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19)
검은 머리 영국 의사-219화(219/505)
219화 산부인과 [5]
“으…….”
산부인과 병동은 말이 병동이지 사실상 감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뭐…….
이 시기 병원이라는 게 다 그렇긴 했다.
좁은 공간에 더러운 침대 몇 개 놓고 싹 가둬 두고 밥도 변변찮은 것들만 주면 그게 감옥이지.
물론 산부인과 병동은 최초로 손 씻기를 도입한 곳인데다가 조지프의 강박에 가까운 관심이 닿는 곳이다 보니 이제는 모양새가 좀 나아지긴 했다.
깨끗했다.
“아파요?”
“아프겠죠. 신음을 흘리는데.”
“많이 아프냐는 뜻일세.”
“많이 아파 보이지 않아요?”
“그래도 물어보긴 해야지.”
“그렇긴 하죠.”
그 외에는…….
손 닿지 않는 부위에 위치한 창문이며 다닥다닥 붙은 침대하며, 전혀 분류되지 않은 환자들까지 해서 완연한 19세기 병동 그 자체였다.
일단 의사가 환자에게 이렇게 심드렁하게 ‘아파요?’라고 묻는 것도 문제였다.
고문하냐?
일부러 아프게 하고 물어도 이것보단 성의 있게 묻겠다.
“자, 만져 보게.”
“그, 네.”
태도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 깊이 있게 지적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여유도 없고.
일단 지금 당장 안 들어가면 죽을 거 같았다.
내가 산부인과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문외한이라지만…….
‘벌써 양수 터졌어…….’
지금 시트를 적시고 있는 저 오묘한 빛깔의 액체가 양수가 아니면 대체 뭐겠나.
이제라도 태아의 머리가 하방으로 향하고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아쉽게도 환자의 윗배는 아주 단단했다.
초음파는커녕 엑스레이도 없는 시대이다 보니 더욱 자세한 확인은 불가했지만, 이 느낌은 분명 머리통이다.
그러니까…… 지금 저 양수가 터진 쪽으로 향해 있는 건 태아의 발이란 뜻이다.
가장 최악의 난산 중 하나라는 둔위라는 얘기다.
“어떤가.”
“머리가 위에 있는 거 같습니다.”
“그래, 그렇지. 보통 이런 경우엔…… 기다리다가 그래도 머리가 안 돌면 그때 가서…….”
“그때 가서 뭘 해요?”
시비 거는 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물어봤다.
설마 뭐라도 하지 않았겠나?
명색이 의사잖아.
“기도하지.”
“아, 기도. 그리고요?”
“그리고 정 안 되면 잡아 빼 보는데 잘 안 되더군.”
후후.
한 대만 칠까?
꼴을 보아하니 벌써 여럿 죽인 모양인데 한 대 정도는 쳐도 될 거 같았다.
“그러다 제왕절개를 한 적도 있는데…… 생각도 하기 싫군.”
허나 주먹을 말아 쥔 순간, 블런델의 표정이 너무 처량해 보여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 일부러 사람 죽이는 의사가 어디 있겠나.
몰라서 그렇지.
그 수가 너무 많고, 또 그 시기가 너무 긴 게 문제긴 한데…….
시대상이 그러하니 이게 또 개인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때는 마취도 없고 뭣도 없었거든. 환자는 계속 비명을 지르고…… 그러다 조용해져서 보니 졸도한 게 아니라 사망했더군. 간신히 아이를 꺼내긴 했는데, 그때는 이미.”
“아.”
블런델은 그가 겪은 죽음을 회상하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사실 21세기에서도 산부인과만큼 비극적인 순간을 자주 목도하는 의사는 없을 터였다.
그렇지 않겠나?
생명이 탄생하는, 그야말로 기쁨과 축복이 가득해야 할 순간에 산모와 아이 둘 다 죽을 수 있는 곳이 산부인과니까.
애초에 난산 케이스를 더더욱 많이 볼 수밖에 없는 21세기 병원에서는 더더욱 그랬을 거다.
나는 가만히 블런델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환자에게로 향했다.
뒤늦게 불려 온 보호자도 옆에 서 있었다.
“제왕절개를 해야 합니다.”
“네?”
“이 미친놈이! 내 아내를 살려 내!”
인상이 참 선해 보였는데 제왕절개 얘기를 꺼내자마자 급발진이다.
차분히 생각해 보면 내 잘못이기는 했다.
이 시기 제왕절개는 죽음과 동의어라는 걸 고려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멱살 잡고 흔드는 건 좀 선 넘었지.
“어어, 아파요.”
“내 아내는 죽어!”
“살리려고, 살리려고 하는 겁니다!”
“웃기지 마!”
더 있다가는 진짜 치겠다 싶었다.
다행한 것은 우리의 일행 중엔 리스턴도 있다는 점이었다.
“으읏.”
자신이 연습하던 시신을 정리하고, 또 손까지 꼼꼼히 닦고 오느라 조금 늦은 그는 오자마자 일단 보호자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마자 보호자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플 거다.
아니, 죽을 거 같을 거다.
나는 저런 식으로 리스턴이 쇠막대도 구부린다는 걸 알고 있다.
“끄아악.”
“진짜야. 살리려고 하는 걸세.”
“으아아아아! 이 손목 좀!”
“놓으면 가만히 들어 줄 건가?”
“그, 그렇다니까!”
“그래, 그럼.”
“후우.”
프레스기에 끼였다 나온 것처럼 진한 자국이 남은 손목을 보호자는 본능적으로 살피고 있었다.
아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내도 아이도 생각나지 않을 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건 사랑이니 뭐니 하는 거랑 관계없이, 순전히 통증관 관련된 행동이니까.
아무튼, 그렇게 나는 풀려났고 리스턴은 설명할 시간을 벌었다.
“제왕절개가 죽음을 뜻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네.”
아는 사람은 알 텐데, 지금이야 리스턴이 런던의 명의로 이름이 높고 또 그에게 수술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지만…….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광장에서 열심히 호객 행위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
마취도 없이 사람 팔다리 자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다들 꺼려 하는 일이었고, 리스턴은 그걸 어떻게든 설득해서 자르게 해야 했다.
뭐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기도 했겠지만 그래야 먹고 살 수 있었을 거다.
그러한 연고로 리스턴은 생긴 것에 비해 말을 굉장히 잘하는 편이었다.
“이전엔 그랬던 적도 있지. 하지만 그땐 마취가 없었네.”
“아, 마취.”
“그래. 지금 자네가 멱살 잡았던 이 교수가 바로 그 마취제를 만든 닥터 평일세.”
“그, 죄송합니다. 하지만 대뜸 제왕절개라니…… 배를 연다니요. 마취랑은 관계없는 거 아닙니까?”
“일단 듣게. 내가 말하고 있지 않나.”
“아, 네.”
이렇게 보니까 말을 잘하는 건지 몸을 잘 쓰는 건지 헷갈리긴 한다.
납득과는 상관없이 일단 말을 듣게 만들고 있지 않나.
저 스킬은…….
‘나는 못 배우겠군.’
위압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비슷한 걸로 인해 환자와 보호자는 그저 묵묵히 리스턴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미 우리는 배 수술을 열 건 이상 성공시켰어.”
거짓말이다.
정확히 세 보면 8건이다.
3건인가는 열었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다시 닫았다.
그중 둘은 지금 죽었고.
아, 수술 때문에 죽은 건 아니다.
그런 죽음은 따로 계산하고 있다.
아마…….
복부 통증의 원인이 다른 거였을 거다.
‘췌장염이라든지, 동맥 박리라든지…… 경색이라든지 뭐가 많겠지. 암도 있을 것이고…….’
보다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다면 진단까지는 가능했을 수도 있는데…….
그럼 뭐 하나.
췌장염은 그래 백번 양보해서 어떻게든 고쳐 볼 수 있다고 치자.
동맥 박리는?
괜히 봐 봐야 마음만 아프다.
경색? 마찬가지지.
암?
말해 뭐 하나.
21세기에서조차 정복되지 않은 게 암이다.
‘다행히 제르멩 여사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 있는 거 같던데…… 언젠가는 재발하겠지.’
유방암처럼 외부에 돌출된 구조물이라면 그나마 절제술을 시도해 볼 수는 있을 터였다.
괜히 암 절제술 중에 가장 최초로 시도된 것이 유방암이 아니라는 건데…….
그것도 최종 치료는 무리였다.
일단 안전 마진을 확보했는지도 확인이 안 되는 데다가 항암 방사선치료도 없지 않나.
그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배 속 장기의 암은 적어도 지금은 건드릴 수가 없다.
“이전 같으면 죽을 사람이 멀쩡히 살았다, 이 말일세. 자네의 아내도 마찬가지야. 내 보니 아이가 거꾸로 서 있군. 이 경우 산모가 살아날 확률이 몇인지 아는가?”
아무튼, 리스턴은 여전히 맹렬히 떠들고 있었다.
확률이라는 말에 나나 블런델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0%야! 0%!”
그리고 역시나 거짓말이 튀어나와서 리스턴답다는 생각을 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내가 바로 리스턴이지 않나.
악당이 아니라 다행이다.
만약 그랬다면 런던은 이미 불지옥일 테니.
“하지만 수술을 하면 열에 아홉은 산다네.”
“아…… 이미 많이 해 보신 겁니까?”
“그, 그럼.”
또 거짓말이다.
이거 처음이잖아!
그나마 마지막 남은 양심은 있는지 살짝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리스턴과 대화하면서 정신이 평소와 같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되었다.
나나 블런델처럼 자주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적으로 그랬다.
보호자도 마찬가지다 보니, 그저 안도의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아…… 다행입니다.”
“그래, 다행이지. 그러니까 우리에게 맡기게.”
“네. 부탁드립니다…….”
“그래, 그러지.”
나와 블런델만 있을 때는 수술은커녕 이거 자칫하면 처맞기만 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리스턴이 합류하자마자 일사천리였다.
보호자는 물론이고 같이 듣던 환자도 설득이 되었는지 연신 감사하다는 말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환자를 들것에 옮겨 수술방으로 향하게 되었다.
들것을 들고 옮기는 것은 제자들의 몫이었기 때문에 나나 블런델 그리고 사실 누구보다 환자를 옮기는 데 앞장서야 했을 리스턴은 살짝 뒤로 빠져 있었다.
“이봐들.”
리스턴은 그렇게 뒤따르고 있는 우리 둘에게 말했다.
어깨동무를 하면서였다.
모란역에서 깡패 만났던 중학생 시절이 떠올랐고, 끝까지 들어 보니 착각은 아니었다.
“잘하게.”
“응?”
“항상 잘하려고 노력합니다만…… 아시잖아요. 어려운 수술이에요.”
“아니, 오늘은 무조건 살려. 내 체면이 달렸네.”
“무슨, 무슨 소린가. 수술은 우리가 하는 건데 왜 자네 체면이 달렸어.”
“그러니까요.”
당황스러웠다.
수술은 우리가 하는데 왜 지 체면이 달려?
“내가 보호자에게 장담했잖아. 벌써 여러 번 했다고.”
“왜 거짓말을 했나, 그러니까.”
“아.”
“아니었으면 지금 수술할 수 있었겠나?”
“그건 아니긴 하지.”
“맞긴 한데…….”
들어 보니 딱딱 사리에 맞긴 했다.
논리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닌데 설득이 돼.
왜?
아까부터 어깨동무한 리스턴의 팔에 힘이 점점 들어가고 있거든.
여기서 까딱 잘못하면 부러질 거 같았다.
“반드시 살리게. 이건 부탁이 아냐.”
“아, 알겠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게 설득 : 물리 스킬인가?
나와 블런델은 연습이라곤 시신으로밖에 못 한 상황이었지만, 반드시 살리겠다는 의지로 불타게 되었다.
눈을 한번 마주친 우리는 이내 손을 박박 닦고 장갑을 끼고 또 닦고, 안으로 향했다.
마취과 전문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앨프리드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할까요?”
“음, 하게.”
“하자.”
끼리릭 소리와 함께 가스 밸브가 돌아가고, 환자는 이내 마취가 되었다.
저 마취 가스가 안전할까?
그럴 리가 없었다.
아마 태아에게 직통으로 배달이 되겠지?
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의학적인 상상은 최악으로 해 놓는 게 여러모로 옳은 법이었다.
“서두르죠.”
“반드시 살려야 하는데?”
“그러니까, 서두르자고요. 마취 가스 저거 종종 사람 죽잖아요.”
“그렇긴 하지?”
“아무래도 애는 어른보다 약하지 않겠어요?”
“이런 시발.”
너무 맞는 말이라 그런가 블런델도 욕설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