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38)
검은 머리 영국 의사-238화(238/505)
238화 코가 왜 이래 [2]
생각해 보니까 콜린이 진짜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다.
이 새끼 처음엔 나한테 원숭이네 어쩌네 할 정도로 콧대 높은 놈이었잖아.
근데 지금은…….
“우선 교수님 이거라도 드시죠.”
“어, 그래. 고마워.”
와인 떠 왔다.
자기 형 진료해야 하는데 와인이라니? 싶을 수도 있겠지만…….
도수가 그렇게 높지 않은 와인인 데다가 살짝 물에 타 먹는 용도로 나온 것이다 보니 괜찮았다.
“이거 끓인 물이지?”
“어? 네. 물론이죠. 이제 병원에서는 무조건입니다.”
물론 왜 타 먹나에 대한 의문은 항시 품고 있어야 했다.
물이…….
도저치 못 먹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와인이라도 타는 거다.
아무리 끓여 먹으라고 해도 이 새끼들이 말을 듣냐고.
일부…….
그러니까 리스턴의 주먹이 닿는 쪽에 있는 이들은 끓인 물도 또 끓이지만 아닌 놈들은 이상한 풍조가 번졌다.
냄새와 맛 때문에 병이 생기는 거라고 하면서 와인을 타 먹더라고.
이러면 된다고.
“그래, 그래.”
“안 그래도 코 때문에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금방 올 겁니다.”
“그래, 좋아.”
“문제는…….”
뭐 병원 물은 내 지시와 리스턴의 협박에 의해 안전할 거다.
거기에 와인 타면 뭐 맛만 좋고 다 좋은 거지.
후후.
게다가 우리 팀이 먹는 와인은 졸부 리스턴과 불알 자르미 제이미 경 그리고 대미언 경이 사 두거나 준 것들이라 꽤 풍미가 있다.
“문제? 설마 이 잔 그거 아니지?”
“네? 아, 그럴 리가요. 그 잔들은 헷갈리지 않게 표시해 두었습니다.”
“응, 그래. 그럼 무슨 문제가 있어?”
나는 와인 잔을 더없이 품위 있는 몸짓으로 바라보다가 설마 해서 물었고, 콜린은 고개를 황급히 저었다.
그게 아니라면 뭐가 문제일까?
“저희 형이…… 인종차별주의자라.”
“아.”
아.
맞네.
이 자식도 인종차별주의자였지.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사실 대부분이 그럴 거다.
이 시기에 백인들이 ‘음, 동양인도 우리랑 실은 같은 주님의 자식 아닐까?’라고 생각해 주길 바라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겠나?
선교사라면 또 모르겠지만, 콜린 집안은 전형적인 귀족 출신 상인 집안이다 보니 그런 걸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같은 영국인끼리도 우열이 있다고 믿는 집안인데…….
“제가 진짜 열심히 말은 했거든요? 근데 툭툭 튀어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렇겠지. 괜찮아, 나는.”
빈말이 아니라 진짜 괜찮다.
원래 각오했던 건 이 정도가 아니야.
지옥을 떠올렸다, 진짜.
어디 갇혀서 진료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봐.
어쩌다 이렇게 된겨?
“그…… 정말요?”
“응, 정말 안 통하면 뭐.”
그런 것에 비하면 적당한 무례 정도야 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줄 수 있다.
물론 좀 심하다 싶으면 나도 방법을 달리해야 할 수도 있겠지.
“아, 내가 나서? 콜린네 집안이…… 남작이시던가.”
“남작은 쫄려요?”
“남작 본인도 아니고 둘째 아들 정도면 때릴 수도 있을 거 같네. 여러 번 팰 필요는 없을 거 아냐.”
“그렇겠죠. 머리 좋은 사람일 텐데.”
“좋네. 한두 번 때리는 거야 뭐. 남작님과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역시 형님이야.”
리스턴의 확인도 받았다.
어째 콜린의 얼굴이 좀 핼쑥해진 거 같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것보다는 형의 상태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상황이었다.
생각해 봐라.
코가 없다.
재건술을 해야 한다 이건데…….
‘해본 적이 있겠냐…….’
외과 의산데 코 재건이라니.
뭐 성형외과 쪽으로 풀려고 했으면 또 모르긴 하겠다.
생각보다 코 재건성형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꽤 하는 수술이거든.
그리고 엄청 비싸다, 그거.
‘왜 비쌀까.’
보험과 수술은 일단 비싸질 않으니 비교 대상이 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굳이 해 보자면,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투입되거나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게 비싸다.
나라에서 가격 책정해 주는데 허투루 해 주겠어?
다 근거가 있어야 해 준다.
하지만 비보험, 그러니까 성형수술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얘기가 많이 달라진다.
완전 시장 논리로 접근해야 하는데, 거기서 비싸단 건 공급이 적다는 얘기가 된다.
‘어려운 수술이란 얘기지.’
쉬운데 비싸면 너도나도 다 하지.
근데 그게 아니란 건 어려운 수술이라는 얘기다.
‘하아…….’
일단 형님 코 상태를 보고 결정해야겠지만…….
드럽게 어려운 수술이 될 수도 있겠다.
일단 생전의, 아, 죽은 건 아니니까 원래 모습으로 회복하는 건 절대 무리일 거다.
그게 원래는 가능할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안 된다.
-너무 욕심내서 사고 치는 거보다는 그냥 적당히 하는 게 훨씬 낫단다.
교수님이 일러 주셨던 말이다.
처음엔 우리가 그래도 외과 의산데, 대학병원의 양대 기둥 중 하난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나 했지만…….
생각보다 의사라는 게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특히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두는 게 나을 때가 훨씬 많다.
심지어 암도 항암제나 방사선에 맡겨야 할 때가 있다.
“아, 왔나 봅니다.”
콜린은 복도에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자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문을 열고 나갔다가, 상당히 덩치가 커다란 사내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뒤로는 콜린네 집사인지 하인인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따라 들어왔다.
옷을 보니 확실히 앨프리드네보다 한 수 위인 거 같긴 하다.
하인들 옷이 꽤 괜찮아.
후후.
이제 나도 돈 좀 벌다 보니 원단에 대한 지식이…….
“응?”
저 형 왜 바지가 녹색이냐.
비소에 절여 죽고 싶은 건가.
내 눈빛을 읽은 콜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형, 이거 위험하다니까?”
“하하. 진정한 남자는…… 위험을 무릅쓸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아니…… 그런 게 왜 남자야.”
“너도 배 타야 되겠다. 의사들 틈바구니에만 있다 보니 계집애가 다 되었구나.”
별 소용은 없었다.
사실 딱 보고 알았다.
제멋대로 자란 수염에 녹색 바지.
그리고 대놓고 광기를 보이고 있는 눈빛.
코 잘리고 집에만 있다고 해서 되게 음침한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정작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바리안이었다.
귀족답지 않단 말은 하지 말자.
이게 귀족이야.
이게 아주 전형적인 런던 귀족이다.
제이미 경도 나이가 들어서 그렇지 젊을 때는 상남자 그 자체였을걸.
뭐…… 불알 자르는 용단만 봐도 아직 상남자 그 자체긴 하다.
그 결과 남자가 아니게 되어 버리고야 말았지만?
“저, 형님.”
“으음.”
아무튼, 그냥 저렇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형님에게 다가갔다.
예전의 나였다면 겁나서 못 그랬을 거다.
생긴 것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빡세 보이잖아.
하지만 나랑 제일 가까운 친구 중 하나가 리스턴이다.
‘귀엽네.’
상남자인 척하려고 애쓰는 어린놈이지 않나.
콜린의 둘째 형이라고 해 봐야 아직 20대다.
얼굴만 보면 믿을 수 없겠지만…….
목은 매끈해.
덕분에 나는 어떻게 봐도 퉁명스럽다고밖엔 못 하겠는 형님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제가 콜린 담당 교수 김태평입니다.”
“뭐, 말은 들었소.”
보통 악수를 해야 할 텐데, 손을 내밀지 않는다.
괜찮다.
괜찮아!
복수할 기회는 많다.
이 시기 의사가 환자에게 삐딱하게 대하려고 작정하면 말이야…….
얼마나 괴롭힐 수 있는지…….
아주 그냥 죽고 싶게 만들…….
‘어맛.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썩 물러가라, 19세기의 망령아.
난 21세기 의사란 말이다.
“이거 천 좀 내려 보시겠습니까?”
“으음.”
“괜찮습니다. 원장님이시고, 리스턴 교수님입니다.”
“아, 이 분이…… 리스턴…… 알겠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얼굴 반절을 가리고 있는 천을 내리라 일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말 안 들을 거예요’라는 얼굴을 하고 있던 형님이 리스턴 얼굴을 보자마자 천을 내리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과연 소드 마스터, 절단 애호가 리스턴이다.
“으음.”
그렇다고 해서 딱히 기분이 좋아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코가…….
‘코가 왜 이래?’
어딜 어떻게 싸우다가 당한 걸까.
딴 데는 다 멀쩡해 보이는데 코만 없다.
옆에서 툭 베고 지나간 건가……?
“고칠 수 있겠소?”
“으음.”
고칠 수 있나?
모르겠다.
원래 코 모양이 어땠는지 뭐 이런 질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런 건 별 의미가 없을 거 같다.
이건…….
그냥 ‘아, 저 사람은 코가 이상하게 생겼네’ 정도로만 되어도 기적이야.
아예 밑동이 그냥 다 잘려 버렸잖아.
“못 고치나. 역시…… 흐음.”
“아니, 못 고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럼?”
“원래대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거죠.”
“그게 그런 말 아닌가? 의사면 원래대로 돌려야지.”
“으음.”
때릴까?
지금 여기서 때리고 싶으면 좀 이상한 건가?
‘아니, 때려도 좋네.’
리스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 같다.
하지만 리스턴을 제외한…….
특히 원장님이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물러가라, 19세기!’
이제 와서는 믿기 어려운 얘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 꽤 착한 사람이다.
‘칭찬합시다’ 단골이었어.
시대가 이렇게 만들고 있는 거다.
“역시 안 되겠군. 너무 어리고, 또…….”
아닌가?
이 새끼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건가?
점점 헷갈려만 가는 와중에 형님이라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인 중 하나가 문밖에 서 있던 누군가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안색이 꽤나 창백한 사람이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분에게 맡겨 볼까 하는데, 어떤가.”
“뭘 맡겨요?”
“내 수술.”
내가 19세기 의료를 무시하고 있는 것도 맞다.
가는 데마다 이상한 짓만 하는데 무시 안 하고 배겨?
근데 이 사람은 그런 걸 차치하고서, 그러니까 편견을 최대한 버리고 보려고 해도 딱 사기꾼처럼 생겼다.
“앗.”
그때 원장님이 나섰다.
“왜요?”
리스턴이 묻자, 원장님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는 얼굴인데. 그래, 코 수술의 대가…… 맞네. 맞아. 요제프.”
“요제프?”
나치스러운 이름인데?
아, 독일 이름이라고 해야 하나?
빠게트 놈들보단 좀 낫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도긴개긴이다.
괜히 나중에 대학살을…….
아앗 또 내 안의 19세기가…….
“맞소. 요제프라 하오. 유태인들의 열등한 매부리코를 교정하는 수술을 주로 하고 있지.”
아…….
아니네.
19세기의 망령이 아니라 그냥 21세기의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어쩐지 사람이 나이 들었는데 이 정도로 음산한 느낌을 주면 얼굴에 책임을 지긴 해야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괜히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야.
“그러다 보니 코의 구조에 정통하게 됐네. 이분의 수술은 내가 하는 게 맞을 성싶은데…….”
“그럼 그냥 하지, 왜 여기까지 왔습니까?”
내 생각과는 별개로 원장님은 질문을 내던졌다.
뭔가 싸한 느낌을 받았는지 평소보다 긴장한 게 보였다.
“웬 동양놈이 유명하다 해서 말이지. 이참에 승부라도 하면 어떨까 싶은데.”
더 긴장하셔도 좋았을 거 같다.
진짜 미친놈이 하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