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54)
검은 머리 영국 의사-254화(254/505)
254화 똑똑 문 좀 열어 볼래요? [1]
“잠깐, 잠깐.”
내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리스턴이 끼어들었다.
뭔가 대단히 걱정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왜…… 그러나?”
리스턴의 명성은 이제 단지 의료인들끼리만의 일은 아니지 않나.
애초에 광장에서 팔다리 자르고 돌아다닐 때도 갱단 사이에서는 소드 마스터라는 말이 있었다고 했는데…….
마취가 나오고부터는 정말 하루에도 몇 개씩 절단을 하다 보니, 런던 아니라 영국, 아니 적어도 서유럽 전역에 걸쳐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의원의 눈에 비치는 리스턴이 어떤 이미지일까.
모르긴 해도 나쁜 놈 비슷할 거 같은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끼어드니 저렇게 당황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 형님이 좀 성질이 급해서. 뭔가 의견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 그래요. 의견! 의견이 있는데, 의료인들끼리의 의견입니다. 잠시 저희끼리 얘기해도 될까요?”
하여간, 리스턴은 자꾸 까먹게 되지만 훌륭한 문명인이었다.
그렇다 보니 지금처럼 이렇게 정상적인 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 그러시게.”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중요한 말을 하려던 찰나에 붙잡혀서 옆방으로 왔다.
쾅.
올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 좋았던 거 같은데…….
딱 들어오자마자 형님이 날 벽으로 밀었다.
“왜…… 왜요?”
나도 모르게 또 대머리라고 했나?
아닌데…….
그럴 리가 없다.
물론 내가 돌아오기 전에 과나의 <대머리여서 좋은 점 30가지>라는 노래를 즐겨 들었던 탓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긴 했지만, 생존을 위한 내 본능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리스턴 앞에서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나야말로…… 묻고 싶네. 자네 왜 그러나?”
“내가 뭘요?”
머릿속으로는 계속 고민했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난 당당해도 된다는 것을.
대머리의 ‘ㄷ’ 자도 얘기 안 했어.
머리는 떠올렸지만, 그건 의원님 머리였다.
그걸 열고 싶었던 거지, 머리카락을 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다.
“자네 방금 전에 뭔 표정이었는지 아나?”
리스턴의 말에 어느새 따라 들어와 있던 블런델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앨프리드, 조지프, 콜린까지 다들 그러고 있었다.
이렇게 왈랑왈랑 다 따라 들어와 있다는 건 환자는 홀로 두고 있다는 거 아닌가.
세상에 뭔 놈의 병원이 이러나 싶기도 하고, 내가 뭔 표정이었는지 알 길이 없기도 해서 그냥 있었다.
어차피 저거 몰라서 묻는 것도 아니잖아?
기다리면 다 말해 줄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리스턴이 내 입술이 달싹이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딱 해부하기 직전의 얼굴이었어!”
“맞아…… 자네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상대는 의원이야, 의원! 그것도 중진일세. 어쩌면 내년이나 후년쯤 장관도 해 먹을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제가요?”
“그래! 아니라면 말해 보게.”
“그러니까.”
“저는 그냥 머리를 열어 보고 싶었을 뿐인데?”
해부라니…….
너무 억울하다.
해부는 사람이 죽어야 할 수 있는 일이잖아.
하늘에 맹세코 나는 단 한 번도 환자를 죽이려고 했던 적이 없다.
오히려 매일매일 살리려고 애를 쓰고 있을 뿐…….
물론 다른 놈이 죽이는 거 말리지 못했던 적은 있지만, 그건 불가항력이니 어쩔 수 없던 일이다.
해서 이들의 말도 안 되는 억측을 정정해 주었더니 왜인지 모르게 아까보다도 더 뜨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그래, 개두술이 이때는 자리 잡지 못했지.’
그것도 이상한 일이긴 하다.
내가 뭐 의학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개두술이 수천 년 전부터 이루어진 수술이라는 건 알거든.
뭐…… 현대 의학에서 하는 이유로 열진 않았을 거다.
악령을 뺀다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열었겠지.
하지만 분명 열었다 닫는 걸 했던 문명이 존재하는데 누구보다 실험 정신 투철한 19세기 유럽 의사들이 그건 또 시도하지 않았었다는 것이 충격이다.
“머리를 연다니…….”
“죽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말 아닌가.”
“아…… 설마 자네 조선 사람이 아니라 청나라 사람인가? 그래서……?”
“아…… 그런 건가? 간첩……?”
리스턴과 블런델은 내가 잠시 상념에 빠지는 동안 멋대로 떠들었다.
재빨리 정정해 주지 않으면 큰일 날 소리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뭔가.”
“제발…… 우리 그냥 피나 빼세. 뭐 그리 특별한 치료가 있겠나. 아, 아아. 아니면 내가 전기 뱀장어라도 얻어 올까? 튀기면 되잖아.”
해서 손사래를 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아무래도 블런델이 리스턴보다 담이 작아서 그런가, 더더욱 이상한 방향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뱀장어라니…….
그거야말로 훌륭한 살해 방법 아니겠나.
‘돌아라, 머리!’
나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래 봐야…….
언제부터인가 떠오르는 건 죄 구라뿐이었다.
그래, 스스로 구라 마스터라 신께서 이 시기에 보내 준 거 같다 여기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조선에서는 말입니다.”
내 착잡한 심정과는 별개로 내 입은 이미 구라를 내뱉고 있었다.
나도 가 보고 싶은 조선에 대한 얘기가 그냥 막 나와.
“전투 민족이라고 말씀드렸죠? 우리 한민족이 말입니다.”
“어…… 그렇다더군. 욕이 아주 다채롭다던데?”
“그래요. 욕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싸우는데…… 그러다 보면 머리도 친단 말입니다.”
“으음…… 뭐 머리가 효율적이지. 근데 그럼 보통은 죽던데?”
리스턴은 자신의 솥뚜껑만 한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이 저러고 있으면 허세겠거니 하겠지만, 저 얼굴, 저 표정은 분명 회상이다.
더 보고 있다가는 무서워질 거 같아서 다른 데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문틈을 열고 서 있는 수행원이 있었다.
뭐…… 해부니 뭐니 하는 건 못 들은 모양이었다.
그저 흥미롭단 얼굴만 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설마하니 저놈이 청나라 간첩일 리는 없을 거 아니야.
“그냥 적당히 쳤다고 치죠. 그럼 대개는 괜찮거든요? 근데 가끔,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가 아프다고 하다가 결국에는 죽어 버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 나 본 거 같네. 그래, 나도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어? 아까 의원님이 분명.”
“그러니까요. 비슷한 경우라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아무튼, 그래서 누군가 머리를 열어 본 거예요. 맞은 부위를. 이 사람은 결국 죽긴 했지만…… 이들은 우리 대영제국에서 발전시킨 미아즈마의 개념을 모르니까요.”
“아아, 그럴 수 있지. 머리가 감염되면 죽겠지…… 아무튼, 그래서?”
“그 안에 피가 고여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피야…… 원래 고여 있는 거 아닌가?”
“아니죠. 흘러야죠. 죽은 피가 고여 있던 겁니다.”
“아하! 그럼 머리에서 사혈을?”
사혈…….
시발 저건 또 어떻게 교정해 주지?
문제는 이번엔 또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확실히 죽은 피를 빼 주는 거긴 하잖아?
이 양반들이 말하는 사혈은 혈관 내에 멀쩡히 돌아다니는 피를 빼면서 죽은 피 뺀다고 하는 것이긴 하지만…….
“맞으면서 혈관이 살짝 찢어졌을 겁니다. 거기서 피가 나오고…… 고이니까, 뇌가 눌려서 아픈 거죠.”
사실은 뇌가 눌린다기보다는 누르면서 뇌압이 올라가서 두통이 발생하는 거다.
하지만 그따위 얘기를 해서 뭐 할까.
그냥 알아듣게끔 말하는 게 최고다.
괜히 헷갈리게 해서 좋을 게 없어.
“어허…… 그렇구만. 그럴 수 있겠어. 그럼 당장 열어야겠는데?”
리스턴의 눈알이 돌아간다…….
아까는 나 붙잡아서 오더니 지가 제일 돌아간다…….
“잠깐, 잠깐. 다짜고짜 열었다가 만약에 피가 없으면 어쩐단 말인가.”
다행한 것은 블런델이 그나마 좀 소심하다는 거다.
소심한 게 장점인지는 모르겠는데, 리스턴 소유자 입장에서는 저만한 억제기라도 있는 게 무척 다행으로 여겨진다.
문제가 있다면 또 그렇게 좋은 일도 아니라는 점이다.
“어쩌긴요. 하는 수 없죠.”
“아니…… 의원 머리통을 열고 없으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고?”
내 말에 블런델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수행원을 보니 녀석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 가고 있다.
멀쩡한 것은 리스턴뿐이다.
“원래 수술이 그렇지. 열어 보기 전에 어찌 100% 장담한단 말인가. 배만 해도 절반은 그냥 닫고 있는걸.”
“그럼 확률이 반반이라고?”
“아니…….”
그것보단 높을 거 같다.
사혈을 했을 때 두통이 준다는 건…….
혈압이 떨어지면서 두통이 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나?
그 말은 곧 뇌압이 떨어지면서 두통이 준다는 것을 뜻한다.
이게 만약 축농증에 의한 통증이라면 전혀 상관이 없었을 거다.
‘종양 같은 게 있었다면…… 뭐 비슷한 원리로 잠시 호전이 있었겠지만, 부딪쳤다는 게 너무 공교로워. 그전에도 일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는 걸 보면 만성 질환은 아닐 거야.’
생각하다 보니 내가 너무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는 거 같지만, 이거 말고는 환자의 두통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으…… 으으.”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다 보니 옆 방에서 신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
리스턴부터 해서 우리는 재빨리 환자에게 달려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나마 멀쩡해 보이던 환자가 머리통을 부여잡고 있었다.
“많이 아프십니까?”
“아프네…….”
“아이고, 의원님. 어제도 사혈을 했는데…… 이게 어째 점점 잦아집니다!”
“피…… 피라도 빼 주면 안 되겠나?”
“제발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중요한 회의가…….”
나는 일단 아프냐고 묻고는 환자를 관찰했다.
환자는 머리통 전반이 아픈 모양이었다.
눈도 같이 아픈 거 같은데…….
뇌압 상승으로 인한 두통에서 보이는 소견이다.
‘역시 열어야겠는데.’
내 표정에서 뭔가를 읽은 걸까?
리스턴이 탕 소리가 나게 탁자를 치면서 말했다.
“의원님.”
“으, 으음. 말하게.”
“제이미 경을 믿으시니 여기까지 오신 거겠죠?”
“그, 그렇네. 그보다…… 요새 평신 모르는 사람이 런던 바닥에 어딨나. 명의지. 아, 자네도 물론 그렇고.”
“자…… 저희 소견으로는 환자분의 머리를 열어야 할 거 같습니다.”
“으응?”
의원은 말이 잘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두통 때문에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확실히 아파하는 정도를 보아하니 일반적인 두통은 아닌 듯했다.
사실 당연한 것이긴 했다.
19세기 사람들은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서야 병원에 오지 않으니까.
의원쯤 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상식 있는 사람이 설마하니 병원 가면 뒈지기에 십상이라는 걸 모르겠어?
근데도 이상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건 그만큼 아프다는 거다.
“머리를 열어야 할 거 같습니다.”
리스턴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는 모르는 상태기 때문에, 말하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사실…… 나도 잘 아는 건 아니다.
해 본 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술은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다.
진짜 그냥 열기만 하면 돼.
“부딪친 곳이 여기쯤인가요?”
“아, 그렇…… 그렇네.”
“그럼 여기 요만큼만 열면 됩니다.”
“머리가 이렇게 단단한데…… 이게 그렇게 말처럼 쉽게 열린단 말인가?”
과연 의원이다.
아픈 와중에도 말을 이렇게 잘해.
‘걱정 없지.’
걱정이 되는 게 사실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괜찮다.
리스턴이 있으니까.
“네, 열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