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37)
검은 머리 영국 의사-237화(237/505)
237화 코가 왜 이래 [1]
“작위……?”
리스턴이 솔직히 말해서 뭘 알겠나.
이런 말을 하면 큰일 나겠지만, 아무튼, 리스턴하고 작위니 뭐니 하는 일에 대한 상의를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아무래도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잘 알 만한 사람은 대미언 경이지만…….
그렇다고 공작 각하한테 가서 사람들이 제 작위 얘기를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되겠어…….
뭔가 청탁하는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순수한 상담 같아 보이진 않잖아.
“네, 원장님. 어떻게 하죠?”
“이걸 대체 어떻게 들었냐……는 말은 하지 않겠어.”
해서 우린 원장님에게 찾아왔다.
원장님은 어휴 어휴 하더니 일단 리스턴의 어깨부터 두드렸다.
대견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팡팡 소리가 나게 세게 두드렸으니까.
물론 리스턴이 아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좀 헷갈리긴 했는데, 알고 싶지도 않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확실해졌다.
저렇게 그냥 가 버리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이제 나는 이 병원에서 꽤나 중요한 사람이 되지 않았나.
“프로페서 평. 자네…… 위치가 엄청나게 높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네.”
그렇다 보니 원장님은 진중한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천하의 리스턴도 이때만큼은 조용히 있었다.
아무래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듯했다.
뭐, 꼭 그게 아니더라도 원장님은 이럴 때 꽤 신뢰할 만한 사람이긴 했다.
현명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다지 출신이 좋은 사람도 아니라는데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나.
우린 그저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사실 내가 말은 제대로 안 했지만 마취 때부터 이미 여러 곳에서 자네를 향한 관심을 보였다네. 다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고…… 적대적인 놈들도 많았어. 아무래도 뭐, 그렇지 않나. 인종이 다르니.”
“이해합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그래. 내 선에서 막은 게 많아. 뭐 어차피 리스턴하고 다니니까 물리적인 해코지는 어려웠겠지? 다행인 것은 자네가 그러고 나서 거의 바로 대미언 경을 수술했다는 거야. 공주님의 관심을 끌기도 했고. 이렇게 되니까 뭐 더더욱 해코지는 염려 덜었지.”
“좋네요.”
추임새 정도는 그래도 넣어 주었다.
유교맨이라 그런가, 어른이 얘기하는데 묵묵히 있으면 살짝 미안해지고 그런다.
혹 문화가 다르니 싫어하면 어쩌나 했던 적도 있는데, 예의 바르게 굴어서 싫어하는 어른은 없는 거 같다.
이것 봐.
리스턴 볼 때랑 나 바라볼 때랑 눈빛부터 다르잖아.
“에휴.”
원장님은 굳이 리스턴을 보며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엔 당뇨야. 당뇨는…… 뭐 죄수들 중에도 있는 놈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놈들 모두 갱단의 거물들이거나 한가락 하는 놈들이지?”
“아……. 네. 그렇게 들었어요.”
“그래, 나는 참 자네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네. 듣자니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라는데 그놈들한테 소변을 먹일 생각을 하다니…… 아무튼, 일반인들 중에 당뇨 환자들은 아무래도 잘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음. 그렇긴 할 거 같습니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보여 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실제로 공감해서 그런 게 더 크다.
21세기에서야 당뇨라는 병이 오히려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서 더 잘 발생하는 병이 되어 버렸지만, 인류 역사에서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엔 소위 부자병이지 않았나?
조선에서도 양반들이나 왕실에서나 걸렸지, 일반 양민들하고는 거리가 먼 병이었다.
뭐…… 조선은 척박한 땅이었고 굶어 죽는 일이 너무 많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물론 지금은 19세기고, 산업혁명에 의해 많이 풍요로워진 시대이긴 하지만 그게 균등하게 아니, 그렇게 하려는 시도조차 없는 시대이지 않나.
마르크스가 괜히 흑화한 게 아니라니까?
공산주의자들이 괜히 자연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 자네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할 거야. 아니지. 이미 많이 알려졌을 거야. 실제로 총리가 그런 말을 했다면 뭐…… 말 다 한 셈이지.”
“음, 그럼 작위를 받아요?”
그렇다고 내가 공산주의자가 되겠다는 건 아니다.
나는 이미 미래를 보고 왔잖아?
실패한다, 그들의 말뿐인 평등은.
인간은 애초에 노력과 고생, 재능과 관계없이 균등한 분배를 받게 된다면 아무것도 안 하게끔 설계되어 있는 듯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작위라니.
대영제국 귀족이라니?
세습 귀족이야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건 보통 일이…….
“작위는 안 돼.”
“안 돼요?”
기대가 막 부풀어 올라가고 있었는데, 원장님이 안 된다고 했다.
이 양반이 설마 질투가 나서 이러나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대영제국의 귀족은…… 어마어마한 자리야. 알고 있겠지?”
“네, 그럼요. 어마어마하죠.”
비단 대영제국의 귀족이라고 한정 지을 것도 없다.
유럽의 귀족은 말 그대로 어딜 가도 귀족이니까.
법치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실제 판례를 보면 귀족이 끼어드는 순간 판사가 판결을 이상하게 할 정도다.
“그만큼…… 원하는 사람도 많고, 이미 작위에 오른 사람들끼리도 견제를 어마어마하게 한다네. 당장 제이미 경과 대미언 경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어.”
“아…….”
“뭐, 둘은 정치적 견해가 비슷하니 어쩌면 자네를 밑으로 품을 수도 있겠지. 허나 그 둘은 강력한 힘을 지닌 귀족이니만큼 적도 많다네. 그렇게 인식되는 순간 자네도 그만큼 많은 적을 두게 되는 셈인데…….”
“그럼 안 되겠는데요?”
“그렇지, 안 되지.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방해가 있을 수 있네. 큰일 나.”
“아, 알겠습니다. 이건 거절해야겠군요.”
딱 알아듣겠다.
독이 든 성배다, 이건.
뭐냐면…… 그래, 학회에서 젊은 나이에 회장 픽으로 꽂히는 거다.
그럼 수많은 시니어 교수들의 미움을 사게 되고 결국엔 안 되더라고.
“그래, 자네는 현명해서 다행이구만. 그렇게 거절하면 아마 좀 아쉽긴 해도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힘깨나 있는 사람들의 호의를 사게 될 거야.”
“그렇겠네요.”
“사실 제이미 경도 얘기가 나와서 말이나 꺼내 보는 것이지, 실제로 자네가 받게 되면 곤란해질 거야. 살짝 흘리면 그냥 그 앞에서 말하게.”
“어떻게 거절하죠?”
“그냥…… 아직 그럴 만한 공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깜냥이 안 된다, 뭐 이렇게 말하게. 그럼 알아들을 거야. 제이미 경이 스스로 뭘 잘라서 그렇지 실은 똑똑한 사람이야. 행동력도 있는 사람이고.”
“하긴…… 괜히 공작 해 먹고 있는 건 아니겠죠.”
공작에 오른 거야 뭐 상속에 의해 오른 것이긴 하겠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지 않나.
그리고 애초에 상속받으려면 그 수많은 형제 중에 제일 우수해야만 할 거다.
내가 뭐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전에 제이미 경 며느리 아이 받으러 가서 보니까 좀 복잡한 모양이더라고.
지들끼리 막 싸우고…….
똑똑똑.
일단 원장하고 말문 튼 김에 좀 더 입을 털었다.
이 양반도 꽤 바쁘거든.
나도 뭐 당뇨니 뭐니 하느라 진짜 바빴고.
앞으로 이 당뇨 치료를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도 있다.
일단 소믈리에 죄수 놈은 경찰이랑 쇼부 쳐서 우리가 써먹기로 했다.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또 너무 다양한 주스가 제공이 되면 의심할 수도 있어서 그게 좀 걱정이긴 한데…….
“그거야 뭐 딴 놈들 구해 보지.”
“죄수들로요?”
“아니, 내 생각엔 숙련공이 최고야.”
“일반인한테 먹이자고요?”
“돈 줄 텐데, 안 되나?”
“아, 그런가……?”
소변이 사실 뭐 멸균이긴 하잖아?
오줌 먹는다고 건강에 해가 되나?
잘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일반 노동자들이 어디서 일하지.’
비소.
납.
수은.
백린.
시발…… 그런 거 다루느니 소변 먹는 게 아무래도 낫지 않을까?
이게 복지고 근무 환경 개선이 아닐까?
“그거 묘수로군요.”
“그래 적당한 가격은 내가 한번 책정해 보겠네.”
이런 생산적인 대화는 아무래도 리스턴하고는 하기 어렵다.
-잡아 오지 뭐.
이럴 게 뻔해.
-빠게트 놈들이라면 어떤가. 죄수랑 비슷한데.
-오?
나도 좀 혹하긴 할 텐데, 그래도 지속적으로 먹이고 맛을 감별하려면 이게 최고다.
물론 계속 이렇게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화학자들에게 의뢰는 했다.
소변에서 당 검출하는 거 쉽게 좀 해 보라고.
당뇨 치료하면서 벌 돈이 어마어마할 테니 어느 정도 후속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않겠나.
똑똑똑.
그렇게 중요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또 누가 문을 두드렸다.
누굴까.
감히 원장님에 리스턴에 조선에서 온 주술사인 나까지 있는데…… 감히?
“아, 시끄러. 누구지?”
원장부터가 역정을 냈다.
21세기와는 달리 원장님에게 연락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랬다.
“접니다! 콜린…….”
헌데 아는 놈이었다.
거기에 더해 원래 조심성도 있는 놈이지 않나.
알 거 다 아는 놈이 여기까지 와서 다급하게 소리치는 걸 보면 뭔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환자 아픈 거면 대충 좀 기다리라고 하게.”
그러나 원장님은 호들갑을 떠는 대신 근엄한 얼굴로 타일렀다.
그럴 만했다.
이 시기 환자가 아픈 건 뭐…….
원래 아픈 거니까?
치료를 빨리 시도한다고 해서 사나?
그에 대한 확신은 환자도 의사도 없는 시대였다.
귀족들 중에서도 아프면 그냥 의사 안 부르고 존엄하게 좀만 아프고 가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다.
“그게 환자가 제 형입니다!”
“아, 그래? 그럼 들어와.”
하지만 가족은 다르다.
뭐 이렇게 VIP 대우하면서 건드린다고 해서 정말 잘하는 짓인가에 대한 의문은 논외로 치자.
‘내가 있으니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일반적인 19세기와는 다르게 흘러가게 할 수 있다.
진짜로 너무 아파서 둬야 하는 거면 내가 판단해 줄 수 있잖아.
아무튼, 콜린은 들어오라는 말에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바로 뛰어왔다.
원장님과 리스턴 그리고 나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꽤나 긴장한 얼굴이었다.
형이니까 그럴 수 있을 터였다.
“제일 친한 형인데 이번에 전투가 있었나 봐요.”
“전투……? 배 타는 사람 아닌가?”
“네.”
“근데 살았나?”
대화의 향방이 좀 이상하게 여겨질 텐데…….
이 시기 배에서 부상당하면 보통 죽으니까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네, 코를 다쳤대요.”
“코…… 그럼 코를 잘라야 되나!”
절단 얘기가 나오자마자 리스턴이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미 자른 거 같아요.”
“그럼 끝난 거 아닌가?”
그러다 이미 절단이 끝났단 말이 나오자 금세 시무룩해졌다.
“아니, 아니. 코가 잘렸다니까요?”
“그러니까. 끝났지.”
“전에 턱 잘린 사람도 고쳐 준 적 있지 않습니까.”
“아…… 그건 재미없는데.”
재건 얘기가 나와도 시큰둥하기만 했다.
하여간 자르는 것만 좋아한다.
암 수술에 딱이야.
나?
난 좀 다르다.
당연히 관심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만 하기엔 다들 엉망이잖아.
“어디 계셔?”
“아, 네. 지금은 집에…… 근데 오라고 하면 바로 올 겁니다.”
“그럼 오시라고 해. 내가 직접 볼게.”
“감사합니다, 교수님!”
게다가 콜린이다.
이 뽑고 똥물 먹고, 소변 먹고 별짓 다 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거 같은.
이참에 빚을 좀 지워 두면 좋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