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16)
검은 머리 영국 의사-216화(216/505)
216화 산부인과 [2]
실습실로 가야 했다.
해부 실습실로.
“자, 시신 왔습니다아!”
갔더니 누군가 아주 밝은 목소리로 달구지를 끌고 왔다.
보니까 옷이 멀끔한 것이 다른 데서 온 사람은 아니고 경찰서에서 온 듯했다.
그러고 보니 실려 있는 시신들 모두 익히 아는 얼굴들이었다.
비소에 의해 집행당한 이들이다, 그 소리였다.
“다 남자네.”
수술 연습하기에 아주 좋은 상태였다.
비소에 중독이 되어 있는 상태다 보니 뭐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겠지만…….
장갑 끼고 할 거니까 뭐 괜찮지 않겠나?
얘들이 갑자기 일어나 숨 쉴 것도 아니니 기체는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남자라는 점이었다.
“그…… 왜 그러십니까?”
내 반응에 막내 경찰이 상당히 섭섭해했다.
왜냐.
늘 반겨 주었거든.
내가 되었건 리스턴이 되었건 아니면 다른 누가 되었건 다 그랬다.
“아, 여자 수술 연습이 필요해서요.”
해석하자면 여자 시신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음. 여자 사형수는 거의 없는데…….”
바로 알아들은 경찰은 턱 밑을 긁었다.
그러더니 옳거니 하고 박수를 쳤다.
“빈민가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상태가 아주 좋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있긴 할 겁니다.”
경찰이 되어 가지고 사람 죽었을 거라는데 저리 밝은 모습이라니.
문제는 이게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란 점이었다.
런던의 슬럼화는 완전히 고질적인 문제가 된 지 오래지 않나.
주거지도, 수도도…… 아니, 그냥 아무것도 확장된 것은 없는 상황에서 인구만 늘고 있었다.
부자들은 그래도 되었다.
돈 있으면 좋은 데 살면 되거든?
하지만 빈민들은 어떤가.
거리로 내몰리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렇다 보니 별거 없는 소지품이라도 100% 노출이 되면서 사람들의 습격이 이루어질 때가 많다고 들었다.
강도만 당하면 다행이겠지만…….
어디 그렇게 유한 세상인가.
“그, 그렇겠군요.”
“그럼 이따가 한번 선배들과 돌다가 있으면 이리로 가져오겠습니다.”
“네, 그…… 너무 썩은 건 말고요.”
“하하. 제가 벌써 여기 들락거린 지 몇 달입니다. 걱정 마십쇼. 어차피 구덩이에 공간도 남고…… 오늘은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미제 사건이 넘쳐나는 세상에 경찰이 스스로 할 일 없다고 하는 게 온당한가 싶지만, 사회 분위기가 그러니 뭐 어쩌겠나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잡을 수가 없다.
CCTV도 없는데 뭘 잡어.
그보다 중요한 건 저 구덩이 운운했던 점이다.
‘아, 잊히지가 않네?’
나는 애초에 비위가 좋은 편이다.
그러니까 외과 의사를 했고 또 중증외상센터에서도 일하지 않았겠나?
단순히 좋다고 하기도 뭣한 게…… 중증외상센터에서 일하다 보면 좋은 걸 넘어 단련까지 되었다.
거기에 더해 19세기식 훈련도 받았다.
하지만 그 구덩이는…….
아마 디아블로에 나오는 핏이라는 던전이 거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싶어질 정도로 끔찍했다.
런던 각지에서 발견된 변사체들을 그냥 한 구덩이에, 한꺼번에 파묻어 버리는 꼴이라니…….
문제는 아주 커다란 구덩이라 해도 매주 발생하는 시신을 던져 놓다 보면 금세 채워진다는 점이었다.
해서 구덩이 지대는 나날이 넓어져만 가고 있었다.
-어째 요새는 파기가 훨씬 수월한데요?
경찰이 좋아하길래 뭔 소린가 했더니 시신 썩은 물 때문에 흙이 부드러워졌다는 얘기였다.
시발…….
그게 다 결국, 어디로 가겠나.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그렇게 오염된 지하수는 템스강으로 직행이다.
상하수도 만들어야 할 텐데…….
대미언 경한테 징징거려 봤음에도 별 소용이 없었다.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더라고?
‘대영제국인데 돈이 없어요?’라고 했더니, 차 무역 때문에 적자라고 하면서…….
-역시 아편밖에 없나?
라고 했다.
몰라, 무서워.
역시 정책이나 이런 데는 끼는 게 아니란 생각만 들었다.
하여간, 막내 경찰은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가 몇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돌아왔다.
저렇게 열심을 내는 이유는 리스턴이 쟤 엄마 다리 잘라서 그렇다.
아, 무서워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은혜를 입었단 뜻이다.
당뇨발이더라고…….
죽을 뻔했어.
문제는 나머지 다리도 당뇨 조절이 안 되면 잘라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건데…….
‘인슐린이 나오기 전에는 방법이 없지?’
어떻게 만들어?
모른다…….
몰라.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그 유래가 개에 있다는 건데…….
‘개의 췌장에서 분비되는 걸 주사하면 되려나?’
이것도 결국, 인체 실험으로 귀결된다.
21세기 기준으로는 이런 짓 하면 감방이야, 바로.
하지만…….
달리 방법이 있냐고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아니, 아냐.’
일단 이건 뒤로 미뤄 두기로 했다.
어? 어지럽게 이것저것 신경 쓰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니까.
“어떻습니까?”
“좋군요.”
“그렇게 웃으시니까 저도 좋군요.”
“제가 웃었어요?”
“네. 시신 받을 때마다 웃으시는걸요. 아까 낮에는 안 그러셔서 제가 좀 놀랐습니다.”
“제가 그렇군요.”
머릿속을 대강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달구지에 그득 실린 시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경찰서에서 바로 보낸 시신들이 아니다 보니 여기저기 치명상들이 보였다.
부패가 진행된 정도도 왔다 갔다 했고.
참으로 끔찍한 광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웃었다면, 아마도 이 시신들을 기반으로 해서 앞으로 살릴 생명을 떠올려서이지 않겠나?
절대로…… 내가 이상한 놈이라서는 아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아유, 아닙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대기 중이던 제자들을 시켜 시신들을 하나하나 실습대 위로 옮겼다.
블런델도 불렀다.
산부인과 의사니까 제일 급하지 않겠나?
“형도 왔어요?”
“수술인데 나도 와야지.”
“그…… 그래요.”
리스턴은 안 불렀는데 왔다.
상관없었다.
이 시기에는 과보다는 그냥 개인의 역량이 더 중요하거든.
막말로 내과 교과서도 1980년대에는 얇은 책 한 권이다가 2000년대에는 엄청 두꺼운 책 두 권이 됐잖아?
1980년이면…… 이 시기랑 비교하는 게 완전 실례가 될 만큼 의학의 진보를 이루었을 때일 텐데도 그랬는데 지금은 어떻겠나.
사실 굳이 각 과로 나눠서 공부한다는 게 크게 의미가 없는 시대라는 말이 된다.
나는 산부인과네, 나는 비뇨기과네 하는 거…… 그거 다 겉멋이다, 이 말이다.
“산부인과…….”
하여간, 나는 내 일당들을 다 불러 놓은 참에 본격적으로 입을 열었다.
“손 씻기 운동을 한 후에 이전보다 많이 개선된 과 중에 하나죠?”
“제일 많이 개선이 됐네.”
“요새는 더 잘하고 있어.”
내 말에 블런델과 소독에 미친 조지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임산부 내진하는데 그토록 더러운 손을 썼으니 사람들이 죽어 나가지 않고 배기겠나.
전후가 아주 극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과라는 얘기였다.
블런델이 내 말이라고 하면 껌뻑 죽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그런데도 여전히 너무 많이 죽습니다. 특히 난산으로 가면 뭐…… 열에 하나 살아남을까 말까 하죠?”
“그렇네. 일단 태아가 돌지 않은 상태면 도리가 없어…….”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산부인과는 내 말처럼 지금도 사람이 제일 많이 죽어 나가는 과였다.
이건 사실 블런델 탓은 아니었다.
그냥 사람이 애초에 애 낳기가 좀 어려운 동물이라서 그랬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머리가 압도적으로 좋다 보니 일단 머리통이 크잖아?
문제는 동시에 골반은 또 작다는 거다.
두 발로 걷는 인간의 골반은 척추와 뒷다리를 이어 주는 역할을 하는 대신, 상체 전체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그릇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그렇다.
“그뿐만이 아니네. 쌍둥이 낳아 봤나? 아휴…….”
같은 이유로 애가 둘 이상 있게 되면 난이도가 급증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출산은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괜히 우리 조상들이 이름을 나중에 짓고 한 게 아니란 얘기다.
아, 내가 너무 옛날얘기 하듯 떠들었네.
지금 그렇다.
“그래서 제왕절개를 좀 더 잘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제왕절개? 그…… 그렇지만 이건 아이만 살리는 수술이지 않나. 그마저도 살리면 기적일세.”
그래, 지금까지는 그랬지.
억세게 운이 좋지 않은 이상엔 아이도 죽기 마련이었다.
비단 외과에만 배가 금기의 영역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산부인과도 마찬가지다 보니 배를 건드리는 건 최후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산모가 이미 죽고 나서 건드리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아니면 그 직전이거나.
그러니…… 그사이에 탯줄을 통해 아무것도 받지 못한 아이가 살 수 있겠나?
가뜩이나 현대적인 제왕절개술에 비하면 엄청 느릴 수밖에 없는데?
“그게 왜 그렇게 자리를 잡았죠?”
“배를 안 건드리…… 어? 우리 건드리네?”
블런델이 멍청한 사람이라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아니, 그저 19세기에 맞는 상식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렇다.
대체 왜, 마취와 소독이 자리했는데 이 생각을 못 하냐고?
너무 빠르다.
나라는 이레귤러 때문에 각각의 개념이 충분히 발전하기 전에 강제로 튀어나오고 있어.
‘후후. 이게 다 내 업적이다, 이건가.’
나도 모르게 실실 웃다가, 말을 이었다.
그 웃음을 본 리스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원래 하려던 말에 조금 다른 말도 덧붙였다.
“형님 덕이죠. 용기 있게 배를 건드릴 생각을 하셨으니까.”
“하하, 뭘. 소독의 개념은 자네가 떠올린 거야.”
“하하.”
사실 내가 다 한 거지만, 좀 나눠 줘야 하지 않겠나.
리스턴이 내 뒤에 서 있을 때야 비로소 다른 놈들이 내 말을 잘 들으니까.
“아무튼, 마취도 있고, 소독도 해요. 그럼 배를 건드려도 환자가 아파서 죽거나 미아즈마에 의해 죽을 가능성은 크게 줄어듭니다.”
“옳거니. 이제 그냥 분만시키는 대신 다 열어야겠군그래.”
“아니, 아니.”
미친놈이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네.
현대 의학에서도 그냥 낳을 수 있으면 그냥 낳는 게 더 좋다고 하지 않나.
이게 그냥 질식분만이 아이에게 더 좋다느니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모성 사망률이 7배가량 차이가 나서 그렇다.
물론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이미 위험한 상황이라서도 그렇겠지만…….
아무튼, 다 째는 건 안 될 말이다.
“아무리 소독해도 배 열었다 닫는 거만으로도 죽는 경우가 2, 3프로는 되잖아요.”
“2, 3프로밖에 안 되지. 내 환자들이 대체 얼마나 죽는지 알고는 있나?”
“그…… 대강은 알죠. 하지만 굳이 그 확률을 더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수술을 연습하는 이유는 교수님이 딱 보고 아 이거…… 그냥 낳아서는 죽겠다. 또는 위험하겠다 싶을 때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무기로 쓰기 위함입니다.”
“그런가……? 2, 3프로면…… 그게 의미가 없는 거 같은데.”
시발놈이.
100명 중에 안 죽어도 될 2, 3명이 더 죽어 나간다는 건데 의미가 없어?
라고 강하게 말하기엔, 후후.
진짜 별거 아니긴 해?
“일단 그런 얘기는 이따 하고 연습부터 합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시신이 썩어요. 일단 모여 봐요. 제가 생각한 게 있어요.”
“오오.”
“그래, 한번 해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