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18)
검은 머리 영국 의사-218화(218/505)
218화 산부인과 [4]
우리 블런델 교수님께서 어차피 다 죽을 거라고 말은 했지만…….
내가 봤을 때 저런 말은 그냥 싹 방어기제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이 망할 병원에서 대체 얼마나 많은 죽음을 목도했겠나.
블런델이 만약 무신경한 인간이었다면 마음이 상하지도 않았을 거다.
아마 우리랑 같이 다니고 있지도 않겠지.
“조금만 더 해 보지. 적어도 더 썩기 전에 말이야.”
블런델은 죽음의 판정에 대해서도 다른 이들에 비해 어마어마한 고민을 해 온 사람이었다.
러스트 벨을 최초로 창안한 사람은 아닐지언정 런던에 최초로 도입한 의사들 중 하나이긴 하니, 실로 대단하지 않나?
수혈…….
그걸 수혈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먼저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사람 살리겠다고 자기 피부터 솔선수범해서 뽑는 사람이기도 했다.
“교수님, 저 이제 더 이상…….”
“아니, 아냐. 이런 기회가 매번 오겠나?”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지금도 봐라.
벌써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조지프, 앨프리드는 이미 뻗은 지 오래고, 독종 그 자체인 콜린도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블런델은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결과물이야…….
뭐…….
그래, 연습이니까 퉁치고 넘어갈 수준에 머무르고 있긴 하지만 사실 저게 당연한 거다.
아니, 저 정도면 아주 훌륭한 거라고 할 수 있어.
‘나는 대강의 정답을 알고 있지.’
사람의 기억력이란 참 신기한 거 같다.
책상에 앉아 있을 땐,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정말 제왕절개를 배워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앞이 깜깜했다.
산부인과라는 학문 자체가 생소하니까 뭐…….
그러다 아까 해부실에 들어와 시신 앞에 서니까, 저절로 절개가 떠오르더라고.
거기까지만 해도 놀라운 일인데, 실제 수술 연습을 하다 보니 더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무래도 학생 때 배운 것이 대부분이다 보니 학술적인 것이 먼저였다.
‘제왕절개…… 이게 간신히 자리 잡기 시작한 건 19세기 후반이야. 그때도 사실 산모까지 살아나는 건 드물었지.’
‘아이라도 살린다’가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산모도 그걸 원했을 거다.
모성은 잉태하는 순간부터 자리하게 된다니까.
애는커녕 결혼도 못 해 본 나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영역에 있는 감정인데, 아무튼.
나는 그런 시행착오를 겪고 싶은 생각일랑 전혀 없었다.
‘우리가 쓰는 실은 아무리 좋은 실이라 해도 실크야. 이런 실은…….’
이제 수술방에서 자취를 감추거나 적어도 비주류의 위치로 향한 지 오래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터였다.
가격도 있을 것이고, 재료 수급의 문제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합성 폴리아미드 봉합사가 대세를 이루게 된 가장 커다란 이유는 역시 감염이다.
‘자궁 절제술로 가야 해. 이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야. 출산 능력에 대한 고려는 지금으로서는 사치다, 사치.’
배 수술이 가능해진 지금, 여전히 어지간하면 충수돌기염 절제술이나 하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겠나.
뭘 제거하고 그 자리만 봉합하는 것과 기존의 장기를 완전히 수복하기 위해 수많은 실을 남겨 두는 건…… 어휴. 차원이 아예 다른 문제라고 보는 게 맞다.
일단 이 기조를 유지한 채, 절개 방법을 고민했다.
21세기에 주로 쓰이는 절개는 가로다.
상당히 아래쪽에 이루어지는데…….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해 보려고 했거든?
“평아, 이건 뭐야?”
“어…… 아냐, 그건. 신경 쓰지 마.”
안 되더라.
나름 손 좋은 편이라고 자부하는데, 역시 난이도가 있어.
흉터를 고려하면서 동시에 시야 잘 나오는 부위로 어련히 훌륭하신 분이 골라서 했겠지만…….
아직 못 하겠다는 것만 깨닫고 끝났다.
해서 아까 블런델이 하던 것처럼 그냥 세로로 열기로 했다.
자궁?
자궁은…….
‘제거할 것을 고려하면, 절개는 아무리 크게 해도 상관없겠지.’
말 그대로 십자가 모양으로 열어도 된다.
시야가 어마무시하게 크겠지?
그럼 안에 태아를 무사히 꺼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태반의 위치나 생김새 혈관의 분포 등도 배울 수 있을 거다.
그렇게 긍정적인 경험과 지식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적어도 원 시대보다는 훨씬 먼저 어떤 식으로든 개선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거다.
뭐가 되었건 블런델도 열심히 하는 교수고 또 그의 조수들이나 다른 교수들도 열정 하나는 뛰어난 사람들이니까.
“최종적으로 자네가 생각하는 형태는 이거로군.”
“네.”
자궁으로 들어가는 혈관을 결찰하고, 뚝 떼어 냈다.
난소는 남겨 두었다.
여성 호르몬을 위해서였는데, 당연하게도 블런델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건 왜 남기는 건가?”
즉시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왜?
여기서 호르몬 운운할 수는 없잖아.
당장 제이미 경이 왜 가짜 수염을 붙이게 되었는지…….
불알이 없는 사람들은 왜 탈모가 없는지…….
미스터리로만 남아 있는 시대거든.
‘생각 없이 남겼다고 하면 너무 좀 그렇겠지?’
그렇다고 둘러댈 수도 없었다.
단지 내 평판이 걱정되어서만은 아니었다.
알뜰하게 뗀다고 이 새끼들이 다 떼면 그 환자는 어쩐단 말인가.
괜히 와전되어서 자궁을 떼니 여성의 특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니 자궁을 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와전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니,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
이상한 데서 신중하고 또 쓸데없는 곳에서는 급발진 밟는 놈들투성이잖아.
“주여.”
나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거짓말을 치기 시작했다.
아니, 거짓말은 아니다.
나는 이제 실제로 이렇게 믿기로 했으니까.
“응? 갑자기?”
블런델은 이 새끼가 뭐 하는 건가 하는 얼굴로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콜린은 내가 해 놓은 걸 보다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리스턴?
체력 하나는 자신 있는 사람이지만, 오늘 잘라야 하는 팔다리가 많고 또 배 수술까지 있다 보니 먼저 자러 갔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주께서 주신 장기를 떼긴 합니다만…… 최소화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까 자네가 한 말이랑 좀 안 맞는 거 아닌가?”
“아뇨. 주께서 주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장기를 떼는 거니까 말이 안 맞진 않죠.”
“그런가?”
블런델?
블런델도 뭐……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데는 도가 튼 양반이지만, 밤새는 데 장사 있나.
정신이 아마 오락가락할 거다.
“네, 게다가 이게 또 무슨 기능이 있는 줄 알고 뗍니까.”
“그것도 그렇긴 한데…….”
“어지간하면 남겨야죠.”
“그렇군그래. 음.”
그는 혼미한 가운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렇게 블런델의 의문을 얼렁뚱땅 넘긴 후, 옆에 놓아둔 종이에 쓱쓱 우리의 지침을 그려 넣었다.
그림이야 개발새발이었지만 적어도 해부학적인 특징은 다 살려서 그렸기 때문에 의사라면 못 알아보면 안 될 만큼의 그림은 되었다.
정리하면 절개는 길게 세로로, 자궁은 십자가 형태로 하고 절제술 할 때 난소는 보존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이 말이다.
나는 그렇게 지침 정하면 당장 그날 밤에는 수술에 들어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산모가 없어서도 아니고, 상태가 별로인 산모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저 환자는 해 봄 직하지 않나요?”
나는 벌써 열 시간 넘게 진통에 시달리고 있는…… 안색만 보면 이미 죽었어도 과언이 아닐 거 같은 산모를 가리켰다.
그러나 블런델은 분연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진짜 죽을 거 같은 사람한테만 해야 한다네.”
“아까 죽은 사람은 뭐예요, 그럼.”
전에 말한 것처럼 산부인과 병동은 두 개다.
각 병동마다 20인실이 4갠데…….
1번 병동은 주로 의사가 보고, 2번 병동은 조산사가 본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아마 일반적인 의대생 활동을 했더라면 당연히 더 자세히 알게 되었을 텐데…….
나는 벌써 교수고 또 외과 리스턴과 함께하고 있잖아?
그렇다 보니 여기가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제대로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누구?”
의사가 자기 병동에서 사람 죽었다는데 누구냐고 묻는 게 가능한가 싶겠지만, 오늘 하루 지켜본 결과에 의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1번 병동에서만 오늘 3명이 사망했다.
2번은 2명…….
“5명이나 사망했잖아요.”
“아…… 근데 그건 예측이 안 되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일세. 딱 죽을 거 같을 때 내가 봐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 참.”
이게 의사가 할 소린가? 싶지만.
솔직히 방금 한 말에 대해서 나도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게 사실이다.
예측을 하려면 활력 징후를 알아야 하는데…….
혈압계가 제대로 된 게 있길 하나, 심전도가 있길 하나, 산소포화도 측정기가 있길 하나.
와, 말하다 보니까 시발 되는 게 없네?
근데 어떻게 케이스 선정을 하지?
‘수술 적응증부터가 문제구나.’
생각해 보니까 충수돌기염도 대강대강 보고 있긴 했다.
제멜 진료실 가서, 제멜의 손에 죽기 전에 배 눌러 보고 충수돌기염 같으면 배 째는 게 현실이지 않나?
그나마 그건…….
골든아워가 좀 긴 편이라 재깍재깍 진단이 안 되어도 버틸 수 있다고 치는데, 이건 아니지 않나.
난산 케이스라면…….
그 전에 내진이라든지 해서 알아내지 않는 이상에는 별도리가 없을 거 같다.
내가 여기서 지랄을 해 봐야 혈압계나 이런 게 발명될 건 아니잖아…….
그러니 방법론을 바꿔야 했다.
“일단 생각을 해 봅시다.”
“뭘?”
“산모가 왜 아이를 낳기 힘들까요?”
“약해서.”
“어…….”
맞지.
약한 건 맞다.
아니, 아니지.
내가 미쳤나.
“그거 말고…….”
“말고 이유가 있나. 원래 의사는 약자를 돕는 직업일세.”
“그런 게 아니라 의학적인 이유를 대 보자고요.”
“의학적으로?”
“네.”
“의학적으로…… 남들보다 약해서.”
때려야 할까.
“어어.”
“왜요.”
“방금 리스턴 같았네.”
“그럴 리가요.”
“아니, 살기가 있었어. 아무튼, 아, 그래. 뭐…… 아무래도 산도가 좁으면 그렇겠지. 실제로 골반이 작으면 난산이 있을 수밖에 없네.”
역시 때리는 게 맞을 거 같다.
생각만 했는데도 답이 나오잖아.
실제로 때렸으면 아마 훨씬 더한 답이…….
“왜 그러나. 나 무서워.”
“아니, 아뇨. 그 외에 딴 건요?”
“으음…… 아, 그래. 전에. 제길. 전에 환자가 아이가 발부터 나오는 바람에 사망했네. 애가 중간에 낑겼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더군.”
둔위.
인간은 머리통이 다른 동물에 비해 큰데, 아기는 아예 머리통이 몸통보다 크지 않나.
그렇다 보니 머리부터 나와야 하고, 출산 전에 머리가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데 분만이 시작될 때까지도 머리가 위에 있는 소견을 뜻했다.
이거야 뭐…… 21세기에서도 어려운 일이었으니 어쩌겠나.
“그거 미리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아요?”
“미리? 아…… 뭐…… 배 만져 보면 알 수는 있지. 머리통이 위에 있는 사람은 윗배 쪽이 단단하다네.”
“그러니까요. 그런 사람들은 제왕절개로 바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그런가는 무슨 놈의 그런가!
나는 소리 지르고픈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 낳은 케이스 중에 괜찮았던 적이 있어요?”
“없네.”
“그러니까요.”
“그렇네? 그래, 그럼 그 케이스는 미리, 흠. 내 기억에 오늘도 있는데.”
“그럼 가죠, 뭐 하는 거예요.”
“그래, 그래. 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