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23)
검은 머리 영국 의사-223화(223/505)
223화 수혈한다 [1]
지이익.
기도하면서 자궁을 열었다.
애가 보였다.
다행히…….
살아 있다, 아직은.
나오고 어떻게 될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직은 살아 있어.
“여기 받아 주시고.”
“네!”
하여간, 애가 나오자 조산사들이 바빠졌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블런델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뭘 알고 바쁘게 움직이는 건진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보단 낫지 않겠나?
나는 애 어떻게 안아야 되는지도 모르니까.
애는커녕 결혼 아니, 데이트도 거의 못 해 봤다.
‘시벌…… 이번 생에는 좀 다르려나.’
다를 수…… 있을까?
모르겠다.
우울해지기 전에 우선.
“어…….”
“왜?”
“아니, 이게 좀.”
우선 수술부터 빨리 끝내야겠다 하고 있으려니 앨프리드가 날 불렀다.
왜 그러나 하고 봤더니 환자가 이상했다.
창백하다.
혈압을 잴 수 있었다면 아마…… 뚝 떨어지거나 잡히지 않는 수준이 되지 않았을까?
이유?
이유는 뻔하다.
“시발. 시발!”
애를 꺼낸 곳.
그러니까 자궁의 빈자리에 피가 고인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실, 실!”
“어, 어어.”
오염?
감염?
그딴 게 중요한가?
피 나면 지금 여기서 죽는다.
배 열린 채로.
테이블 데스다 이 말인데…….
이건 집도하는 의사에게도 불행이지만 보호자에게는 더없이 커다란 불행이 된다.
어떻게 아냐고?
한번 겪었어, 나도.
집도는 아니고 보조의로 들어갔을 때.
그때…… 우리 교수님도 무너지고 보호자들도 다 무너졌다.
“가위!”
“어…….”
“어 하지 말고 빨리 잘라! 잘라!”
“어, 네네.”
얼 탈 시간 따위 없는데 어 하고 있다.
마스터니 뭐니 했던 것은…… 다 취소다.
그래, 간신히 매뉴얼에 적힌 걸 좀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이 고작이다.
그 이상의 무언가, 그러니까 이러한 응급에 대응할 수 있길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 내 잘못이야.
“실, 하나 더!”
“네!”
“대답만 하지 말고! 그럼 시발 혈관이 묶이냐?”
“아, 아닙니다!”
조지프, 콜린 그리고 얼덜결에 다시 보조하게 된 블런델까지 쩔쩔매면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일부러 이러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환자가…… 죽을 수 있다.
“괘, 괜찮을 겁니다.”
초집중한 가운데 드문드문 들리는 대화가 있었다.
리스턴이다.
그제야 정신이 나서 뒤를 돌아보니 이미 남편은 쓰러졌고, 제이미 경도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수술방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이라는 걸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 봐야 행동에 뭔가 변화가 생기는 법은 없었다.
여전히 환자는 죽어 가고 있었으니까.
“실!”
“네.”
그나마 다행인 건…….
내 실력이 죽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록 제왕절개나 자궁절제술은 어설플 수밖에 없지만 혈관 결찰하는 것, 또 혈관을 찾아내는 것은 그저 종합적인 실력에 의해 할 수 있는 일이지 않겠나.
내 기준에서도 금세, 남들 기준에서 보면 말 그대로 순식간에 결찰이 끝났다.
그러자 자궁 안으로 마구 쏟아져 내리던 피가 멈추었다.
이건 좋다.
좋은데…….
“음.”
혈액을 대체 얼마나 잃었을까.
이거 그냥 수액으로 버틸 수 있을까?
‘일반적인…… 여자였으면 죽었다…….’
그러니까 19세기 런던 노동자계급이었으면 반드시 죽었을 거다.
애초에 건강하지가 못하잖아.
뭐…… 인간 자체가 너무 강하면 버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여기 노동자는 그냥 현시점에서 안 죽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그게 인간 자체가 존나 강해서 가능했던 거라고 보면 된다.
그런 인간조차 간신히 버티고 있다가 변수 생기면 바로 하늘로 가 버리는 세계다.
다행히 이분은 제이미 경의 손주며느리인 만큼, 영양 상태가 꽤 좋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버티고 있다는 건데…… 오래는 안 갈 거야, 아마.
“후…….”
우선 자궁을 들어냈다.
“어, 어어!”
무심결에 그걸 받아 내던 블런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 그래도 애가 왜 이렇게 빨가냐고 하던 참이었는데, 자궁에 피가 잔뜩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좀 놀라서 그런가 평소와는 달리 버둥거렸는데, 그러다 보니 안에 고여 있던 피가 밖으로 와르르 흘러나왔다.
고급진 침구와 바닥 카펫 모두 피범벅이 되었다.
뭐, 이 순간 그게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이 집의 주인인 제이미 경을 포함해서도 그럴 거다.
‘괜찮다고 하고 싶지만…….’
아까까지는 수술방에 있던 습관 때문에 인지도 못 했다면, 지금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입이 안 떨어진다.
머리가 너무 바빠.
‘저게 다 피는 아냐.’
배 안에 있을 땐 어두워서 몰랐는데, 밖으로 빼고 보니까…….
특히 지금 새어 나오는 핏물 색을 보니까 양수랑 뒤섞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저 2, 3리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핏물이 다 생피는 아니란 거다.
‘양수…… 양수…… 아, 그래.’
양수의 양이 대충 600에서 1000밀리 정도 된다.
그렇다면…….
‘에잇 싯팔.’
그럼 아무리 양수랑 섞였다고 해 봐야 1리터 이상 피가 났다는 얘기다.
20% 이상 유실이 있다는 것이고…….
급작스러운 출혈이 총 혈액량의 20% 이상이면…….
‘수혈의 적응증인데. 이걸 어쩐다.’
피를 줘야 된다…….
안 주면 아마 죽을 거다.
벌써 봐.
숨이 가쁘잖아.
다행히 여기서 막긴 했지만, 사실 100% 막았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아마 자잘자잘한 출혈은 있을 거다.
‘30% 이상이 되면 수혈을 한다 해도 안 돌아올 수 있어. 그러면 죽는다.’
수혈을 하냐 안 하냐가 문제가 아니다.
빨리 안 하면 해도 죽을 수 있다.
하.
지익.
나는 속으로 어마어마한 걱정을 하면서 동시에 봉합까지 다 마쳤다.
내가 천재라 다행이다.
정말로.
“가족분들 불러 주세요.”
이제 남은 건 어떻게 속여 넘기느냐다.
조선의 구라 마스터가 나설 순간이 되었다 이 말인데…….
신기하게 머리가 막 돌았다.
진짜로 돌아, 막!
“어, 어어.”
21세기야 세계 어디건 핵가족의 시대지만 지금은 대가족의 시대다.
특히 제이미 경과 같은 대귀족이라면 아예 온 가족이 다 같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워낙에 많이 죽어 나가는 시대다 보니 많이 낳기도 하고 해서 가족들만 불렀는데도 방 안이 우글거리기 시작했다.
“직계만! 이 사람 직계만!”
“어어.”
그래서 이 말을 했더니 이번에는 또 쑥 빠져나갔다.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딱히 조선에서만 통하던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수십 명이던 사람 중에 고작해야 4명이 남았다.
제이미 경과 손자 그리고 아들까지 하면 7명이었다.
“근데 왜 그러나.”
“일단 애는…… 건강합니다.”
좋은 소식부터 전하기로 했다.
문제가 있다면 정말 아주 건강한지는 의문이라는 점인데, 뭐…….
아까 울었고 지금도 꼼지락거리는 게 건강해 보인다.
인큐베이터 들어갈 수준이었으면 벌써 죽었을 거 아냐.
피 때문에 빨간 것을 감안하고 봐도 혈색도 그냥저냥 괜찮았다.
“감사, 감사하네.”
“문제는 이분입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아, 죽는 건가.”
다음은 나쁜 소식인데…….
아무래도 19세기 난이도가 훨씬 낮긴 했다.
피 흘렸다고 하면 대뜸 죽겠구나로 받아 주잖아.
보통 그렇게 되는 세상이니 뭐 무리도 아니긴 한데…….
아무튼, 나는 오히려 고개를 저어야 했다.
“아, 아뇨. 아직은.”
“그럼 기도할 시간은 있겠군. 목사님을 부르겠네.”
“아니, 아니.”
“뭔가, 그럼.”
“방법이 없는 게 아닙니다.”
“응?”
내 말에 제이미 경 말고 아마도 환자 부모로 보이는 사람이 나섰다.
“살 수 있다고?”
“피가 저리 났는데…….”
둘은 피 칠갑을 한 바닥을 보고 있었다.
저 정도로 나면 아마 보통은 죽었을 거다.
벌써 몇 번은 봤을 거야.
장례식 놀이라는 게 보편화되었을 만큼이나 죽음이 가까이 있는 시대잖아.
우리는 빠르면 고등학교, 늦으면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친지의 장례식을 가게 되는데 여긴 어릴 때부터 간다.
친척이 아니라 형제자매가 죽어서.
“수혈이라는 게 있습니다. 피가 많이 났으니 피를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스까 주는 블런델이 눈을 빛냈다.
“내가 자원하겠네.”
갸륵하긴 하다.
내 주변에 과연 사람 살리겠다고 자기 피 내놓을 만한 의사가 몇이나 있었을까.
하지만 무시해야 했다.
“하지만 그거…… 사람이 죽지 않던가.”
“그래. 교황청에서 금했었네. 지금에야 유명무실해졌지만.”
나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들으며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본격적인 구라에 들어갔다.
“제 조국 조선의 이야기입니다.”
조선.
과연 어떤 나라일까?
알 수가 없다.
나도 안 가 봤어.
‘대한민국에서는 뭐 그렇게 하는 게 맞잖아?’
몰라서 하는 말이니 거짓말은 아니지 않나?
뭐 이런 합리화를 하다 보니 얘기가 줄줄 나오기 시작했다.
“작은 나라지요. 참으로 오랜 세월 외세의 침략에 견뎌야만 했습니다. 마치 바이킹이 쳐들어왔을 무렵 영국처럼 또 로마가 쳐들어왔을 무렵 영국처럼 말입니다.”
“허어, 이거 참.”
“우리는 몰랐네.”
“그렇다 보니 전투가 잦았고, 자연히 다치는 사람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외과술이 발전했습니다.”
몰라 나도 시발.
21세기에는 잘하는 나라 맞잖아.
“하지만 이게 상처를 잘 치료해도 사람이 죽는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피가 부족해서 그렇죠. 그래서 피를 줬는데 오히려 더 빨리 죽는 겁니다. 사실 이 피라는 것이 생명이지 않습니까? 성경에도 나오지요.”
“맞네.”
“그렇지.”
“아무 피나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서…… 가족들의 피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죽긴 죽는데, 그래도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그런가?”
“그럴 수가.”
이것도…….
모르겠다.
물려받은 피니까 뭐…….
엄마 아빠가 다 에이형이면 아무래도 애도 에이형일 가능성이 높잖아.
“거기에 더해 제가 이 런던에서 공부하면서 깨달은, 과학자로서 생각하는 법을 더해 보니.”
“과연.”
“우리 런던이 최고긴 하네.”
“게다가 제 스승이 리스턴 박사님 아닙니까. 무던히도 많이 배웠지요.”
“하하.”
“그렇지.”
미심쩍은 소리를 할 때는 공범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놔야 한다.
특히 본인이 생각해도 이건 좀 개소린데? 싶은 말이면 더더욱 그랬다.
“거기에 우리 블런델 박사님도 수혈에 일가견이 있는 분입니다. 벌써 다섯 차례나 해 봤죠.”
“허어, 그렇구만.”
“괜히 런던 최고의 산부인과가 아니긴 하겠지.”
그 5명이 모두 죽었단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그것도 원래 죽을 거보다 더 빠르게 죽었단 얘기를 해서 뭐 하나.
대신 나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할 말이 궁색해지면 화를 내기 마련 아닌가.
보통 그러면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환자를 앞둔 의사라면 오히려 설득력이 순간적으로는 올라간다.
“맞는 피가 아니면 굳어 버립니다.”
“응?”
“뭔 소린가.”
“일단 시간이 없어요.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팔 내밀어 보세요.”
“아니, 왜.”
“팔은 왜.”
“사람 죽는다고!”
“어어, 알겠네.”
“자, 팔 여기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