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33)
검은 머리 영국 의사-233화(233/505)
233화 달라지는 입지 [2]
실험은 나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당연하다고 하면 좀 그렇다.
엄연히 실험 윤리라는 게 있지 않나?
인체 실험이나 하고 있는 내가 윤리 운운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당뇨병이라는 게 너무 거대한 떡밥이다 보니 소문이 돌자마자 병원 여기저기서 뛰어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우리 병원은 사정이 나았다.
왜?
“걸리면 죽으니까. 하하.”
나 혼자 하는 실험이야?
내 특허냐고.
내가 아무리 영국이 미개하네 어쩌네 하지만 여긴 특허라는 개념이 무려 14세기 이전부터 잡혀 있던 곳이고, 19세기인 지금은 당연하게도 법적으로 딱 보호가 된다 이 말씀이다.
뭐…… 21세기처럼 딱딱 지켜지진 않지만, 아무튼, 이거 개발하면 큰돈이 될 거라는 건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나, 리스턴이 메인이고, 일부 권리를 원장님과 우리 졸개들…….
블런델은 졸개는 아니지만 아무튼, 이양해 준 참이었다.
나 혼자서는 아무래도 지키기가 어렵겠지만…….
이렇게 다 같이 합심하면 지키기 쉽잖아.
“으, 으으으으! 살, 살려 주십시오!”
하지만 돈이라는 게 참 무섭긴 한 모양이었다.
감히 리스턴과…….
청나라 갱단 보스 출신에 현직 주술사인 나 김태평의 몫에 한 숟가락 얹으려는 놈들이 이렇게 많다니.
뭐…… 마법의 솔루션, 그러니까 알코올과 산성 용액을 뒤섞은 용액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밖으로 절대로 새어 나가지 않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죄수 이용해서 개 오줌 먹이는 등의 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벌써 인체 실험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돌긴 하는 거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냅다 사람한테 실험을 해 볼 줄은 몰랐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까?”
내 말에 환자는 같이 온 보호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호자는 눈을 피했다.
뭐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아는 거 같은데 왜 말을 안 하지.
해서 그를 다그쳤더니 갑자기 무릎부터 꿇었다.
“왜 이러는 겁니까.”
“사, 살려 주십쇼. 제가 욕심이 나서 그만.”
“뭔 욕심.”
“그…… 당뇨 치료를…….”
“당뇨 치료를?”
“네.”
“음.”
뭔 치료를 어떻게 했길래 환자 배가 이렇게 된 걸까.
가뜩이나 살집도 없는 사람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애초에 당뇨도 없을 거 같다.
1형 당뇨면 또 모를 일이지만 지금 이곳이 19세기라는 걸 유념해야 한다.
1형 당뇨병이면…… 10대를 넘기기 어렵다.
다 죽어…….
“뭘 한 거지?”
“그…… 그게.”
“말 안 하냐?”
나와 대화가 길어지는 걸 본 리스턴이 궁금해서 왔다가 이제는 흉신악살과 같은 얼굴이 되어 대화를 가로챘다.
그의 말에 의사는, 아마 의사겠지? 오히려 입을 다물었다.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닐 거다.
그냥 너무 무서워서겠지.
“끄, 끄아악.”
“이상하네. 형은 네가 꼭 말을 다 해 줄 거 같은데?”
“마, 말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이거! 으아!”
너무 무서우면 몸이 굳잖아.
근데 이거 아는가.
더 무서워지면 입은 가벼워진다.
눈앞의 이 양반도 그렇다.
리스턴이 목을 꽉 잡아서 바닥으로 누르자마자 막 말이 많아지잖아.
“이 상태로 말해. 안 그러면 다시는 말 못 하게 해 준다?”
“으, 으아아아!”
“말을 하랬지 소리를 지르랬나. 혀 필요 없어? 없애?”
“아, 아닙니다. 그! 런던 바닥…… 이 바닥에서 두 분 명성이 워낙 대단하지 않습니까?”
오.
역시 의사라서 그런가.
머리가 좀 돌아가긴 한다.
칭찬부터 하잖아.
리스턴도 흔들리는 사람이다 보니 힘이 좀 빠졌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리스턴 기준이었기 때문에 의사는 여전히 아파 보였다.
그럼에도 아까보다는 확실히 편해진 모양인지 말을 마구 털어 내고 있었다.
“더 해 봐.”
“그렇다 보니 두 분 하는 일을 따라다니면 뭔가…… 뭔가 좋은 일이 생긴다는 풍문이 돕니다.”
“허어…… 이 새끼들 봐라? 그래서?”
“도살장으로 가는 거…… 본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췌장을 들고 오는 것도요! 그리고 요새 당뇨병 환자들 찾는 거, 그건 비밀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췌장과 당뇨병 치료가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한 거구만.”
“네네.”
“너 말고 또 누가 알지?”
“네? 그건…… 너무 많은…….”
“다 데리고 와.”
“아니, 그건. 으아아아아아아!”
“말을 못 알아먹나. 귀 필요 없어?”
“아니, 제가 책임지고! 다! 으아아아!”
리스턴은 의사가 눈물 콧물 다 쏟을 지경이 되고 나서야 풀어 주었다.
그사이 환자는…….
쫄았다.
잔뜩.
“자 환자분.”
“히익.”
“돈 준다고 해서 간 거예요?”
“그…… 그렇죠. 제발 그 돈만은!”
“아니, 제가 무슨 강도도 아니고.”
“모, 목숨만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아직도 의사는 못 일어났어.
그리고…… 환자 상태도 원체 좋지가 못하다.
죽을 거 같아.
“그건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으으.”
“기절을 하시네.”
“평, 말하는 타이밍이 좀 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네?”
죽을 거 같아서 그렇게 말한 건데 뭐?
라는 얼굴로 눈을 끔뻑거리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영문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환자다.
“너 뭐 한 거야?”
“그…… 췌장을 짜서 배에 찔렀습니다.”
“뭐로?”
“이거…….”
“아이구…… 이 시발놈이 진짜.”
내가 환자 상태를 살피는 동안, 리스턴은 의사가 들어 올린 칼…… 주사기를 들여다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사실 뭐 놀랄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사기가 그 형태를 뽑게 된 게 19세기 말의 일이거든.
그 전까지는…….
“이게 대체…… 물총 놀이도 안 해 봤나?”
애초에 속이 빈 바늘이 만들어진 것도 19세기 중반이다.
갈대 같은 걸로 물총 놀이를 하던 것에서 착안했을 거라 생각되는데, 이집트에서부터 했을 테니 거기서 주삿바늘이 나올 때까지 무려 수천 년이 걸렸단 얘기다.
그러니 지금 의사가 내민 것도 뭐…….
그러니까 홈 파인 칼날, 아마도 홈에 췌장즙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흘려보낸 듯한데,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
“이런 미친놈이 이따위 걸 주사기로 썼나.”
“네? 주…… 뭐요?”
“아니, 몰라도 되네. 아무튼, 췌장즙을 그대로 짜 넣었다…… 이보게, 평. 이거 어찌 되겠나.”
허나 리스턴은 정답을 알고 있다 보니, 그리고 그 정답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지는 모르는 만큼 화가 치민 모양이었다.
본래 문명인은 화가 나도 참는 게 보통이겠지만 리스턴은 안 그래도 되는 사람 아닌가.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경찰과의 유착이 강해지는 만큼 사회적으로도 괜찮다.
“윽.”
해서 뒤통수를 즉시 후려 화도 풀고 기절시켜서 대화도 못 듣게 했다.
“소화효소가…… 환자의 복막을 건드렸어요.”
“복막까지? 어디 보게.”
“이거 봐요.”
“이런 망할.”
콜린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일 열심이지 않나.
아, 조지프가 들으면 좀 억울해하긴 할 거다.
지금도 블런델과 함께 손 씻기 캠페인 중이니까.
제왕절개 시에 특히 중요해서 그런가 요샌 블런델하고 짝짜꿍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저러다 산부인과 의사 되는 거 아닌가 모른다.
아무튼, 콜린은 마치 잡혀 온 사람처럼 일하고 있다.
지금도 가스등 들고 있는 거 봐.
필사적이야, 아주.
덕분에 우리는 환자의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그게 딱히 좋은 일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어쩌나, 이걸?”
“모르겠습니다. 으음…….”
환자는 끙끙대고 있다.
체온계가…….
있긴 하다는데, 대강 들어 보니 그냥 존재만 하는 거지. 실사용은 불가능한 구조라 손으로 대 보고 있는데, 딱 대 보기만 해도 열도 펄펄 난다.
“저, 저 죽는 겁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으…….”
“그냥 살리겠다고 하면 덧나나?”
“의사가 어떻게 책임지지 못할 소리를 합니까?”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누가 뭐라고 한다고.”
“음.”
그런가?
하긴 뭐 누가 뭐라고 하겠어?
소송이 있길 하나 뭐가 있나.
누가 고발을 한다고 해도 경찰 선에서 뭉갤 게 뻔하다.
“환자분 반드시 살릴게요.”
“으…….”
“지금까지 내내 쯧쯧거려 놓고 그런 말 하면 잘도 믿겠네.”
해서 말을 바꿨는데 그래도 뭐라고 한다.
억울해…….
“아무튼, 어떻게 하나 이걸?”
“일단…… 흐음.”
썩은 빵 신공을 시도해 봐야 할까?
나는 잠시 환자 얼굴을 돌아보았다.
누가 봐도 절박한 노동자다.
당뇨도 없었을 거다.
어찌 보면 다행일 수도 있다.
인슐린을 혈당도 높지 않은 상태에서 맞았다가는 그대로 갔을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독살에도 쓸 수 있는 게 인슐린이지 않나.
하지만 소화효소를 배에, 그것도 지방도 별로 없는 배에 그대로 맞아 버렸으니 이게 뭐…….
“피부가 녹은 게 커요. 그리고 주변으로 감염도 됐고.”
“소독 안 하고 바로 찔렀겠지?”
“그럴 거예요. 저 바늘이랍시고 들고 다니는 꼴을 좀 보세요.”
바늘엔 이전에 리스턴의 칼이 그러했듯 피와 지방 등이 눌어붙어 있었다.
“설마 이 환자 말고 다른 환자에게도 찔러 넣었나?”
“아…… 1호만 있을 리가 없죠.”
“야야, 일어나!”
리스턴이 자신이 기절시킨 의사를 깨우는 동안 난 환자의 환부를 좀 더 면밀히 살폈다.
소화효소는 아마 살갗을 녹이는 것과 동시에 복막도 조금 녹였을 거다.
하지만 지금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건 효소가 아니라 균이다.
뭐…….
쏟아부은 용액부터가 깨끗했을 리가 없지 않나?
찌른 바늘도 그렇고, 피부도 닦았을 리가 없다.
‘데브리(Debridement, 변연절제술)가 필요해. 주변이 다 썩어 들어가고 있어.’
그렇게 뻥 뚫린 상처를 지금 당장 닫아 주는 건 무리다.
‘썩은 살을 제거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설득시킨다?’
구더기가 우연히 발생했다고 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아무래도 어렵다.
일단 조지프가 지랄할 것이 뻔하다.
그리고 배에 구더기를 넣는다는 게 좀 그렇다.
그러다 하나라도 안으로 뚫고 들어가 봐.
난리다, 난리.
‘아, 그래. 미아즈마가 여기 있다고 하면 되겠군그래. 멀쩡한 살에도 있는 걸 확인했으니…… 좋아.’
다행히 이젠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의 개념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나?
해서 나는 환자의 병변 일부를 잘라다 현미경을 통해 미아즈마가 득실거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그렇게 일부를 잘라 낼 수 있었다.
소독도 했는데…….
“으, 으아아아아! 차, 차라리 주, 죽여 주세요!”
“마취를 시켜야 되나?”
“그래, 그게 좋겠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독약이라는 게 페놀, 염화석회, 요오드, 알코올뿐이지 않나?
이게 다 멀쩡한 살갗에 닿아도 통증을 일으킬 정도로 독한 놈들이다 보니 상처에 직접 뿌리면 거의 경기할 정도로 아플 수밖에 없었다.
환자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누군가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 도망가는 게 보였는데, 잡기 귀찮기도 하고 원장님도 와 계신 마당이라 그냥 화제를 돌렸다.
“소독도 안 하고 찌르니까 이렇게 됐습니다. 알코올 생산이 어려워도…… 반드시 해야 해요. 아시겠죠?”
“알겠네. 헌데…….”
“헌데?”
“이거 자네가 한 건 아니지? 나 설득하려고?”
“아니에요. 제가 무슨 악맙니까?”
“그래, 믿겠네.”
자꾸 알코올 꼭 넣어야 되냐고 하잖아, 꼴받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