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15)
검은 머리 영국 의사-215화(215/505)
215화 산부인과 [1]
비소 벽지는 잠시 잊어야 했다.
어쩌겠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뭘 더 하겠어.
아까까지만 해도 19세기 모드라 별생각이 없었거든?
근데 정신 들고 보니까 인체 실험을 했다.
뭐…… 죽을 만한 놈에게 한 거지만, 아무튼.
“잠깐만요.”
“어어.”
한숨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블런델이 철 바구니에 들이부은 피…….
원기옥 피다.
모두의 염원을 담았어…….
그러다 보니 이미 좀 굳었다.
뭐…… 이전보다 조금이나마 나아진 점이 있다면, 저 철 바구니가 아주 더럽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어떻게 아느냐고?
소독의 조지프가 뒤에 서 있거든.
저 새끼한테 걸렸다가는 강제로 깨끗해져 버린다.
원래도 강박이 있었나 싶은데, 녀석의 위생에 대한 집착은 놀라울 정도다.
“환자분은요?”
“응? 이럴 때가 아니야. 이미 죽어 가고 있네!”
“알겠으니까…… 일단 이건 좀 내려놓으시고요.”
“왜!”
“이미 굳었잖아요, 피. 이게 혈관 안에 들어간다고 돌겠습니까?”
“하하, 이 친구.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이전에는 뭐 모른다고 하면 그 말 듣자마자 두근거렸다.
이번엔 또 무슨 개소리를 할까! 난 얼마나 화가 날까! 뭐 이런 생각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익숙해지기 마련이거든.
“혈관 안에 넣으면 다시 풀린다네.”
“오.”
하지만 이건 또 너무 새롭다.
뭔 소릴까, 이게?
“내가 그냥 무작정 하는 줄 아나? 개들 가지고 많이 해 봤네. 하하.”
“으음.”
“글쎄 살아나더라니까?”
“다요?”
“아니지. 절반 이상 죽었네.”
“아무튼, 그렇게 살아난 개들 혈관을 째 보니까 피가 잘만 돌더라고.”
당연한 거 아닌가?
살아났다는 건, 피가 돈다는 뜻이니까.
반대로 그러지 못한 놈들은 다 죽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절반이나 살아나다니.
19세기는 인간만 강한 게 아니라 개도 강하구나 싶었다.
하긴, 주인 있는 개 가지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 다들 런던 떠돌이 개들일 텐데…….
이 안에서 죽지 않고 장성할 때까지 버틴 개들이 그거 보통 개겠나?
“죽은 개들은 굳어 있지 않아요?”
“하하. 원래 죽으면 피가 굳지 않나.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이지. 왜 굳을까?”
그것도 모르면서 원기옥 수혈할 생각부터 하지 말라고…….
혈액이라는 게 이게 참 어려운 물질 아니던가.
오죽하면 21세기에도 인공 혈액은 여전히 개발 중이었겠나.
굳지 않고 흘러가는 영양분 덩어리 액체라는 게 그냥저냥 뚝 떨어져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무튼, 나는 일단 환자부터 살폈다.
‘이미…….’
의식이 없다.
입술은 파랗고.
저건 어떻게 해도 살릴 수 없다.
21세기 병원에서라면 모르겠는데…….
아니, 이 지경이 됐으면 거기서도 반반이야.
그러니 여기선 어떻겠나?
100% 죽는다.
“일단 쓰세요. 여기.”
“그래, 고맙네. 자, 비켜! 사람 살리러 간다!”
그 확신에 나는 일단 물품을 건네주었다.
뭐라도 해 봐야지.
혹시 모르지 않나?
살 수도 있다.
“아.”
아무튼, 블런델도 수액팀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에이스였다 보니 바로 환자 몸을 페놀로 박박 닦고는 칼로 슬쩍 째고 바늘로 혈관을 푹 하고 찔렀다.
중심 정맥관 삽입을 알아서 했다, 이 말이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게 기적이지, 딴 게 기적인가.
“들이부어.”
“네!”
아무튼, 라인까지는 기가 막히게 잡았다.
부어지는 게 물이 아니라 피라는 게 좀 문제였다.
다들 모아서 주는 피…….
심지어 저거 바늘로 뽑은 것도 아니다.
다들 손목에 천을 휘감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아무 정맥이나 째고 흘려서 모은 거다.
공기에 노출을 사정없이 시켰다, 이 말이다.
그러니 사실 섞지 않아도 굳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굳는다 이 말인데, 그걸 섞었으니 뭐…….
‘나는 안 볼란다…….’
어휴.
한숨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더 보고 있으면 한숨을 넘어서 욕설이 튀어 나갈 거 같아서, 나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휘유…….”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왜?
산부인과 병동 이거 진짜 환골탈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라서 그렇다.
일단 시트부터 싹 갈았다.
조지프가 유독 열심 내는 병동이 외과랑 여기라 그랬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제멜이나 다른 교수들이 담당하는 곳에서는 쫓겨났다.
지랄하지 말라는 욕 들으면서.
‘바닥도 빛이 나네, 빛이.’
환자들도 깨끗하게 빨았다.
왜 그런 표현을 쓰냐면, 자진해서 씻은 사람이 10%도 채 되지 않아서 그랬다.
이 시기 목욕에 대한 편견이 워낙에 강하다 보니 씻으라고 해도 씻는 인간이 없었다.
조지프가 아예 아저씨한테 돈을 받아서 강제로 염화석회와 비누 등을 동원에서 싹 씻기기 전까지는 그랬다.
‘뭐…… 다 그런 건 아닌데.’
리스턴이 협박하기엔 여자들이 태반이라 다 씻은 건 아니었다.
외과 병동하고는 분위기가 완전 다를 수밖에 없긴 하다.
그게 옳은 건지도 모르겠어.
탕탕.
리스턴이 벽을 두드리면, 몸 가눌 수 있는 환자들은 다 일어나서 씻거든.
수용소도 아니고 그게 뭐냐.
“아, 이런.”
그렇게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블런델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나는 아까 한참 전부터 예상하고 있던 결과가 그의 손끝에서 벌어졌기에 그랬다.
환자가 사망했다, 이 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수없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안 돼!”
절규하는 남편을 보라.
이게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퉁치고 넘어가도 되는 일인가?
“아이는, 아이는 어떻게 된 겁니까?”
“아이도…… 죄송하지만…….”
“아, 안 돼…… 안 돼!”
이 시대의 모성사망률은…….
제대로 된 통계가 없어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인구 10만 명당 수천 명은 족히 넘어갈 거다.
산모와 아이 중 1% 이상이 사망한다, 이 말이었다.
태생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데도 불구하고, 평균 수명은 여성이 더 짧은 이유가 아마도 이 때문일 터였다.
뭐…… 21세기에서도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서는 여전히 저렇긴 했다.
“이런 제길.”
나도 감정이 별로 좋지 못한데, 블런델은 오죽하겠나.
이 시대에 산부인과 의사로 산다는 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보는 것만큼의 절망을 품어야 하는 직업이었다.
블런델은 그중에서 상당히 열정이 있는 편이고.
“이런 망할!”
그는 당연하다는 듯 차게 식은 시신을 뒤로하고, 그 시신을 적시는 보호자 또한 뒤로한 채 연구실로 향했다.
문밖에서 듣다 보니 이제 슬슬 욕설도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시발…….”
대체 왜 한국 욕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돕고 싶어졌다.
딱히 블런델이라서는 아니었다.
필요한 상황이잖아.
뭐, 손대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긴 한데…….
‘제왕절개…… 마취만 하면 가능해. 물론…… 그거 한다고 다 살릴 수는 없을 거야.’
나는 아까 보호자를 떠올렸다.
암만 이 시대가 죽음에 익숙한 만큼 무감해졌다고 해도…….
산모와 아이의 죽음은 좀 다를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배까지 찢어 놨어? 이거…… 당신들이 죽인 거 아냐?
이 질문을 피할 수 있을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모성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무려 10명 이하로 내려온, 세계 최하의 수치를 자랑하는 나라에서도 산부인과 의사들은 비난의 대상이었다.
여기선 어떨까.
피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는 말이, 과연 시신이 많이 상한 배우자를 마주한 보호자 앞에서 설득력을 가질까?
‘이런 걱정은 사치지.’
아마 이전의 나였다면 이러한 걱정에 매몰되어 몇 날 며칠을 고민했을 거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내가 망설이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죽어 나가니까.
당장 산부인과 병동을 봐라.
의료진들이 내 강권에 의해 손을 닦기 시작한 이래 사망률이 팍팍 줄고 있다.
자연 분만이 가능한 사람들의 사망률은 정상적인 수준으로 내려왔다는 얘기.
그렇다면 이제 내가 다시금 나서야 할 지점은 제왕절개와 수혈이다.
‘수혈은…… 대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제왕절개부터 가자.’
그런다고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사람에게는, 특히 다른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슬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법이니까.
난 저렇게까지 실의에 빠져 본 경험이 없지만, 내 전생의 스승이 불 꺼진 수술방 벽에 기댄 채 눈물 흘리고 있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문헌이 있을 거야.’
제왕절개…….
내가 뭐 산부인과는 잘 모르긴 해.
하지만 주워들은 풍월이 있다.
카이사르도 전설에 따르면 엄마 배 가르고 나왔다지 않나?
그런 것치고는 카이사르의 엄마는 그 후로도 오래 살아남았으니, 그저 구라일 가능성이 크긴 하다.
카이사르…….
탈모 숨기려고 월계관 쓰고 다녔다며.
평생이 구라로 점철된…….
끼익.
쓸데없는 생각을 뒤로하고 나는 일단 도서관으로 향했다.
교수가 되어서 좋은 점 중 하나가 이거다.
이 시대에는 책이 너무 비싸다 보니 아무나 막 만지게 두질 않거든.
근데 교수는 뭘 만져도 된다.
후후.
“좋아…….”
때 묻은 책을 살피다 보니 과연 제왕절개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무려 1500년대, 즉 16세기 무렵의 기록인데 엄마가 살았다는 기록이 있었다.
어찌했나 보니까, 순 운이 좋았다.
아니…….
배를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열었네.
심지어 자궁 안에 있던 애는 머리에 칼로 인한 흉터가 남았다고 한다.
그냥 막 짼 거야, 이거.
그럴 만도 한 게…….
‘마취도 없이 배를 째다니.’
얼마나 급하게 열었겠나.
심지어 인체에 대한 이해도도 지금보다도 더 부족할 때다.
그렇다 보니, 문헌에 따르면 제왕절개는 거의 금기시되는 수술이었다.
정 안 될 때만 했는데, 그 목적에 산모의 생명은 없었다.
아이만이라도 살리기 위한 수술이었다.
문제는 아이라도 사는 경우도 흔치 않았다는 점이다.
수술 시에도 그렇지만 수술 후도 문제다.
엄마 없이 살아남는다는 게 쉽겠나.
‘흐음.’
창밖을 보니 시커먼 런던이 보였다.
이전보다 엄마 없이 살기는 더 어려울 거다.
꼭 그래서만이 아니라, 엄마도 살려야 하지 않겠나?
엄마…….
엄마 보고 싶네.
두부돼지김치찜 먹고 싶어.
‘마취로 인한 위험은 감수해야 해.’
먹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나는 제왕절개에 대한 컨셉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21세기식으로 할 수는 없었다.
일단 내가 그렇게 하는 방법을 몰라.
대강의 방법만 알고 있는데, 사실 안다고 해도 무리다.
마취 기법도 다르고 다른 약을 주는 것도 다 다르고 무엇보다 수술 후 관리도 차원이 다르게 후지다.
그중에서 제일 차이가 나는 점이 있다면 아마 마취일 거다.
‘이 약이 알고 보니 산모와 아기에게는 안전했습니다! 일 리가 없지.’
타임어택이 필요하다.
통증 견뎌 가면서 할 때처럼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짧아야 한다.
저 이상한 가스라든지, 에테르라든지 오래 써서 좋을 게 없어.
그러자면 역시 가로로 째야 한다.
이건 나도 좀 낯설긴 하다.
흉터를 고려하면 세로가 맞긴 하거든?
하지만 산부인과에서 괜히 가로로 열까?
이전이라면 별생각 없었을 텐데, 이 시대에 와 보니 많이 달라졌다.
사소한 술기 하나하나가 나오기까지 정말 무수한 희생이 있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