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53)
검은 머리 영국 의사-253화(253/505)
253화 센터 독립 [3]
“돈이…… 정말 잘 벌리는군그래.”
당뇨 치료에 있어 메인 조수로는 앨프리드가 붙어 있지만, 리스턴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와 리스턴은 이제 한 몸이니까.
물론 절단 마스터답게 매일 팔다리 한두 개쯤은 잘라야 직성이 풀리는지 여기 와서도 지속적으로 자르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뭐 당뇨 발을 중점적으로 자르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뇨 치료의 일환이지.’
잠시 딴생각을 했는데, 중요한 건 우리가 돈을 진짜 잘 벌고 있다는 거다.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들이 당뇨에 잘 걸린다고 해 봐야 하루에 열 명, 스무 명 보는 게 다인데도 그랬다.
매출만 따지면야 원래 병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지만, 순이익은 어마어마하다.
아닌 게 아니라 따로 알코올 제작하는 거 말고는 비용이라고 할 게 우리 인건비 말고는 없다.
근데…… 나랑 리스턴, 블런델 말고는 학생이라 아직 돈을 안 받잖아?
“그러니까요. 이러다 진짜 떼돈 벌게 생겼는데요?”
“뭐…… 자네가 원하는 연구라는 걸 하려면 돈이 좀 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굉장히 많군.”
“이러다 애 받기 싫어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블런델도 저렇게 말하지만, 사실 블런델은 인센을 좀 더 받는 수준에 불과하다.
나랑 리스턴은 아예 수익 셰어다 보니…….
그것도 따로 돈 투자해 준 사람들에 비해 지분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진짜로 돈이 마구 들어온다.
내가 얼마 버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팔다리 신나게 자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돈이 많이 벌렸는데, 이제는 그보다도 더 많이 벌게 되다니.”
“그 정도예요?”
“그래서 오히려 걱정이야. 오늘도 보게. 점심 먹기 전에 일과가 끝났는데 돈을 좀 보게나.”
“하긴…….”
카드가 없는 세상 아닌가.
거기에 건강 보험도 없다.
애초에 21세기 기준으로도 지금 우리가 하는 당뇨 치료는 아마 비보험 치료가 되기야 하겠지만, 아무튼, 100% 현금 박치기로 돈을 받고 있단 말이다.
그렇게 받은 돈을 식탁 위에 쌓아 두었는데 비주얼이 가히 폭력적이었다.
아무것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거 같어.
“그래도 화학자들한테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아요.”
“아…… 그 썩은 빵이랑 비소 말인가?”
“네.”
“그게 되겠나……?”
리스턴은 암만 봐도 내가 헛짓하는 것 같아 걱정인 모양이었다.
사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리스턴 따라가는 게 옳기는 했다.
이 양반…….
이렇게 버는 돈으로 사치도 부리지만 땅도 사고 집도 사고 있거든.
그에 비해 나는 리스턴 따라서 진짜 조금만 사고 나머지는 저기 어디냐, 연구에 꼬라박고 있다.
그럴싸해 보이는 연구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도 이게 어떻게 되는지 잘은 모르거든.
그냥 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이 나오는 거랑 비소 화합물 중 하나가 매독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밖에 몰라.
이럴 줄 알았으면 의학의 역사 공부도 좀 해 놓을 것을 그랬다.
‘뭐…… 커리큘럼에도 없는 걸 공부하기엔 시간이 없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리스턴의 의문에 대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도 모르니까 솔직한 답이라 할 수 있었다.
“해 보는 거죠. 아직 젊으니까요.”
“그렇긴 하지. 뭐…… 아직 결혼 생각도 없는 거지?”
“결혼이요?”
결혼이라…….
전생까지 치면 나이가 그래, 제법 먹긴 했다.
하지만 현생만 치면 아직 10대다.
‘난 조선 사람이 좋단 말이지…….’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는데 영국 사람들은 좀 그렇다.
뭔가…….
뭔가 뭔가야.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21세기 사람과 19세기 사람의 가치관 충돌이 제일 큰 이유지, 인종 차이는 별거 아닐 거 같긴 한데…….
‘아니면 내가 이쁜 사람을 못 봐서 그런가?’
나름 내 처지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만나는 사람은 환자가 거의 대부분이다.
환자 보면서 이성적인 마음 품는 건 금기에 해당하다 보니 그럴 마음도 없는 데다가, 어느 시기건 간에 많이 아픈 사람들은 대개 빈민들이다 보니 꾸미기는커녕 망가진 상태의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난 있네.”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리스턴이 충격 발언을 했다.
하긴…….
결혼하고 싶어질 것 같긴 하다.
21세기에서 보면 시대착오적인 말이지만, 적어도 이 시기에서는 통할 말도 마침 알고 있다.
-많은 재산을 소유한 독신 남자가 아내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은 보편적 진리이다.
제인 오스틴이 쓴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이다.
얼마 전에 사망한 사람이 쓴 소설이니만큼, 이 시대를 관통하는 말이라고 해도 좋을 거다.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원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상대도 원해야 하지 않겠나?
불행하게도 우리 리스턴은…….
“머리를 왜 보나?”
“네? 제가 그랬어요?”
“분명히 그랬네.”
“아니, 아닌데. 문 쪽을 보고 있었어요.”
“아무도 없는데 거길 왜 봐.”
“아니, 누가 있어요.”
주여.
거기 계신다면 빨리…….
끼이익.
어?
진짜 계시나?
“응? 정말인가?”
“네, 오셨네요.”
“영업 끝났다는 말 못 봤나?”
주님의 응답을 통해 나타난 사내는 머리 때문에 예민해진 리스턴의 으르렁거림을 마주해야 했다.
보통 그러면 전혀 잘못한 게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일단 잘못했다고 하고 도망가기 마련인데…….
“제이미 경 소개로 왔네만.”
상대는 멀뚱히 서서 이 말만 남길 뿐이었다.
그제야 분노 조절 잘해가 된 리스턴은 고개를 빠르게 털고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일단 새카만 정장에 역시나 새카만 모자를 벗어 옆에 수행원에게 건네준 참이었다.
안경은 금테에…….
들고 있는 회중시계 또한 금빛이다.
일단 회중시계 자체가 사치품에 해당하니 딱 봐도 어떤 신분인지 판단이 가능했다.
“아…… 아아.”
거기에 더해 창백한 얼굴까지 보아하니 아까 제이미 경이 말했던 두통 환자인 모양이었다.
자세히 듣진 못했지만 의원이라지 않나.
그중에서도 아편 전쟁이라는 상당히 사이즈 큰 악행을 계획하고 있는 놈이면 높은 놈일 거다.
나는 갑자기 중력이 이마를 당기는 것을 느끼며 굽신거렸다.
“이것 참. 잘 오셨습니다.”
옆을 보니 리스턴도 같은 중력을 느끼고 있는지 굽신굽신하고 있었다.
그래 봐야 키와 덩치가 워낙에 큰 사람이다 보니 건들건들하는 느낌도 주긴 했는데…….
다행히 상대가 워낙 높은 사람이다 보니 그런 쪽으로는 생각이 아예 닿질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진료도 끝났는데 환대에 주어 고맙네. 식사 중인 거 같은데…… 기다릴까?”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치는데, 어쩐지 꾸역꾸역 밥을 먹으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었다.
뭐…… 그러잖아도 여기 다시 태어난 이후론, 특히 런던에 온 이후론 식사 따위엔 미련 없어진 지 오래이기도 하다.
이런 거…….
응?
이런 거 먹으면 뭐 하냐.
“아닙니다. 바로 봐 드리죠.”
“듣던 대로 시원시원하구만. 과연 평신이야. 명예 백인다워.”
한 문장에 대체 욕이 몇 개나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성질대로면 진짜 한 대 후려치고 싶은데…….
참아야 했다.
어쩔 수가 없잖아?
상대는 높은 사람이니까.
아니…… 의사가 환자를 두고 패고 싶네 어쩌네 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난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머리가 아프시다고요?”
물론 난 멀쩡한 척 잘하기로는 또 권위자 수준이다 보니 겉으로는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의원은 그러니까 환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창백해서 그런가 유독 아파 보여서, 잘해 줘야겠다 싶었다.
“언제부터 그랬죠?”
“꽤…… 오래됐네.”
꽤 오래.
이렇게 부정확한 표현이라니.
뭐, 괜찮았다.
이런 거야 뭐.
“오래가 한 몇 년일까요?”
“끔찍한 소리. 한두 달 되었네.”
“한두 달…… 흐음. 머리만 아프신가요? 아니면 혹시 다른 증상이 있었나요?”
“으음…….”
환자는 내 이어지는 질문에 눈을 빛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내 질문이 이게 별거 없어 보여도 21세기식 질문이거든.
환자 병력 청취하는 게 완전히 정착하게 된 것이 놀랍게도 몇십 년 안 되었다 보니 이런 식으로 환자 파악하는 게 이 시기에는 낯설 수밖에 없다.
환자 입장에서야 당연히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딱 느낌이 올 것이고.
“모르겠는데…… 음. 약간 어지러울 때도 있네.”
“사혈 받기 전인가요? 후인가요?”
“그건…… 모르겠군. 후인 거 같기도 하고. 왜 연관이 있나?”
연관이 있죠.
존나 있죠.
엄청 있죠.
‘우리 병원 다녔다고 했지.’
제멜 이 새끼 조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게 한이다.
사실 같은 병원이라고 해도 조지려면 조질 수 있는데 원장님이 워낙 신경을 많이 써 주시고 계시는 통에 뒤통수칠 수는 없다 보니 참는다.
“그렇군요. 그럼 일단 머리가 아픈 게 주된 증상이시다는 거죠?”
“그렇네.”
“한 두어 달 되셨고요.”
“그렇지.”
“흐으음.”
그럼 이제 뭘 한다?
원래 같으면 혈압도 재고, 거기서 이상하다 싶으면 CT를 찍거나 그냥 그럴 거 같으면 약을 주면서 관찰을 하면 될 일이었다.
내가 암만 외과였다고 해도 두통 어떻게 보는지는 또 다 알거든.
하지만…….
‘와…….’
있는 게 하나도 없네.
심지어 혈압도 못 잰다.
생각보다도 더 개판이었구만그래.
“어렵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가만히 있으려니 환자가 추궁하듯 물어 왔다.
사혈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는데, 사람이 창백한 것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
도와주고 싶다.
도와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일단 지금 당장은 뭘 어떻게 하기가 어렵겠습니다.”
제이미 경이 두통 얘기할 때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었는데, 막상 앞에 두고 보니까 치료 가능한 두통이라는 게 몇 개 있지가 않다.
일단 단순 두통이면 약을 주는 게 최선인데 약이라고 해 봐야 버드나무 껍질 우린 물이 다이잖아.
아, 그것도 화학자들한테 던져두긴 했는데 결과가 대체 언제 나올는지 모르겠다.
시발놈들…….
‘결국, 수술을 해야 하는데…… 경막 외측 종양이나 경막하 출혈 또는 축농증 아니면…… 어? 경막하 출혈……?’
뭔가 촉이 온다.
존나 위험한 촉 같긴 하다.
틀리면 머리 까놓고 아니었네요? 해야 하니까.
식은땀이 줄줄 나지만 이 시기 수술은 원래 그렇긴 하다.
“혹시 한두 달 전에 어디 부딪힌 적은 없었어요?”
“어……?”
하여간 내 말에 반응한 것은 옆에 있던 수행원이었다.
해서 그쪽을 바라보니, 실수를 깨닫고 입을 딱 다물었다.
그러자 의원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자 그제야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의원님께서 회의 끝나고 돌아오시는 길에, 마차에서 내리시다가 머리를 부딪친 적이 있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 그러고 나서 머리를 좀 아파하시기 시작한 거 같습니다.”
병신인가?
그럼 그거부터 말해야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야?
머리 부딪치고 머리 아프면 인과 관계가 너무 명확하잖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
수행원뿐만 그런 게 아니라, 의원도 이러는 걸 보니 뭐라 할 수는 없겠다 싶었다.
대신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머리 열어 보고 싶은데.’
이걸 대체 어떻게 포장해서 말해야 공격적으로 느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