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20)
검은 머리 영국 의사-220화(220/505)
220화 제왕절개 [1]
타임어택.
수술하는 데 있어서 거의 뭐 최악의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가끔 드라마 보면 수술 빨리 끝낸다고 좋아하는 의사들 나오는데…….
진짜 의미 없는 짓이다, 그런 거.
왜?
같은 수술이라고 해도 다 상황이 다르거든.
사람은 얼굴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배 안도 조금씩 다르게 생겼으니, 그걸 단순 비교하는 건…….
“빨리, 빨리!”
지금 내 행동이 결코 평상시의 모습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어어!”
“칼!”
보통은 이렇게 안 해.
해서도 안 되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마취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이니까.
이게 그냥 내 생각만을 근거로 한 공포라면 어떻게든 천천히 해 보겠는데…….
‘요새 한 달 평균 리스턴 형님이 자르는 팔다리가 대강 150개…… 그중 사망하는 사람이 30명 정도 되는데, 마취에서 못 깨어나서 가는 사람이 10명은 넘지.’
엉터리 통계긴 하다.
그 어떤 변수도 통제되지 않았으니.
하지만…….
뭐 어쩌겠어.
그런 게 가능하지 않은데.
지이익.
나는 역시나 서두르는 게 옳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다지면서 동시에 칼로 배를 그었다.
블런델의 방식이었다.
세로 절개.
그것도 꽤 긴 절개였다.
‘시야는 진짜 좋구나…….’
뭐 서두른다고 해도 허둥지둥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기엔 내 수술방 짬밥이 너무 길다.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구.
“당겨.”
“어어.”
지금 수술에 참여하고 있는 이는 나까지 해서 총 다섯.
앨프리드가 마취하고 있고, 블런델이 제1 보조의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양옆으로 절개면을 당겨 주고 있는 건 조지프와 콜린이었다.
둘 다 열심으로 따지면 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놈들인 데다가 소독에 대한 개념은 21세기 의사들보다도 더 확실하게 틀어박힌 놈들이다 보니 이런 일 맡기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좋아.”
아까도 시야가 좋았는데, 당겨 주니까 더 좋아졌다.
확 벌어진 절개 틈새로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자궁이 보였다.
“이건 어찌할까? 역시 십자?”
“네, 아무래도요. 근데 안에 태아가 있으니까 단번에 째는 건 위험해요.”
“전에는 그렇게 했지.”
“아무래도…… 마취가 없었으니까요.”
통증이 있고 없고가 참 큰 문제라는 걸 이런 수술을 할 때마다 느낀다.
지금도 힘든데…….
환자가 아파서 발버둥 치는 상황에서 배 열고 자궁 열고 애를 꺼내는 건 대체 어떤 어려움이었을까.
얌전해 보이는 블런델에게조차 이따금씩 어마어마한 똘끼가 엿보이는 건 아마 그러한 경험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지금은 아예 사정이 달라진 만큼 우리는 차분하게 자궁을 열 수 있었다.
그것도 십자가 형태로.
“보인다.”
“와아…….”
“아기다…….”
“엄청 작아.”
그렇게 함부로 열린 자궁 안에 아기가 있었다.
어림잡아 한 2.7킬로 정도 될 듯해 보이는 여자 아기였다.
블런델을 제외한 나머지, 나 포함해서 4명은 이런 모습이 처음이거나 적어도 낯설었기 때문에 잠시 탄성이 일었다.
‘이것이 생명의 신비로구나…….’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덜컥 겁이 났다.
얘. 죽을 뻔했잖아.
이게 그냥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100% 죽을 뻔했다.
이 시기 모성 사망률이 높네 어쩌네 할 때도 뭐, 비참한 일이란 생각은 있었지만 이렇게 눈으로 보니 참담해졌다.
“빨리!”
무엇보다 날 참담하게 하는 건 이러한 감정마저 느낄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단 점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하겠네.”
“아, 네. 부탁드려요.”
나 대신 블런델이 아기를 당겨 꺼내고는 탯줄을 잘랐다.
그러자 옆에서 대기 중이던 다른 간호사가 아기를 받아 갔다.
“응애애애애!”
그때까지 너무 조용해서 겁이 났는데, 다행히 아기는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눈 돌릴 틈이 있는 건 아니었다.
리스턴은 몇 번 해 봤다고 입을 털었지만 사실 처음이잖아, 이거.
심지어 전생에서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산부인과라니…….
단 한 번도 하고 싶었던 적조차 없다.
“실!”
“어, 어.”
허나 해부학적 구조는 머릿속에 거의 온전하게 들어와 있었다.
게다가 시뮬레이션도 많이 돌렸다.
무엇보다 시신으로 연습도 했다.
이름 모를 빈민의 시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돌리면서, 나는 환자의 난소 근방을 묶고, 자궁으로 들어가는 혈관들도 다 묶었다.
“가위!”
“여기!”
그러곤 가위로 툭툭 잘랐다.
이거 나름 소피 제르맹이 독일산이라고 구해다 준 가위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독일인들의 장인 정신은 어디 가는 게 아닌지 확실히 영국제보단 훨씬 나았다.
이렇게 물건을 잘 만드는데, 식민지가 없어 팔 때가 마땅치 않다 보니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주절주절 떠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맞다.
“휴.”
“됐다.”
자궁까지 들어냈다.
눈으로 보기에 피가 막 나는 거 같지도 않다.
사실 난산에 있어 가장 많은 출혈을 일으키는 구조물이 태반이거든.
근데 우리는 지금 그 태반을 건드리지도 않고, 자궁째로 들어냈잖아.
그러니 출혈은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희망회로 존나 탄다…….’
물론 어디선가 나고 있을 수도 있다.
수술방에 있던 무영등이 그립다.
진짜 밝았는데…….
지금은 가스등으로 간신히 비추고 있었다.
괜히 수술 중의 일부를 광장 나가서 하던 게 아니라니까?
어두워서 안 보여…….
지이익.
안 보이는데 걱정해서 뭐 하나.
기도하면서 닫아야지.
괜히 뒤적거리다가 마취제 더 들어가서 잘못되면 큰일 아닌가.
해서 나는 주님께 기도드리면서 동시에 봉합을 이어 나갔다.
아무리 자궁은 봉합하지 않았다 해도, 혈관 묶어 둔 실들이 있다 보니 걱정이 마를 새는 없었다.
뭐라도 하나 잘못되는 순간, 환자는 죽을 테니까.
‘어지간하면 하지 말자고 해야 하나…… 아니, 그렇게 하기엔…….’
딱 한 번 한 건데 진이 막 빠진다.
진짜 위험한 수술이긴 했다.
21세기에서야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보니 훨씬 나아졌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위험 요소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거의 무슨 지뢰밭이라도 밟는 기분이 들 지경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거 같다.
“휴.”
“와…… 평 교수님, 땀이.”
“이거…… 식은땀이 줄줄 나. 그렇게 어렵냐? 옆에서 보기엔 그냥 쑥 열고 빼고 떼고 닫은 게 단데.”
다 끝내고 나니까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양옆에서 콜린과 조지프가 조잘대니까 더 기운이 빠진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더 화가 난다.
그래, 열고, 빼고, 떼고 닫은 게 다지.
배 열고, 애기 빼고, 자궁 떼고, 배 닫은 거라고 해야 옳긴 하겠지만.
“환자분, 괜찮으세요?”
마음 같아서는 그냥 어? 이대로 주저앉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의 마취과 의사, 상냥한 의사의 표본 앨프리드가 벌써 환자를 깨우고 있었으니까.
잘하는 짓이었다.
아,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마취 시간 줄여 보겠다고, 그러니까 들어가는 마취약 줄여 보겠다고 서두른 거잖아.
그 대가로 수명 몇 분쯤 누군가에게 준 거 같긴 한데…….
“으으…… 으음.”
“애기는 잘 나왔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앨프리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간호사가 아기를 보여 주었다.
양수고 뭐고 제대로 닦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우리가 주로 상상하는 아기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뭔가 좀…… 쭈글쭈글하다고 해야 하나?
사실 이제 와서 하는 얘긴데, 사실 아까 아기 처음 봤을 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생각났어.
노인의 얼굴이잖아, 저거.
“이쁜 여자 아기예요.”
“아, 아아…… 감사합니다! 정말 이쁘네요.”
하지만 엄마가 볼 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어머니도 제대로 된 관리는커녕 고생만 한 사람인 데다가 방금 수술까지 했다 보니 몰골이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기를 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지금만큼은 내 수명 몇 분쯤 깎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런던에 명의가…… 이런 명의가 계셨는데, 제가 감히!”
아버지도 엄청 기뻐하고 있었다.
거의 뭐 날뛰는 수준이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들어 보니, 수술 들어가고 나서 조산사들하고 다른 산부인과 의사들이 둔위 또는 역아라고 불리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얘기를 해 준 모양이었다.
아마 문제가 생겨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뭔가 할 생각은 하지 마라라는 뜻이었을 거다.
너무 삭막하게 느껴지겠지만 19세기 런던은 다 이렇다.
사람 죽었어?
어쩔 수 없지.
이게 루틴이다.
“으아아, 우리 애가 살았다! 아내가 살았다아아아아!”
그렇게 체념하고 사는 사람들이라 해도, 가족이 되살아났을 땐 저만큼이나 행복해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점점 더 마음이 포근해지고 있었다.
수술할 때만 해도 빨리 블런델에게 다 넘기고 난 딴 거 하려고 했는데…….
“좋구만. 내 환자들은 잘린 다리나 팔 보면서 망연자실하는데 말이지.”
“아.”
이제 보니 리스턴도 비슷한 심정인 듯했다.
아니, 아마 나보다 훨씬 복잡한 심경일 거다.
아닌 게 아니라 요새 리스턴 머리가 좀 부쩍 빠지고 있거든?
사실 19세기 런던에서 서른 넘었으면 노총각도 아니고, 이걸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진짜 빨리 장가가긴 해야 할 몸이었다.
안 그러면 어딘가 하자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 게 아니라, 문제 있는 놈으로 찍힐 수도 있을 테니.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더군다나 리스턴은 이제 재산도 꽤 있지 않나?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이 괜히 떠오른 게 아니다.
“부럽군. 나도 어서 가야 될 텐데.”
“그, 그렇죠.”
“자꾸 내 머리 보지 말게. 똑같이 만들어 줄까?”
“아, 아뇨. 살려 주십쇼.”
“아무튼, 아. 그렇지.”
“뭐가 그래요?”
리스턴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손뼉을 치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조선 기준으로 보면 자네도 노총각 아닌가?”
“네? 아, 그.”
그렇지.
조선은 조혼이 성행하던 나라였으니까.
후계자가 무엇보다 중요한 성리학의 나라…….
응?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아, 뭐, 다 아는 수가 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네의 나라인데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나?”
아니, 공부하지 마…….
알려고 하지 마…….
그러다 다 죽어.
“그래서 말인데. 이번 파티 때 어찌할 건가?”
“파티요?”
“해부학 파티 말일세.”
“아, 그거. 그거 정말로 하는 겁니까?”
“해야지. 얼마나 기대들을 하고 계시는데.”
“으음.”
화제가 다행히 바뀌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희망이 그득한 건 아니었다.
해부학 파티라니…….
뭐…….
축제 때 해부 쇼 없으면 우리 귀족은 영 능력 없는 놈이란 말이 나돌았다고 하니, 무리도 아니긴 했다.
적어도 19세기에서는 해부가 일종의 스포츠다, 스포츠.
“잘하면 우리 인기가 엄청 날 거야.”
“오……?”
나는 프로 선수고.
스포츠 스타야말로 언제나 인기인이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미래가 밝게 느껴졌는데, 역시나 런던에서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걸 바로 다음 날 알게 되었다.
“제이미 경……?”
“내 며느리가 진통을 하는데, 자네가 그렇게 용하다며.”
“아니, 저는 산부인과가…….”
“웃기지 말게. 내 자네 말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런 꼴이 되지도 않았을 거 아닌가?”
제이미 경이 찾아왔다.
정신이 없는지 가짜 수염도 못 달고서였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약해졌다.
“게다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야. 벌써 진통이 시작된 지 오랜데…… 아직도 기미가 안 보여.”
그래…….
불알 자른 양반이 부탁하는데, 가야 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게다가 대귀족이다, 이 사람.
은혜를 입히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다, 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