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36)
검은 머리 영국 의사-236화(236/505)
236화 달라지는 입지 [5]
“오늘 주스는 좀 풍미가 다르군요.”
제일 먼저 잡혀 온 죄수.
1호는 이제 아주 능숙한 손짓으로 내가 건넨 유리잔을 집어 들었다.
암만 생각해도 계속 철 잔에 주면 수상하게 여길 거 같아서 따로 하나 샀다.
와인 잔인데, 여기다 소변 따르잖아?
생각보다…… 꽤 그럴싸해 보인다.
“그래?”
그래서 그런가?
이 새끼도 약간 과몰입하고 있다.
그래서 어떠냐고?
오히려 좋다.
진짜 진심으로 맛을 봐 주니까 진짜로 신뢰할 수 있어.
괜히 얘만 남겨 둔 게 아니다, 이 말이었다.
“적당히 단데…… 뒷맛이 살짝 쓰니까 마냥 달기만 한 게 아니라 재밌군요. 확실히 이름 높으신 분들이라 그런가, 주스 만드는 것도 남다르신 거 같습니다. 어쩜 이렇게 매번 맛이 다르게 만들 수 있는지…….”
“큽.”
간수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밖으로 나갔다.
새끼…….
그러다 걸리면 어쩌려고 저런단 말인가.
아무튼, 진짜 소믈리에 덕에 하나 알았다.
‘일반적인 당뇨 환자에 비해 제이미 경은 그렇게 심한 건 아니로구만.’
마냥 달기만 하다고, 이번 주스에서는 철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 적도 있지 않나?
그거 생산한 죄수는 아마 오래 살긴 글렀을 거다.
사실 이미 발이 썩어들어 가고 있기도 했다.
리스턴이 자를까 말까 하다가 잘랐지만, 상처가 덧났다.
당뇨발이 생길 정도로 진행한 당뇨 환자인데 잘랐으니 뭐…… 아, 소독이 문제는 아니다.
이제 우리 병원에서만큼은 적어도 소독이 문제가 될 수는 없어.
소독은 제대로 했지만 문제는 놈이 죄수라는 점이었다.
관리가 안 돼.
“이건 어떤가?”
하여간, 나와 리스턴은 제이미 경이 안전 용량을 한 대 맞고 생산한 소변을 건넸다.
와인 잔에 담겨 있어서 그런가…….
약간 화이트와인 같아 보이기도 한다.
적당히 거품도 있는 게 풍미가 있어 보여.
“으음.”
죄수는 그걸 받아 들고는 일단 냄새부터 맡았다.
지린내밖에 더 나나 싶은데, 사실 소변에 코 박을 일이 어딨겠나.
게다가 와인 잔에 담긴 소변을 보고 소변을 바로 떠올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까랑 냄새가 좀 다르네요. 맛도 보겠습니다.”
녀석은 한껏 건방을 떨면서 와인을 아니, 소변을 먹기 시작했다.
뭐…….
공작님 소변이면 꽤 귀한 거 아니겠나?
이제 나는 별 죄책감도 없었다.
어떻게 봐도 내 눈앞에 있는 놈은 지금 현 상황에 있어 지극히 만족하고 있으니까.
“으음…… 단맛이 좀 옅어졌네요. 대신 산미가 감도는데…… 흐음…… 이거 좋군요. 지금까지 맛봤던 것 중엔 이게 제일 좋습니다. 물 대신도 먹겠어요.”
“큽.”
간수가 또다시 얼굴이 시뻘게져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맛보라 할 때 밖에 나가 있으라 해야 할 것 같다.
이러다 걸릴 거 같아.
“그래? 단맛이 얼마나 옅지?”
“뭐…… 아까랑 비교하면 거의 절반?”
“그렇구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의 단맛 평가를 기록했다.
아마 열흘 전이었다면 이 새끼가 혹 개소리하는 건 아닌가 했을 거다.
난 안 먹어 봤거든.
뭐…….
의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건 안다.
사실 소변이라는 게 무균 상태라는 것도 알아.
이게…….
더럽다는 건 순전히 편견이다.
대변하고는 좀 달라.
심지어 조선시대 어의들은 대변도 찍어 먹고 했다잖아?
‘근데…… 싫다…… 개싫어.’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얘를 쓰고 있는데, 임상 결과와 맛 변화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벌써 수십 번 확인했다.
그 말은 곧 녀석이 소변 맛을 보게 된 지도 벌써 수십 번이 넘었다는 건데…….
그러다 보니까 머리가 어찌 된 건지 진짜 소변에 진심이 됐다.
일부러 물 대신 이것만 주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한데.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녀석을 신뢰할 수 있다, 이 말이었다.
“좋아.”
“오늘 또 놓을까?”
“아뇨, 그러다 한번 사고 났잖아요.”
“그건 그렇지.”
처음엔 마음이 급했더랬다.
나라고 해서 소변 받고 먹이고 하는 일을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하고 싶었을까?
그렇진 않았다고.
근데 그러다가 탁 사고가 났다.
인슐린 반감기를 계산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니까 아직 인슐린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더 높은 용량의 인슐린을 찔러 넣었으니…….
-어…… 얘 왜 이래?
저혈당 쇼크를 본 적 있는 사람들이 여기 있을까?
굶어 죽는 사람들은 많이 봤을 테지만 아마 저혈당 쇼크는 그날이 처음이었을 거다.
-뭐야?
-쇼하나?
그러니까…….
꾀병으로 치부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실제로 죄수 잘못이기도 해.
그러니까 왜 사람을 죽여서 선입견을 심어 주냐고.
아무튼, 녀석의 상태가 내게 보고된 것은 눈 까뒤집고 나서 꽤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다행히 혈관에 당 꽂고 바로 좋아지긴 했는데, 그다음 날부터 왜인지 보이지 않는다 싶더니만 며칠 후 해부실습실에서 마주하게 됐다.
자세한 얘기를 들어 보니 그렇게 약한 모습 보여 주고 난 후 동료 죄수들한테 맞아 죽었다더라고.
다 같이 주사 맞고 소변 생산하는 처지인 주제에 약자는 또 때려죽인다니…….
“공작님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죠.”
“그렇지…….”
아무튼, 저혈당 쇼크라는 게 오면 꽤 힘들다.
식은땀 나고, 두근두근하고 그러다 기절해.
기절하는 게 그냥 ‘어’ 하고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기질적인 이유로 가는 것이다 보니 근육 힘도 쭉 풀린다.
똥오줌 조절이 안 될 수도 있다, 이 말이다.
죄수 놈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괜찮겠지만 대영제국의 공작님이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되면…….
차라리 죽고 싶을 거다.
뭐, 불알 자르고도 뻔뻔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면 보통 멘탈은 아닌 거 같긴 한데.
“아, 그래. 어차피 곧 회의라.”
아무튼, 아직 치료 용량에 도달하지 못했단 말을 전하자 제이미 경은 실로 공작다운 태도로 손을 내저었다.
그가 며칠간 머무르게 된 곳은 리스턴의 연구실이었다.
물론 벽에 칼 늘어놓은 채로 있을 수는 없으니 아까 하인들이 분주히 움직였더랬다.
그렇게 꾸며진 연구실은 그래 봐야 그렇게 넓지 못해 위압감을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제법 화려하단 느낌을 주었다.
거기에 더해 입고 있는 옷도 멋들어져서, 평소 제이미 경에 대한 이미지만 아니었으면 감탄이라도 나왔을 거 같았다.
“오셨습니다.”
“그래, 들라 하게.”
그때 하인인지 집사인지 모를 사람이 와서 사람들이 왔다고 알렸고, 제이미 경의 신호에 맞춰서 역시나 한가락 할 거 같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의회에서…….”
“그래, 맞네.”
몇몇 알아볼 만한 얼굴이 있었는데, 리스턴이 확인해 주자마자 갑자기 머리통의 무게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십니까’를 외치고 있으려니, 그중 하나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길막하고 있어서 부딪친 건 줄 알고 부리나케 비켜섰더니 한참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가, 조선의 닥터 피영이 맞나?”
“아, 넵.”
해서 답부터 하고 올려다보았다.
아는 얼굴이다.
아니, 런던 살면서 몰라서는 안 될 얼굴이다.
총리…….
권력의 정점이다.
뭐, 아직 왕실의 권위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데다가 귀족들의 권위 또한 장난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 흠…… 청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 이거지?”
“아…… 네.”
좋겠나?
일단 잘 알지도 못한다.
뭐…… <제왕삼부곡>이라는 책을 봐서 강희라는 인물을 좋아하긴 하는데, 죽은 지 한참일 거다.
옹정, 건륭도 죽었을 거고.
가경제나 그다음 황제가 해 먹고 있겠네.
‘병자호란도 있고?’
게다가 조선 사람 입장에서 청이 좋다고 하면 좀 이상하잖아?
“싫어합니다.”
“그래? 그거 다행이구만.”
총리는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이내 리스턴의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 저기 벽지 초록색으로 바르려고 했었다는 걸 감안하면…….
오늘 대영제국 망할 뻔했다.
내가…… 역사를 바꿨다.
물론 나 아니었으면 제이미 경이 여기 와 있을 이유도 없기야 하겠지만.
“어쩌지?”
“뭘 어째요. 이제 가야지.”
“에이, 그래도…… 내 연구실에서 얘기하고 있는데 궁금하지 않나? 자꾸 청, 청 하는 게…… 뭔가 응?”
“그런가?”
“게다가 자네 얘기가 자꾸 나온단 말일세.”
“근데 몰래 들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여간,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리스턴과 둘만 덜렁 남게 되었다.
뭐 더 먹일 소변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집에 가려고 했는데 리스턴이 날 꼬셨다.
그래 봐야 별수 없을 거 같았다.
뭔가 국가 기밀이 나올 거 같은데…….
걸리면 뒈지는 거 아닌가?
“들을 수 있네.”
“네?”
“내 방이잖아. 이리로 와 보게.”
“아니…….”
“청진기 모양을 참고해서 천장에 쇳덩이를 달아 놨네.”
“그게 그럼 장식품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그렇지. 자, 이 층으로 오면…….”
이 층 바닥에 구멍이 나 있다.
지 병원도 아닌데…….
“이걸 어떻게?”
“주먹으로 쳐서 뚫었지.”
“이 병원 건물 이거 괜찮은 겁니까?”
“허락만 해 주면 버킹엄 궁전도 주먹으로 뚫을 자신이 있네.”
허언은 아닐 거다.
이 사람…….
뭔가 이상해.
아니, 이럴 때 보면 사람 아닌 거 같아.
“들리는구만.”
“오…… 근데 아주 잘 들리진 않네요.”
“들리긴 하잖아.”
“그러긴 합니다.”
아무튼, 귀를 가져다 대 보니 들리긴 했다.
-닥터 피영이 아편을 그렇게 좋아한다고요?
-그렇다니까. 내가 아주 잘 알지 않나. 동양인들은 똑똑한 사람들도 아편을 좋아하는 모양이야. 뭐…… 우리 중에서도 딱히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어떻던가?
총리와 제이미 경의 목소리에 이어 처음 듣는 목소리가 나온다.
-어떻긴요. 아주 환장합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무너질 거 같습니다.
-그러다 전쟁이라도 나면 어쩐단 말인가?
-제 생각에는…… 청이 생각보다 훨씬 약할 거 같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흐음…… 그런가. 그래, 현장 지휘관이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면야…….
나는 슥 고개를 돌려 리스턴을 바라보았다.
나도 리스턴처럼 얼굴이 하얘졌을까?
그럴 거 같다.
“이거 더 들어도 되는 거예요?”
“갈까? 전쟁 얘기였네?”
“그러니까요. 아니, 이런 걸 왜 엿들으려고 해서.”
“나는 이런 줄 몰랐지.”
X된다.
이런 건 알면 안 될 거 같다.
해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아, 닥터 피영이 당뇨 치료에 성공했다는 말이 있던데.
-음. 그런 거 같네. 대미언이 허튼소리 할 사람이 아니잖나? 게다가 서장도 비슷한 말을 했네.
-오…… 지금 여기 계시는 것도 치료의 일환이지요?
-그렇네.
-잘되면 저도 소개시켜 주십쇼.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십니다.
-아, 그래? 근데 동양인이라 좀 그렇다고 하지 않았나?
-당뇨까지 치료하면 동양인이 대숩니까? 잘하면 작위도 받을 겁니다.
-하긴 그렇지…… 작위라. 흐음…….
작위?
동양인 대영제국 귀족?
나는 리스턴을 바라보았다.
내 얼굴도 리스턴처럼 상기되었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