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51)
검은 머리 영국 의사-251화(251/505)
251화 센터 독립 [1]
좋은 소식이 구체화 되어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몇 달 후의 일이었다.
사실 그 전부터 대강 알고 있긴 했다.
앨프리드도 그렇고 콜린도 그렇고 심지어 원장님까지 모두 입이 아주 무거운 편은 아니어서 그랬다.
“좋구만…….”
“그러게요.”
켄싱턴.
어떻게 봐도 런던의 핵심 지역인 곳.
그만큼 어마어마한 땅값을 자랑하는 곳인데…….
거기에 나를 비롯해 여러 일행이 진료를 보게 될 센터가 생겼다.
21세기처럼 다 부수고 새로 짓는 건 아니고, 그냥 있던 건물을 쓰는 것이긴 했지만.
‘고맙다, 다들…….’
무슨 원기옥처럼 돈을 모아 오더니만 이렇게 건물을 사 주었더랬다.
물론 나랑 리스턴도 돈을 좀 대기는 했다.
그래야 수익을 월급 형태가 아니라 사업 소득 형태로 들고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 그사이에 또 한 번 작위 얘기가 나왔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다시 한번 거절했다.
“뭐, 너무 부담 가질 필요는 없을 거야.”
겉은 헌 건물이지만 안은 그래도 새 단장을 마친 병원 2호점 앞에서 원장님이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 양반의 배경을 모를 땐 그냥 참 속 편해 보인다고만 생각했는데…….
박해를 피해 도망쳐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아무래도 좀 달라 보였다.
뭐라고 해야 하나?
역전의 용사?
“나야 아버지랑 같이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지만…… 자네는 경영이나 이런 건 아예 신경 쓸 필요가 없네. 애초에 여기 병원을 자리 잡게 된 것도 다 상류층 보기 좋으라고 한 거니까 말이야. 자네는 그저 당뇨. 당뇨만 제대로 봐도 되는 거야.”
“남는 시간은 제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거, 유효한 거죠?”
“당연하지! 하하, 평신을 누가 감히 부려 먹을 수 있겠어. 오전에만 당뇨 진료를 해 주면 된다네. 어차피 이제 저기…… 자네 부하도 있지 않나. 둘이 보면 뭐 충분히 가능하겠지.”
원장님의 손가락 끝에는 앨프리드가 서 있었다.
원래는 마취과 전문의로 키우려고 했었는데 무산되었더랬다.
사람들이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시대적 한계 때문이었다.
마취 나온 지 몇 개월이나 됐다고 전문의가 만들어지겠나.
사실 지금 있는 전문의들도 ‘이제부터 나는 이거 볼래’라고 하면 전문의가 되는 느낌이 강하긴 했지만…….
“응! 맡겨 둬!”
선배 아버지도 그렇고 가스통만 돌리는 건 의사답지 않다고 여기는 듯했다.
사실 수술방의 선장이 마취과인데…….
그거야 나중 일이니 그런 얘기를 한다 한들 도움이 될 일은 만무하긴 했다.
그래서 그냥 앨프리드는 마취 보조의 겸 당뇨 전문으로 발탁하기로 했다.
사람이 손이 빠르진 않아도 섬세한 사람이다 보니 이쪽으로도 꽤나 잘 맞았다.
사실…… 인슐린 이게 농도가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천연이다 보니 그게 당연했다.
사람들이 말이야, 천연이라고 하면 무조건 좋은 줄 아는데 어떤 물질이 얼마만큼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의약품으로써는 그리 좋지도 못했다.
‘환자 상태 봐 가면서 치료하는 건 또 저쪽이 짱이긴 하지.’
그래, 앨프리드에게 천직일 수도 있겠다.
19세기식 당뇨 치료는 전과는 많이 다르니까.
“일단…… 여기가 자네 진료실이고, 저기가 리스턴, 저기는 블런델인데. 블런델, 자네 정말 여기서 괜찮겠나? 산모는 아무래도 저쪽으로 많이 갈 텐데.”
내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원장님은 거취가 애매하게 된 블런델을 향해 물었다.
물론 애매하다는 것도 내 생각일 뿐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블런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 있어야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제왕절개도 그렇고, 수혈도 그렇고. 평신이 괜히 평신입니까?”
“그거야 그렇긴 하지.”
“게다가…… 어휴, 저기 있으면 그 미개한 놈들이랑 같이 일해야 하지 않습니까.”
“나도…… 거기 있을 걸세.”
“원장님이야 그래도 미아즈마 개념도 있고, 소독도 하니 다행이죠. 하지만 다른 놈들은…… 어휴. 어휴…… 아무리 말을 하면 뭐 합니까, 들어 처먹질 않는데. 청진기도 쓰라고 했는데 안 써서 아직도 생매장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좀 답답하긴 하네, 나도.”
처음 여기 와서 내가 느꼈던 감정의 편린을 블런델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많이 좋아지긴 했다.
해부 실습하고 나면 손 닦는 건 이제 루틴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환자 수술하기 전에 소독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
그러니까 병원균의 개념이 잡혀 있어야 가능한 것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외에 다른 자잘한 것들도 안 지켜지는 게 태반이었다.
어설프게 당뇨 치료 같은 거나 도둑질하려고 드는 놈들만 있었는데, 그건 다행히 막을 수 있었다.
일단 인슐린 추출 기술도 유출이 거의 안 되어 있는 데다가 소의 췌장을 무료로 얻을 수 있는 길도 막막할 터였다.
왜?
우리가 갱단과 협약을 맺었거든.
그쪽이 우리에게 소 췌장을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우리는 그 갱단을 보호하고 있다.
‘보호……라는 게 좀 이상한 말이긴 한데.’
뭐 우리 덕에 경찰하고 더 돈독해진 데다가, 여차하면 소드 마스터 리스턴을 쓸 수 있으니 갱단으로서는 무조건 이득일 터였다.
우리도 이득이고.
“그래, 뭐.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아무튼, 여기가 수술방…… 난 아직도 수술방을 따로 써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만들어 달라니까 만들었네.”
“감사합니다.”
어느새 우리는 수술방을 지나 병동으로 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병원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다 보니 병동이 무척 아담했다.
그래서 별로냐고 하면 당연히 아니었다.
20명씩 한 병실에 입원시키는 게 그게 병원이냐? 감옥이지.
서너 명씩 입원할 수밖에 없는 이 구조가 이리도 마음에 들 줄은 나도 몰랐는데, 만들어 놓고 보니 참 좋았다.
“여러모로…… 아담하구만.”
호쾌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님이 보기엔 여러모로 작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당부의 말이 좀 길었다.
“뭐…… 이리로 따로 떨어져 나왔다고 해서 병원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혹시 삐딱하게 나오는 놈이 있으면…… 리스턴 자네가 직접 나서지 말고 나한테 말하게. 입원시키지 말란 말이야. 알았나?”
“네, 뭐.”
“건성으로 말하지 말고…… 경찰에서 따로 연락이 왔어. 그만 좀 패라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래, 뭐. 알아서 하겠지. 중간중간 어려운 일 있으면 물어보고.”
“네네.”
“그래…… 떼돈 벌자고. 당뇨 치료는 정말 부르는 게 값이니까 말이야. 하하.”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원장님은 마차를 타고 원래 병원으로 돌아갔다.
“겨우 우리끼리만 남았군그래.”
“좋네요.”
“그래. 무식한 놈들이 눈에 안 보이니 참 좋군.”
“그렇죠.”
누가 누구더러 무식한 놈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일행의 위치는 확실히 제일 앞에 있긴 했다.
아무도 소독이고 나발이고 모르는 상황이니까.
아니, 알아도 인정을 안 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독립을 했으면 이제 스스로 벌어먹어야 했다.
별로 걱정이 되거나 하진 않았다.
왜?
전부터 떼돈 벌고 있었거든.
“첫 손님이 누구지?”
“제이미 경이죠. 매일 와야 해요, 그 양반은.”
“그래, 그렇긴 하지. 근데 당뇨라는 건 한번 생기면 계속 치료를 해야 하나? 수술로는 어떻게 안 되는 건가?”
당뇨 수술……이라는 건 21세기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뭐 억지로 짜 맞추려면 비만 수술이 있기는 한데…….
제이미 경은 노화와 운동 부족 그리고 남성 호르몬의 부재 등에 의한 증상이기 때문에 영 복잡하다.
오히려 운동과 식이요법을 써야 할 텐데, 그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직까지는 그랬다.
“뭐…… 운동을 시켜 보려고 해요.”
“운동? 사냥은 한다던데.”
“그런 거 말고. 당뇨 예방이 되는 운동이요.”
“그런 게 있나? 그런 게 있으면 나도 해 보고 싶은데.”
“같이 와서 봐요. 그거 때문에 방 하나 비워 둔 거니까.”
“아…… 그…… 종 있는 방 말하는 건가?”
“네.”
운동용 방을 하나 만들어 놨다.
내가 보던 형태의 덤벨과 바벨을 만들려니까 돈이 따로 많이 들 거 같아서, 원래도 규격이 있는 쇳덩이들을 몇 개 사 놨다.
종이다.
영어로 하면 벨이지.
실제로 이 벨들을 가지고 운동했던 것 때문에 덤벨, 바벨, 케틀 벨로 부르게 된 것이기도 하니 뭐 영 틀려먹은 방법은 아닐 거다.
“여어.”
그렇게 진료실에서 노가리를 까고 있으려니 제이미 경이 도착했다.
당뇨 치료를 시작한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나서 그런가. 안색이 전보다는 훨씬 좋아져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옆에서 씩씩하게 인사를 올리고 있는 사람은…….
제이미 경의 전용 소믈리에다.
어찌나 맛을 민감하게 보는지, 진료에 정말 큰 도움이 되어 주고 있다.
“어제도 단맛은 일절 없었습니다. 아주 잘 조절이 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 소변 맛보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도 좋은 건가 싶기는 한데…….
아직까지는 소변에서 당 분석하는 게 너무 어렵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매번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그냥 사람 하나 고용해서 쓰는 게 훨씬 싸게 먹혀.
“좋군요. 그럼 동일한 용량으로 맞추겠습니다.”
“그래, 그래. 아휴…… 이것도 자주 하다 보니 인이 박이는구만그래.”
제이미 경은 우리가 미리 새벽같이 얻어 온 췌장으로 제작한 인슐린을 맞기 위해 웃옷을 훌렁 올렸다.
나는 그렇게 드러난 제이미 경의 물렁한 배에 주사기를 꽂아 넣었다.
몇 달 동안 놀기만 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주사기도 많은 개선을 이룬 참이었다.
무려 제대로 된 고무가 달려 있다.
쭈욱.
그렇다 보니 압력이 정확히 전달이 되어 바로바로 약을 주입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주삿바늘은 이게 송곳인지 바늘인지 모를 만큼 두껍긴 했지만…….
“피난다, 피.”
“으음…… 아프군…….”
늘 지혈이 필요할 지경이었다.
이건 어떻게든 개선을 해야 할 텐데…….
쉽지가 않다, 정말로.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다.
운동을 시켜서 근육량을 늘리면 주사의 빈도를 좀 줄여 볼 수도 있지 않겠나?
‘뭐…… 안 될 거 같긴 한데.’
고환은 왜 잘라 없애 가지고…….
나는 입 밖으로는 절대 낼 수 없는 생각과 함께 제이미 경의 어깨를 잡았다.
“응? 왜?”
서둘러 나가려는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그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운동 안 하시죠?”
“아니, 한다니까. 사냥.”
이제는 억울한 얼굴이었다.
다 얼토당토않은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심장이 평소보다 뛰고, 땀도 많이 나야 합니다.”
“그럴 수가 있나? 노동을 하란 말인가?”
“자…… 제가 오늘부터 제대로 알려 드리죠. 이쪽으로 오시죠.”
“으응…… 자네가 그런 얼굴 하면 무서운데.”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데요?”
“비소 드레스.”
“아. 아닙니다. 제가 공작님께 그럴 리가 있나요? 따지고 보면 병원 투자자이시기도 한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나 죽으면 자네가 더 유리해지는 거 아닌가?”
“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그, 그래…….”
제이미 경은 왜인지 모르게 자기 전용 소믈리에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