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44)
검은 머리 영국 의사-244화(244/505)
244화 트래펄가 광장에서의 대결 [2]
지익.
툭.
지익.
툭.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지금 트래펄가 광장에서 대결 중이다.
저 유럽의 지배자 나폴레옹을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박살 낸 것을 기념해서 만든 이 유서 깊은 광장에서…… 수술 대결 중이다.
자칭 타칭 유대인의 구원자 요제프와.
하필이면 파울 요제프 괴벨스와 이름이 비슷한 놈인데…….
놈과 다른 수술도 아니고 코 수술 대결을 하고 있으려니 가슴이 참으로 옹졸해진다.
지익.
툭.
지익.
툭.
게다가 제대로 된 재건술도 아니다.
연골?
안 건드린다.
사실 아까 리스턴이 귀신같이 벗겨 낸 귀 연골을 한번 덧대 봤는데…….
코가 좀 휘더라고.
게다가 연골을 고정하려면 밑과 위쪽에 있는 뼈와 봉합을 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요. 뼈를.
-구멍은 잘 나는데?
-어떻게 했어요?
-압도적인 힘과 기술.
-아.
다행히 우리는 리스턴이라는 소드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드릴 없이도 뼈에 바늘구멍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구멍을 낸 곳에 남겨 두어야 할 실이었다.
뼈는 감염에 무척 취약한 장기이지 않나.
생각보다는 피가 잘 통하는 장기긴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점막이나 근육 등과 비교하면 피가 거의 안 통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약이 없는 세상이다 보니 우리가 쓸 수 있는 무기는 피뿐이지 않나.
근데 환자들 몰골을 보면 그 피조차 제대로 올지 어떨지 알 수가 없었다.
“음, 거의 다 끝나 가는데…….”
“확실히 아까보단 훨씬 낫네.”
“하지만 원래 코는 이렇게 안 생겼을 거야. 아, 평. 뭐라고 하는 건 아닐세. 아까워서 그러는 거지.”
그래서 그냥 살로만 재건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그렇다 보니 수술이 좀 심심해지는 느낌이었다.
대결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정말 대단한 걸 해야 할 거 같은데 이게 뭐란 말인가.
‘이거 지는 거 아냐?’
난 맞은 편에서 낑낑대고 있는 놈들을 바라보았다.
마취는 우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해 놨다.
당연했다.
이 방법 말고는 아직 다른 방식이 개발되지 않은 시기이니까.
허나 그것 말고는 많은 것들이 달랐다.
“오…….”
“이건 대체 뭐요?”
“철로 머리를 감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얼굴에 다른 흉터 없이, 팔의 흉터만 남기고 코를 재건할 수 있습니다.”
“허어…… 정말 대단한 시발이군.”
“전 독일인이라 시발이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나도 모르네, 사실. 조선말인 거 같은데 한번 듣고 나니 입에 착착 감기는 게…….”
“일단 조용히 해 주시죠. 이제부터는 집중해야 합니다.”
“아아, 그러지.”
방금 전까지는, 그러니까 내가 이마 근육 딱 돌려서 코에 댈 때만 해도 분위기 좋았다.
그건 내가 봐도 좀 신기하거든.
하지만 이젠 아니다.
철 뚱땅거리고 있는데…….
저게 아무래도 눈길을 팍 끌게 되지 않겠나?
‘이건 내 실수다…….’
수술로는 내가 압도적이다.
의학적인 시선에서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저건 족보에도 없는 방식이지 않나?
유리 피판도 아니고 국소 피판도 아니고…….
앞으로 저절로 사장될 수술이다, 이 말이다.
“와아아아!”
“요제프!”
하지만 지금 이 대결은 어느 정도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아니, 어느 정도가 아니라 그냥 순수한 엔터테인먼트야.
그 말은 곧 저들, 런던 시민들을 얼마나 즐겁게 해 주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아…… 내가 부족하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마자 갑자기 초조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의회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주워듣기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트래펄가 광장이라고 부르지만, 아직 대외적으로는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완성된 상태도 아니었다.
군데군데 공사 자재들이 널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몰려 있다는 얘기다.
저렇게 정성을 보이는데 나는 고작해야 이마근을 돌려서 코나 꿰매고 있다니…….
‘이제라도 갈비를 열까?’
마침 마지막 봉합이 끝났다.
이대로 수술을 종료할까도 싶었지만…….
저쪽에서 철 뚱땅거릴 때마다 들려오는 환호성을 듣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초조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환자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다.
눈치 빠른 콜린의 손이 그 옷에 닿으려는 찰나, 리스턴이 말했다.
“평. 사람들 즐겁게 해 주려고 의사 하나?”
“아.”
부끄럽다.
내가…….
21세기에서 온, 그중에서도 의료 선진국이라 자부해도 될 만한 나라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내가 이따위 생각을 하다니.
“그 마음가짐은 훌륭하네.”
“아?”
허나 끝까지 들어야 하는 건 한국말뿐만이 아니라는 걸 여기 와서 알게 되지 않았나.
영국 놈들은 섬나라 놈들이라 그런가 반도에 불과한 우리가 따라가기엔 벅찬 괴이한 면이 있었다.
하여간, 리스턴은 내가 당황해하고 있는 틈을 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고개를 돌리면서였는데 분위기도 그렇고 덩치 때문에 눈을 떼기도 어렵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보조의들도 전부 그랬다.
그 와중에 앨프리드는 마취 가스를 서서히 잠그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가슴을 쨀 거 같진 않으니 슬슬 끝내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어…….”
“딱 봐도 위험해 보이지.”
아까 말했듯이 광장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애초에 완성이 된다 한들 아주 드넓은 광장이 되진 못할 터였고.
아직 차량도 없어 마차만 오가는 런던에, 그런 주제에 땅값은 미친 듯이 오르고 있는 런던에 광장이 넓으면 또 얼마나 넓을 수 있겠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무료함을 견디기 어려운 런던 시민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따위 시민들과 한데 섞일 수 없던 귀족 나리들은 따로 경비까지 둘러쳐 놓고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저거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니, 저길 왜 올라가?”
“도전 정신이야말로 대영제국을 세울 수 있던 원동력 아니겠나.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네.”
그렇다 보니 뒤에 있는 이들이 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그럼 이제 그냥 집에 가야 되는데 이 양반들은 돌아갈 집이 없거나 집이 집이 아니다 보니 어떻게든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나무라도 있으면 거기 올라갔을 텐데 광장 만들려고 다 밀어 놨으니 뭐가 있겠나?
그럼 그냥 아무것도 남겨 두지 말았어야 했을 텐데…….
이상한 야매 조각상들이 있었다.
말이 조각상이지 그냥 돌 폐기물 같은 거다.
떠돌이 예술가들이 제대로 된 예술가들이 붙기 전에 뚝딱거린 거 같은데…….
그냥 그대로 뒀으면 모르겠는데 뭘로 쳤는지 시발.
뚜두둑.
봐, 저거 봐.
두둑 소리 난다.
돌에서 연기나!
“아니, 근데 형님! 말렸어야죠!”
높이가 아주 높은 건 아니다.
애초에 그렇게 높다란 기둥이면 건들지도 못했겠지.
하지만 떨어지면 다치는 건 매한가지다.
게다가 돌이 무너지면서 떨어져?
그 돌에 맞는 애들 다 다칠 거다.
“말린다고 듣겠나.”
“아.”
“내가 때리면 말려질 수도 있겠지. 근데 그렇게 다치는 놈들도 치료하기 어려울걸. 아껴 때려서는 말 들을 시민들이 아니니.”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그럼……?”
“저거 다친 사람들을 이제 우리가 경쟁적으로 살리면 되겠지. 일단 구조부터 해야 할 텐데…….”
“그건 우리가 유리하겠네요.”
“그렇지. 나만 있는 것도 아냐.”
리스턴은 그렇게 말하면서 광장 옆을 가리켰다.
나 같은 모범 시민은 익숙해지면 안 될 거 같은 얼굴들이 보였다.
익숙하다 못해 친한 사람들이다.
도살장 사업을 부업으로 하는 런던의 갱단…….
저 사람들이 구출을 할까?
“감히 내 앞에서 허락도 없이 사람 죽일 놈들은 아니니까 안심해도 좋아.”
“아, 그렇네요.”
“게다가 자네도 있지 않나. 저주받는 게 맞아 죽는 거보다 더 무서울 거야.”
“저주…….”
“아무튼, 곧인데? 소리 들어 보니…….”
리스턴의 말에 나는 다시 기둥 쪽을 바라보았다.
버려진 기둥에 조악한 솜씨로 이런저런 조각이 새겨진 기둥은, 그 조각 때문에라도 원래보다 더 쇠약해져 있었다.
두두둑 뚬.
결국, 뚬 소리와 함께 부러져 내리고야 말았다.
위에 있던 세 사람이 일단 떨어지고, 그 사람에게 맞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무너지는 돌기둥에 맞은 사람들도 쓰러지고 있었다.
대강 봐도 부상자는 열 명이 넘는다.
“어어어어어!”
“와아아아아!”
“사람 죽는다아아아아!”
아, 내가 말은 안 했는데 철 뚱땅거리고 뭔가 끔찍한 짓 하는 거 같아 보이니까 사람들이 진짜 광분하고 있었다.
하도 시끄러워서 우리끼리 얘기할 때 계속 소리 지르고 있었어.
아무튼, 그렇게 흥분한 시민들은 무너지는 기둥과 이리저리 튀는 피 그리고 비명에 또다시 환호하기 시작했다.
잘못 들은 거 아니다.
환호다.
“와아아아아!”
“이, 이런. 이걸 대체.”
놀러 왔다가 죽거나 다치는 건 끔찍한 일이다.
이건 21세기나 19세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좀 다르게 인식되었다.
내가 다친 건 아니잖아?
이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화면 너머의 일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바로 훌륭한 엔터테인먼트가 된다.
4D 영화지, 뭐.
“이보쇼, 위원 나으리.”
“으응?”
“코 대결이야 나중에 승부 보면 될 일이고. 저쪽이랑 우리랑 이제 저기 사람들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아아아!”
다만 다스리는 입장에서는 장르가 문제였다.
재난 영화는 한바탕 즐기고 나와서 걱정도 좀 되고 하지 않나?
하지만 힐링물은 한참 동안 마음이 땃땃해지기 마련이다.
의원은 리스턴의 말에 바로 깨달음을 얻고는 이렇게 외쳤다.
“2, 2차전! 2차전은 지금 다친 사람 살리기입니다!”
원래 룰이 갑자기 바뀌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코 재건은 엄연히 성형외과 영역이고 저건 중증외상외과의 영역이지 않나?
21세기였다면…….
‘이따위 대결이 일단 없겠지…….’
너무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안 된다.
그냥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서만 해석하도록 하자.
“좋아.”
아무튼, 이 시기 의사들은 실험 정신이 진짜 미쳤다.
못 한다고 하는 법이 없다.
과를 막론하고 눈앞에 환자가 있어? 그럼 달려가는 거다.
칼 들고 뛰어가서 일단 째 본다.
그러다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명의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다들 하나같이 저따위로 다닐 수가 없어.
“그래, 좋다! 일단 구조부터!”
제일 먼저 뛰어나간 건 리스턴이었다.
웃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서였는데, 안에 입은 건 나시 티였다.
“어어.”
“히이익.”
그냥 그 모습만으로도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피하는 가운데, 갱단도 진입했다.
“비켜! 뒈지고 싶냐?”
“확 찔러?”
“조각조각 나서 돼지 먹이 되고 싶냐? 안 비켜?”
“우리가 리스턴 형님보다 먼저 도착해야 해! 그게 예의다!”
사람 죽이러 가는 건지 살리러 가는 건지 모르겠다.
나?
나야…….
“어어어어어어, 피, 피영이다!”
“아, 아까 저쪽 보고 환호해서 죄송합니다. 살려 주십쇼!”
응급처치해야 되니까 칼이랑 이것저것 들고 사고 현장으로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