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59)
검은 머리 영국 의사-259화(259/505)
259화 문 열었네 [2]
리스턴표 머리 뚜껑을 닫고 나서도 수술은 즉시 끝나거나 하진 않았다.
왜?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당연하지는 않나?
‘이렇게 닫는 게 맞나……?’
실로 간만에 고민이 들었다.
사실 뇌수술을 하고 나면 어지간히 가벼운 거…….
그러니까 뭐 조직검사 같은 것이 아닌 이상 머릿속에 관이라도 박거나 해서 보는 편이었다.
뭐, 뇌종양 중에서도 뇌하수체 종양처럼 딱히 뇌 안에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닫기도 하긴 한다.
이제는 애초에 코안으로 들어가서 머리 열 일도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열어……? 머리를……?’
머리에 관을 꽂아서 뇌압도 좀 줄여 주고 안에 혹시 또 피가 차오르면 제거를 한다고 치자.
취지는 너무 좋다…….
실제로 배 수술하고 관 맨날 꽂았잖아.
수류탄처럼 생겨서 맨날 정식 이름 대신 수류탄이라고 불렀더니 그 업보가 느껴진다.
정식 이름이 뭐였는지 아예 기억이 안 나.
아무튼, 그걸 어찌어찌 만들어서…… 그러니까 저 석션 용기를 단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와…… 사람이 이렇게도 죽는구나.
머릿속에 리스턴 등등의 대사가 팍 떠오른다.
머리에 감염이 생길 게 뻔하거든?
그럼…….
“잠깐.”
“응?”
봉합 준비를 하고 있던 리스턴이 나를 돌아보았다.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내가 봉합을 남에게 맡긴다니.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아니, 시켜 보니까 리스턴이 진짜 잘하더라고.
사실 지금 이 수술도 개념만 내가 잡은 것이지, 실제 수행은 거의 리스턴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절개만 내가 했지…….
두개골 여는 거, 혈전 제거 다 리스턴이 했다.
애초에 리스턴이 없었으면 할 수도 없었을 일이기도 하고.
“이거…… 빼고 닫죠.”
“이걸……? 아니, 그럼 안 되는 거 아닌가?”
리스턴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이걸?’까지는 크게 묻다가 다음 말부터는 속삭이면서 물어 왔다.
그래 봐야 수술방 안에 관계자란 관계자들은 다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보니 별 소용은 없을 거 같긴 하지만…….
아무튼, 나도 속삭여 줬다.
“머리가 아팠던 게 이 죽은 피가 눌러서 아팠던 거 아닙니까?”
“그렇지. 근데 다 제거하지 않았나? 그러니 원래대로 만들어 주는 게 옳지 않겠어?”
리스턴의 말이 옳기는 하다.
당연히 재건이라는 건 원래대로 만들어 주는 게 맞는 일이니까.
그에 비해 내가 지금부터 해야 할 소리는 어느 정도 개소리다.
이유는 있는데, 이 시기 상식으로 생각하면 진짜 그냥 멍멍이야.
“자, 생각해 보십쇼. 형님은 잘 아실 겁니다.”
“어지간하면 나는 잘 알지.”
한때 리스턴이 겸손해지던 시기도 있었더랬다.
나는 다 알고 이 친구는 하나도 모르니까 당연했는데…….
생각보다 재능이 미쳐 돌아가다 보니 오늘 수술처럼 상당히 큼지막한 역할을, 그것도 자신 외에는 대체자가 없는 역할을 맞게 되다 보니 다시금 자아가 비대해지고 있다.
뭐…….
뭐라 할 처지는 아닌 거 같다.
이젠 진짜 리스턴 없으면 안 되거든.
“사람 패 보면 그 사람 어떻게 됩니까?”
“내가 어떤 마음으로 팼는지에 따라 다르지.”
“아, 그렇죠. 대충 팼다고 칩시다. 진심 펀치 날리면 다 죽으니까요.”
“아…… 부러지지.”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팼다고 하면요?”
“그건 팬 게 아닐세. 그냥 도닥여 준 거지. 아무튼? 회상했네.”
“네, 그럼 사람 얼굴이나, 하여간 맞은 부위가 많이 붓지 않습니까?”
“그렇…… 아하. 머리도 붓는다?”
“네.”
지금도 봐라.
개같은 설명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있잖아.
이 사람이 21세기 사람이 아니라 19세기 사람이라는 걸 감안하면 진짜 대단한 거다.
이 사람의 상식은 사실상 많은 부분이 허구와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거든.
근데 이렇게 온전한 사고 회로를 가지고 있다는 게 진짜…….
“우리가 지금 사실 또 때린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냥 닫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 때문에 또 부을 텐데요.”
“아하. 오호…… 으음. 확실히…… 근데 이거…… 이거 없어도 되나……?”
리스턴은 머리 뚜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가 막히게 도려내었다 보니 정말 동그랬다.
그렇게 크지도 않았고.
아마 내가 했으면 몇 번 깨 먹어서 저렇게 이쁘게 딱 떨어지지 못했을 거다.
‘없어도 된다…….’
아무튼, 나는 그 두개골 조각을 보면서 먼 과거를 추억했다.
외상센터 하다 보면 제일 빈번하게 컨택하는 과가 바로 신경외과 아니겠나?
외과 의사로서 복강 장기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단일 장기 하나만 놓고 보면 아무래도 머리만 한 곳이 없어서 그랬다.
하여간 그때 보면 이 정도가 아니라 진짜 엄청 큰 두개골도 제거하곤 하는데, 없어도 되더라고.
보기에 좀 그래서 그런데…….
이 환자 정도면 티도 안 날 거다.
“해 보고 안 될 거 같으면 다시 끼워 주죠.”
“그래도 되나. 개 아니고 사람인데.”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뇌가 붓는 건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야…… 상식적인 일이긴 한데…….”
내 발언에 리스턴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납득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어쩌겠나. 머리 다친 게 잘못이지. 그게 우리 잘못은 아니잖아?”
기적의 논리를 쓰면서였는데…….
뭐라고 할 건 아닌 게 나도 정확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뭐…… 내가 쳤나?
아니잖아.
“그렇죠. 우리가 술 멕였나? 과음을 왜 하나.”
“그렇지. 그래. 그렇게 하세.”
우리는 기적의 논리로 하나가 된 채 뚜껑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았다.
물론 그냥 이렇게 두면 뼈가 확 손상되어서 나중에 진짜 다시 넣어 줄 상황이 왔을 때 써먹지 못할 테니 조지프를 돌아보았다.
“이거 생리식염수 안에 넣어 둬.”
“응? 아니, 네? 그건…….”
얘가 왜 이렇게 놀라냐면, 지금 이 시점에서 생리식염수가 진짜 귀한 물건이라 그렇다.
물도 증류해야지, 거기에 소금 농도 맞춰 넣어야지…….
그리고 그걸 심지어 썩지 않게 보관해야 한다.
냉장고가 아직 없는 시대다 보니 진짜 쉬운 일이 아닌데…….
‘사실 안 썩는지 어떤지는 모르지.’
모르니까 조지프 책임하에 일주일마다 소량을 만들고 폐기하고 있었다.
어디다 쓰냐면 수액으로 쓴다.
정말 응급한 환자한테만.
지금 이 환자한테도 안 썼으니 얼마나 귀한 취급을 받고 있는지는 짐작이 가능할 거다.
근데 그런 수액에 뼈다귀를 담가 두라고 하니 엄청 놀랄 수밖에 없을 거다.
“혹시 다시 끼워 넣어야 할 수도 있는데 그때까진 그 안에 있어야 될 거야.”
“왜, 왜요?”
보아하니 놀라기만 한 게 아니라 궁금증도 있는 모양이었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다들 그러는 걸 보면 오히려 합리적인 궁금증이긴 하다.
뭐…… 나도 충분히 합리적인, 또 학문적인 답을 해 줄 수 있다.
허나…… 지금은 19세기.
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지프야.”
그러곤 성스러운 목소리로 조지프를 불렀다.
빙의 흉내를 내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불러 봤다.
“네, 네?”
“생리식염수가 무엇이지?”
“으응……?”
“생리식염수가 뭐길래 네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냐는 말이다.”
“아, 아아. 우리 몸의 체액과 비슷한…….”
“그래. 감별은 우리 소믈리에가 했으니 확실하다, 그치?”
얘들은 맛으로 간을 맞춘 줄 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그냥 농도 맞춰서 넣은 거다.
근데 그걸 대체 어떤 식으로 알아냈는지는 당최 설명할 길이 없는 거 아니겠나?
조선 드립도 주님 드립도 한계가 있다는 걸 그날 알았다.
해서 소믈리에 불러다가 맛으로 맞췄다고 치고 있는데…… 하여간.
“네네.”
“저 뼈는 우리 몸의 일부지?”
“그렇죠.”
“원래 체액에 둘러싸여 있었을 거야. 그러니 체액과 가장 흡사한 액체인 생리식염수에 둘러싸여 있어야 살아남지 않겠니.”
“아…… 아아…….”
“그것이 주님의 섭리 아니겠니.”
“아, 아멘.”
나는 연신 아멘 아멘 하면서 생리식염수를 가지러 간 조지프를 바라보았다.
뒤통수가 뜨끈해져서 뒤를 돌아보니, 리스턴 또한 감명받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신으로 불리는 나 아닌가.
이러다 사이비 교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슬쩍 들었다.
“자, 그럼 봉합하죠.”
“어어, 그래. 내가……?”
“네, 형님이 진짜 많이 늘었어요.”
“고맙네. 후후.”
뭐 그거야 그거고 수술은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나?
아닌 게 아니라 사이비 되면 또 뭐 어쩌겠나.
내가 나쁜 짓 할 것도 아니고 사람 고칠 건데.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거 같긴 했다.
정치계와 유착된 사이비라니…….
이거 무적 아닌가?
‘고민을 좀 해 볼까.’
‘나 혼자만 의학 계시받음’을 교리로 하는 종교.
실제로는 의사가 회귀를 숨김이 교리지만 이건 진짜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이니까, 표면적으로는 저렇게…….
지이익.
내가 영 엉뚱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리스턴은 성실하고 묵묵하게 봉합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다시 봐도 잘한다.
확실히 이 사람, 손이 좋아.
이런 사람이 한때는 그냥 냅다 팔다리나 자르고 있었으니…….
시대의 한계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앨프리드.”
아무튼, 나는 각을 보다가 슬슬 끝날 기미가 보여서 앨프리드를 불렀다.
그러자 수술에 직접 참여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즉 졸릴 수 있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초집중하고 있던 앨프리드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기가 막힌 속도로 가스 밸브 잠그는 것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으음.”
그 결과, 딱 봉합이 끝나고 그 부위를 조지프가 닦고 나자마자 환자가 깨어날 수 있었다.
“휴.”
“휘유.”
나부터 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든 의료진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자세히 들어 보니 뒤에 있던 원장님도 함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진짜.
머리 수술이라니…….
19세기에 머리를 까다니.
처음 왔을 땐 정말이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머리가 아픈데…….”
감회에 젖을 새도 없다.
나는 환자의 말에 즉시 답했다.
이미 조수들이 환자를 수술방에서 1인실로 옮겨 둔 후였다.
말이 1인실이지…… 실시간으로 환자 모니터링할 방법이 마땅찮은 시기다 보니 큰 창이 뚫려 있어 병원 어디에서건 대강 안이 들여다보이는 방이었다.
프라이버시…… 개나 주자.
죽는 거보단 부끄럽거나 불편한 것이 낫다.
“머리를 째 놨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아마 종류가 좀 다른 통증일 거 같은데요?”
“어…… 그렇긴 하네. 지금은 좀 날카로워. 그래도 전처럼 묵직한 아픔은 없네.”
“수술이 잘되어서 그렇습니다.”
“고, 고맙네.”
“리스턴 형님께 하시죠. 전 개념만 제시했을 뿐, 수술은 형님이 다 했습니다.”
“그, 그렇군. 역시…… 검성…….”
“과찬의 말씀입니다.”
의사에게 검성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 말을 듣고 좋아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나는 그렇게 훈훈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에 한 가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혈압…… 그래, 혈압을 재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