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41)
검은 머리 영국 의사-241화(241/505)
241화 코 재건술 [2]
이마 위로 죽 올라가는 동맥이 있지 않나.
이걸 우리는 활차상동맥이라고 부르는데…… 말하고 보니까 이름이 참 어렵다.
내가 배울 때 영어로 배워서 그런가. 어찌 된 게 의학용어만큼은 한글이 더 어려워.
아무튼, 이걸 영어로 하면 Supratrochlear Artery다.
말 그대로 활차(Trochlear) 위(Supra)로 돌아 나오는 동맥(Artery)이다, 이건데 그냥 눈 가운데 쪽에서 나와 이마 위로 향하는 애라고 보면 된다.
“이거 보이세요?”
아무튼, 나는 그 동맥 좌우로 1cm 좀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절개선을 넣고는 쓱 벗겨 내었다.
물론 아래쪽으로는 멀쩡히 붙어 있었다.
동맥은 살려야 될 거 아니야.
이걸 자르면 살은 그냥 죽어 버린다.
반대로 동맥과 연결만 되어 있으면 위에는 모양을 내가 어떻게 바꾸든 말든 살아남을 수 있다.
피가 통하니까.
“으음……. 동맥…… 이거야 뭐 얼굴 해부할 때 몇 번 보지 않았나. 이걸…….”
그 모습을 본 블런델은 별 망설임 없이 주절거리고 있었다.
허나 우리의 희망 리스턴은 좀 달랐다.
“아…… 이걸 돌리면……! 팔뚝 살 돌려 붙인 거랑 크게 다르지 않겠군?”
“네, 맞습니다.”
이 양반이 지식과 경험이 없거나 너무 한쪽으로만 치중되어서 그렇지…….
머리는 비상한 사람 아닌가.
그렇다 해도 이렇게 딱 보자마자 이해할 줄은 몰랐다.
“단점은…… 아무래도 이마다 보니 쓸 수 있는 살이 한정적이로군그래.”
“맞아요. 하지만 코는 그렇게까지 큰 조직이 아니죠.”
“자네 코는 몰라도 내 코는 크다네.”
“아니…… 어차피 모양을 그대로 재건해 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대로 재건해 줄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니겠나? 하지만…… 뭐, 저건 쓸 수 없는 방법일 거 같긴 하군그래.”
거기에 더해 의학적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고집이 없는 편이었다.
지금도 봐라.
원래 대로 재건해 줄 수 있으면 좋다는 건 사실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당연한 말인데도 조지프가 조져 놓은 콜린의 가죽 가방을 보면서 바로 포기하고 있지 않나.
제대로 된 소독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로 수술을 해서는 안 된단 생각을 하고 있어서이기도 할 터였다.
“이렇게만 해도, 보세요.”
아무튼, 나는 그렇게 잘린 코 위로 방금 내가 대강 만들어 낸 플랩을 돌려서 올려놓았다.
“끔찍하군.”
사실 기대했던 답은 ‘그럴싸하다’ 내지는 ‘멋지다’, ‘역시 평이다’와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끔찍하긴 했다.
그렇잖아.
이게…… 그냥 깔끔하게 살이 뚝 떨어져 나와 코를 만든 게 아니라 이마에서부터 내려와 코를 형성하고 있었다.
코만 봐도 이상한데 연결된 부위는 더더욱 이상했다.
“여기를 나중에 자를 수 있다면?”
“아, 이 방법처럼? 하긴, 팔뚝 살도 붙는다고 되어 있는데 이마의 살이라고 안 붙을까. 흐음…… 그렇게 하면 아까보다는 나은데.”
나은 정도가 아니라 혁명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생각해 봐라.
쇠와 가죽으로 사람 억지로 꿰매서 죽이다가 이제 팔뚝 살을 코에다 엉겨 붙여 놓고 묶어 놨다가 푸는데 당연히 이게 낫지.
환자의 편의성만 해도 그런데 아마 막상 해 보면 생착률도 이쪽이 훨씬 나을 거다.
나는 확신할 수 있어.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과연 문헌에 나와 있는 것보단 훨씬 나을 거 같은데.”
“그러니까 말이야.”
“역시 평 교수님…….”
리스턴도 블런델도 결국엔 내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콜린도 끼어들었다.
조지프나 앨프리드도 말만 안 했지 동의하고 있었다.
둘이 조용한 이유는 각기 달랐다.
앨프리드는 어떻게 봐도 똥손인데, 그걸 이용해 내 수술을 따라 하다가 그만 동맥을 잘라 버렸다.
저 동맥이라는 게 그냥 위로 향하는 놈인데 그걸 자르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감도 안 잡힌다.
조지프?
조지프는 소독 중이다.
‘이제 슬슬 저 새끼도 좀 말리긴 해야겠어.’
소독을 아예 안 하던 시대고, 또 우리 일행을 제외하면 여전히 안 하는 놈들이 태반인 시대이니만큼 저렇게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놈도 필요하긴 하지만…….
‘저 새끼는 손이 좋잖아.’
앨프리드면 사실 뭘 해도 된다.
오히려 수술하겠답시고 설치면 그게 더 곤란하다.
나도 사람인데 그간 받은 은혜를 갚긴 해야 할 거 아냐.
죽을 고생을 한다면 그냥저냥 하는 수준의 외과 의사야 만들 수 있겠지만…….
이런 말도 있지 않나?
무덤은 그럭저럭 잘 싸우는 전사들의 시신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
그나마 검술은 지가 죽는데 수술은 남이 죽는다.
저놈이 지나갈 자리에 그득히 쌓일 ‘남’의 시신을 생각하니 그만 한숨이 나올 거 같다.
나름 집안도 빵빵하다 보니 의료사고로 치부될 일도 없지 않겠나?
“으음…… 근데 말이야.”
그렇게 앨프리드와 런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입을 열었다.
그는 수술에 있어서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진중한 사나이니만큼 지금까지도 이마 근육, 즉 피판을 가지고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그런 사람의 말이니 들어 봄 직할 터였다.
적어도 앨프리드의 미래보다는 가치가 있지 않을까?
물론 모든 것을 다 떠나서 리스턴이 말하는데 답하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은근슬쩍 제정신 아닌 척하고 대머리 드립했는데도 살아남은 걸 보면 이제 와 맞아 죽는 일 따위는 없을 거 같긴 한데…….
“네.”
그러나 내 입은 거의 자동 반사적으로 대답을 내뱉었다.
영혼은 몰라도 여전히 몸은 솔직한 모양이었다.
하긴 살아야지.
기껏 되살아났는데 말실수 따위 해서 뒈질 수는 없지.
“이 콧대는 어쩌나? 자네 코도 크기는 작아도 딱 서 있지 않나? 근데 이렇게만 하면 물렁할 텐데.”
“그…… 모양에 너무 집착하시는 거 아닐까요?”
“집착이 아니라. 환자를 생각해야지. 그의 앞으로의 나날을 생각해 보게.”
19세기 의사 주제에 앞으로의 나날을 생각하는 건 너무 주제넘은 짓 같습니다만…….
일단 당장 수술 후에 며칠이라도 살지 말지부터 걱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는 말은 당연하겠지만 배제되었다.
‘뭐…… 고민해야 마땅한 일이긴 해.’
대신 나는 쓸 만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고민이라고 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식은 아니었다.
사실 알고 있는 정답이 지금 이 시점에서 가능한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역시 쇠를……?”
“아니, 잠시만요.”
“왜.”
쇠.
철.
좋은 금속이긴 하다.
수은 시대, 납 시대, 비소 시대는 없어도 철기 시대는 있잖아.
그만큼 유용하고 또 안전한 금속이었다 이건데…….
그렇다고 해서 몸 안에 넣어도 되는 건 아니다.
“코 한번 만져 보세요.”
“싫어.”
“왜……요?”
“손을 또 닦아야 하니까.”
“아니, 어차피 시신인데?”
“조지프가 가만히 있을 거 같나?”
“그건 뭐…… 그럼 그냥 떠올려 봐요. 코끝이 눌리죠?”
“눌리지. 어?”
“그래요. 코끝은 부드러워요. 아, 아까 자른 코. 이것도 봐요. 이 뼈는 쇠처럼 단단하지 않아요.”
나는 내가 자른 코를 만지작거렸다.
이미 사망한 지 좀 되어서 경화되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뼈처럼 단단한 것은 아니었다.
이건 뭐 만져 보면 알 일이었다.
당연하다, 이 말이지.
“음. 하지만 모양만 맞추면 되지 않겠나? 모양이 더 중요할 거 같은데?”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가령 귀 같은 경우엔 재건할 땐 실제로 단단한 재료로 한다.
그럼 어딘가 이동하거나 할 때 돌출된 부위가 단단하면 잘 다친다는 단점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리 들리는 기능이 떨어지거나 하진 않는다.
뭐, 코도 비슷하지 않을까?
돌출되어 있으니 단단하면 아마 훨씬 잘 다쳤을 거다.
바람 불 때 부러지는 나무는 단단한 나무인 것처럼.
“어허! 주님께서 괜히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지만 내 입에서 튀어 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말이었다.
원래 같으면 리스턴 앞에서 이렇게 소리 지르는 일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겠지만 주님을 판다면 어떻게 될까.
“아아, 주여.”
리스턴은 생긴 게 저래서 거울 볼 때마다 암만 봐도 지옥 갈 거 같아서 그런가…….
아니면 실제로 지은 죄가 꽤 많아서 그런가…….
대단히 신실한 편이었다.
“내가 잘못했네. 쇠는 빼지.”
“그래요. 만약 넣는다고 하면. 저는 안 넣는 게 나을 거 같지만.”
“그래, 고견을 듣겠네. 주님께서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가? 예언인가?”
“말씀하시는 게 있진 않은데, 만약 있다면 주님이라고 믿고 계시긴 하는 거죠?”
어디 무당 접신하는 식으로 알고 있다면 대단히 곤란하다.
괜히 하는 걱정이 아니라 이 새끼들이 조선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거든.
자료가 굉장히 부족해서 다행이라 할 수 있다.
풍부했으면 아마 나는 노블 킴이 아니라 지리산 월하 선사가 되었을 거야, 아마.
“그렇지. 주님 말고 대체 누가 이런 올바른 지식을 주겠나.”
“그렇죠. 아무튼, 지금 영감을 주셨어요.”
“어어, 뭔데.”
“다른 데서 연골 떼다가 오면 되죠. 가령 귀나, 여기.”
“갈비?”
“네, 갈비에도 있잖아요.”
“아…… 맞아. 그래서 툭 치면 부러지곤 하지. 하하.”
척추도 치면 부러뜨릴 수 있는 양반이 이런 말을 하니 이상하다.
하지만 아마 갈비뼈의 연골 부분에 대한 지식이 적지는 않을 거다.
많이 부숴 보면 그만큼 지식이 팍팍 쌓이는 법이지, 암.
“근데 귀는 말이야. 이건 좀 둥글지 않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리스턴은 벌써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시신의 귀를 툭 잘라다가 굉장히 특이한 방식으로 귀 안에 든 연골을 쑥 빼낸 참이었다.
‘과연…… 리스턴.’
그 우악스러움에도 놀랐지만,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저 발상이다.
귀의 연골은 채취하기가 갈비 쪽 연골보다 아무래도 훨씬 쉽고 안전하다.
하지만 둥근 게 문제다.
코의 연골은 쭉 뻗었잖아.
“안 쓰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코의 형태가 좀 남은 상태라면 또 모르겠는데.”
“그렇군. 그럼 역시 갈비인가?”
“근데 이게…… 낑겨 넣는 게 능사일까요? 일단 안 넣고라도 성공하는지 어쩌는지 봐야지.”
“자네는 가만 보면 진취적인 것인지 아닌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 노력하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있겠나?”
글쎄.
그 노력이라는 것도 재능의 일환이라는 말도 있답니다, 21세기에는.
하지만 뭐…….
19세기는 확실히 낙관주의로 가득 차 있긴 하다.
노동자들이야 아예 다른 세상 사람들이니 별개로 치고, 여기 있는 이들처럼 어느 정도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만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여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잖아.
그러니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리스턴이라면 노오력으로 정말 끝까지 갈 수도 있어.’
저 양반의 재능은 분하지만 나보다 위에 있다.
내가 괜히 잘 안 말리는 게 아니야.
맞을까 봐 그러는 게 아니다.
“그럼 우선 시신으로 연습하고, 밖에 환자들 부를까요?”
“그래. 그러자고.”
“근데 너무 오래 기다리는데 괜찮을까요?”
“응? 일당 받고 기다리는 건데 뭐. 그리고 수술 동의서가 얼마나 비싼 줄 아나? 한두 푼 하는 돈이 아니야. 실제로 수술받아야 그 돈이 나오는데 다들 웃고 있을 거야.”
수술 동의서라는 말이 자꾸만 신체 포기 각서처럼 들리지만…….
적어도 우리 병원, 우리 일행에게 걸리면 상황이 나을 거라 여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