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14)
검은 머리 영국 의사-214화(214/505)
214화 독이다, 독 [5]
“우웨엑…….”
녹색 벽지에 둘러싸인 채 녹색 드레스를 입고 있던 죄수는 이제 토까지 해 대고 있었다.
사실 핏기가 사라졌다는 게 미식거려서였을 가능성이 크긴 했다.
뭐…….
땀이 나고 하면서 체온을 빼앗겨서일 수도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잘은 모르겠다.
내가 어디서 비소 중독을 봤겠나.
우리 병원에 중독 센터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나름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병원이었던 만큼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중독에도 트렌드가 있는 법이다.
비소라니…….
‘보통은 제초제…… 그라목손이나 농약 먹고 오는 경우가 많았지.’
비소는 못 봤다.
뭐 어디서 만들고 있기는 할 텐데 나야 뭐 볼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중독자를 보는 건 처음이다, 이 말이었다.
증상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문헌에 적힌 것들 뿐.
“확실히 중독 같군.”
사실 리스턴도 마찬가지긴 할 터였다.
무게 잡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잘 모를 거다.
언제 중독되어서 죽어 가는 사람을 이렇게 마냥 지켜봤겠나.
아무리 그래도 의사긴 하니까 뭐라도 하긴 했겠지.
피를 뽑든, 팔을 자르든…….
뭐가 되었건 이해는 안 가는 일이지만 하긴 했을 거야.
“우연일 수도 있지 않나?”
그 와중에 진짜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해 대는 놈이 있어 뒤를 노려보았다.
리스턴도 그랬다.
하지만 우리 둘은 곧 공손해져야만 했다.
왜?
제이미 경이 한 말이었기에 그랬다.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지금 런던 사교계에 이 녹색 바람을 일으킨 게 누군가?
물론 파리에서 이미 유행이다 보니 언젠가는 런던에서도 유행이 돌긴 했겠지만…….
당장 범인을 찾고자 한다면 제이미 경이었다.
‘우연이겠냐, 이 새꺄.’
진짜 제이미 경만 아니었으면 한 대 쳤다.
눈앞에서 어?
녹색 입고 죽어 가는 사람이 떡하니 있는데, 우연?
하지만 저 사람은 제이미 경이다.
대영제국의 귀족 중에서도 상당한 힘을 자랑하는…….
진짜배기 귀족.
“더 지켜보시죠. 셋 다 죽게 되면 우연은 아닐 겁니다.”
권력 앞에서는 분노 조절 잘해 모드가 되는 리스턴도 있는데, 내가 뭐라고 뭐라 할까.
“네네. 일단은 기다려 보시죠.”
“그래, 일단 저 죄수도 죽은 건 아니지 않나?”
“네, 그렇죠.”
물론 숨을 꼴깍꼴깍 쉬고 있긴 하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비소 중독인데 숨을 쉬면 쉴수록 비소가 들어가잖아.
게다가…….
‘내 생각에 저 벽지가 진짜야.’
벽지에서 나던 냄새…….
곰팡내라고 퉁치기에는 너무 고약하던 그 냄새…….
그게 독기 아닐까?
독기?
에구머니나.
19세기 병이 옮았나, 독기란 소리나 하고 있네.
“끄읍. 끄으윽…….”
내가 잠시 딴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가운데 방에 들어가 있던 죄수는 이제 거의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러자 양옆에 있던 죄수들의 얼굴이 참 극적으로 변했다.
그냥…….
놀리려고 방 안에 들여보낸 건가 하고 있었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사실 상식이 있는 놈들이라면 우리는 몰라도 피해자의 가족들이 왔을 때는 뭔가 우리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어야 할 텐데…….
상식이 있겠나?
고등교육은커녕 문맹들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뭐, 뭡니까!”
“도, 독인가! 독을 뿌렸다!”
“으, 으아아아아!”
불안해진 죄수가 벽으로 들러붙었다.
그러니까…….
녹색 벽으로.
거기가 독의 본산인데 뭘 피해서 그리로 간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비소에 중독이 되면 환각 같은 것이 보일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끄, 끄윽. 으에에에엑”
그렇게 벽에 딱 달라붙어 있던 녀석도 이제 토를 해 대기 시작했다.
심리적인 영향도 있긴 할 터였다.
보이진 않아도, 옆에서 한창 낑낑대던 놈이 조용해졌으니 무섭지 않겠나?
때에 따라서는 오히려 안 보이는 것이 더 무섭기도 한 법이었다.
“이런, 이런 미친놈들! 악마 같은 놈들!”
그에 반해 드레스만 입고 있는 놈은 확실히 멀쩡했다.
사실 비소에 노출되는 양만 생각하면…….
드레스가 벽지보다는 압도적이어야 했다.
그렇잖아.
비소 덩어리를 온몸에 묻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러니 저 벽지에서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냄새가…… 아무래도 가장 최악의 범인이 아닐까 싶다.
“저 새끼 말하는 꼬락서니 좀 보게.”
하여간, 죄수는 정말이지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듣다 보니까 좀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저 죄수를 골라낸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부서장은 오히려 시큰둥했다.
“네놈이 한 짓을 생각해 봐라. 넌 무슨 짓을 당해도 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짓을!”
“어, 너한테는 이래도 돼.”
“개자식!”
“저 새끼 한 대 패도 되나?”
부서장의 말에 우리는 좀 궁금해졌다.
강간, 살인 등을 저질렀다고만 들었지, 자세하게는 듣지 못해서 그랬다.
너무 세기말적인 감성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
막말로 우리 런던에서 강간과 살인은 흔하디흔한 범죄거든.
특히 살인은 너무 많아서 살인범들 중 절반 이상은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을 거란 말도 있었다.
미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너무 많아!
“뭘 했길래 그러나?”
“저 자식…… 자기 친구의 아내를 강간하고 죽였어. 애가 우니까 애도 죽이고, 친구의 배까지 찔렀네.”
“친구는 그럼 살았나?”
“배를 찔렸다니까? 살았겠나?”
“아, 하긴 그렇군.”
미친놈이었잖아?
사실 아까 전부터 눈앞에서 사람 죽는 걸 봐서 그런가, 죄책감이랄지 아니면 찜찜함이랄지 하는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죄상을 듣고 나니 싹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머지 둘은 더한 놈이라는 걸 듣자 오히려 더 괴롭게 죽여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물론 나는 21세기 문명인이기에 회개했다.
‘주여 용서해 주시옵소서.’
됐다.
후련해진 마음으로 죄수들을 다시금 관찰했다.
이제 벽지에 둘러싸였던 놈들은 조용해졌다.
죽었을 거다.
뭐…….
가사 상태일 수도 있는데, 죽을 거다.
치료 안 할거거든.
아니, 치료를 해도 죽는다.
보통 이 시기 중독에 대한 치료는 몸 안에 들어간 독을 제거해야 한다는 컨셉이거든.
피를 뺀다든지, 숨을 뺀다든지…… 그러니까 수은과 같은 상대적으로 유독하지 않고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기체를 쐬어 준다든지 하는 게 치료다.
살해지, 사실상.
“읍.”
그리고 마침내.
첫 번째 죄수가 토하기 시작하고부터도 무려 6시간이 더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드레스만 입고 있던 놈이 토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
드레스 때문만은 아닐 거다.
우리야 멀찍이 떨어져 있는 데다가 바로 뒤에 계단도 있고 또 왔다 갔다도 하는 데 반해, 저놈은 계속 저기 있잖아.
옆 방 벽지에서 새어 나오는 독기…… 아니, 비소 기체! 비소 기체에 중독이 됐을 거야.
“셋 다 쓰러졌군.”
“이런 제기랄. 그럼 우연이 아니었단 건가?”
“그렇죠.”
“이걸 어쩌지.”
증명됐다.
사실 21세기에서 중독을 증명하려면 혈액 검사를 통해 비소가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겠지만, 뭐 노출된 사람들이 다 죽었으니 이것도 증명이지.
그러니 분위기는 밝아야 했다.
“정의가 이루어졌다!”
“감사합니다!”
“이제 비로소 내 동생도 편히 눈을 감겠어!”
피해자들의 가족들도 기뻐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제이미 경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설마 지금도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잘린 불알 탓에 빠져 버린 수염을 메꾸기 위해 붙여 놓은 가짜 수염이 눈에 들어와서, 노려보지는 못했다.
런던 귀족 중에서는 제일 불행한 사람이 바로 이 제이미 경이 아닐까?
도살자 해리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다.
“이거 내가 왕실에 선물로 보냈는데…….”
허나 제이미 경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 버렸다.
“충심에서 한 일인데……!”
“빨리, 빨리 왕궁으로 사람을 보내!”
“네!”
“언제 보낸 겁니까?”
“벌써 오래됐네. 이걸 대체 어찌한단 말인가.”
“이런 망할! 말 가져와! 내가 직접 간다!”
왕실에 이걸 보냈어?
암살이냐?
‘아니, 그래도 뭐…… 중요한 사람이 죽진 않았을 거야.’
내 기억이 맞는다면,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는 건 1830년대 후반이다.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왕이 죽진 않았다는 얘기다.
‘아니, 아닌가.’
그때도 제이미 경이 불알을 잘랐을까?
모르겠다…….
만약 나비 효과로 인해 왕이 죽게 된다면…….
우리 해부 쇼의 마니아이신 빅토리아 여왕이 곧 즉위를 하게 되는 건가?
‘오히려 잘…… 잘된 건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다행인 것은 제이미 경이 드디어 비소가 독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런던 전역에서 녹색이 퇴출되지는 않을 터였다.
백린 성냥도 뻔히 만드는 새끼들이 뭐 이런다고 관두겠어?
하지만 훨씬 적은 사람이 쓰게 될 거다.
난 그렇게 믿는다.
“잘됐군.”
“그러니까요.”
“참…… 자네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세상에 독이 유행할 뻔하지 않았나? 살다 보니 별 이상한 일도 다 보게 되는군.”
“그, 그렇죠.”
그 이상한 일이 천지인 곳이 바로 이곳 런던인데, 런던 사람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이런 게 격세지감일까?
아무튼, 리스턴의 말마따나 참으로 다행이었다.
이미 지옥인 런던에 비소라는 독을 더할 뻔했는데, 그러한 일은 피하게 되었으니까.
‘소독의 개념도 잡혀가고 있고…… 이제 진통제나 뭐…… 이런 걸 천천히 찾아보실까.’
한시름 덜었다, 이 말이었다.
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블런델이 보이지 않았다.
힘들어서 집에 갔으려나 하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열정 하나만큼은 19세기 의사들이 21세기 의사들 뺨 싸대기 후리고도 남거든.
당장 사람이 셋이나 죽은 마당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아무튼, 의학의 진보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순간을 단지 피곤해서 포기해?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러지 않을 인간이었다, 블런델은.
“블런델 교수님은 어디 가셨죠?”
“아…… 아까 산모가 있어서 갔다네.”
“아, 산모.”
그래, 그럴 줄 알았다.
환자 보러 갔을 줄 알았어.
‘산부인과 쪽도 어마어마한 진보를 이루고 있지…….’
손을 닦는다.
그것도 강박적으로!
그 덕에 산욕열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질환은 적어도 우리 런던 칼리지 의과 대학에서는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원래도 손을 좀 닦는 편이었던 조산사들까지 우리의 위생 전도사 조지프가 염화석회로 조지고 있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 따라 점점 우리 병원 산부인과에 지원하는 인력은 줄고 있긴 한데…….
그들도 언젠가는 다 회개하고 돌아올 거라 믿고 있다.
여기서는 사람이 거의 안 죽거든.
그냥 안 죽는다고 하고 싶지만…….
양심상 그럴 수는 없었다.
난산인 경우에는 여전히 죽으니까.
런던의 모성사망률은 기가 찰 정도로 높았다.
“아 마침 잘 왔네, 평!”
“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병원으로 돌아왔더니 블런델이 나를 찾았다는 말을 들었다.
해서 갔더니만 블런델이 활짝 웃었다.
피 칠갑을 한 채였다.
“피가 많이 나서 말이야. 자네 그 수액 세트 좀 빌려주게. 피를 주려고 해.”
아.
‘시발 수혈…….’
아무래도 차분하게 연구만 할 수 있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