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40)
검은 머리 영국 의사-240화(240/505)
240화 코 재건술 [1]
고작해야 몇 개월 깔짝거린 놈에게 내가 져?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물론 내가 뭐 코 성형을 많이 해 봤냐고 하면 그건 아니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문외한이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외과는…… 관짝에 들어간 지 오래지.’
당당한 외과 전문의요, 가장 큰 병원 교수까지 임용되었던 내가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2020년대 이르러 외과는 더 이상 인기 과가 아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도 약간 양심에 찔린다.
망했어…….
힘들고 돈은 못 벌고, 심지어 제대로 된 일자리도 잘 없다.
그러니 자연히 성적이 좀 떨어지는 친구들이 들어 온다.
아니, 말은 바로 해야지.
성적이 떨어지는 친구들도 잘 안 와서 미달이다.
‘먹고살 길 알아서 찾아야지.’
외과 전문의를 따고 또 분과 전문의를 딴다고 해서 밖에 나가서도 그런 수술을 할 수 있나?
아니다.
간담췌 다루던 실력 있는 선배가 교수 못 되어서 나가서 뭐 하고 있었는지 아나?
머리 심었다.
머리 심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냥 그만한 전문성을 갖추었는데 쓸 수 없는 현실이 개탄스러웠을 뿐이다.
뭐, 아무리 그래도 흉부외과나 산부인과보단 낫긴 하지만…….
-자자 코 성형 콘퍼런스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간혹 외과 전문의들이 들어오는데, 본인 앞뒤 좌우 잘 살펴서 영 모르겠는 얼굴이 있는 것 같으면 알려 주세요.
그렇다 보니 나가서 써먹을 수 있는 수술을 배워야만 했다.
그중에서 제일 좋은 건 아무래도 성형외과 수술이다.
양악이나 이런 건 아무 데서나 배울 수도 없었다.
그나마 코 성형은 돈은 그렇게 안 비싼 데 반해 어렵고 합병증도 많아 성형외과에서는 기피하는 성형수술이다 보니 기회가 주어졌더랬다.
그마저도 뭐…… 갖은 괄시와 고난이 잇따랐지만.
-여기! 외과 군의관이다!
-저놈 잡아라!
다행히 운이 좋아서 나는 안 잡혔다.
생각해 보니까 꾸준히 운이 좋긴 했다.
일단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잖아?
암 걸리고 트럭 치여서 19세기로 돌아온 것이 행운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네 뭔가 익숙해 보이는데?”
하여간,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나는 새로 들어온 시신의 코를 잘라 냈다.
코의 구조만 대강 알고 있어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뼈 피해서 뎅강 자르면 돼.
“아…… 이거야 뭐 기본이죠.”
“코 자르는 게 기본이라고?”
“아니, 해부학적인 이해만 있으면 된다니까요?”
“그, 그래.”
그렇게 뎅강 잘랐더니, 이게 너무 빨랐나. 주변인들이 조금 주춤거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들 19세기 사람들이지 않나.
당황은 잠시뿐이고, 저마다 맡은 시신의 코를 자르고 있었다.
리스턴?
저 사람은…….
“음. 왜 모양이 다르지?”
“뼈까지 다 잘랐잖아요!”
“이게? 이렇게 얇은 게 뼈인가.”
“뼈지…… 이렇게 단단한데.”
아니, 리스턴칼도 아니고 메스로 뭘 어떻게 하면 사람 코가 이렇게 잘리지?
진짜…….
“뭘 그렇게 보나?”
“아니, 마나라도 있나 해서요.”
“마나?”
“없는 거 같긴 한데.”
소드 마스터인가?
알고 보면 막 검기 쭉쭉 뽑아내고 그러는 거 아니야?
이러한 의심을 간신히 뒤로 하고, 나는 나머지 놈들도 다 코를 잘라 냈을 확인했다.
리스턴을 제외하고는 다들 제대로, 그러니까 일반적인 코 절단술을 시행했다.
애초에 코는 자르면 안 되는 건데 코 절단술이라는 나름 멀쩡해 보이는 수술명을 붙인다는 게 좀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다 가져와 봐.”
“네.”
그렇게 좌우로 늘어선 시신 사이로 콜린과 앨프리드가 애써 찾아낸 코 재건술에 대한 문헌을 들고 왔다.
당연히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게 있더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보면 없고,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보면 있고.
좌우지간 헷갈리는 19세기다.
아, 조지프는 뭐 하냐고?
“시신을 왜 닦나.”
“소독은 습관입니다.”
“그…… 그래.”
시신 소독하고 있다.
어지간하면 리스턴 선에서 정리가 돼야겠지만 녀석의 광기는 적당한 폭력으로는 말릴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보니 리스턴도 그냥 두고 있었다.
뭐 적당하지 않은 폭력을 동원한다면 멈출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영영 멈출 수도 있으니 저게 현명했다.
막말로 소독은 과해서 나쁠 건 없잖아?
“어디…… 아.”
하여간, 나는 제자들이 찾아온 재건술을 보다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무…….
이건 너무 끔찍하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우습게 여겨지겠지만 외상센터를 꿈꾸기 전엔 이식외과를 꿈꾸었던 내가 보기엔.
“오…… 그럴싸하군그래.”
“과연…… 허어…….”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리스턴과 블런델은 연신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뼈대를 철로 대신하고…….”
“살가죽은 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었다. 흐음…… 어떻게 이 옛날에 이런 생각을 다 했을꼬?”
19세기도 옛날이다.
허나 17세기에 비하면 요즘이다.
그걸 이 문헌을 보면서 느꼈다.
뼈 대신 철을…… 물론 21세기에도 철심을 박긴 한다.
하지만 그건 편의상 철심이라고 하는 것이고 인체 내에 박아도 되게끔 특수 처리한 합금이다.
그냥 철은…… 이런 건 박으면 안 된다.
녹이 스는 것을 떠나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고.
‘게다가 코의 살은 송아지 가죽을 꿰매서 대신했다고?’
장담할 수 있다.
이 수술 받은 사람은 다 죽었을 거다.
아니, 뭐 세월이 지났으니 안 받았어도 죽었겠지만…….
“해 볼까?”
문제가 있다면 ‘이걸 대체 어떻게 말리나’였다.
거부반응이라는 고차원적인 얘기가 가능할까?
안 될 거 같다.
“아니, 잠깐만.”
설득이 불가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왜?”
내게 순수하게 되묻는 리스턴은 나와 마주 서 있다.
그 뒤로는…….
보이진 않지만 원장님이 모아 온 환자들이 주르륵 서 있다.
병원 어딘가에 모여 있다.
처음에 환자 모은다고 했을 땐 대체 어디서 코 없는 환자를 구해 오나 했는데, 런던엔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는지 금세 하나 가득 모아 왔다.
당연하겠지만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아, 매독 환자들일세. 예전엔 이거보다 더 많았다고 하던데…… 아무튼, 매독 걸리고 방치하면 간혹 저렇게 코가 없어지지. 그래서 다른 이유로 코가 잘리거나 한 사람들이 괴로워한다네. 매독 환자로 오인되기 십상이거든.
이건 몰랐다.
매독을 방치해 본 적이 있어야 알지.
21세기에는 킹 갓 페니실린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세고 다양한 균을 조질 수 있는 항생제가 즐비하단 말이야.
“이게…… 이게 깨끗하겠습니까? 철에 있는 미아즈마와 송아지 가죽에 있는 미아즈마 때문에 감염이…….”
“조지프가 닦으면 될 일 아닌가? 이 녀석 닦으라고 하면 신나서 광도 낼 거야.”
“그래. 맡겨 둬, 평아!”
아잇, 해맑게 웃지 말란 말이다.
사람 죽일 거면서 웃지 말라고.
“아, 그런데.”
그때 블런델이 나섰다.
딱히 좋은 일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이 인간…….
이거 진짜 진취적이거든.
다시 생각해도 피 섞어서 수혈이랍시고 시도한 건…….
“이후에 기록된 것을 좀 보게. 아예 다른 수술을 시도하고 있어. 이유가 있지 않겠나?”
“오.”
허나 아니었다.
하긴, 이 사람이 진취적인 이유가 있지 않던가.
원래 하던 게 잘 안 먹히니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새로운 시도란 원래 위험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방법만 제대로 이끌어 주면 고집 바로 버리고 잘도 따라오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기록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았다.
“그래요, 이게 괜히 이럴 리가 없죠. 더군다나 이거! 이거 프랑스 놈들이 만든 거라지 않습니까.”
“아아, 그랬나? 그럼 안 되지. 빠게뜨 놈들의 방법이 우월할 리가 없어.”
“그렇다니까요.”
게다가 잘 보니까 아까 봤던 그거, 그러니까 철로 뼈 만들고 송아지 가죽으로 살가죽 만들겠다는 그 흉악한 수술…… 빠게뜨 놈들의 방법이다.
다행히 리스턴은 빠게뜨 놈들의 방법이라면 옳은 것도 일단 무시하고 보는 훌륭한 영국인이다 보니 해당 수술은 곧장 폐기되었다.
조지프?
녀석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영국인인 것은 마찬가지다 보니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잘 안 되는군.”
게다가 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어진 콜린의 고급 가방을 이미 페놀로 망가뜨린 다음이었다.
“이, 이 시발놈아!”
“그래도 전보다 안전할 거야.”
“아, 안전?”
콜린이 발작했지만 뭐 어쩌겠나.
나도 저런 도전 정신은 환영하는 바이다.
아무튼, 그렇게 엉망진창 토론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다들 다음 기록을 읽기 시작했다.
“양피지에 환자의 코 모양대로 그림을 그리고…….”
“그 모양대로 환자의 팔뚝에 칼로…….”
“그 살을 코에 붙여?”
“흐음…… 그렇게 붙이고 3주 뒤에 팔뚝과 분리하면 된다고 되어 있는데…… 이게 맞나?”
“제대로 읽은 거 맞나? 이렇게 하는 수술이 있어?”
“내가 문맹인 줄 아나. 당연히 제대로 읽었지.”
리스턴이 무척 억울하다는 얼굴로 주먹을 말아 쥐었다.
블런델은 급하게 당연히 자네는 문맹이 아니라고 해 주었다.
이럴 때 보면 블런델도 참 미친 사람이다.
어떻게 리스턴에게 저 지랄을 할까?
‘하지만…….’
이해는 간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잖아?
해서 나도 직접 봤더니, 마냥 이상한 수술은 아니긴 했다.
‘아하…… 이를 테면 이건…….’
재건술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결손이 된 부위를 신체의 다른 부위를 이용해 메우는 것을 말한다.
대개 얼굴이나 유방과 같은 부위에 결손이 생겼을 때 재건술을 시행하는데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유리 피판술, 다른 하나는 국소 피판술.
말이 어려운데 쉽게 말하면 멀리 있는 조직에서 떼 와서 붙여 주거나 가까운 데서 돌려서 붙여 주는 방법이다.
‘짬뽕이구만. 두 개를 섞었어.’
이건 멀리 있는 조직을 돌려서 붙여 주는 방법이다.
가까운 데서 돌리면 얼굴에 또 다른 흉터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하면 팔뚝의 상처로 갈음할 수 있으니 상당한 이점이 있다.
그러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엔 더 이상 이런 짓을 하진 않는다.
왜?
일단 3주 동안 팔을 얼굴이랑 떨어지지 않게 묶어야 한다.
문헌에 따르면 철 틀에 끼웠다.
고문이다, 거의.
‘아마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무조건 돌려 준 살이 살아남진 못했을 거야.’
3주면 생착이 가능한 시기이긴 하다.
하지만 커다란 혈관이 새로 생기는 건 무리다.
그리고 작은 혈관만으로 살점이 다 살아남기를 기대하는 건 안 될 일이다.
“이거 해 보자!”
“잡아 와…… 아니, 데려와.”
다행한 일은 이 광기에 사로잡힌 놈들을 충분히 말릴 방법이 있다는 점이다.
“잠깐!”
“응?”
“또 왜?”
벌써 우리 성질 급한 19세기 분들은 칼부터 꺼내 들고 환자들에게로 가고 있었다.
진짜 잡으러 간다, 이 말인데…….
“이거 만든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우리보다 해부학적인 지식이 모자라는군요.”
내 있어 보이는 말에 우선 다들 발을 멈추었다.
“무슨 말인가?”
문답무용이다.
나는 더 설명을 이어 나가는 대신 메스로 시신의 이마를 쭉 세로로 절개했다.
“또, 또 저 지랄이네.”
리스턴 등은 욕설을 해 대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