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28)
검은 머리 영국 의사-228화(228/505)
228화 당뇨 [2]
“그래도 안 됩니다.”
“허어.”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래, 영국인이라 평생 동안 영국 음식만 먹어야 한다고 하는 건…….
아마 히틀러도 그런 형벌에는 혀를 내두를 거다.
하지만 이 시기 디저트라 함은 색깔을 내기 위해 첨가되는 중금속을 제외하면 밀가루와 설탕이 거의 재료의 전부라고 보면 되었다.
엄청 달아.
당 덩어리다.
그냥 당도 아니고 중금속이랑 세트.
‘뭐…… 당 중독이라는 말도 있지.’
당은 마약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주 강력하고 치명적인 중독을 일으킨다, 이 말이다.
다른 즐거움이라도 많은 세상이면 모르겠지만 영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참으셔야 해요.”
“허어어어…….”
“죽습니다. 아시죠? 당뇨 걸리면 어찌 되는지.”
“알긴 알지…….”
내가 아까 당뇨에 걸리면 왜 잘못될 가능성이 높은지 19세기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하지 않았나?
살짝 학술적으로 안 맞는 부분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여기 와서 떠든 소리 중에 맞는 게 별로 없어.
아무튼, 딱히 내 설명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제이미 경은 당뇨란 말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상황이었다.
왜?
“걸리면 보통은 1, 2년 내에 죽지. 다리야…… 거의 자르고.”
리스턴의 말 때문이었다.
이게 현실인 모양이었다.
하긴…….
아무래도 21세기랑은 여러모로 다를 수밖에 없긴 하다.
일단 진단 자체가…….
소변이 달아질 때까진 어려우니까 엄청 늦어지게 되지 않겠나?
말기에 진단해서 인슐린도 없이 대충 식이조절만 하라고 하면 살 수 있을까?
안 된다.
“그러니까 드시지 말고. 운동도 하셔야 합니다.”
“운동이야 많이 하는데.”
“그…… 사냥 같은 거요?”
“그렇지. 내 대영제국의 당당한 귀족의 일원으로 사냥은 쉬지 않고 하고 있네.”
운동의 개념도…….
이 시기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건강에 좋냐 안 좋냐로 갑론을박이 있을 정도니 뭐…….
사실 21세기에도 운동이 몸에 좋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그렇다면 얼마나 운동하는 것이 좋냐는 것에 대해서는 엄청난 이견이 있지 않은가?
이제 막 제대로 된 과학이 태동하는 이 시점에서는 뭐가 운동인지조차 분간이 잘 안 되는 거 같다.
누군가 정의를 안 해 두었기 때문에 내가 뭐라 하긴 어려운데, 아무래도 남자다운 행동이 운동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거 같다.
“몸을 움직이질 않잖아요?”
“왜? 말도 타고, 총도 쏜다네.”
“말을 막 세게 타진 않잖아요.”
“그럼 귀족 체면에 전투도 아닌데 어찌 함부로 달린단 말인가. 그런 것은 아랫것들이나 할 일이지.”
그래, 이런 게 운동이다.
아랫사람들이 막 동물들 몰아오면 높으신 분들은 손가락 꼼지락거려서 총을 쏜다.
심지어 맞긴 맞았는데 설맞아서 도망을 친다?
꾼들이 각 재서 개를 풀거나 한 발 더 쏜다.
귀족들은 그렇게 잡은 것들을 보면서 허허 웃을 뿐이다.
지금 제이미 경은 그렇지 않아도 남성 호르몬이 거세되면서 근육량도 줄고 있는데 저딴 식으로 하는 운동만 했다가는 1년이 뭐야 6개월도 못 버틴다.
당을 소모할 수 있는 기관도 줄고 있는데 운동도 안 하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내 표정이 좀 어두워졌나 보다.
“아, 자네에게 하는 말은 아닐세. 노블 피영 맞지? 양-반이라고 들었네.”
헛다리다.
“그…… 틀린 말은 아닌데, 아무튼. 몸을 직접 움직이셔야 합니다.”
해서 나는 몸소 몸을 일으켜서 스쿼트 자세를 취했다.
나름 또 자세는 잘 나오는 편이거든 내가?
게다가 맨몸 스쿼트는 무릎이나 허리가 아프지만 않다면…… 사실 자세가 좀 어설퍼도 된다.
주로 다리에 먹이든지 엉덩이에 먹이든지 알 게 뭐야.
아무것도 안 하던 사람이 움직이는 게 중하지.
그리고 다리건 엉덩이건 일단 자기 몸이잖아.
아무 데나 커져도 근육은 붙는다.
“흐음…… 잘 안 되는데.”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꼭 하셔야 해요.”
“이런 거 말고 약은 없나? 파울러 용액 같은 거.”
“뭐…….”
비소 먹으면 한 방에 끝나긴 할 거다.
당뇨가 걱정되면 당뇨 걸린 신체를 파괴해서 없애 버리면 되긴 하지.
하지만 그건 치료가 아니라 살인이잖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그런 짓을 저지를 수는 없는 법이다.
“안 됩니다. 식이조절 하고 운동하셔야 해요.”
“하아…… 알겠네, 아무튼, 그럼 디저트 끊고 이거만 좀 하면 난 안 죽는 거지? 고맙네.”
내가 자꾸 듣기 싫은 얘기를 해서 그런가, 제이미 경은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집 가는 쪽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는데…….
아무리 봐도 듣기 좋은 말만 해 주는 돌팔이에게 가는 것 같아 무척 찜찜했다.
‘길어야 1년이겠군.’
말 안 듣는다고 저주 내리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예측이다.
남성 호르몬이라도 남아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애초에 지금 당뇨가 심해진 거 자체가 거세 때문일 거다.
그러니 다른 경우에 비해 질병의 악화 속도나 정도가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이 말이다.
“이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아직 떠나지 않은 대미언 경이 나를 불렀다.
“네. 공작님.”
“자네…… 안 좋은 생각 하고 있지?”
“네?”
“리스턴이 그러더군. 그런 묘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면 늘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줄곧 제이미가 사라진 곳을 보며 그러고 있으니 내 심히 불안하군그래.”
“오해…… 오해십니다.”
“그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제이미가 길어야 1년 정도 살고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그 안에 다리도 자르고 실명도 하고 신부전증도 와서 개고생하다가 죽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 좋은 생각은…… 맞는군.’
억울하진 않군.
그렇다고 해서 이런 소리를 있는 그대로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랬다간 좀 그런 눈으로 보게 되지 않겠나.
그렇지 않아도 자꾸 나보고 악랄하네 어쩌네 하는데 말야.
“뭔가 다른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왜?”
“아무래도…… 제이미 경이 이대로 있으면 그리 좋은 결과를 볼 거 같진 않아서요.”
“그, 그건 안 되는데. 제이미가 지금 맡고 있는 중책이 있네.”
“중책이요?”
“자세한 것은 말하기 그렇지만, 대영제국의 앞으로 100년을 결정할 수도 있는 일일세. 자네야 제이미의 저런 모습만 봐서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래, 제이미 경이 유능하다는 생각은…….
공작이니까 당연히 뭔가 있을 거 같긴 한데, 지가 알아서 내시 되어 가지고 수염 붙이고 다니는 걸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사라진단 말이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야. 헌데 흠. 그럼 무슨 수가 있을 거 같나?”
하지만 대미언 경은 누가 봐도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다.
일단 그 위세도 위세지만 하는 일이 다 멀쩡하지 않나.
뭐…….
대영제국이니만큼 뒷골목에서 보면 또 어떤 이상한 짓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서도.
그런 사람이 대단하다고 하면 대단한 게 맞을 거다.
“뭐 자네가 이런 걸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겠지만, 내 두둑이 사례를 함세.”
게다가 돈도 준다잖아.
전에 현미경도 턱턱 내 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대미언 경의 두둑이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두둑이랑은 차원이 다를 거다.
뭐 이래 봐야 떠오르는 게 없다면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겠지만.
다행히 내 의료 잡지식이 맹렬히 떠오르고 있다.
제일 친한 친구가 셋인데 그중 하나가 내분비내과이거든.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겁니다만…… 이게 조선에서도 아직 완전히 정립된 것은 아니라서요.”
“허어. 말해 보게.”
“그래, 당뇨는 나도 관심이 많아. 말해 보게.”
내 말에 대미언은 물론이고, 세상에서 당뇨발을 제일 많이 자른 바 있는 리스턴도 관심을 보였다.
블런델이나 나머지 제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 하마터면 소변 마실 뻔했던 앨프리드와 실제로 소변을 먹어야만 했던 콜린은 조금 다른 의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앨프리드 선배는 몰라도 콜린이 저러는 건 처음이다.
‘뭐, 내 잘못이긴 하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개미…… 그걸 당장 어떻게 떠올리냐.’
이따 사과를 하건 뭘 하건 해야겠다.
아니면 술이라도 사든지, 아무튼.
나는 내분비내과 친구가 해 줬던 얘기를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꾸 인슐린 맞아야 된다고 하면 거부감을 보이는데…… 사실 인슐린이 핵심이거든. 이게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거냐면…….
솔직히 말해서 다 기억이 나는 건 아니다.
막말로 내가 내과 의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뇨 환자도 아니지 않았나.
중요한 질환이다 보니 그나마 들은 거지 아니었으면 한 귀 열고 들어서 휘발했을 거다.
“제 조국 조선은…… 싸움을 참 잘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약소국임에도 불구하고 청과 왜에 여태껏 굴하지 않고 독립국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
“허어, 그렇구만.”
“근데 자네는 왜.”
나는 리스턴의 말을 사뿐히 무시한 채 구라를 이어 나갔다.
말로만 구라 마스터, 마스터 하던 것이 어느덧 수련이 되었나 그냥 술술 나온다.
“아무튼, 그래도 국경 지대에서는 여전히 싸움이 많습니다.”
“허…….”
“나도 가 보고 싶군그래.”
리스턴이 조선에 간다?
그럼 진짜 장난이 아니긴 할 거다.
만주 벌판 수복할 수도 있어.
뭐, 안 가겠지만.
“그러다 보니 다친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데. 그중의 한 명이 칼을 여기 맞은 겁니다.”
“배에? 죽었겠군.”
“근데 살았습니다. 뭐 우연히 산 것이죠.”
“그래? 헌데?”
“그렇게 살아나긴 했는데, 그날부터 단 오줌을 보는 겁니다.”
“그걸 어찌 안단 말인가.”
에라 모르겠다.
“개미가 꼬여서요.”
“아까 그럼 그거 왜 먹인 건가?”
“이 새꺄!”
“교수님! 해명 부탁드립니다!”
“까먹었어요.”
“아, 그럴 수 있지.”
“저, 저.”
몰라.
이따 사과하기로 하고…….
지금 급한 것부터 입을 털어야겠다.
“아무튼.”
“아무튼?”
도끼눈 뜨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대미언 경에 리스턴도 있는데 뭘 할 수 있어.
“그러고 나서 해부를 해 보니.”
“조선에서 해부를 해?”
“국경 지대에서는 이따금 한다고 합니다.”
“허어 그렇군. 정말 의료 선진국이로구만.”
“네네.”
신체발부 수지부모…….
몰라, 시발.
“그랬더니만 위 뒤에 있는 장기가 손상이 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음?”
“췌장?”
“네, 췌장. 아마도 췌장이 당뇨와 연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췌장이라는 곳도 있나?”
“네, 공작님. 이 뒤에.”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럴싸하지 않나.
실제로…….
이거 실험을 개 가지고 했거든?
개 췌장을 그냥 떼 봤대.
그랬더니 당뇨에 걸렸다가 죽었다더라고.
나는 그저 그걸 더 이해하기 쉽게 인간에 대입해서 설명했을 뿐이고.
물론…….
따로 직접 해 보는 실험이 필요하긴 할 거다.
“그럼 개를 좀 구해 올까? 아니면 사람이 필요한가?”
그렇다고 인체 실험은 좀 그렇다.
나는 대미언 경을 향해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었다.
“개, 개로 하죠.”
동물 실험이 낫다.
사람 가지고 하는 거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