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25)
검은 머리 영국 의사-225화(225/505)
225화 수혈한다 [3]
“끄응…….”
40분 정도 지났을 무렵, 환자가 눈을 떴다.
여전히 핏기 없는 얼굴이지만 의식은 멀쩡했다.
“아, 배가…….”
통증도 멀쩡히 느끼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뭐 이걸 보려고 일부러 진통제를 주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마땅히 쓸 약이 없어서 안 줬다.
의식 없을 때 주사로 줄 만한 약은 없지 않나.
“일단 이거 좀 마시세요.”
“아, 네. 으…….”
다행인 것은 배 수술이긴 해도 장을 건드린 건 아니다 보니 딱히 금식할 이유는 없다는 점이었다.
뭐…….
그렇다 해서 식사를 바로바로 시킬 수 있는 건 아니긴 했다.
언제 또 수술 들어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밥을 어떻게 먹이겠어.
약이나 먹어야지.
“아, 이제 그만.”
“으음.”
그렇다고 뭐 약이라도 많이 먹일 수 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용량…….
사실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너무 많이 먹다가 위장 장애 일으키면 또 피 날 거 아냐.
가뜩이나 핼쑥한데 피가 또 나?
그럼 죽을 거다, 아마.
뭐 또 수혈할 수는 있긴 하겠지만…….
“어지러운데, 이거 괜찮은…… 괜찮은 건가.”
우리 오라버니 쪽에서 환자에게로 대체 얼마나 피가 흘러 들어간 걸까?
그것도 오리무중이었다.
‘완전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긴 해?’
환자의 오빠도 뭐 제이미 경처럼 짱짱한 집안은 아니겠지만 준하는 집안사람 아니겠나?
그렇다 보니 상당히 귀티가 나게 생겼는데…….
그 말은 곧 병약해 보인단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쩌면 이미 빈혈이었을 수도 있다.
나야 뭐 이번에 비소 사태를 겪으면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새끼들 한참 전부터 납 중독시키고 있었더라고.
누굴?
자기 자신을.
‘그런 와중에 수혈을 이런 방식으로 한다는 건…… 하아.’
한숨이 나온다.
제1 원칙인 수여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이 오빠에게 무슨 병이 있을지 대체 어떻게 미리 안단 말인가.
아마 높은 확률로 성병은 있을 거다.
다들 아닌 척, 교회 열심히 나가는 척하지만 뒤로는 어?
얘네 사교게 가 보면 진짜 말도 아니다.
“일단 물 좀 드셔 봐요.”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양반을 비난할 이유는 없지 않겠나.
뭐가 되었건 자기 여동생 살리겠다고 손수 피를 나눠 준 의인이니까.
그렇다고 남의 피를 또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서 물이나 먹도록 했다.
한동안 요양하면 이 정도는 이겨 낼 거다.
빈민들이야 고기 먹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지만 귀족들은 고기 없이 밥 먹는 경우가 오히려 더 적으니까.
“아, 알겠네. 머리가 아프군그래. 그래도…… 허어.”
오빠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이마 근처를 짚더니만 이내 자기 여동생 쪽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주변으로는 아까 환자 배 속에서 흘러나왔던 핏물이 흥건했다.
나야 저게 다 피는 아니고 양수랑 뒤섞인 결과물이라는 걸 명확히 알지만 다른 놈들은 어떻겠나.
그냥 다 피로 알 거다.
“이건 기적이로군…….”
“모두 기도하세.”
그러니 그 와중에 살아난 여동생과 그걸 해낸 내가 어떻게 보이겠나.
말 그대로 신의 이적 행사처럼 보일 거다.
“네. 주께 영광 돌리죠.”
사실 내가 한 거지만…….
그걸 지금 말했다간 어떻게 될까.
후후.
안 좋게 된다.
분명히 그렇게 될 거다.
해서 나는 넌지시 제이미가 주관하는 기도에 녹아들었다.
물론 속으로는 전혀 엉뚱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수혈…… 이게 지금 당장 뭐 아무 데서나 아무렇게나 할 수 있지는 않을 거 같아.’
사실 수혈이 제대로 되려면 혈액형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를 장기간 보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막말로 그냥 지금처럼 사람을 생체 피 주머니처럼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아마 헌혈은 거리낌 없이 할 사람도 이런 식으로 피 주자고 하면 절반은 도망갈 거다.
물론 19세기 사람들은 21세기 사람들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일단 말이 통하는 블런델, 그래. 산부인과 병동부터 서서히 도입해 보자. 지금처럼 그때 가서 사람들 불러서 피 뽑는 것도 안 돼. 적어도…… 흐음. 그래, 그게 좋겠군.’
그중에서도 의대생들은 뭐라고 해야 할까?
사람 살리겠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놈들이었다.
콜린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마취제 입증하겠다고 생니를 뽑았다.
심지어 그때 콜린만 그렇게 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라 의대생들은 거의 다 손을 들고 나섰더랬다.
그렇다면 의학의 진보를 위해 피를 주어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나올까.
모르긴 몰라도 대기 탈 놈들이 한둘은 아닐 터였다.
오히려 너무 자주 주겠답시고 나서다가 죽는 걸 걱정해야 할걸?
“자네 아까 기도 시간에 별로 좋지 못한 생각을 했던 거 같은데.”
그렇게 기도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환자를 조산사와 다른 간호사들에게 맡긴 후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리스턴이 의뭉스러운 미소와 함께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아, 아뇨. 그런 적이 없는데요.”
“그럼 기도했나?”
“그…….”
“솔직하게 말하게, 어차피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니. 나 같아도 수술에 수혈까지 성공적으로 끝낸 상황에서라면 기도가 안 될 거 같아.”
“안 하긴 했죠.”
“뭔 생각을 했나?”
“그 뭐…… 의대생 애들 중에 좀 멍청…… 아니, 착한 친구들을 골라서 당직처럼 피 주머니로 쓰면 어떤가 하고 있었죠.”
“피 주머니라. 정말이지…… 딱 자네 다운 단어로구만.”
나다운 단어라니.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무슨 뜻이란 말인가.
영문을 모르겠어서 보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뭔가 체념하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이상함도 못 느끼다니. 아무튼, 좋은 생각인 것만은 틀림이 없군그래. 하지만…… 맞는 피가 아니면 굳는다 하지 않았나? 가족이 아무래도 제일 좋을 텐데.”
“그거야 그렇긴 한데…… 아까 보셨지 않습니까. 지금도 휘청거리면서 걷잖아요.”
“아, 저 양반? 유독 약해 보이긴 해.”
“그래도 노동자들보다는 건강할걸요. 피는……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생명입니다. 그 생명의 일부를 줘야 한다는 건데 애초에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견딜 수 있겠어요?”
“아…… 그럼 그렇게 중요한 것을 의대생들에게서 빼앗겠다, 이 말인가?”
“얘기가 그렇게 되나? 뭐 간격을 좀 두죠. 생명이 차면 그때 가서 빼고 이런 식으로.”
“존 윌리엄 폴리도리가 들었다면 아주 좋아할 만한 얘기로군.”
“그게 누군데요?”
내 말에 리스턴은 다시 한번 체념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뱀파이어를 모르나?”
잉, 그게 왜 여기서…….
“그건 아나 보네. 그 소설 쓴 사람이지 않나. 의사일세.”
“오, 의사예요?”
“그래. 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네. 그러니 그런 소설을 썼겠지. 전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보니 어쩌면 그 사람도 이런 유의 실험을 해 봤을 수도 있겠다, 싶군그래.”
이름이 영국식 이름이다.
내가 아는 드라큘라 백작은 루마니아 사람인데…….
“만날 수 있냐고 물을 거 같은데, 아쉽게 됐군그래.”
“설마 죽었어요? 옛날 사람인가?”
“아니, 뭐…… 살아 있었다면 나보다 좀 형님이겠군. 근데 죽은 지 꽤 됐네.”
“아쉽게 됐군요.”
그래, 의사가 뱀파이어 소설을 괜히 썼겠어?
아마 피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을 거다.
그렇다면…….
21세기에서야 말이 안 되는 일이었겠지만 여기선 뭐 실험도 했겠지.
이름 가운데 윌리엄 들어가는 거 보면 돈푼깨나 있던 사람이었을 테니 뭐.
“음. 나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소설은 봤거든. 자네랑 잘 맞았을 거야. 한창 대학 다닐 때 봤었는데 꽤 재미있었네.”
“오…….”
“집에 가서 찾아보고 있으면 빌려주지.”
“감사합니다, 형님.”
“아무튼, 피 주머니. 그건 한번 해 보도록 하지. 맞는 피가 나와야 할 테니 당직을 여럿씩 세워야겠군그래.”
“네, 뭐 그게 여의치 않는다면…….”
언제였더라.
정확히 특정할 수 없는 시기에 본 영화인지 만화인지 모를 장면이 떠올랐다.
“피 팔 만한 사람들은 많지 않을까요?”
“피를 팔아? 아…… 이런 식으로?”
“네. 피가 안 맞으면 뭐 안 될 것이고. 맞으면 돈을 주는 거죠. 피를 안 받으면 죽을 거 같은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니 부자들은 얼마든지 돈을 줄 거예요.”
“피를 판다…… 실로 악마적인 발상이야. 하지만 천재적이로군. 그래, 적어도 귀족 가문이나 사업가들이라면 사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
어쩐지 리스턴이 역시라고 중얼거린 거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기왕 얘기를 꺼낸 참이지 않나.
뭐 피를 사고판다는 게 좀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19세기 런던은 마경이다, 마경.
내 장담하건대 피 팔아서 떼돈 벌 수 있단 얘기를 들으면 자발적으로 팔 걷어붙이고 올 사람이 한 트럭을 족히 넘을 거다.
그냥 일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는 세상이니 뭐 당연하다.
당장 런던에서는 시신도 사고팔고 했잖아?
그에 비하면 피야 뭐 아주 양심적인 사업이 될 거다.
이건 적어도 동의를 구하고 파는 것이니.
“고맙네. 자네 덕에 손주며느리가 살았어.”
그렇게 리스턴과 작당을 하고 있으려니 제이미 경이 찾아와 인사했다.
내가 언제 귀족들에게, 그것도 공작쯤 되는 사람에게 인사를 받아 보겠나.
“아이구,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아니, 아냐. 자네는 정말…… 내 이렇게 된 이상 하수구 말이야. 그거 힘을 더 써 보겠네. 대대적인 처리는 못 하겠지만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야.”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거, 약소하지만.”
“아니, 하하. 감사합니다.”
대귀족이다 보니 당연하게도 말로만 퉁치거나 하진 않았다.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돈도 꽤 받을 수 있었다.
단지 그것에 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며칠 후, 나는 런던에서 꽤나 강력한 사람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뭐 귀족들에 비하면야 아무것도 아닌 몸이겠지만 적어도 서민들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무서운 사람도 없을 거다.
“반갑네. 리스턴 박사에게도 얘기 많이 들었네. 조너선 케이크라고 하네.”
“네, 반갑습니다, 서장님.”
경찰서장.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좀 무섭다.
나는 해명을 바라는 얼굴로 제이미 경을 돌아보았다.
뭐 설마하니 이제 와 은혜를 원수로 갚지는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다 보니 걱정까지 되진 않았다.
다만 궁금할 따름이었다.
‘경찰이랑 엮여서 나쁠 건 없지.’
일단 런던 경찰만큼 든든하고 안정적인 시신 수급처가 없지 않나.
그 외에 사람 찾는 것도 이 사람들이 짱이다.
당장 전에 불알 잘랐던 선원 휴도 이들이 찾고 있잖아.
사라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꽤 많은 돈을 받았는데 왜 그 그지 같은 곳에서 살고 있겠어.
뭐 높은 확률로 이미 다 쓰고 어디서 유리걸식하고 있긴 할 거다.
런던은 술과 도박 그리고 여자와 같은 향락이 그득그득한 곳이기도 하니까.
“아, 다름이 아니라. 경찰들이 아주 자주 다치지 않나. 그때마다 지금도 도움을 받고 있긴 하지만…… 전에 내 손주며느리에게 했던 것처럼 피를 준다면 어떨까 싶어서 말이야.”
“얘기는 들었네. 닥터 피영. 들어보니, 정말 획기적이더군. 어떤가, 노하우를 전수해 주면…… 섭섭지 않게 대우하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수혈 얘기가 어느새 아주 거대해져서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