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58)
검은 머리 영국 의사-258화(258/505)
258화 문 열었네 [1]
서걱서걱.
리스턴은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아, 머리가 아니라 머리카락.
다른 사람을 주어로 쓰면 다들 헷갈릴 일이 없겠지만 리스턴이다 보니 헷갈릴 거 같긴 하다.
서걱서걱이건 싹둑이건 머리도 뚝딱 자를 수 있는 사람이잖아?
그럴 수 있는 사람이기에 머리카락 자르는 솜씨도 장난이 아니었다.
‘와…… 언제 봐도 진짜 미쳤네.’
손이 진짜 좋긴 좋다.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아마 역사에 길이 남았을 거다.
뭐, 19세기라고 해서 역사에 남지 않을 거 같진 않다.
원래도 절단 마스터니 검성이니 하는 이름으로 남았을 텐데, 이제는 나까지 만나지 않았나.
“와…….”
“정말 대단하긴 하구만.”
아, 이 수술방에는 우리 의료진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당연하다고 하면 내가 좀 슬퍼지는데, 아직 미아즈마 개념이 좀 부족해서 그렇다.
수행원이야 당당한 얼굴로 들어와 있고, 나를 소개한 제이미 경도 책임감마저 느껴지는 얼굴로 들어와 있다.
의아한 건 경찰이랑 기자들인데…….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기가 좀 그렇긴 하다.
사실 제이미 경 수술할 때도 기자들 불러서 다 보라고 했었잖아?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면 기자들도 기자들인데 제이미 경이 참 이상하게 생각할 거다.
하여간, 문외한들이 보기에도 신묘함이 느껴질 만큼이나 대단한 칼솜씨로 의원님의 머리는 삭발 처리되었다.
“좋아. 조지프.”
“네!”
말이 삭발이지 사실상 탁발이다.
민머리가 되었다, 이 말이다.
사실 민머리 맨손으로 만지는 게 꽤 즐거운 일이지 않나?
거기에 더해 조지프는 소독에 미친 놈이다 보니 개처럼 달려들어서 자신의 루틴대로 닦기 시작했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조지프의 루틴을 잘 몰랐다가 센터 형식으로 따로 떨어져 나오면서 눈여겨보고 나서야 알게 된 건데.
슥슥.
우선 상처가 없는 부위라면 요오드부터 바른다.
바른다는 표현을 쓰는 건, 실제로 염색이 될 만큼이나 진하게 써서 그랬다.
예전에는 저 약에 대해 평신이 백인을 동양인으로 만들려고 개발한 묘약이라느니 뭐라느니 이상한 소문이 돌았지만…….
염색이 된다고 해도 나중에 각질이 탈락할 때쯤 되면 서서히 옅어져서 원래 피부색으로 돌아온다는 게 밝혀져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그사이에도 일부 환자들에게는 그냥 내가 쓴 적도 있다 보니 소독 효과야 자연히 증명되었고.
슥슥.
그다음이 페놀이다.
페놀로 후처리를 하면 염색되어 있던 요오드가 어느 정도 확 닦여 나오기 때문에 순서가 이렇게 된 것인데, 어찌 보면 되게 당연한 일이었다.
왜?
페놀은 표백제거든.
뭔가 지우는 데 쓰는 물건이다, 이 말이다.
그러니 요오드도 지워지지.
그럼 소독하는 데 효과가 좀 떨어지지 않나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사실 요오드는 원래 바르고 마를 때쯤 되면 그 작용이 끝난다.
다시 말해 거기 있던 놈들 싹 다 죽어 나간다, 이 말이다.
“휴…….”
아무래도 머리는 구조가 단순한 데다 싹 밀어 놔서 매끈하기까지 하다 보니 평소보다도 훨씬 빨리, 정확하게 소독을 마칠 수 있었다.
굳이 수술 부위를 보지 않아도, 뿌듯해하는 조지프 얼굴만 봐도 제대로 되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부위를 보긴 봤다.
됐다, 이건.
이제 칼 들어가면 된다.
“좋아.”
그사이 나랑 리스턴도 손 닦고, 장갑 끼고 또 닦았다.
마스크랑 모자도 썼다.
욕심 같아서는 가운도 입고 싶은데…….
-가운? 그게 정말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옷보다 깨끗하리란 보장이 있겠나?
리스턴의 똑 부러지는 지적에 의해 포기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그렇긴 해서 그랬다.
우리 일행을 제외하면 아직 소독이나 미아즈마에 대한 개념이 잡힌 인간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조지프에게 가운 소독 같은 것도 맡기기엔 녀석이 가진 의학적 재능이 너무 아깝다.
지금이야 기껏해야 조수 노릇만 하고 있다지만 언젠가는 훌륭한 집도의가 되어야 할 놈이다.
해서 우리는 딱 환자 몸에 닿을 부위와 제일 많은 분비물을 내뿜을 만한 가능성이 있는 곳들만 간신히 가린 채 환자의 두피에 절개선을 넣었다.
지이익.
그러자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간만이라 잊었는데, 두피는 정말이지 혈액순환이 활발한 곳이다.
오죽하면 두피만 까져도 피가 머리 터진 것처럼 나겠나.
수술할 때도 일단 리도카인에 에피네프린 섞은 국소 마취제를 팍팍 찔러 넣는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클립 같은 걸로 두피 낑겨 놔서 피가 안 나게끔 하는데…….
지금 그런 게 있나?
둘 다 없다.
먹고 뒈지려도 없어.
“닦아!”
“네, 네!”
그렇다고 뭘 못 한다는 건 아니다.
21세기 레지던트보다는 아무래도…….
여러모로 19세기 노예가 훨씬 열심이긴 하니까.
노예라 하기엔 콜린은 귀족이고 조지프는 내 친구긴 한데, 아무튼.
녀석들이 거즈로 쓱쓱 닦아 준 덕에 나는 머지않아 두피를 째고, 좌우로 벌릴 수 있었다.
그러자 하얀 두개골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때 리스턴이 내게 속삭였다.
‘이 환자는 여기가 깨끗한데?’
시신은 여기가 깨져 있었는데 이 환자는 멀쩡하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하면 ‘꽝’ 나오는 거 아니냔 말이었다.
‘겉만 이럴 거예요.’
‘아니면?’
‘대충 넘겨야지. 어차피 피 많이 나잖아.’
‘아…… 이걸…… 죽은 피라고 속인다?’
‘왜…… 양심에 찔려요?’
‘아니, 천재적이라고 생각했네.’
의외로 소심한 구석이 있는 양반이다.
주로 의원이나 귀족들 앞에서 그렇게 되는데…….
하여간, 나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인 리스턴을 세 치 혀로 안심시키고 나서야 자리를 비켜 주었다.
메스를 리스턴에게 건네면서였다.
리스턴은 메스 손잡이와 환자의 두개골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꿀꺽.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그러니까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절대 알 리 없는 사람들도 뭔가 느낄 만큼이나 진중한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무림 고수가 화경에 오를 때의 분위기가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콱.
그렇게 조용한 가운데 리스턴은 메스 손잡이로 의원님의 머리통을 찍었다.
“어우.”
괜히 절단 마스터가 아니지 않은가.
한 번의 찍음에 반드시 하나의 작은 구멍이 생성되었다.
신기한 것은, 그러면서도 주변으로 파편이 튀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드릴로 해도 작은 파편은 생기는데 리스턴은 그런 것도 없었다.
-옛날에는 인마, 수술 진짜 정으로 찍었다.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21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머리나 귀 수술할 때 드릴 말고 정으로 했다고 들었다.
교수님들이 무용담처럼 얘기하던 것을 싹 다 구라라고 치부했었는데, 리스턴 하는 걸 보면 마냥 구라는 아니었겠다 싶긴 하다.
콱.
아무튼, 리스턴은 동그랗게 돌아가면서 손잡이로 머리통을 찍었다.
뽁.
그 결과, 동그란 두개골 뼈가 뚜껑처럼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나와 리스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뼈 밑에 가려져 있던 지점을 바라보았다.
‘제발!’
‘주여!’
기도하는 심정으로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솔직히 거의 있을 거 같단 생각이었다.
피가 있으니까 아파하겠지…….
머리 부딪친 적도 있고, 그 후로 점점 아프다고 하잖아?
뭐 이런 생각이었는데, 막상 머리 열고 나니까 좀…… 불안했다.
따지고 보면 배도 열었다가 꽝이네 하고 닫으면 안 되는 거지만 뭔가 머리는 더 다르게만 느껴져서 그랬다.
“할렐루야!”
다행히 있었다.
“뭐라……?”
“머리를 열고 뭐라고……?”
나의 외침에 기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안에 저거 벌레야?”
“저걸 보고 할렐루야……?”
“혹시 티에피영이 저걸 넣은 건……?”
“어떻게 넣나, 저런 걸.”
“코로…….”
“아.”
수군거림이 점차 이상한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있죠?”
“있구만!”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기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기뻐서 그랬다.
‘나 진짜 천재인가.’
CT는커녕 X-ray도 없는 시절에 어? SDH(Subdural Hemorrhage, 경막하출혈)를 잡았다.
와…… 이거 진짜 어디 가서 자랑도 못 하고…….
존나 호들갑 떨고 싶은데, 이거.
어?
“석션 갖고 와!”
그런 내 마음과는 별개로 리스턴은 이미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콜린은 그의 지시에 따라 신주 단지처럼 아껴 오던 석션 단지를 꺼냈다.
사실 저거까지 깨끗할 필요는 없는데 조지프가 지랄해 대는 바람에 한번 삶았다.
그래서 그런가 유리통이 아주 그냥 매끈하다.
이제 곧 저기에 검은 벌레…….
아니, 아니.
뒤에서 자꾸 벌레 벌레 하니까 나도 헷갈리네.
죽은 피가 쌓일 거다.
툭.
리스턴은 그 석션 단지 한쪽에 달린 고무호스를 머리통에 집어넣었다.
그러곤 당연하다는 듯 단지 반대편에 연결된 고무호스를 직접 물었다.
-왜 이렇게 힘들이 약한가?
짬으로 따지면 리스턴이 무는 건 말이 안 된다.
콜린이나 조지프가 하는 게 맞는데…….
이게 한번 단지를 거쳐서 흡입하다 보니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해지는 모양이었다.
애들은 물론이거니와 반강제적으로 흡입해 보게 된 나도 턱도 없었다.
근데…….
쭈아아압.
저 사람은 괴물인 거 같다.
생각해 보면 저 단지 내로 피 빨아내는 게 쉬울 리는 없긴 할 텐데…….
저걸 그냥 막 한다.
“어우.”
“으아…….”
“저게 무슨…….”
그에 따라 검은 핏덩이가 줄줄이 석션 단지 내로 밀려오고 있었다.
양이 적지도 않았다.
의원님이 술을 꽤나 자시고 자빠진 모양이었다.
뭐…… 외국 사람들은 취할 때까지 안 먹네 어쩌네 하는데 그렇게 떠드는 사람 다 와서 한번 보면 좋겠다.
얘네들이 더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친구들은 술만 마시는 게 아니거든.
‘대마에…… 웃음가스에…… 아편까지.’
파티라도 한번 열리면 진짜 미쳤다는 생각이 든다.
뭐, 상류층끼리 정말 사교를 목적으로 또는 어떤 행사를 목적으로 열리는 파티라면 좀 다르긴 하겠지만…….
진짜 즐기려는 파티는 미쳤다.
술에만 취한 게 아니었으니 머리가 이 지경이 되어도 몰랐겠지.
“한번 보게.”
“네. 음…… 깨끗하네요. 다행히…… 새로 나는 피도 없는 거 같은데, 조지프?”
“네.”
리스턴이 흡입하고 난 머릿속은 깨끗했다.
조지프가 가스등을 들이밀어도 그랬다.
심지어 내가 말한 대로 새로 흘러나오는 피도 없었다.
뭐 다친 지 벌써 며칠은 족히 지났으니 정맥 출혈 정도야 멎긴 했을 터였다.
사실 이러다 또 날 수도 있는 게 출혈이긴 한데…….
‘어쩌겠냐. 주님!’
기도 메타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뭐 의원님이니까 믿음 좋으시지 않겠나?
설마하니 주님의 어린양을 이렇게 막 데려가진 않으시겠지.
그래, 잘못되면 내가 아니라 이 사람이 믿음이 부족한 탓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돌연 마음이 더더욱 편해지면서 살짝 굽으려 했던 허리가 쭉 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해서 나는 아까 빼 두었던 두개골 뚜껑을 다시 닫고는 두피도 닫아 주었다.
뼈도 워낙에 깔끔하게 따서 그런가 딸깍 소리가 날 만큼이나 잘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