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22)
검은 머리 영국 의사-222화(222/505)
222화 제왕절개 [3]
제왕절개의 적응증부터 떠올려 보자.
일단 제일 흔히 떠올리는 것은 신체 구조상 골반이 너무 좁은 경우인데…… 사실 이런 경우는 잘 없다.
기존에 제왕절개를 했던 산모에서도 2/3가량은 질식분만을 하거든.
지금 이 산모, 그러니까 제이미 경의 손자며느리 또한 골반 생긴 게 그리 좁지는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다른 원인을 떠올려야 할 텐데…….
초음파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지금 파악 가능한 건 자세 정도…….
‘자궁 수축 부전은 시간으로 미루어 짐작해야겠지. 전치태반은 출혈로…… 뭐, 그게 보일 지경이면 사실상 이미 죽었겠지만.’
태아의 심박동?
산모의 심박동도 실시산으로 파악하기가 불가능한데 뱃속에 들어가 있는 애 심박동을 어떻게 재나.
확실히 현대 의학은 다른 무수히 많은 분야의 발전에 의해 덩달아 발전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매 순간 깨닫는다.
아무튼, 나는 이러한 것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마침내 환자 앞에 섰다.
이미 아까 와 있던 블런델이 염화석회와 비누 등을 건네주었다.
-인간적으로 손은 비누로 닦읍시다.
나는…….
사실 여기 처음 왔을 땐 비누라는 게 없는 세계관인 줄 알았다.
아무도 안 쓰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멀쩡히 존재했다!
뭐, 충격 요법을 주기 위해 염화석회를 도입한 건 나였지만…….
-염화석회는 너무 아프지 않습니까? 비누로 하면 훨씬 나을 거예요.
원래 사람이라는 동물은 힘든 거 먼저 하고 나중에 쉬운 거 하면, 사실 쉬워 보이는 것도 객관적으로 어려운데 그냥 하는 법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한 건데…….
-그럼 비누로도 닦고 염화석회로도 닦지.
어?
이 새끼들 씻는 거 질색팔색했잖아?
헌데 콜레라 사태가 아무래도 너무 충격이었는지, 일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게 손 씻는 과정은 점점 세밀해져만 가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감시자로 동원되고 있었다.
지금도 봐.
블런델이랑 같이 왔던 놈들, 그러니까 앨프리드, 조지프 그리고 콜린까지 다 내 손만 보고 있잖아.
“크흡.”
때문에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누로도 닦고, 염화석회로도 닦은 후 장갑을 끼고 그 장갑은 염화석회와 페놀로 닦았다.
이랬는데도 깨끗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냄새와 통증이 내 주변에 그득했다.
“자궁 경부가 1인치 이상 열리지 않고 있네. 이 상태로 벌써…… 8시간이 흘렀어. 산모를 보게.”
“으으으으.”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다.
손 씻는 데 워낙에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나름 생활의 지혜를 터득한 덕이었다.
블런델은 나 손 씻는 동안 내내 조잘거렸다.
“내 경험상 이렇게 되면…… 7시간째 자네를 부른걸세. 헌데 여전히 변화가 없어.”
1인치.
2.54cm.
시발 존나 애매한 수치다.
영국에서 나고 자란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익숙해지질 않는다.
이딴 수치를 사용하면서도 대영제국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아는 영국인들이 다 막 엄청 뛰어나고 그런 것도 아니거든?
뭐 어디엔가 대단한 사람들이 있으니 남의 나라 막 쳐들어가고 식민지 만들고 하는 것이긴 할 텐데…….
“음.”
아무튼, 나도 검진을 해 보았다.
확실히…… 1인치 즈음 된다. 그 이상 열리지 않았어.
“힘줘 보실래요?”
“으…… 이제 더는.”
“그래도 한 번만.”
“으.”
힘겨워하던 환자는 제이미 경의 끄덕임에 안간힘을 썼다.
이건 정말 상당히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지만…….
확실히 환자가 힘을 준 거 같은데 딱히 압력이 전달되는 게 없다.
아마 지쳤을 거다.
아니면 아예 자궁 수축 부전이든지.
‘이거 좋지 않아. 이대로면 살기 어렵네.’
블런델이 내 표정을 읽은 건지 아니면 아까 본인도 해 본 건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우거지 죽상이 되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이대로면 죽는다.
산모도, 아이도.
뭐 이렇게 쉽게 죽나 싶을 텐데, 아이가 태어날 때 겪어야 하는 과정을 잘 보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태아는 좁은 산도 안에서 머리와 몸을 뒤틀어 방향을 바꾸는, 태아와 산모 모두에게 힘겨운 동작을 해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다.
골반의 형태에 맞춰 머리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90도 머리를 돌리고 이어 어깨가 빠져나오기 위해 다시 한번 90도 회전을 해야 한다.
‘하죠.’
‘해? 정말로?’
‘하라고 부른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이게 말이야.’
시신이 온전한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의 차이가 있을까?
의사인 내게는 별 차이가 없지만, 유가족에게는 크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걸’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19세기야 워낙에 죽음이 도처에 깔려 있다 보니 의사가 수술하다 환자가 죽는다고 해서 정말 그게 문제가 될 일은 없긴 한데…….
상대가 제이미 경이지 않나?
‘난 좀 무섭네. 불알 자르고 나서 사람이 좀 표독스러워졌다는 평이 있어.’
단지 대귀족이라서가 아니었다.
제일 친한 친구이자 동료 귀족인 대미언 경조차 상대하기 어려워한다는 얘기가 있다.
다른 사람 입에서 들은 게 아니라 대미언 경한테 직접 들었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
좀 그렇잖아.
도살자 해리가 제대로 된 재판 과정도 없이 거의 사적 제재 수준의 형벌을 받다가 사형 아니, 살해되었다는 말도 있을 정도인데, 이해가 간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아무것도 안 하면 죽습니다.’
그래도…….
내겐 대미언 경이 있다.
한 번은 막아 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못 막아?
그럼 프랑스로 튀어도 된다.
빠게트 놈들이 아무래도 더 미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은혜를 잔뜩 입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잖아?
‘이런 제기랄. 제왕절개를 귀족 영애에게 해야 한다니. 산부인과를 괜히 한 거 같네.’
‘그래도 성공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는 장난 아니겠지. 사실 나도 처음부터 온 건 아니거든.’
블런델의 시선이 꽂힌 곳엔 조산사들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전반적인 출산에 대해서라면 저 양반들이 블런델은 몰라도 나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
나는…….
역설적이게도 질식분만은 할 줄 모르거든.
막 교수님들 보면 이렇게 저렇게 유도분만도 하고 했거든?
근데 산부인과라는 과 특성상 메이저 과목이고 아주 중요한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학생 때 배우는 게 외과나 내과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학습량만 따져 보면 거의 마이너 과라고 퉁쳐도 될 지경이야.
‘저 사람들이 이미 제이미 경에게 산모가 죽을 가능성에 대해 얘기는 해 놓았네.’
‘우리도 하긴 해야죠.’
‘그렇……겠지?’
‘그렇죠. 경고는 제대로 해야 합니다.’
아무튼, 위험하다는 얘기를 더 해야 했다.
해서 나는 우리 마스터 조수들에게 눈으로 수술 준비할 것을 지시하고는 곧장 제이미 경에게 갔다.
그새 수염을 붙였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안 붙이는 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로 어설펐다.
‘시험하는 건가?’
충성도 테스트, 뭐 이런 건가?
지록위마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를 지경이었다.
제이미 경하고 환관 조고를 비교하는 건…….
‘어? 둘 다 없네. 아니, 아니지.’
시발, 웃을 뻔.
가짜 수염 보고 웃었다는 오해를 사도 죽을 거 같은데 실제 환관 떠올리고 웃었다는 걸 알게 되면 반드시 죽는다.
“그, 험.”
“그래, 상태는 어떤가.”
초조한지 목소리도 약간 얇은 거 그대로 나온다.
전립선 비대증 때문에 이런 수술을 받게 되다니.
참담하다.
눈앞에서 이런 몰골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나올 거 같다.
“별로 좋지 못합니다. 돌아가실 가능성이 높아요.”
“자, 자네는 뛰어난 의사 아닌가. 응? 아닌 게 아니라…… 아는 사람은 다 알던데. 리스턴보다도 요새 더 유능한 게 자네라면서.”
“어어, 그런 말을 누가 하나요.”
“원장.”
“아.”
그래, 그 인간이라면 할 수 있는 소리다.
둘이 대체 무슨 관계일까.
무슨 관계길래 앞에서 그렇게 까불어도 때리지 못할까.
심지어 뒤에서도 뒷담 깐 거 아냐.
“아무튼, 최선을 다하긴 할 겁니다.”
“그래, 그래. 어서 해 주게.”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 결국, 그렇게 되나. 우리 며늘아기가 살아날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이 순간만큼은 가짜 수염이니 뭐니 하면서 웃기도 어려웠다.
눈앞의 사내는 한 사람의 가주였다.
그리고 지금 그 가문의 일원이 죽어 가고 있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확률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연구할 때야 그렇겠지만…….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0 아니면 1이다.
삶 아니면 죽음이라는 얘기다.
“음.”
그렇게 설명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느새 수술 준비가 마쳐져 있었다.
환자에게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었기 때문에 갑자기 배를 홀랑 깠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동요하는 거 같진 않았다.
뭐…….
동요했어도 별수 없긴 할 거다.
힘이 없으니까.
“환자분, 너무 걱정 마세요.”
하여간, 나는 안심 시키면서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앨프리드 또한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스 밸브를 돌렸다.
어느새 고무로 만든 조악한 마스크를 환자 코와 입에 가져다 댄 채였다.
귀신같이 환자 호흡에 맞춰 뗐다 붙였다 하는데, 아마 21세기에서 마취과 의사를 데려온다 한들 저렇게는 못 할 거다.
저건 19세기 감성이 없으면 절대 못 해.
쫄보들은 심장 쫄려서…….
슈우욱.
가스와 함께 환자의 고개가 툭 하고 떨어졌다.
‘안전할까?’
모르겠다.
확실한 건…….
어제 수술했던 사람은 아직 살아 있다는 거, 그리고 아이도 살아 있다는 거다.
수술에 소요되었던 시간은 대강 1시간도 안 되었다.
다 닫을 때까지니까…….
“칼.”
소독은 환자 깨어 있을 때 했다.
페놀 이거 냄새도 그렇고 통증도 약간 있는데, 마취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최대한 마취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하니까.
지이익.
하여간 나는 칼로 환자의 배를 쨌다.
잠시 고민은 했다.
어제보다 좀 짧게 할까 말까.
하지만…….
‘차라리 둔위가 나아. 지금은 시간이 너무 지체됐어.’
피가 날 거다.
근육이 수축한다는 게 그냥 애를 밀어내기만 하는 게 아니거든.
핏줄도 눌러 준다.
그렇게 출혈도 줄여 준다는 건데, 이렇게까지 시간이 지체되었다면 어떻게 되겠나?
괜히 까불다가 시야 안 나와서 사람 죽으면 그 죄책감을 어떻게 견디나.
흉터고 나발이고 일단 살리는 게 최선이었다.
지이익.
해서 나는 딱 어제처럼 큼지막한 절개선을 넣었다.
“어이구.”
“하이고…….”
내가 애 받을 때 도와 달라고 요청한 탓에 곁에 와 있던 조산사들부터 기함했다.
기절하지 않은 게 다행이긴 했다.
배를 가른다는 건 오랜 시간 금기였으니까.
그럼에도 갈랐던 적이 있는 게 산부인과고, 소독도 마취도 없던 시절이었던 만큼 가장 끔찍한 결과를 마주해야 했던 것도 산부인과 의료진들과 조산사다.
트라우마가 몽실몽실 떠오르고 있을 거다.
“흐으…….”
사실 딱히 그런 기억이 있어야만 고통스러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제이미 경도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아들?
그는 이미 벽에 등을 기댄 채 기도만 하고 있다.
여러모로 시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주여.’
나도 기도하고 있으니까.
눈앞에 드러난 자궁이 딱 봐도 어제랑 상태가 다르다.
‘제발 살려 주세요.’
절실한 기도가 막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