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46)
검은 머리 영국 의사-246화(246/505)
246화 트래펄가 광장에서의 대결 [4]
쀼르르르.
주사기를 당기자 피가 더 쭈르르 나오고 있었다.
“저저…… 저 살인자!”
“살인이다!”
“심, 심장에서…… 주술사다!”
그 꼴을 보면서도 무지한 놈들이 지랄을 하고 있었다.
몇몇은 심지어 돌도 들었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던졌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다.
왜?
나 김태평이야.
조선에서 온, 파리에서 수천 명을 몰살시킨 대주술사 김태평.
게다가 내 옆에는 리스턴도 있고, 주변으로는 갱단 친구들도 있다.
‘정말 이해가 안 가네?’
물론 나는 저놈들이 돌을 집어 든 것만으로도 참으로 억울하고 분했다.
이거…… 나쁜 피잖아.
이 새끼들 맨날 생피 뽑을 때는 나쁜 피네 어쩌네 하면서 지랄하더니 진짜 나쁜 피 뽑아 주니까 저러고 있네.
“근데, 평. 이거 진짜 뭐 하는 건가? 갑자기…….”
리스턴은 당연히 나를 말리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까지 보아 온 것이 있지 않나.
하여간, 의학적으로는 내 말 들어서 손해 볼 일이 없다.
당연하다.
난 지금으로부터 거의 200년 이후의 지식들을 알고 있으니까.
뭐…… 17세기 의학에 비해 19세기 의학이 대체 얼마나 진보했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겠지만, 인류 역사에 있어 대부분의 진보는 20세기에 이루어졌다고 보면 된다.
21세기?
그건 뭐 미쳤지.
매년 새롭잖어…….
“나쁜 피를 뽑은 겁니다.”
“나쁜 피는 없다고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니까 있긴 있어요. 보세요, 이 색을.”
“색은…… 제멜이 빼는 피가 더 나빠 보이긴 하던데.”
“흐흐. 좀 다릅니다. 제가 있던 조선에서는…….”
“설명은 나중에 하지. 아무튼 간에 나쁜 마음 먹고 한 일은 아니라는 거 아냐?”
“그렇죠.”
“그럼 믿겠네.”
하여간, 나는 리스턴을 납득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나머지 놈들도 납득시켰다.
블런델, 앨프리드는 심지어 나쁜 피라는 단어에 씨익 웃기까지 했다.
‘역시 사혈은 나쁜 치료가 아니야’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주사기로 뽑으면 좋은 거구나’라고 하기도 했고.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다, 이 말인데…….
‘나중에 정정하면 될 일이지.’
마음이 아프지만, 어쩌겠냐.
지금은 일단 눈앞의 환자부터 고쳐야만 했다.
아직도 쀼륵거리면서 피가 나오고 있거든.
사실 심낭, 그러니까 심장 주머니에 피가 차면 얼마나 차겠냐마는…….
주사기가 구리다 보니 소리랑 비주얼만 요란하지, 나오는 게 많지는 않다.
‘고무마개가 없어서 압력 전달이 잘 안 되나……?’
유리만으로 만든 주사기다 보니 이게…….
당겨도 당겨도 피가 잘 안 나온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순전히 우연 같은데 이미 나온 피가 응고가 되면서 고무마개 역할을 해 주고 있단 점이었다.
점점 잘 나와!
쭈우우욱.
바람 빠지는 소리가 없어진다 싶더니만 피가 쫙 나왔다.
시간은 일반적인 사례에 비하면 좀 지체가 되긴 했지만, 애초에 금방 구조를 해서 처치에 들어갔기 때문에 예후는 그리 나쁠 거 같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계속 중간중간 허벅동맥을 짚어 봤거든?
맥박 안 사라졌어.
좀 약하긴 한데 계속 뛰어.
“저저…… 저놈 저거 어딜 만지는…….”
“역시…… 나쁜 놈이야…… 시신을…….”
그걸 보면서도 우리 런던 시민들은 창조적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하긴 뭐…… 허벅동맥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모를 놈이 태반이지 않나?
이거야 21세기로 치환을 해도 비슷할 테니 딱히 욕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이제 곧 분위기가 반전될 것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됐습니까?”
일단 의원이 내려왔다.
보아하니 아까 요제프가 데려갔던 환자들은 이미 어떻게 된 모양이었다.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조용해.
그렇다고 흰 천으로 시신을 덮어 준다거나 하는 일은 없긴 했다.
이 시기 시신은…… 딱히 뭐 그래야 할 만큼 드물게 보는 게 아니었거든.
“두고 보십쇼.”
“두고 봐……?”
“불안하면 기도하시고요.”
“기도……?”
이제 피는 다 뺐다.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다.
만약…….
‘이래도 안 좋아진다면, 심낭에 지속적으로 피가 난다는 건데…….’
그렇다면 방법이 없다.
진짜 기도뿐이야.
위에 계시는 분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 사람은 죽는다.
해서 잠시 환자의 손을 잡은 채로 눈을 감았다.
뭐…… 신이 있다면 주님 아니겠나?
해서 기도를 하기 위함이었다.
“허어.”
그 모습이 어찌 보였을까.
모르겠다.
반쯤 눈을 뜨고 보니 의원은 그저 나를 입을 헤 벌린 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기도를 해야지 보고만 있네.
믿음이 부족한 놈 같으니.
“쿠, 쿨럭.”
그때 환자가 정신을 차렸다.
‘휴.’
다행이다.
피가 아까 한번 스멀스멀 찬 것이고 크게 다친 건 아닌 모양이다.
뭐…….
나중에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그건 그때 가서 지켜보면 될 일인 거 같다.
CT도 없고 초음파도 없는 세상에 어떻게 정확한 진단을 하겠어.
“허어…….”
그렇게 깨어나는 환자를 보면서 의원이 감탄하더니 이렇게 외쳤다.
“이것 참 대단한 시발이구만!”
언제 한번 날 잡고 시발의 원래 뜻에 대해 알려 주긴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저 양반 저러다 나중에 조선 사람이라도 만나서 자네도 시발인가 이런 식으로 실수하면 어째.
뭐…… 그럴 가능성이야 거의 없긴 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찝찝해.
“어어.”
“지, 진짜 주술이다.”
“사람이…… 어떻게…….”
“저…… 저게 마법 도구인가?”
무지한 사람들은 내 주사기를 뭔가 아주 신령한 것이라도 되는 양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개꾸린 주사기일 뿐인데…….
“이따가 설명해 주게.”
“네, 당연하죠.”
“그리고 일단 이 다리도 좀 보고.”
“아아. 잠시만요. 환자분 가만히 있게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앨프리드!”
아무튼, 나는 환자에게 다가갔다.
내 충직한 조수……이면서 동시에 딱히 수술에는 도움이 안 될 앨프리드를 부르면서였다.
아,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수술적 처치에 한정된 얘기다.
이 환자를 제일 잘 볼 건 앨프리드야.
“자, 환자분. 움직이고 싶어도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아니면 죽어요.”
“네, 네네네네.”
죽는다는 말을 하자 환자가 부리나케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19세기고 21세기고 죽을 수 있다고 하면 다들 말을 잘 듣는다.
그런 것치고는 좀 지나치게 무서워하는 거 같긴 한데…….
“앨프리드.”
“어, 어어.”
“이거 쓸 줄 알죠?”
“알지, 알지. 열심히 배웠어.”
환자는 내 말을 듣자마자 말 그대로 숨만 쉬고 있었다.
좋다.
말 잘 듣는 환자가 좋아.
나는 그런 환자의 가슴팍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청진기로 여기 3초에 한 번씩 들어요.”
“3, 3초?”
“어려우면 계속 듣든지.”
“어어어어. 근데 뭘 들어야 해?”
“심장 뛰는 소리 작아지는 거 같으면 소리 질러요.”
“아…… 알았어. 그건 자신 있지.”
애초에 청진기를 사망 판정에만 거의 쓰고 있지 않나.
그러다 보니 이런 식의 조용해지는 것을 감지하는 수련은 충분히 한 참이었다.
사실 폐렴이나 이런 거 진단하는 데에도 얼마든지 쓸 수는 있을 거 같긴 한데…….
‘숨소리 이상한 거 알면 뭐 하나.’
알면 뭐 해, 진짜로.
약이 없는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아까 다리 다친 환자에게로 돌아왔다.
의원은 벌써 이쪽으로 와서 중계 중이었다.
“와…… 이거…….”
의원의 표현이 아주 과장된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엉망이었다.
리스턴이 괜히 칼을 매만지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조지프의 위력이라고 해야 할까?
소독은 거의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흐으으…….”
대신 환자는 하도 비명을 질러 대서 그런가 아까보다 훨씬 조용해져 있었다.
목도 다 갈라지고 쉬었고.
‘엄청 아팠을 거야.’
진짜 더럽게 아팠을 거다.
소독약…….
그것도 사실 제대로 된 소독약도 아니고 페놀이잖아?
소독도 되긴 하겠지만, 그러니까 균이나 바이러스도 죽이겠지만 근처 조직도 죽이는 거다.
산 채로 얇게 포를 뜨는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아마 대강 맞을 거다.
‘그 보람이 있겠어.’
그러고 나서 ‘에휴, 보니까 절단해야겠네요’라고 하면 벼락 떨어지지 않을까?
어차피 아플 거 한 번만 세게 아팠으면 되잖어.
아니지.
지금은 마취제가 있으니 그렇게까지 안 아플 수도 있었다.
그럼 마취하고 소독하면 되는 거 아니냔 말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그건 안 된다.
소독 잘해 놓고 나중에 보니까 어? 환자분 돌아가셨네 엔딩이 될 수 있거든.
“안 잘라도 되겠어요.”
“그런가?”
“잘 봐요. 뼈도 안 보이고. 이 정도면 사실 좀 심하게 긁힌 정도죠.”
“어디를 어떻게 긁어야 이렇게 되나.”
“아무튼. 보세요.”
나는 아직 제거가 완전히 안 된 돌가루들을 핀셋으로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조지프가 눈알이 돌아간 채로 달려들어서 도왔다.
하여간, 뭔가 깨끗하게 하는 데 있어서는 이놈이 최강인 거 같다.
“으, 으아아아아!”
국소 마취제가 있었다면 그걸 썼을 텐데.
없잖아?
어쩔 수 없다.
“참게.”
리스턴은 환자의 옷을 좀 찢어서 재갈처럼 물게 했다.
“으으으으으!”
악으로 깡으로 참아야 했다.
아픈 게 죽는 거보다는 나을 거 아냐.
“좋아. 다 제거했고.”
그렇게 20여 분을 넘게 조각들을 제거한 후, 나는 다시 상처를 살폈다.
돌에 깔린 거치고는 정작 상처 자체가 크진 않았다.
돌이 약해서였을 거다.
무게는 나가지만 어디 부딪치자마자 잘게 쪼개져서 이렇게 된 거 같다.
뭐…… 소독을 안 했다면 절단으로 이어지기야 했겠지만…….
여긴 내가 이끄는 팀이 있으니 그럴 일은 없지.
“여기만 봉합을 해 줄까.”
“봉합…… 실을 남겨?”
“어쩔 수 없어.”
“으음.”
미아즈마 덩어리를 남긴단 말에 조지프가 침음했다.
그렇다고 해서 말리는 일은 없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의학적으로 내 말 들어서 손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지익.
그리고 촘촘하게 꿰매 줄 생각도 없다.
드문드문해 놓고 나중에 문제 생기는 거 같다 싶으면 풀고 페놀 부을 거야.
엄청 아파하겠지만…….
아파할 수 있는 게 복이다.
“음.”
조금 낯선 침음에 고개를 돌려 보니 콜린의 형이 보였다.
그는 다리 다친 사람과 가슴팍에 주사기 꽂힌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긴 다 죽었는데 여긴…… 아파하긴 할지언정 아직 살았군.”
그래.
진짜 복이라니까?
이 시기에는 안 아파지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거든.
죽는 거.
그리고 의사들은 대개 죽게 만드는 데 있어서 스페셜리스트다.
“운이 없었군.”
요제프 봐라, 저거.
미친놈이 두 명 데려가서 다 죽인 주제에 운 타령이나 하고 있잖아.
더 신기한 건 보호자도 경찰도 딱히 요제프를 붙잡을 생각도 안 하고 있단 거다.
딱 보니까 다친 사람한테서 사혈을 했는데도 그렇다.
“자넨 운이 좋았고.”
그런 주제에 내게 운 얘기를 하고 있다.
“운 나쁘게 해 줄 수도 있는데.”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리스턴이 슬쩍 와서 속삭였다.
솔깃했다.
마치 사탄의 속삭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