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60)
검은 머리 영국 의사-260화(260/505)
260화 혈압이다 [1]
혈압.
바이털사인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생각해 보라.
의학 드라마에서 ‘야! 지금 환자 체온 몇이야’라고 다급하게 묻는 걸 본 적 있는가?
수술방 아니라 응급실이건 어디건 간에 일단 음악이 현악기 뜯는, 그러니까 찡낑찡낑찡낑 소리 나고 있는 상황이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확률로 혈압 얼마냐고 묻는다.
같은 바이털사인이라고 해도 그 안에 급이 다 있다, 이 말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우리는 의원님을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방 안에 가둔…….
아니, 모셔 둔 채 옆 방에 앉아 쉬고 있었다.
센터 열리고 나서의 삶이 진짜 개꿀인 게…….
오늘처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는 자유다.
연구 시간으로 빠져 있고, 실제로 우리 노예…….
아니, 조수들은 소 췌장에서 인슐린 뽑고 있긴 한데, 나랑 리스턴 그리고 블런델은 자유다.
물론 블런델은 과가 과이니만큼 보던 산모가 위급해지면 달려가야 하긴 하는데 오늘은 날이 좋다.
“아니, 뭔가…… 우리의 진료 시스템에 개선할 여지가 있지 않나 싶어서요.”
“개선?”
아무튼, 혈압 생각에 골몰해 있던 내게 리스턴이 뭐라 하길래 대충 얼버무렸다.
그랬더니 개선? 하면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불과 1년 아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건방진 소리나 튀어나올 게 뻔했다.
우리 대영제국의 의료에 개선할 점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인자하신 주님께서도 벼락 내릴 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이었는데…….
“개선할 점이야 많지.”
“나도 늘 그게 고민일세.”
주님 덕일까?
아님 평신…… 그러니까 내 덕일까?
잘은 모르겠는데 이 두 19세기 의사가 완전히 개과천선했더랬다.
개선할 점투성이라니!
이건 무조건 좋은 일이다.
메타 인지가 최우선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자기가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무래도 무엇이 부족한지 아는 사람이 더 빨리, 더 제대로 성장하게 되는 법이다.
“그렇군요, 역시 두 형님들…… 든든합니다.”
빈말이 아니다.
진짜 그렇다.
두 머리에서 제대로 된 아이디어가 지금 이 시점에서 튀어나올 거라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내 얘기를 지지해 줄 가능성이 높아서 그랬다.
“그래, 나는 일단 혈액을 모으는 법에 대해 고민 중이야.”
그중 블런델이 이런 말을 했다.
확실히 저렇게 되면 진짜 개꿀이긴 했다.
필요할 때마다 사람을 찾아다가 살아 있는 혈액 주머니화해서 피를 준다는 게…….
이게…… 시벌…….
생각하면 생각해 볼수록 정말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이지 않나.
쉬쉬하고 있는 거 같은데 벌써 고위층 사고 났을 때, 다른 병원에서 무리해서 수혈하다가 사람 죽었다더라고.
그 때문에 요즈음에는 블런델에게 의뢰 오는 경우가 더 늘었고, 그렇다 보니 버는 돈도 더 늘었다곤 하는데…….
이미 블런델은 그런 놈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진보를 꿈꾸고 있다.
나는 대견하다는 눈을 한 채 블런델을 바라보았고, 블런델은 그런 내 눈빛에 용기를 얻어 하려던 말을 지속했다.
“그래서 혈액에 납을 좀 넣어 봤네.”
“네?”
“그거 묘수로군.”
“네?”
근데…… 납?
웬…… 납?
그리고 리스턴은 뭘 안다고 묘수니 어쩌니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고개를 팍 돌려 리스턴과 블런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안에 담긴 의문을 리스턴이 어렵지 않게 읽어 낸 것인지, 곧장 내 어깨를 잡고 입을 열었다.
“아아……. 평은 모르겠구만. 나이도 어리고. 하하. 조선에서는 포도주를 먹지 않는다지?”
“네……. 그건 그런데. 뭔 상관이에요?”
혈액 보관과 납과 포도주.
나열해 놓고 보니까 무슨 포스트 모더니즘 영화 제목 같다.
서로 아무 상관이 없다! 이 말이다!
아름답지 않잖아, 이거!
“자자. 보게나. 우리 영국은 상당한 연관이 있어.”
내가 열통이 터지거나 말거나 리스턴은 허허 웃으며 종이에 만년필로 그림을 쓱쓱 그리기 시작했다.
손이 좋아서 그런가, 나름 볼 만한 그림이 그려졌다.
“프랑스 놈들의 와인도 좋지만…… 너무 비싸지 않나. 그에 비해 스페인 와인은 저렴하지. 그래서 거기서 수입을 많이 해 오는데…… 와인이라는 게 예민한 음식 아닌가. 잘 상한다고.”
“아……. 그렇죠.”
지금은 냉장고가 없지 않나?
그렇다 보니 와인의 이름을 한 식초도 많다.
내가 어찌 이런 것을 아느냐고?
조지프, 내 불알친구가 와인 양조업자 집안이다.
“그걸 해결하는 비밀이 있다네.”
“아……. 그런 방법이 있다고는 하던데.”
“누가?”
“조지프 아버지요.”
“아아. 그렇지. 뭐 런던이나 이런 데 납품하는 건 그럴 필요가 없을 텐데…… 가끔 아일랜드나 이런 데 가신다고 했지? 그럼 무조건 이 처리를 했을 거야.”
“무슨 처리예요?”
대강 주워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업계 비밀이기도 하고 또 나나 조지프는 의사가 될 몸이니 쓸데없는 건 알 필요가 없다고 하셔서 제대로 듣진 못했다.
사실 뭐…….
영국에서 와인을 왜 먹나.
위스키를 먹어야지.
애초에 난 술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닌지라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리스턴이 하려는 말이 궁금하다 보니 지금은 최대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설마 와인의 색이 피와 비슷하니 둘은 같다느니…… 성경에 예수님이 내 피를 마시라는 말이 있으니 사실 배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느니…… 그런 말을 하진 않겠지?’
정정한다.
궁금하다기보다는 걱정이 되는 거다.
무슨 말을 할는지 너무 무서워!
방금 전까지 19세기에 태어났지만 21세기형 인재가 될 거라 믿었던 순간이 있어서 더 그래.
“와인에 납을 넣으면 신맛이 없어지고 달아진다네. 썩지 않아.”
“어…… 그래요……?”
“그렇다네. 사실 납이 그런 성질이 좀 있지 않나? 참 대단한 금속이지.”
“어떤…… 어떤 성질이요?”
리스턴의 말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마구 희망이 차냐고 하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납…….
와인에 납을 넣으면 왜 달아질까?
궁금한데 먹어 보고 싶지는 않다.
납중독…….
이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난 알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러니까 21세기에서조차 매년 약 100만 명이 납중독으로 죽는다.
이것도 많이 개선이 된 것인데, 1960년대까지는 미국에서만 애들이 납중독으로 5만 명 이상 사망했다고 한다.
“잘 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왜 어딘가라고 했냐면, 당최 어딜 가리키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다.
뭐야, 이거.
우리 진료실을 왜 가리켜?
“이 영롱한 흰색을 좀 보게.”
“아, 흰색 이쁘죠. 근데 이게…… 이거…… 설마?”
“그래, 납이 들어가 있네. 그래서 색이 이렇게 이쁘게 남는 거야. 심지어 잘 보게. 물을 뿌려도…… 방수가 되지? 녹도 안 슬어. 아, 이건 나무니까 썩지 않는다고 봐야겠지.”
“어…… 어어.”
나 손 떨리어.
혀도 꼬이고…….
진짜로 무습다.
‘아니, 그럼……?’
이 진료실…… 흰색이 이거 다 납이라고?
아니, 아니지.
집 바깥도…… 흰색이 많다.
그게…… 실은 다 납이었다고……?
‘하긴…… 시발! 런던처럼 비가 많이 오는 곳에…… 대체 어떻게 페인트칠한 게 이렇게 잘 안 벗겨질까! 그게 궁금하긴 했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공황장애……는 아니다.
그건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죽을 거 같은 공포를 느끼는 거잖아.
그에 비해 내가 처한 상황은…… 이건…….
“그렇게 놀랐나? 조선에서는 납을 잘 안 쓰는가 보지?”
눈이 동그래진 나를 보면서 한다는 소리가 저렇다.
블런델 또한 별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이다.
아니, 흥분은 했다.
전혀 다른 이유로.
“그래, 그래서 납을 넣어 보려고 하네.”
“좋은 생각이야. 하하.”
저건…… 막아야 한다.
인공 납중독이잖아.
사실 이 페인트칠 된 환경을 보면 나도 이미 납중독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사람 혈관에 납 범벅 혈액을 집어 처넣는 건 완전히 별개의 얘기다.
이건 살인이야.
물론 뭐 이런저런 이유로 이루어지는 살인이 굉장히 많으니 이제 와 이따위 소리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긴 한데…….
“자, 잠깐!”
혈압 잴 생각하다가 이게 뭔 일이냐.
지금 내 혈압이 궁금하다.
얼마나 높을지…….
“응?”
“왜?”
“납 그거…….”
“어.”
“좋은 금속이야. 아주 좋지.”
“그걸 혈액에 넣는다고 피가 안 굳을까요?”
“모르지. 해 봐야 아는 거 아닌가?”
아, 그건 안 해 봤구나.
그럼 다행이다.
아마 굳을 거다.
만약 안 굳는다면 그때 가서 말려야지.
지금 당장은 구라 칠 거리가 떠오르지 않지만…….
내가 누군가.
구라 마스터 김태평이다.
“그렇군요. 해 보시죠.”
“그래. 그래야지. 뭐든 해 봐야 해. 지금의 수혈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완전하거든.”
좋게 생각하자, 좋게.
블런델이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게 어디란 말이냐.
물론…….
앞으로 흰색만 보면 경기를 일으킬 거 같긴 하다.
세상에 납으로 둘러싸인 채 살고 있었다니…….
설마 페인트 말고 다른 것도 있으려나?
‘있을 거 같다…… 이 새끼들.’
19세기잖아.
뭐든지 할 놈들이다.
당장 비소 가지고도…… 상상 가능한, 아니 상상도 못 했을 일들을 마구잡이로 벌였잖아.
“아, 그러고 보니. 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거 같다.
과장이 아니고…… 납중독 이슈라면 폭풍 아니라 허리케인이나 다른 뭐라도 되긴 하잖아?
해서 정신이 좀 나가 있었는데, 역시나 나간 사람은 나뿐이다.
우리 19세기 분들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리스턴이야 그중에서도 특출난 편이다 보니 정말이지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였다.
그래 봐야 아마 납중독으로 죽어 가는 사람 보여 주면 벌벌 떨 테지만…….
‘나중에 사형수 있으면 한번 보내 달라고 해야겠구만.’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기에 아무나 그렇게 만들 수는 없어서 좀 기다리기로 했다.
무엇보다 혈압.
납 때문에 홀랑 까먹었는데, 이거 중요하잖아.
뭐 여기 처음 온 것도 아니고 어?
이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해서 나 또한 금세 평온한 얼굴을 한 채 리스턴에게 말했다.
“압력이라는 말 아시죠?”
“알지. 날 뭐로 보나.”
“그 압력이라는 게 뭔가를 누르는 힘이잖아요? 이런 거.”
“자네야말로 운동이라는 걸 해서 근력을 키워야 하는 거 아닌가.”
평온한 척하는 것도 힘들다.
리스턴을 보면 완전 물리캐로만 인지되겠지만 실은 주둥이도 꽤 나쁘게 털거든.
하지만 얼굴을 보면 역시나 분노 조절이 바로 되기 때문에 나는 애써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우리 혈관에도 가해지는 압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 난 또 뭐라고. 그걸 혈압이라고 하네.”
“잉?”
“뭐야, 몰랐어? 그거 벌써 100년도 더 됐을 텐데? 실제로 이 근처에서 재 봤을걸?”
“그, 그래요?”
“그래. 근데 그걸 재서 뭐 하나?”
“아.”
나는 여러모로 놀란 얼굴을 한 채 리스턴을 바라보았다.
리스턴?
그는 언제나처럼 뻔뻔한 얼굴만 하고 있었다.
블런델 또한 그랬다.
나만 또 황당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