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27)
검은 머리 영국 의사-227화(227/505)
227화 당뇨 [1]
“뭐라…… 했나? 방금?”
“아무래도 당뇨 같으니 소변을 여기 받아 오시라고 했습니다.”
제이미 경은 더없이 떨떠름하다는 얼굴로 내가 내밀고 그가 받아 들었던 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철로 된 컵이다.
사실 내 연구실에 가면 앨프리드 아버지가 선물로 준 중국산 도자기도 있긴 한데, 이 시절 중국산과 21세기 중국산은 느낌이 많이 다르지 않나?
나도 아직 적응이 잘 안 되는데, 19세기엔 중국산이라고 하면 럭셔리라는 이미지가 있다.
뭐…… 그 도자기도 나름 이쁘게 잘 만든 거 같긴 하고.
‘내가 아는 중국산은 진짜 지옥인데…….’
잘못 먹었다가 골로 가는 분유도 있고 발로 밟아 만드는 김치도 있고 신문지로 만든 만두도 있고…….
컴퓨터도 없으니 검색한 것도 아니다.
환생한 지도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그저 잠깐 떠올려 본 것만 나열해도 이 정도다.
하지만 이곳의 중국산은 고급이라는 말씀.
“그…… 알겠네. 근데 그걸로 뭘 어쩌려고?”
“당뇨인지 아닌지 봐야죠.”
“허, 그런 방법이 있나? 과연 조선인이로군.”
“그…… 네, 뭐. 그런 방법이 있습니다.”
하여간, 제이미 경은 곧 밖으로 나갔다.
아까부터 내내 소변 자주 본다고 하더니만 빈말이 아니었는지 지금 보면 안 나올 거 같네 어쩌네 하는 말은 없었다.
아, 당뇨라는 말을 어찌 아는 건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19세기가 이게 워낙에 미개한 시대잖아?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 인류는 당뇨를 인지한 지 굉장히 오래되었다.
조선에서도 소갈병이라고 불렀고, 기록을 따라 올라가면 아마 고대 시대에도 당뇨라는 병이 있다는 걸 알긴 알았을 거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비해 훨씬 심각한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다.
“정말 당뇨란 말인가? 이거 큰일 아닌가.”
소변보는 거까지 따라다닐 정도로 절친한 사이는 아닌지 방에 남아 있던 대미언 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럴 만했다.
일단 이 시기 당뇨 진단이 엄청나게 늦거든.
혈당 검사가 가능한 것이 아니잖아?
그렇다 보니 진단 당시에 이미 합병증이 생긴 경우가 많았다.
정확히 통계를 낸 것은 아닌데, 의외로 리스턴이 우리 병원에서 당뇨병 환자를 제일 많이 봐서 대강 알게 되었기로는 아마 보통 10년 이내에 죽을 거다.
그 한참 전에 일단 다리 자르거나 자르다가 죽고.
“큰일……이죠.”
이럴 때 아닙니다! 제게 방법이 다 있습니다! 라고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왜?
인슐린이 없거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치료라고 한다면 기껏해야 식이조절이랑 운동이다.
뭐…… 이 시기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저 두 개만 해도 꽤 도움이 될 거 같긴 하다.
노동자들이야 너무 못 먹는 것이 문제다 보니 해당 사항이 없겠지만 귀족들은 솔직히 비만한 사람들이 꽤 있거든.
일단 많이 먹는 것도 문젠데, 단 거 먹는 것에 대한 경계가 하나도 없는 것이 문제다.
설탕이 비싼 물건이거든?
누가 자본주의 아니, 배금주의 사회 아니랄까 봐 비싸면 무조건 더 좋은 거라는 인식이 있어 그런가. 그걸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사실 비소 케이크도 서슴지 않고 먹는 놈들이 많은 마당이니 설탕만 문제는 아니긴 하다.
“자네도 방법이 없나?”
“하나도 없는 건 아니지만, 수술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병은 아니라…….”
“그렇긴 하겠지. 거참 큰일이군. 제이미가 보기엔 저래 보여도 우리 대영제국에 크나큰 도움이 되는 사람일세.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내 조카도 아직 젊고 말이야.”
“조카분은 아직 당뇨인지 전립선 때문인지 모르는 일이죠. 제가 직접 봐야 뭐라 말씀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아니, 자네처럼 대단한 의사가 딱 듣고 진단이 안 되나?”
딱 듣고 진단이 되면 그게 무당이지 의사인가.
한 대 딱 때리면 좋겠는데, 공작님이다 보니 그저 웃는 게 최선이었다.
아마 이건 리스턴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리스턴이 생각보다 권력자 앞에서는 분노조절잘해가 되거든.
“죄송합니다. 더 정진하겠습니다. 다만 데리고 오시거나 제게 왕진의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죄송은 무슨, 하하. 리스턴, 자네 말이 틀린 거 아닌가? 악귀 같은 때가 있다고 하더니 너무 순하지 않나.”
“하하하. 잘 몰라서 그러십니다. 자꾸 보시면…… 이번에 비소 사형을 모르십니까?”
“아, 그거. 그 이후로 제이미가 잠을 잘 못 잔다고 들었네. 한창때는 전쟁도 나가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눈앞에서 사람이 천천히 죽어 가는 건 보기 그랬나 봐. 아무튼, 조카는 나중에 부탁함세. 일단은 제이미부터.”
“네, 공작님.”
중간에 좀 이상한 대화가 있었는데,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비소…….
그래, 그건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긴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희생이었다고.
“자, 받아 왔네.”
우리가 그렇게 친목 도모를 하는 동안 제이미 경은 걸쭉한 액체를 생산해서 들고 왔다.
그걸 보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중간뇨를 받아 오라고 해야 했는데…….’
흔적.
컵 주변으로 이리저리 뭔가 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첫 소변부터 받다가 중간에 어설프게 뺀 거다, 이거.
균이 좀 묻어 있을 수 있다, 이건데.
사실 뭐 괜찮았다.
그거 어떻게 검출하겠어.
“근데 이걸 어쩌려고 가져오라고 했나? 무슨 방법이 있는 건가.”
제이미 경은 아무래도 자기 소변을 이렇게 테이블 위에 떡하니 올려놓는 것이 꺼림칙한지 자꾸 치우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를 자꾸 보챘다.
그래서 나는 앨프리드를 서둘러 불러야만 했다.
나도 이러기 싫은데 제이미 경이 시키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왜……?”
“일단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어…… 그래. 해 보게.”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 있는 앨프리드를 곁에 둔 채 입을 열었다.
외과 의사긴 하지만 당뇨는 워낙에 중요한 병이다 보니 나름 잘 안다.
게다가 학술적으로 깊이 들어갈 필요도 없지 않나?
그냥 이거 걸리면 X 됩니다 정도만 알아듣게 해 주면 될 일이었다.
“자…… 당뇨. 이게 이제 오줌에 당이 섞여 나온다는 것에서 유래한 진단명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근데 이게 잘 보면 오줌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조선에서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조선이군그래. 조선이라면 믿을 수 있지.”
이 사람들 머릿속에서 조선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중에 들통이라도 난다면…….
모르겠다.
그건 그때의 나에게 수습하라고 두자.
“단 오줌을 싸는 사람의 피는 모기가 좋아한다는 말,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아…… 아니. 처음 듣는 말일세.”
“조선 사람들은 관찰력이 좋은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런 말이 있습니다.”
“허어. 근데 그게 사실인가? 만약 그렇다면 왜 그런 거지?”
“피도 단 것이죠. 이 당이 피에도 있는 겁니다.”
“허어.”
“설탕물이나 꿀 같은 거 보시면 어떻습니까? 끈적끈적하죠?”
“끈적하지. 아니, 그럼 내 피가 그런 상태란 말인가?”
사실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는다.
만약 꿀처럼 피가 변했으면 벌써 죽었지.
하지만 알게 뭐란 말인가.
한번 시작한 구라는 끝을 보기 전까지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럴 수 있단 말이죠. 자…… 우리 피가 멈추면 어떻게 됩니까.”
“죽지. 그건 알고 있네.”
“네, 맞습니다. 피가 멈추면 죽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발이 썩지.”
이번에 끼어든 것은 당뇨발에 있어 영국 아니, 세계 최고의 권위자라고 해도 좋을 리스턴이었다.
“네, 형님 말이 맞습니다. 잘 보면 다쳐서 자르는 사람하고 당뇨발로 자르는 사람들이 좀 다르다고 하셨지요?”
“그래, 확실히 달라. 마취가 없을 때야 뭐 빨리 자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좀 보거든요. 그러다 보면…… 혈관 상태가 다릅니다. 막혀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사람들 나중에 보면 하나같이 단 소변을 봅니다. 어? 그래서 그런가? 잘 죽는 거 같기도…… 아, 공작님이 죽을 거라는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자기가 잘 아는 얘기 나오니까 신나서 떠들더니 살짝 말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뭐 괜찮을 거 같았다.
제이미 경은 이미 넋이 나간 거 같으니.
자기 피가 꿀 같다는데 멀쩡히 있으면 그게 사람인가?
예전 같았으면 이 돌팔이 새끼들이라고 씩씩대며 해리 같은 진짜 돌팔이에게 갔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이미 제이미 경은 내 위대한 맛을 너무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봐 버렸다.
“어찌하면 좋겠나! 살려 주게. 난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네.”
“알고 있습니다. 제이미 경께서 대영제국을 위해 해 주실 일이 뭐 한두 개입니까? 게다가 아직 당뇨라는 진단을 내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확인은 해야죠.”
“아하, 그렇지! 그래! 아닐 수도 있겠구만. 어서 진단해 보게.”
“네, 앨프리드?”
뭔가를 느꼈던 걸까?
앨프리드는 대답 대신 빠르게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리스턴에 의해 제지당했다.
“소변이 단지 안 단지 말해 줄 수 있어요?”
“이…….”
“아니, 자네. 이런 줄 알았으면 안 잡았지.”
이어지는 내 말에 제지하던 리스턴은 멈췄지만, 절박한 지경에 이른 제이미 경이 문제였다.
“부탁, 부탁이네. 제발. 한 번만 마셔 주게.”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내 소변 먹어 보라니.
“너…… 이 시발.”
그러나 공작의 위엄은 지엄한 법.
앨프리드는 감히 공작님께 뭐라 하지는 못하고 애꿎은 나를 노려보았다.
무섭다기보다는 좀 미안했다.
그러고 보니까 너무 많이 부리긴 했어.
“선배, 이게 진짜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 단맛의 기준점도 잡아야 하고…… 예민한…… 재능 있는 사람이 필요해.”
그래도 어쩌겠나 싶어서 설득을 하려는 찰나, 콜린이 나섰다.
녀석은 별말도 없이 나서서 오줌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답니다…….”
“그래, 달구나. 당뇨가 맞았어.”
“이렇게 하면 의학의 진보가 이루어지는 거 맞죠?”
“맞지. 너무 잘했다.”
기특한 마음에 칭찬을 해 주었다.
그러자 잠자코 보고 있던 블런델이 한마디 툭 던졌다.
“단지 안 단지 볼 거면 그냥 개미 떼한테 뿌려 보면 되는 거 아닌가? 달면 엄청 몰릴 텐데.”
“오.”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몰랐다.
생각도 못 했어.
“오?”
콜린과 앨프리드가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고, 나는 애써 무시했다.
마냥 무시하는 건 별 소용이 없을 거 같아서 부리나케 제이미 경과 대화를 시작했다.
“보셨다시피 당뇨입니다. 치료 안 하시면…… 다리가 잘리거나 할 겁니다. 제가 하라는 치료를 해 주실 수 있겠죠?”
다행히 제이미 경이 워낙 필사적이라 방금 소변 먹은 콜린도 감히 끼어들진 못했다.
“그래, 그래. 뭐든지 하겠네! 새벽에 무덤가를 거닐라고 해도 하겠어!”
어, 뭐 좀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이 시기에는 이러한 믿음이 진짜 흔했다.
뭔가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을 하면 병이 나을 거라는 기이한 믿음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게 소용이 있을 리는 없었다.
“그것에 비하면 아주 쉬운 일입니다.”
“뭔가!”
“디저트를 멀리하십시오.”
“아…… 그건 좀.”
미친놈인가 싶을 거다.
무덤도 걷겠다는 사람이 고작 디저트에 굴복을 하나 싶을 거고.
하지만…….
우리 제이미 경이 영국인이라는 걸 유념해 두도록 하자.
이 사람…… 사실상 디저트 말고는 먹을 만한 게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