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21)
검은 머리 영국 의사-221화(221/505)
221화 제왕절개 [2]
다그닥다그닥.
얼마 전에 파티 때문에 갔던 길을 이번엔 왕진 때문에 가고 있다.
리스턴 형님의 마차도 상당히 고급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제이미 경의 마차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이 클래식한 고급스러움은…… 단기간에 남 팔다리 잘라다 번 돈으로 졸부가 된 사람이 따라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 마차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녹색 가루.
아마 제이미 경…… 이 마차도 비소로 떡칠을 했었던 모양이다.
“이거 그때 우리가 실험하지 않았으면 죽을 뻔했군그래.”
내가 본 걸 리스턴이 보지 못했을 리가 없지 않겠나.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녹색 나무 조각을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요.”
“어휴. 그렇게 끔찍하게 갈 뻔했다니.”
리스턴의 말에 나도 소름이 돋았다.
그때, 비소로 사형당했던 이들이 떠올라서 그랬다.
교수형과는 달리 천천히 죽어 갔던 이들…….
그 모습도 끔찍했지만 더 끔찍한 건 아무래도 이후에 이어졌던 반응이었다.
-피해자 가족들이 기뻐하더군. 비소로 계속 사형시키는 건 어떤가?
-아, 너무 좋아했었지, 하하.
유가족들이 좋아할 만하긴 했다.
교수형은 뭔가 순간이잖아?
그에 비해 피해자들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끔찍한 거야 당연한 것이고, 길었을 거다.
그걸 감안하면 사실 사형은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좋긴 했다.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이 시대의 수사 기술을 내가 믿을 수가 없단 말이지.’
억울한 사형수가 단 하나도 없을까?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딱 들자마자 불안해졌다.
아니, 대한민국에서도 없었던 게 아니지 않나.
20세기 말이었는데도 그랬다.
경찰들이 어? 막 때려 가지고 범인 만들고.
여기서라고 없겠나?
“읍.”
내 상념을 깨운 건 냄새였다.
아니, 냄새라는 말은 좀 점잖다.
악취.
그래, 악취가 내 골통을 뒤흔들었다.
“비소가 너무 비싸서 교수형으로 가기로 했다고 들었네. 사형수들 따위에게 허비할 예산이 없긴 하겠지. 저놈의 하수도 공사도 못 한다는데.”
“파리는 한다는데…… 이게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놈들이 앞서가는 느낌 아닙니까?”
“그게 어쩔 수가 없어. 뭘 모르는 놈들이야 자네가 저주를 걸어서 그렇게 됐네 어쩌네 하면서 역시 명예 영국인이다, 이런 말을 하지만…….”
“그거 아직도 돕니까?”
“아직도 돈다니. 이제 귀족들도 알게 되었는데. 자네 그거 때문에 훈장 받을 수도 있어.”
“하아…….”
이 미친 새끼들…….
아니, 과학의 시대라며?
근대화의 시대라며?
근데 저주가 말이나 될 법한 소리냐?
그리고 설령 저주를 걸었다 치더라도…… 파리 사람들 죽은 걸로 훈장 운운이라니.
“자네가 백인이었으면 무조건 받았을 텐데, 아쉽게 됐네.”
“그…… 그런 훈장은 됐거든요. 그보다 하수도 공사는 아예 나가리래요?”
“아…… 그렇다고 알고 있네. 이게, 음. 이런 데서 하기엔 좀 그런데.”
리스턴은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아무래도 늘 사람이 많은 런던이다 보니 여기도 사람은 많았다.
다만 그 누구도 감히 마차를 힐끔거리지 못했다.
외관부터가 여기 귀족 또는 그에 준하는 사람이 타고 있소! 하는 느낌이라 그랬다.
아니, 아마 그냥 걷고 있어도 비슷할 거다.
누가 리스턴 얼굴을 보고 다시 보겠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느낌으로 볼 수는 있는데 그것도 아마 초 단위일 거다.
“아니, 그냥 해 줘요. 누가 듣는다고.”
“마부가 있지 않나.”
“마부요? 밖이 저렇게 시끄러운데. 지금 저도 형님 말 간신히 듣고 있어요.”
“그래? 그렇다면 뭐.”
19세기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더 건강한 곳이 있다면 아마 귀이긴 할 거다.
여긴 이어폰이 없거든.
아무리 그래도 난 아직 10대다.
마부 아저씨는 못 해도 50은 되어 보이고.
물론 실제 나이가 어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얼굴로 10대는 아닐 거다.
리스턴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 대영제국이 전쟁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있네.”
“네에? 전쟁이요?”
“어어. 큰 소리로 말하지 말고.”
“네네. 아니, 근데 대체 어디랑……?”
1830년.
이 시기에 유럽에 전쟁이 있었나?
백 년 평화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1914년까지 100년 동안 엄청 평화로웠다! 뭐 이런 말인데…….
뭐 그렇다고 우리 자랑스러운 제국주의 유럽인들이 아예 전쟁을 안 한 건 아니다.
의학도에게만큼은 거의 세계대전급으로 유명한, 나이팅게일 여사가 활약했던 크림 전쟁도 1850년대인가 그럴걸.
하지만 그 외에 뭐가 있지?
“청. 자네 고향 쪽이지.”
“청. 아.”
청나라…….
하긴, 이 시기 유럽 놈들이 뭐 다른 대륙 사람들을 사람 취급이나 했던가.
그나마 동양인들은 이상하게 비슷한 문명인으로 대우해 주는 놈들이 좀 있긴 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흑인들에 비해 대우가 좋다는 것이지, 백인과 동등하다는 얘긴 아니다.
나만 해도 명예 백인이니 이 지랄 하잖아.
‘아편…….’
그게 디폴트인 시대다 보니, 내 머릿속을 지금 막 지배하게 된 것은 아편 전쟁이었다.
이 나쁜 새끼들.
마약을 무기로 삼아서 나라를 무너뜨리다니.
이거 순 악마 같은 놈들 아닌가?
‘아니, 아닌가?’
좀 헷갈리는 건…….
아편을 약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는 거다.
아편팅크니 뭐니 하면서 거의 무슨 음료수처럼 먹기도 하잖아?
모르핀도 막 쓰고.
내가 함부로 ‘막’이라는 단어 쓰는 사람 아닌데 쓰는 걸 보면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
‘진짜 그냥 좋은 건 줄 알고 파는 건가……?’
모르겠다.
대영제국의 속내를 내가 어찌 알겠어.
아니, 알아도 별 소용은 없을 거다.
나 같은 일개 의사가 세계정세에 무슨…….
“이것도 건너 들은 건데. 자네 얘기가 나오더군.”
“네?”
내가 왜 나와?
“자네가 아편 좋아하는 건 꽤 유명한 사실 아닌가.”
“아니, 그건 오해라니까요?”
“왜 부끄러워하나. 아편 좋아해도 사회생활 멀쩡히 하고 있는데. 아무튼, 자네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야.”
“네?”
“아시아인들이 아편을 유독 좋아하는 모양일세. 아편굴도 있고 하거든. 물론…… 우리도 아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대부분은 하류층이지 않나.”
마약중독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다.
마약만큼 인간 개인에게 또 사회 전반으로 미치는 영향이 많은 약이 또 어딨겠나.
게다가 마약은 괜히 이름이 마약이 아니다 보니, 그 미치는 영향이라는 게 대부분 나쁜 영향이다 보니 연구가 굉장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 중독에 대한 연구가 단연 압도적으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런 이론이 있다.
마약 말고도 다른 방면, 즉 가족, 친구, 연인 또는 사회적 지위나 소비 등으로 얻는 행복감이 충분히 많은 사람이라면 같은 마약에 똑같이 노출이 되었더라도 중독될 확률이 적다는 이론인데……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긴 할 거 같다.
여기 하류층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거든.
아니, 애초에 어떤 공장에서는 고된 노동 시키면서 사람이 다치면 마약을 준다니까……?
“그렇죠.”
“근데 자네가 등장한 걸세.”
“아니, 나를 왜요.”
“자네는 누가 봐도 지성인이지. 이건 내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말이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게. 그들이 보기에 아시아인치고 똑똑한 수준이 아니라 그냥 똑똑하단 말일세. 제이미 경과 대미언 경으로도 모자라 공주께서도 총애할 정도니 뭐 말 다 한 셈이지.”
“제가 지성인인 거랑……?”
“아시아인들은 지성인, 부유한 계층도 혹시 아편에 환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나왔다고 하네. 그래서 그쪽으로 뚫었더니 역시나 환장하더라는 말을 들었네.”
“하아.”
미친.
이게 이렇게 된다고?
“어쩌면 청과 전쟁이 곧 있을지도 몰라. 자네 말에 의하면 조선과 청이 딱히 좋은 사이는 아니라고 하는데 맞나? 친한 사이거나 하면 내가 말 한마디 보태 볼 수는 있을 걸세. 얼마나 소용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
나는 리스턴을 잠시 바라보았다.
무섭게 생겼다.
익숙해질 때도 된 거 같은데 여전히 개무섭게 생겼어.
하지만 우리 런던 의원들이나 귀족들은 홍차 새끼들 아니랄까 봐 이런 얼굴에도 쫄지 않는 담덩이를 지녔다.
게다가 아편 전쟁 이거…… 사실 18세기부터 준비한 거잖아.
근데 가서 하지 말란다고 안 하겠어?
‘청이랑 조선이랑 별 상관이 없을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조선.
내 나라, 내 조국.
생각해 보면 암 걸려 죽을 짧은 생에 군대 3년을 앗아간 나라이기도 한데, 이게 또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아려 오기도 한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국뽕 한 사발이 그리운 한국인이다, 이건데…….
그렇다고 독립운동했을 만큼 투철한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런 쪽으로 머리가 핑핑 도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마 지금쯤이면 망조가 들어도 단단히 들었을 거다.
순조…… 안동 김씨.
“아뇨, 뭐 굳이?”
“그래, 다행이네. 사실 내가 말한다고 듣겠나? 하수도도 안 지어 주는데. 그래도 거기서 이기면, 그래서 돈 좀 만지게 되면 또 모를 일이긴 하네.”
“그건 다행이네요.”
“그래. 아, 다 온 거 같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으면 그냥 두고 보는 것도 방법이다.
<검은 머리 미군 대원수>의 김유진 같은 괴물도 일단 있었잖아.
뭐 내가 나중 된다고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합리화가 좀 된다.
좋아, 마음 편해졌어!
“오셨군요. 안으로 드시죠.”
나는 그렇게 리스턴과 함께 안으로 향했다.
화려한 정원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녹색 벽지의 흔적이 덕지덕지 남아 있는 벽들이 보였다.
아마 혼비백산해서 뗐을 거다.
눈앞에서 그 흉악하게 생긴 죄수들이 픽픽 쓰러져 뒤졌는데 안 떼고 배기겠나?
‘다행이긴 하네. 여기서 애 낳는다고 생각하면…….’
애도 죽고, 산모도 죽고, 조산사도 죽고 다 죽지 않았을까?
“저기 블런델도 있구만.”
여러모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집사의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미리 와 있던, 그러니까 날 여기까지 부른 장본인인 블런델이 보였다.
원망하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혼자 제왕절개 해 보겠답시고 사고 치는 게 문제지, 이렇게 사고 치기 전에 미리 부르는 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아, 왔군! 휴.”
“왜요. 안 좋습니까?”
“으…… 으으…….”
나는 신음을 연신 흘리고 있는 환자를 힐끔 바라보고는 일단 블런델에게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의사지 않나.
여기 있었으니 상황 파악이 좀 됐겠지 싶어서 그랬다.
“어, 모르겠네.”
그리고 블런델은 당당하게 모른다고 답했다.
하지만 눈치가 있다 보니 내 불편해 보이는 기색에 얼른 다른 답을 더하긴 했다.
“음.”
“아파하네. 근데 모든 산모는 아파해. 일반적이지?”
“네, 그리고?”
“근데 오래 아파하네. 이건 안 좋지. 금방 낳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리고……?”
“머리가 위에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만져 봐도 이게.”
“으음.”
결국, 모른다는 말을 길게 늘어놓은 것에 불과했다.
‘시발, 주여.’
나는 욕설과 함께 신을 찾으며 환자에게 다가갔다.
그나마 제왕절개 수술하면서 기억이 좀 떠올라서 망정이지, 이게 어제였으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