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56)
검은 머리 영국 의사-256화(256/505)
256화 똑똑 문 좀 열어 볼래요? [3]
“석션……이요?”
무슨 뜻인지는 아무도 모를 터였다.
석션이라는 기계 자체가 없는 세상이니까.
물론 엄연히 그 행위 자체는 존재하긴 하지만…….
수술과 연관 지어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앨프리드, 조지프, 콜린의 얼굴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뭔가 불길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신기하네.’
나는 그 꼴을 일단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나도 석션 외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다른 부위, 그러니까 뭐 코안이라거나 복강이라거나 하면 지금 하는 것처럼 대충 물로 씻어서 거즈로 닦아도 되긴 할 터였다.
완벽한 세척이야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딴 거 다 대강하고 넘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석션만 제대로 하려고 하는 것도 진짜 이상한 일이지…….’
포기할 건 과감하게 포기하고 넘어가야 했다.
안 그러면 나부터 미쳐 버려.
“그래, 석션. 말 그대로 빨아들이는 것이지.”
“어떻게요?”
하여간, 리스턴은 뜸도 들이지 않고 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얼굴 빼고 말투만 들어 보면 무슨 구연동화 같은 거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친절’하다, 이 말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얼굴이랑 같이 보면 친절하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다.
인사만 해도 저 인간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구나 싶어지는 얼굴이니까.
실제로 지금은 음모를 꾸미는 게 맞기도 했다.
“생각해 보게. 여기, 이 뇌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핏덩이를 싹 제거하려면…… 닦는 걸로는 안 돼.”
“으음.”
닦으면 안 된다는 말에 조지프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스턴은 말을 이었다.
조지프 이상한 거야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라서 그랬다.
업턴에 있을 때는 그래도 멀쩡한 편이었는데 어쩌다 소독에 세게 꽂혀 가지고 저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빨아들이면 어떻겠어.”
“그게…… 말씀을 하셔도 이해가 잘…….”
이번에 나선 것은 앨프리드였다.
원래 같았으면 마취 가스 조절하느라 대화에 끼지도 못했을 텐데, 지금은 시신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보니 잘도 끼어들었다.
리스턴은 그런 앨프리드를 보면서 마침 잘되었다고 했다.
그러곤 수술대 위를 뒤적거렸다.
그런다고 뭐가 나올 리는 없었다.
석션은…… 나도 아직 생각만 하고 뭘 하겠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짠 적이 없는 것이니까.
말 그대로 인력으로밖에 안 될 거 같은데…… 그걸 대체 어떻게 시킨단 말인가?
“옳지, 여깄네.”
“잉.”
아, 지금은 나다.
뭘 찾은 건지 아예 감도 안 잡히는 상황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잉 소리가 튀어 나갔다.
나 정도는 아니겠지만 나머지 애들도 말만 안 했을 뿐, 의문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석션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리스턴이 집어 든 고무장갑을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서걱.
아직 새 거였다.
아무리 고무라 해도 페놀이랑 이런 거 저런 거로 자꾸 문대고 닦다 보면 해지기 마련 아니겠나.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장갑 아끼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서 각자 새 장갑을 몇 개씩 구비하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런 식으로 막 자르진 않았다.
“아니, 그걸 왜…….”
“제 건데요, 교수님…… 아.”
콜린이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 불만은 금세 종식되었다.
리스턴이 고무장갑을 잘라 대충 만든 빨대 형태의 고무에 입을 대고 훅 빨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주변 공기가 후루룩 안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압력이 강한지 가까이 있던 콜린의 머리카락도 안으로 들어갔을 지경이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석션이야. 어때, 평.”
“그…… 그게 맞긴 합니다.”
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저 정도면 기계가 필요 없을 거 같다.
진짜로…….
리스턴을 어떻게 잘 활용하면 21세기에서만 가능했던 술기 중 몇 개는 그대로 들고 올 수 있을 거 같다.
“그래, 이거 맞네. 내가 지금은 콜린의 머리카락을 흡입했지만 이렇게 피를 빨면 어떻게 되겠어.”
“피가…… 나오겠네요.”
“그래.”
“오…… 제가 해 보겠습니다.”
콜린은 여전히 머리카락 일부가 리스턴의 고무 대롱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인지 아니면 그래서 감명을 더 깊이 받은 것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녀석은 이번에도 먼저 나섰다.
소독에 대한 개념이 잡힌 후이긴 하지만…….
여전히 19세기긴 하구나 싶었다.
콜린은 리스턴이 물고 있던 쪽을 물고 있었다.
그리고 대롱의 반대편을 핏덩이에 올려 두었다.
다음으로 할 일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빨겠지.
그럼…….
“흡!”
텁.
나는 좋지 않은 미래를 읽었다.
때문에 바로 대롱 중간을 막아 버렸다.
‘미친 새끼.’
피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빤단 말인가…….
그냥 피도 아니고, 죽은 사람 안에 들어가 있던 피다.
균이나 이런 게 자라도 엄청 자랐을 거란 얘기다.
균이 없을 수도 있지 않겠냐고?
그렇게 믿는다면…… 내가 진짜 여기 부르고 싶다.
19세기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너무 보여 주고 싶어!
‘성병…… 있을 가능성 90%.’
매독, 임질, 클라미디아 등등.
의과 대학 다닐 때는 솔직히 이런 거 왜 배우나 했다.
굉장히 낯선 질환이지 않나, 성병은.
적어도 21세기에서는 그렇다.
예방할 수 있는 방법도 많거니와 치료할 수 있는 방법도 워낙에 많아서 그랬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말 안 듣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는 걸 의사가 돼서 알긴 했지만…….
‘여기만큼은 아니지.’
19세기에서 성병의 위치는 그야말로 감염병계의 고티(GOTY)다.
정말 오랫동안…… 거의 인류의 역사 동안 함께했던 병이니만큼 적응도 완벽하게 완료한 병들이 많다 보니 걸려도 숙주가 죽지도 않고 계속 번지기만 했다.
이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다.
병이…… 없을 리가 없다.
“왜……?”
콜린은 내 사려 깊은 뜻도 모르고 이렇게 물어 왔다.
리스턴은 그런 콜린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미친놈이 여기 뭐 있을 줄 알고, 바로 빨아?”
“으억.”
이건 나도 놀랐다.
아니…… 바로 빨라고 시범 보여 준 거 아닌가?
내가 아는 리스턴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굉장히 실험적인 사람이잖아.
똥물도 먹이고, 소변도…….
이건 나랑 같이 작당해서 먹이긴 했지만.
‘지금도 먹이고 있긴 하지.’
아, 돈 주고 먹인다.
전에 잡혀 왔던 죄수도 특별 사면을 받게 되었다.
사면이라고 하기엔 감옥이 아니라 여기에 갇히게 된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훨씬 살 만해졌다는 얘기다.
‘아직 소변인 줄은 모르지만.’
후후.
내가 나도 모르게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동안 리스턴은 말을 이었다.
왜인지 모르게 나를 보며 질색하는 표정을 짓고 나서였다.
“여기에…… 시발…… 미아즈마가 얼마나 많겠냐. 시신이잖아, 시신.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아…… 그렇군요. 제가 미처 몰랐습니다.”
말이라고 해 봐야 그냥 혼내는 것이었다.
사실 리스턴이 하는 말이라는 게 늘 그렇긴 한데……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대강 맞는 말이기도 하니 그냥 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빨기는 하는데…… 힘만 전달이 되고 저 피가 안으로 들어오진 않게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되나요?”
“나야 모르지. 그 자식 어딨지?”
“그 자식?”
지금 되물은 것은 나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리스턴이 날 보면서 말해서 그랬다.
상당히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예전의 나였으면 지금쯤 기절했을 거다.
지금이야 익숙해졌고 또 리스턴의 저 무서운 얼굴 중에서조차 표정을 파악할 수 있어서 멀쩡히 있을 수 있다.
“화학자들 말이야. 교외에 연구소 만들었잖아.”
“아…… 그 콘돔왕이요?”
“그래, 그래. 맨날 놀고먹고 싶다고 하더니 결국에는 연구소로 갔잖아.”
“그랬죠. 근데 그 사람 왜요?”
웃음 가스를 너무 빨다가 뇌가 맛이 간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욕심 버리면 충분히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양반이 여전히 일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실력은 모르겠는데 하여간, 말이라도 통하는 화학자가 하나라도 있다는 건 다행한 일이거든.
아, 연구소 인력 관리는 앨프리드네 아버지가 해 주기로 했다.
내 말은 잘 안 들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아버지 측이 사람 부리는 데는 최고라서 그랬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다들 최선을 다하게 만들어 낸다.
“이거 어떻게 하면 될지 알아보지. 흡입은 하되, 입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방법. 할 수 있으면 기계도 만들고.”
“아…… 그러죠. 오라고 하면 올 거예요. 안 그래도 지금은 딱히 할 일도 없을 거고.”
“그래, 그래.”
말했던 것과는 달리 내가 오라고 했다고 하니까 한 번에 오진 않았다.
하지만 리스턴의 편지를 전달해 주자 전달해 주러 갔던 사람하고 대번에 같이 돌아왔다.
그러곤 자초지종을 듣자마자 껄껄 웃었다.
“이렇게 하면 되겠군그래.”
“구라면 곤란합니다. 우리도 곤란한데 아저씨도 곤란해져요.”
나는 리스턴을 가리켰다.
콘돔왕도 자신의 상황을 바로 알겠는지 고개를 부리나케 끄덕였다.
그러곤 다시 한번 껄껄 웃었다.
그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리스턴 얼굴을 보고 나서도 웃을 수 있는 사기꾼…….
존재할 수는 있을 테지만, 거의 없을 게 분명해서 그랬다.
다시 말하면 지금 우리 콘돔왕은 상당히…… 떳떳하다 이 말이었다.
“자,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나?”
잠시 후, 우리는 콘돔왕이 끼적인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고무호스가 석션처럼 머리에 연결이 되어 있고…… 반대편 끝은 유리병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고무호스가 다른 구멍을 통해 유리병 안에 꽂혀 있었다.
그 고무호스의 반대편 끝에 사람 얼굴이 달려 있었는데, 아무래도 여기로 빨라는 뜻인 듯했다.
내가 21세기 수술방에서 본 것과 같다고는 못 해도 아주 흡사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아하. 이게…… 결국, 기계랑 같구만?’
생각해 보니까…….
석션 기계는 기계라 감염의 위험은 없겠지만 아무튼 간에 막히면 석션을 못 하지 않겠나?
그러니 이런 식으로 방어 기전을 설계해 놨던 모양이었다.
“이게 된다고?”
“될 거 같군요.”
덕분에 나는 불신에 찬 리스턴과는 달리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언제까지 만들 수 있죠?”
“돈만 주면 뭐…… 이 정도야 바로 만들지. 이제 고무 다루는 건 엄청 잘하니까. 빨아들일 때 쪼그라들지 않을 정도의 경도를 만드는 것이 관건일 텐데…… 이미 샘플이 있어.”
“그럼 바로 만들어 오세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바로는…….”
“바로 만들어 와. 환자가 있어. 아주 중요한 환자야.”
“아…… 네. 알겠습니다!”
콘돔왕은 리스턴의 윽박지름을 듣자마자 정말 바로 밖으로 튀어 갔다가 해 질 녘쯤에 돌아왔다.
손에는 아까 말했던 기기가 들려 있었다.
시험을 해 보니까. 된다.
좀 약하긴 한데…… 그래도 된다.
해서 바로 의원을 불렀다.
“그러니까…… 내 머리 안에 뭐가 있을 거라고……?”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의원은 경찰과 함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