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17)
검은 머리 영국 의사-217화(217/505)
217화 산부인과 [3]
‘주여.’
오랜만에 기도한다.
왜?
나도…… 산부인과는 잘 모른단 말이야.
같은 외과라고 퉁치기에는 산부인과도 5대 메이저다.
내과와 정신과만큼의 괴리가 외과와 산부인과 사이에 있다.
그치만…….
“일단 내가 시범을 보이지.”
“네네.”
현시점 이 중에서 제일 뛰어난 산부인과 의사라 할 수 있는…….
아니, 이 중에서가 아니라 리스턴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명성이 런던 곳곳에 퍼질 정도의 명의였다.
“자, 봐 봐. 다행히 평이 덕에 소독을 하니까 배 여는 건 과감하게 하자고.”
“네.”
그런 블런델이 지지익 소리를 내며 배를 갈랐다.
이미 살짝 부패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잘 잘렸다.
뭐…….
세로로 여는 거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전엔 십자가 형태로 여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러면 잘 죽으니까…… 리스턴식으로 세로로 여는 거야.”
“네, 교수님.”
세로…….
그래, 사실 십자가보다는 세로가 훨씬 낫다.
십자가는…….
조금 그래.
대놓고 십자가는 안 된다고 하면 뭔가 공격당할 거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안 돼.
‘길게도 긋는다.’
21세기 제왕절개는 세로로 긋지 않고 가로로 긋는다.
뭐……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흉터를 고려한 절개일 거다.
팬티 라인에 의해 가려지거든.
게다가…….
자궁의 형태와 위치를 고려하면 상당히 아래에서 절개해도 되기 때문에 더더욱 눈에 띄지 않는 부위에 절개하는 것이 가능하다.
생물학 시간을 잘 떠올려 보면…… 자궁이 어찌 생겼는지 아마 알 테니 디테일한 상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자궁은 하복부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가로로 넓잖아.
물론 임산부 같은 경우엔 자궁이 위로 올라오지만 그래도 원래 생긴 게 어디 가진 않아서 세로 직경보다 가로가 훨씬 길어.
‘그러니까 세로로 짼다고 해도 저렇게 명치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을 거야. 시야만 고려하면…… 사실 크게 크게 째는 게 최고긴 한데.’
블런델은 명치 끝에서 털 난 부위 근처까지 세로로 죽 긋고 복막까지 다 째서 좌우로 벌린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거대한 절개다.
이렇게 쨀 수 있으면 애 낳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을 거다.
문제는…….
‘산모가 죽을 가능성이 너무 커.’
피…….
상처가 커지면 그만큼 출혈이 는다는 건 기정사실이지 않나.
거기에 더해 감염의 위험도 그만큼 쑥쑥 올라간다.
비록 우리가 소독을 진짜 강박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공기까지 어쩔 수는 없었다.
게다가 철제 기구들에 대한 신뢰도 또한 떨어진다.
육안으로도 미세한 홈이 다 보이는데…… 이 틈새가 모조리 균이 자랄 수 있는 배지라고 보면 되었다.
“음, 이게 자궁일세.”
“이건요?”
“그건 방광이지.”
“아.”
그러거나 말거나 블런델의 집도는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제자들이나 리스턴 모두 복강 내 장기에는 익숙하지 못한 데다가 특히 여자의 장기에는 더더욱 익숙하지 못하다 보니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뭐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앞에서부터 장기를 순서대로 보자면, 방광, 자궁, 그리고 대장이다.
아, 하복부 얘기다.
위로 가면 달라.
“일단 이 방광을 옆으로 젖히고…….”
사실 실제 제왕절개 시에는 방광을 젖힐 필요 없다.
임산부는 자궁이 늘어나 방광보다 윗부분까지 올라가 있거든.
거대아까지 갈 것도 없이 단지 2, 3kg 되는 태아도 배 안에 넣는다고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한 크기라서 그렇다.
그냥 가로로 열고 아기 꺼내면 된다.
“여기서부터 고민일세.”
우리의 블런델이 막힌 건 이 부분이었다.
사실 산모들 해부가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에, 구조를 모르진 않을 터였다.
산욕열.
이 저주스러운 병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죽어 나가지 않았나?
물론 이제 우리 병원은 그런 일이 많이 줄긴 했지만…….
요새 준 거지 죽어 나간 세월이 수십 년은 되기 때문에, 블런델쯤 되는 경력자라면 구조는 해박할 거다.
“세로로 열면, 흠. 그럼 안에 아이가 잘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단 말이지.”
“지금 이 정도면 되게 쉬워 보이는데요?”
“허어.”
블런델은 말을 하다가 끼어든 조지프를 보며 혀를 츠츠 찼다.
대개의 경우처럼 억지를 부리거나 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내 복장을 뒤집어 놓기 위함은 아니었다.
사리에 딱딱 맞는 말만 이어 나갔다.
“양수라는 게 있다네. 그게 꽉 차 있어. 자, 그게 이렇게 째면 어떻게 되겠나.”
“아…….”
그래, 양수가 복강 내로 쏟아진다.
그게 무슨 문제냐는 말을 할 수도 있는데…….
이 시대에는 석션이 없다.
뭐…….
우리 강철 같은 의학도들을 동원하면 빨대 꽂고 어쩌고 하다 보면 다 빨아낼 수도 있겠지만…….
태변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
똥이다, 똥.
그게 뒤섞인 양수가 배 안으로 엎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항생제라고 해 봐야 썩은 빵 로또에 기대야 하는 현시점에서는 100% 사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경찰 시켜서 빈민가 시신 뒤지고 하는 이 개짓거리를 왜 하고 있나.
다 산모 살리기 위함인데 그래서는 안 된다.
“가로로 열죠.”
해서 이렇게 말했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학생 시절 실습 들어갔을 때 그렇게 했던 거 같다.
“가로라…….”
“네, 태아를 꺼낼 수 있게 이 지점에서 가로로 째고, 양수가 최대한 흘러나오지 않게 위로 당기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
“세로로도 당긴 상태에서 째면 뭐…… 흘러내리지 않게도 할 수 있겠지만 그 면적이 더 작을 거예요.”
몰라, 그런지는.
하지만 괜히 가로로 째겠나?
내가 지금 떠올릴 수 없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거다.
그리고 그 이유를 댈 수 있기까지 무수히 많은 시신이 쌓였겠지.
“그런가? 그럴싸하네. 하지만 문제가 하나 더 있네.”
“어떤……?”
나는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었다.
다들 알다시피 런던은 진짜, 진짜 사람이 많지 않나.
그중에서도 빈민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할 지경인데…….
이 사람들 애 낳으려면 대부분 병원으로 온다.
빈민이 병원을 어떻게 오나 싶겠지만, 이 시대 빈민은 노동자와 같은 말이라 아예 돈이 없진 않다.
다만 제대로 먹고살기엔 부족한 돈을 벌고 있을 뿐.
아무튼, 그러한 연고로 블런델은 진짜 많은 경험이 있었다.
아마 21세기 대한민국의 어지간히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도 단순히 본 산모 숫자만 대면 비교도 안 될 거야.
“자 보게. 세로로 자궁을 째면 다시 꿰매기가 좋아. 하지만 가로는 그렇지가 못하네.”
“으음…….”
하긴, 세로는 어떤 식으로건 간에 봉합이 수월한 편이었다.
인체는 대개 좌우 대칭이니까.
자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봉합 실력이 뛰어나다면야 별 상관 없겠지만…….
‘실…….’
우리가 쓰는 물건도 문제였다.
장인은 물건 탓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말자.
아니야, 그런 거!
장비도 너무 중요하다.
특히 사람 살리는 데 있어서는 아끼면 안 된다.
‘우리 실을 몸 안에, 그것도 방금 제왕절개로 출산해서 기진맥진한 산모 안에 남기고 나온다…… 개발새발 꿰맨 자궁과 함께 말이지……?’
어우, 소름이 돋네?
살인의 다른 형태가 아닐까 싶었다.
“이 자궁을 꼭 남겨야 할까요?”
내가 알기로 제왕절개와 함께 자궁절제술을 시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단순히 태아가 거꾸로 있다거나 머리가 크다거나 아니면 산도 즉 질식분만을 위한 길이 좁다거나 해서 시행하는 제왕절개가 아니라 전치태반과 같은 이유로 하는 경우엔 자궁이 남아 있는 거 자체가 위험 요인이거든.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대학 병원에서 마취과 허락 없이 그냥 응급이야! 라고 외치면서 수술방 쳐들어갈 수 있는 과가 딱 두 갠데, 그중 하나가 산부인과다.
다른 하나는 어디냐고?
백강혁이 이끄는 중증외상센터.
깡패 없으면 결국, 산부인과 하나뿐이다.
이유는 분명했다.
잘못되면 산모랑 아이 둘이 죽어 나갈 수 있을뿐더러, 한번 피가 나기 시작하면 진짜 외과 의사인 내가 봐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많이 나오거든.
“응?”
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난소만 잘 남기면 호르몬 계통 문제도 없고…….
앞으로 임신을 못 한다는 거 말고는, 수술만 잘되면 큰 문제가 없다고 알고 있거든.
“자궁을 제거하면 안 되냐고요.”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이게 없으면 어찌 살라고.”
“그래, 평이. 하나님께서 주신 장기를 우리 마음대로 제거한다니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란 말인가.”
그랬더니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아, 이거 우리 시대의 상식이었나.’
그래…….
하나님이 주셨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살고 봐야 할 거 아닌가.
무슨 ‘신체발부 수지부모’도 아니고, 죽음의 숙주가 될 가능성만 높은 애를 그냥 두나.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생각해 보십쇼.”
아마 예전 같았으면 하나님 소리 나오는 순간 바로 물러섰을 거다.
마녀로 몰리면 어째.
하지만 이젠 아니다.
적어도 여기 있는 애들은 내가 뭔 말을 해도 우선 들어 줄 준비는 되어 있으니.
“이거 남기면…… 우리 실이 이거 미아즈마 덩어리라는 건 아시죠?”
“음.”
“그러니까 그건 수은으로.”
“넌 지랄 말고.”
“네.”
중간에 또 끼어든 조지프를 침몰시키고, 나는 말을 이어 나갔다.
“현미경으로 봤잖아요.”
“그렇긴 하지.”
“이걸 배 속에 막. 이만큼 남기면 되겠습니까?”
“흐음…… 그런가? 근데 이렇게 저렇게 남기긴 하지 않나?”
그래, 남기고 있다.
혈관을 묶건 뭘 하건 이 실밖에 없으니.
나일론이나 바이크릴은 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
“그때마다 기도만 하죠.”
“허어,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네.”
“그래서 형님 머리가 점점 빠집니까? 아. 이거 제가 말로 했습니까?”
말로 한 거야?
속으로 한 게 아니라?
나는 곧 악마를 마주하게 되었다.
주께 기도하는 역설적인 악마를.
“주여…… 오늘 하나 더 갑…….”
“리스턴 참게!”
“살려 주십쇼!”
바로 무릎 꿇고 빌었다.
와.
기껏 환생까지 했는데 또 뒈질 뻔했잖아.
죽는 것도 무서운데 혹시 동양인의 몸으로 중세로 가면 어쩐단 말인가.
“아니, 머리 안 빠진다니까? 너 머리 많아.”
“네, 맞아요. 블런델 교수님이 없죠.”
“여기서 그 얘기는 왜 나온단 말인가.”
“그럼 형님 머리가 없단 말입니까?”
“아니, 아니지.”
나는 블런델과 눈을 마주치면서 동시에 간신히 리스턴을 달랬다.
블런델은 애꿎은 자기 머리를 좀 뽑더니 글썽이는 눈망울로 말을 이었다.
“이것 보게, 난 큰일이야.”
“그래, 그렇군. 후우. 깜짝 놀랐네. 내가 탈모일 리가 없거늘.”
“그래, 사자 의사 리스턴이 그럴 리가 있나. 갈기 같은 머리털 아닌가.”
“그래, 그래.”
안정을 되찾은 리스턴에게 나는 내 생각을 조심스레 전했다.
“아무튼, 이건 제거하는 게 좋겠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으음…….”
사람 죽이기 전에도 주를 찾을 만큼 신실한 리스턴은 당연히 즉답을 하지 못했다.
뭐 상관없었다.
사실 산부인과 의사는 블런델이니까.
“근데 어차피 상관없네. 대부분 다 죽거든.”
문제가 있다면, 그 산부인과 의사가 저따위 말이나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