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29)
검은 머리 영국 의사-229화(229/505)
229화 당뇨 [3]
대미언 경을 말리는 게 좀 힘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개와 사람이 같냐, 뭐 이런 얘기를 해 싸는데…….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사실 동물 실험이 무조건 다 통하는 건 아니지 않나.
동물 실험할 때는 안전했는데 막상 인간에게 썼더니 위험한 약이었던 것도 있고, 동물 실험할 때는 효과가 진짜 좋았는데 인간한테 썼을 땐 별 효과가 없던 약도 많았다.
임상 시험이 괜히 있겠나?
인간에게 직접 써 봐야 확실해지는 것도 있어서 그랬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사람 췌장을 잘라 내고 어찌 되나 보겠다니…….
그게 살인이지 다른 게 살인이냐?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사실 동물한테 하는 것도 꺼림칙한 일이다.
문제는 여기가 21세기가 아니라 19세기라는 점이다.
인체 실험은 안 된다고 극구 말려야 할 정도라고.
“그럼 흑인들 대상은 어떤가?”
“저, 공작님. 노예 무역은 이제…….”
“자발적으로 몸을 파는 사람도 있긴 하다네. 구하려면 아예 못 구하는 건 아냐.”
“아, 자발적으로요? 그럼 뭐…….”
저 봐, 저 미친놈들 좀 보라고.
대미언이 꽤 멀쩡한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뭐 자발적으로 자기 불알 자른 사람 옆에 있으면 누구라도 그렇게 보이긴 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다.
리스턴은 좀 낫다고?
자발적이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니까?
이거 하면 죽는다고 설명을 해 줄까?
아니다.
죽을 수도 있는데 돈을 많이 줄 거라고 할 거다.
그럼 신기하게도……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 게 현실이다.
당장 혈액 매매만 해도 하겠다는 사람이 수두룩하잖아.
“아니, 안 됩니다. 개로 해요, 일단. 사람으로 하는 건 저는 반대입니다.”
“허어…… 어차피 깜둥이로 하겠다는 건데.”
“그…….”
‘깜둥이도 다 같은 사람입니다!’라고 외치면 대미언 경이 어떻게 나올까?
모르겠다.
모르겠어!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리 우호적이진 않을 거라는 거다.
19세기 후반에도 인간 동물원이라는 게 있던 게 이 유럽이다.
제국주의 새끼들…….
어떻게 설득을 한다?
고민하고 있으려니 우리의 홍차 새끼, 리스턴이 입을 열었다.
“깜둥이로 하면 부정확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백인과 깜둥이의 그 어떤…….”
“아, 그렇군! 그래! 내 그걸 생각지 못했네. 개로 하지.”
“네네.”
그…….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좋은 건 아닌데…… 다행히도 일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잡아 왔습니다요.”
개는 어디서 구해 오느냐고?
그냥 아무 데나 가면 있는 게 개다.
떠돌이 개들이 일으키는 문제를 생각하면 이것도 어떻게 하긴 해야 한다.
광견병뿐만 아니라 그냥 개물림 상처 자체가 문제가 되어서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거든.
항생제가…… 없는 세상에서 더티 운드(Dirty Wound, 더러운 상처)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여기 와서 점점 더 실감하고 있다.
“잘했네. 자…… 그럼 어떻게 할까.”
“일단 마취를 하죠.”
“마취를?”
“죽일 수는 없잖아요. 췌장만 싹 제거하고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구만그래. 앨프리드?”
마취과 전문의 앨프리드가 리스턴의 부름에 나섰다.
콜린도 함께였다.
의대생씩이나 되어서 개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당장 아까까지만 해도 소변 판독기로 쓰이지 않았나?
그에 비하면 개 잡는 실험은 아주 뭐 의미 있는 일이다.
“네!”
게다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미 마부의 억센 손에 잡힌 채 벌벌 떨고 있던 떠돌이 개를 향해 앨프리드가 끼릭 소리를 내며 가스를 분사했다.
마부도 가스를 마셨기 때문에 눈알이 살짝 돌아가면서 개 잡고 있던 손에 힘이 좀 풀리긴 했지만, 덩치가 훨씬 큰 마부가 그렇게 되는 동안 개는 어떻게 되었겠나.
맛이 가 버렸다, 이미.
“야, 이거 이걸로 가는 거 아냐?”
약간…… 마취 사고가 염려될 정도였다.
“괜찮지 않을까?”
“뭐…….”
19세기 개니까 괜찮을 수도 있었다.
여긴 개나 사람이나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니까.
아무튼, 기왕 마취를 했으니 나는 리스턴과 함께 개의 배를 쭉 열고 인간과는 좀 다른 부위에 있는 췌장을 제거했다.
나도 개 췌장을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비슷하게 생긴 거 찾아다가 떼면 될 일이었다.
“좋아.”
“저놈도 하지.”
“네.”
혹시 몰라서 마부가 잡아 온 개 두 마리 모두에서 췌장을 뗐다.
그렇게 떼어 두는 것으로 일단 오늘의 실험은 끝이었다.
당장 소변을 볼 거 같지도 않았다.
배 째고 췌장 뗀 날 뭔가 더 하는 게…… 힘들 거 같기도 하고 말이다.
‘일단 당뇨가 생기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야. 오히려 그거보다 중요한 것은 치료다.’
당뇨 치료.
21세기에는 약이 진짜 많다.
엄청 많은데…….
그중에 지금 그나마 접근 가능한 것은 인슐린뿐이다.
그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인슐린은 아예 무리다.
아주 초기 형태의 인슐린을 써야 할 거다.
초기 형태의 인슐린이 뭐냐고?
간단하다.
그냥 생물이 지니고 있는 걸 그대로 주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이 췌장을 쥐어짜서 주는 건 안 돼.’
나는 기념품마냥 연구실로 들고 온 개의 췌장 두 덩이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사람 췌장보다는 훨씬 작았다.
그렇다 해도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은 인간하고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 말은 곧 저 췌장 안에는 인슐린도 있지만…… 당연히 소화효소도 있다는 말이다.
하필이면 그 소화효소가 단백질을 분해하는데 인슐린도 단백질이기 때문에 췌장 즙을 짜는 순간 그 소중한 인슐린은 전부 인슐린이었던 아미노산이 되어 버릴 거다.
그 즙은 아무리 많이 환자에게 줘 봐야 별 소용이 없다.
실제로 역사에서도 그러한 실패가 있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하면 될까?
“으음…….”
연구실에는 지금 나뿐이었다.
앨프리드와 콜린은 소변 문제로 내게 시비를 걸려다 리스턴에 의해 해부실습실에 끌려가 버렸다.
조지프?
녀석은…….
-손 씻었어?
-손!
-손 씻어!
아마 어느 병동이건 간에 쳐들어가서 저러고 있을 거다.
덕분에 사망자는 크게 줄고 있긴 한데…….
그만큼 적도 생기고 있었다.
조지프의 적은 곧 내 적이니만큼 말려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그게 옳은 것인데.
다만 염화석회로 씻는 걸 좀 덜 힘든 것으로 바꾸긴 해야 할 텐데…….
끼리릭.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대미언 경에게 받았던 현미경을 이용해 개의 췌장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병리학 시간에 배웠던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제일 많은 건 선포세포(Acinar Cell).
얘들이 이제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애들이고, 사실상 췌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원 역사에서 췌장 제거 실험을 시행했을 때도 당뇨와 관련된 무언가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단백질과 지방 분해의 어려움을 겪을 것을 기대했다지 않나.
‘옳지. 찾았다.’
선포세포 외에 작은 섬처럼 보이는 세포도 보였다.
이게 그 유명한 랑게르한스 세포다.
타이밍상 딱 예상이 가지?
인슐린을 만들어 내는 세포다.
‘문제는 내가 이러한 것을 지금 당장 다 알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많이 곤란해질 거라, 이 말이지.’
‘췌장이 없어지니 당뇨가 생기더라’라는 말도 사실 얼마든지 수상쩍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 않나?
그나마 리스턴이 일단 나를 믿어 주겠다고 결심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벌써 곤란해졌을 거다.
그리고 그 리스턴 때문에 생긴 여러 인맥들이 방어를 해 주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선포세포니 랑게르한스니 하는 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지…….
애초에 이런 게 뭐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있기는 있다는 게 알려지는 거조차 50년은 더 흘러야 가능한 일이잖아.
‘췌장 이식을 하자고 할 수도 있어.’
우리 19세기 분들…….
진취적인 분들…….
마취가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별 이상한 수술들을 다 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내가 자세히 들으면 토할까 봐 일부러 자리를 피했는데 얼핏 듣기로는 성형도 한다고 하더라고.
시벌…….
대체 뭔 짓을 하고 있을까.
손이 벌벌 떨려서 자리를 떴다.
뭔가 더 알게 되면 꼭 뭔가 해야 될 거 같아질 것이 뻔하잖아?
‘그거야 뭐 개한테 해 보고 죽네요? 하면 될 일이고…….’
여러 시행착오가 있을 거다.
사람은 내가 최대한 막아 볼 테지만 개들은 많이 죽어 나갈 거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데…….
당장 급한 것은 원 역사대로 췌장 즙을 일단 짜서 환자에게 쓰게끔 해야 한다는 거다.
그것도 이렇게 췌장을 떼어서 전체를 짜는 방식이 아니라 인슐린만 짜는 방식으로.
‘간단하긴 하지.’
원리, 즉 췌장의 기능을 알고 있다면 아주 간단하다.
췌장에서 장으로 빠져나오는 관을 묶으면 소화효소가 쌓이다가 결국에는 소화효소 만드는 세포는 다 죽어 버린다.
그때 췌장을 째서 즙을 짜면, 소화효소 없이 인슐린만 추출할 수 있다.
그걸 주사하면 된다.
그럼 살릴 수 있다.
엄청…… 귀찮은 공정이긴 하다.
그렇지만 인슐린을 인위적으로 합성할 수 있게 되는 건…….
20세기 말의 일이지 않나.
그걸 지금 어떻게 해.
말이 안 되지.
‘근데 나중에는 도살되는 소의 췌장으로 뭔가 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매번 췌관을 묶고 기다렸다가 째서 췌장을 떼서 짜서 줘?
아이구…….
제이미 경은 할 수 있어.
그 사람이야 뭐 돈이 엄청 많잖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쩐단 말인가.
훨씬 간단한 공정이 필요할 거다.
‘아, 맞아. 소. 소를 이용했다고 하지. 인슐린은…… 알코올에 녹지 않아. 으음.’
그 간단한 공정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시바…… 의심받지 않는 방법을 쓰려면 어찌해야 할까.
나는 그 핑곗거리를 찾으면서 동시에!
왜 하늘이 나를 꼭 짚어서 과거로 보냈는지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구라 마스터.
조선에서 온 김태평만이 가능한 일이야.
다른 사람?
내과 전문의?
내과는 수술 못 해서 바로 아웃이다.
다른 외과?
외과는 보통 칼 휘두르는 직업이라서 그런가. 약간…… 말을 잘 못 한다.
나?
나는 다르지.
“오……. 실제로 소변에 개미가 꼬이는구만!”
“그뿐만 아니라 보십시오. 개가 거의 뭐 죽어 갑니다!”
아무튼, 그렇게 즉석에서 떠올린 핑곗거리를 숙성시키느라 지나간 며칠 후, 우리는 다시 개를 보기 위해 모였다.
사실 나랑 리스턴은 매일매일 봤고, 오늘 특별히 온 손님은 대미언 경이다.
둘은 누가 봐도 참 안된 몰골이 되어 버린 개 두 마리를 보면서 신나 하고 있었다.
사람 새낀가 싶었지만 저게 아무리 보기 좀 그래도 사람 보면서 그러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은 일이었기 때문에 별말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 확인해야 될 일이 있기도 했다.
암만 인슐린 추출해서 주면 뭐 하겠나.
사실 용량도 모르고 주게 될 테니 적정 용량을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시판되는 인슐린 펜처럼 자주 줄 수도 없고.
내가 줘야 해.
그렇다면 결국, 인슐린에 더해 환자 본인이 노력을 해 줘야 한다는 거다.
“제이미 경은 운동 좀 한답니까?”
“응? 아, 아니. 너무 바빠서.”
이렇다니까?
저러다가 눈멀고 다리 자르고 나서야 아 좀 관리할 걸 하겠지.
아무튼, 지금은 그보다 급한 것이 인슐린이었기 때문에 나는 준비해 왔던 썰을 풀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 물 한 모금은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