건 비소는 충분히 함유되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착용자를 천천히 죽이겠지.
착용자와 붙어 있는 사람도.
“넌, 그냥 들어가.”
“네!”
드레스를 입고 있는 동료 죄수를 보던, 그러니까 녹색 벽지로 치장된 벽 앞에 서 있던 죄수는 약간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곧 세 명의 죄수가 각각의 방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중 녹색 드레스를 입고 녹색 방 안에 들어간 놈이 입을 열었다.
“여기 뭔가…… 곰팡내가 납니다!”
“뭐, 청소해 주라고?”
“아니, 아닙니다. 그냥 난다고 알려 드린 겁니다!”
“너네 방에서도 나는 걸 뭐 그렇게 특별하다고.”
“아니…… 거기랑은 비교도 안 되게 나는데요.”
“응?”
부서장이 좀 이상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도 그랬다.
죄수가 있던 곳은 여기서 더 안에 있지 않나?
환기구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나마 여기 있는 방은 평소엔 경찰들한테 돈 좀 찔러준 애들이 잠시 있다 나가는 곳이다.
왜?
계단 앞에 있어서 나름 빛도 잘 비치고 무엇보다 환기도 잘되거든.
당연히 곰팡내는 이쪽이 훨씬 적어야 했다.
“아?”
그때 내 머리통을 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곰팡내…….
그거 나도 맡아 봤다.
집에서.
아, 내 집 말고 앨프리드 선배네 집에서.
‘설마…….’
프랑스에서도 이 비소 벽지가 유행이라고 했다.
근데 거기서는 이런 식으로 사람이 죽어 나간 적이 없다고 했다.
물론 죽었겠지만…….
누군가 눈치챌 만큼 많이 죽어 나가는 건 아니라는 건데, 여기랑 프랑스랑 차이가 있을까?
있다.
거긴 날씨가 좋다.
훨씬 건조해…….
‘이 비소 벽지가 습기에 닿으면 곰팡내를 유독 더 풍기는 거 아닐까?’
이거다.
이거 같다!
“평. 자네 어디 가나.”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어느새 경찰서 지하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식 감옥이 아닌, 집행을 앞둔 자들이 있는 곳으로.
“아, 뭔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자들이지만 그래도 뭐든지 해도 좋은 건 아닐세.”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긴…… 자네 악랄한 거 내가 모르나. 나한테는 털어놔도 되네.”
“아니라니까!”
“화내는 거 보니까 맞군.”
나는 리스턴 설득을 포기하고 보다 안으로 들어갔다.
보초 서고 있던 경찰들이 말리려다가 리스턴을 확인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아는 얼굴이기도 하고…….
또 무섭기도 할 거다.
저 칼 뽑아서 휘두르는 순간 복도가 피바다가 될 것이 뻔하지 않나.
가뜩이나 요새 리스턴 절단 쇼가 유행이어서 어지간한 시민들은 다 봤을 테니, 상상도 잘될 거다.
“확실히…… 곰팡내가 적어.”
“아, 아까 저놈이 한 말을 신경 쓰는 건가? 말도 안 되는 말일 거야. 죄수들의 정신이 온전할 리가 있나?”
“아니, 아니에요. 저도 전에 비소 벽지에서 곰팡내를 맡아 본 적이 있어요.”
“응? 어디에서? 제이미 경? 거기서는 냄새가 안 났는데?”
“아뇨. 집에서요. 진짜 지독했는데…… 지하실에서도 그런 냄새까지는 안 나는군요.”
“확실히 귀족 출신은 맞나 보구만. 곰팡내가 익숙하지 않다니.”
리스턴의 말과 함께 나는 뒤로 돌아 나왔다.
나오는 내내 머리를 굴렸다.
‘그게 곰팡이 냄새랑 비슷하지만 곰팡이 냄새가 아닌 걸 거야. 런던은 사시사철 습하지…… 그 물기에 의해 비소가 기화되면서 나는 냄새 아닐까? 원래는 냄새가 없다지만 화학 반응이 일어나 다른 종류의 기체가 되면 또 모를 일이지.’
냄새가 없다는 건 고체 상태의 비소를 말하는 거 아닌가?
그래, 이게 맞을 거다.
비록 내가 화학 지식이 짧다 보니 보다 정확한 추론은 불가능하지만…….
이것 말고는 모든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한참 걸릴 거 같군그래.”
그렇게 돌아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15분 정도.
당연하겠지만 그사이에 죄수들이 죽어 나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경찰들에게도 당연한 일은 아니었는지, 특히 부서장이 지루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걸음을 계단 쪽으로 옮기면서였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당번을 정해서 있는 게 어떻습니까?”
부서장은 우리와 제이미 경이 보내온 고용인을 향해 제안했다.
듣고 보니 과연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하긴 우리가 다 여기서 벌설 필요는 없잖아?’
무엇보다 저 죄수들보다는 덜해도, 어찌 되었건 옆에 있으면 비소에 노출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위험을 덜기 위해서도 이편이 좋았다.
“그럼 한 시간씩 있을까요?”
“그래, 그게 좋겠군. 제이미 경도 어차피 여기서 계속 기다리진 못하시거든. 연락이 가면 그때 오시기로 했네.”
“그럼 연락할 사람 하나, 더 관찰할 사람 하나 해서 둘씩 있기로 하죠. 앨프리드, 콜린 너네가 1호다.”
“아니…… 나는…….”
“네!”
내 명령에 의해 앨프리드, 콜린이 1호가 되었다.
아무래도…….
첫 1시간은 뭔가 의미가 없을 거 같잖아.
그다음은 나랑 조지프가 있기로 했다.
그다음은 리스턴과 블런델.
경찰들도 조를 짜겠다고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의사가 관찰하는 게 좀 더 의미가 있지 않겠나?
오면서 일단 비소 중독 증상에 대해 다 설명도 해 주었고.
그래서 이 세 조가 돌아가면서 보기로 했다.
“어땠어?”
“그냥…….”
1조는 꽝.
“어땠어?”
“별로…….”
2조, 그러니까 나도 꽝.
“어땠어요?”
“이거 죽는 거 맞나?”
3조, 리스턴, 블런델 조도 꽝.
첫 번째 바퀴는 다 꽝으로 끝났다.
두 번째 바퀴도 그랬다.
변화가 있던 것은 세 바퀴째였다.
슬슬 우리도 토막 잠을 자느라 피곤해질 무렵, 가운데 방에 있던 놈…….
즉 드레스도 입고, 벽지에도 둘러싸여 있던 놈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으…….”
그와 동시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빨리! 빨리 가족들 불러! 제이미 경이랑!”
여기서 말하는 가족은 사형수의 가족이 아니다.
보통 사람의 인권도 없는데 사형수가 무슨 인권이 있어.
죄수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피해자의 가족들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무래도 제이미 경의 집은 거리가 좀 있다 보니 시간이 더 걸리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냥 비소가 나쁘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밍기적거리는 걸 수도 있고.
“저 새끼! 아픈 거 맞죠?”
“네, 아마 복통이 심할 겁니다.”
“잘됐군.”
“좋구나!”
가족들이 기뻐하니까 조금이나마 찜찜했던 마음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사람을 죽였으면, 그것도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여럿 죽였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러면서 인류에 공헌할 수 있다면 이건 벌이 아니라 상일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녹색에 갇혀 죽어 가는 죄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