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61)
검은 머리 영국 의사-261화(261/505)
261화 혈압이다 [2]
당황은…….
잠시뿐이었다.
이 자식들 황당하게 구는 게 뭐 하루 이틀 일인가?
게다가 없을 줄 알았던 지식이 있는 것도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니다.
심지어 몇백 년 전에 막 어?
덕분에 나는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물론 궁금증은 풀어야 했다.
“그런 건 블런델이 훨씬 잘 아네.”
“음음. 내가 또 이런 쪽으로는 빠삭하지.”
“괜히 러스트 벨인가 뭔가 하는 거 만들어서 팔아먹었겠나. 이제 와서는 다 쓰잘데기없는 물건이 되었지만…….”
“원래 과학에는 실패가 뒤따르는 법이지.”
예상대로 자세한 설명에 나선 것은 블런델이었다.
원래 리스턴은 사람을 잘 알고 실제 벌어졌던 일에 대해서는 블런델이 잘 알지 않던가.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자. 일단 이걸 알려면…… 대강 알기는 할 거 같은데. 대기압을 어찌 쟀는지는 알고 있겠지?”
하여간, 블런델의 설명을 듣다 보니 그런 걸 어떻게 아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해서 동의를 구하는 얼굴을 하고 주변을 돌아보았는데 이게 웬걸.
아무래도 나 빼고 다 아는 것 같았다.
미친…….
진짜야?
“때는 16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물론 나는 아는 척하기의 달인이기에 그저 다 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었다.
속으로야…….
‘1643년? 거의 200년 전이라고?’
많이 놀랐다.
생각해 보니까 보일의 법칙을 발표한 보일도 대충 그때 그 시기긴 한데…….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체감하는 건 느낌이 무척 다를 수밖에 없다.
19세기도 옛날인데…….
그보다 더 옛날에 벌써 뭘 했다니, 대단하지 않나?
“그 양반이 수은을 이용해서 대기압을 쟀어. 수은을 대강 30인치 정도 올리는 힘이 대기압과 같다는 걸 증명했는데…… 그 후로 관만 있으면 모두가 압력을 재려고 했어. 마침 그때 심장에서 혈관이라는 수도관을 통해 피를 내뿜어 낸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에 혈압도 쟀지.”
심지어 혈압도 쟀단다.
근데 그냥 안 쓰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 미개한 19세기 새끼들 하면서 욕부터 주워 넘겼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이해심이 아주 대단하다.
‘뭐…… 정상혈압이 얼마인지 알 게 뭐야. 고혈압이니 저혈압이니 하는 것도 절대 알 수가 없지.’
배경 지식이 너무 부족하면 혈압의 중요성조차 깨닫지 못하는 법이라는 걸…… 이해할 정도가 되었다, 이 말이었다.
“아, 그래요? 그걸 재는 방법이 있어요?”
“있지.”
“그럼 바로 잴까요? 앨프리드 선배.”
“아…… 혈압은 딱 한 번만 잴 수 있다네.”
그러나 내가 누군가.
나는 21세기에서도 퍽 실력 있던 의사다.
그런 내가 혈압을 재기 시작하게 된다면…….
어마어마한 시너지가 날 거다.
해서 물었더니 영 이상한 답이 날아왔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나는 당황하는 대신 차분히 되물을 수 있었다.
“그게 뭔 소리예요?”
“이거 이거…… 고개 끄덕이고 있길래 아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구만그래. 하하.”
“아니…….”
“대기압이 뭔가. 수은을 얇은 관을 통해 밀어 올리는 힘이지?”
“네.”
“그럼 혈압은 뭐야. 혈액을 얇은 관을 통해 밀어 올리는 힘이잖아. 그걸 재려면 어찌해야겠나?”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나 익숙한 모양의 혈압계였다.
수동으로 재는 건 학생 때 말고는 안 해 봤고, 요새는 다 기계로 재잖아?
기계가 떠올랐다.
허나…… 혈액을 얇은 관을 통해 밀어 올리는 힘이라고 하니 종국에는 좀 다른 것이 떠올랐다.
떠올려서는 안 될 것같이 생긴…… 그런 종류의 생각이었다.
“설마……?”
“혈관에 이렇게 직각으로 꺾인 형태의 관을 꽂아서 위로 피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보면 되지 않겠나.”
“아…….”
미친…….
피 분수잖아, 이건.
설마 실제로 해 봤나?
에이, 아니겠지…… 하는데 이번에는 ‘사람’ 또는 ‘일화’에 강한 리스턴이 나섰다.
“100년 전인가? 헤일스라는 목사님이 말의 동맥에 파이프 꽂아서 솟아오르는 피 기둥의 높이를 측정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네.”
“아…… 그 말은 어찌 되었는데요?”
“죽었지. 그러니 혈압은 딱 한 번만 잴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거야.”
“아…… 사람한테 해 본 적은 없겠죠?”
“없네. 공식적으로는.”
“아…….”
그래, 아무리 미친놈들이라고 해도 저런 방식의 혈압 재기를 사람한테 공개적으로 시도하진 않았겠지.
리스턴의 말마따나 뒷구녕으로는 몇 놈 해 봤을 거 같긴 하지만…….
의사가 어찌 그럴 수 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
여기 의사 중에는 매드 과학자랑 비슷한 놈들, 그러니까 사람 살리는 일과 자신의 궁금증 해소하는 일의 차이를 잘 모르는 놈들이 많다.
“그러니 그걸 재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야. 게다가 재서 뭘 한단 말인가. 진짜 호기심 해결하는 거 말고는 없잖아?”
“아니.”
아니다.
혈압은…….
그 자체로 알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많다.
멀쩡하던 사람이 혈압이 떨어진다면, 피를 흘렸거나, 혹은 감염 등에 의해 혈관이 확장되었다는 걸 의미하지 않겠나?
반대로 혈압이 갑자기 올라간다면 그에 준하는 활동을 했거나 또는 통증이 발생했거나 혹은 머리 쪽이 망가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정말 많은 정보를 주는 바이털사인이라 할 수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죽이는 방식으로 재는 건 안 되지.’
아주 얇은 관을 꽂아 볼까……?
그럼…….
아니, 안 된다.
애초에 수은하고 혈액은 비중이 다르잖아.
대충 물하고 비슷하다고 치면…… 14배 차이가 난다.
정상혈압이 120mmHg니까…… 2미터는 솟구친다 이 말이다.
2미터…….
‘내 주사기 직경만 해도 거의 뭐…….’
죽는다.
죽지 않더라도 죽기 직전까지는 간다.
모든 환자에게 혈압을 잴 것도 아니고 안 좋은 환자한테 잴 텐데 피를 그런 식으로 날려 먹는다면 오히려 해가 될 거다.
막말로 혈압 잰다고 치료가 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검사일 뿐인데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건 좀 그렇다.
‘우리는 대체 혈압을 어떻게 잰 거지……?’
확실히 혈압을 재는 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블런델이 말했던 혈관에 관 꽂기다.
근데 현대 의학에서는 그렇게 안 재잖아?
만약 그랬으면 병원은 아직도 곡소리만 나는 곳이었을 거다.
뭔가 획기적인…… 그런 방법을 개발했다는 건데…….
‘공대도 갈걸.’
진짜 19세기로 회귀할 줄 알았다면 공대 갔다.
화학과도 가고.
하지만 안 갔잖아?
고민은 영 쓰잘데기없는 짓이다, 이 말이다.
시험 쳐 본 사람은 알 텐데…….
딱 문제 봤을 때 모르잖아?
그럼 보통은 시간 주구장창 끌어 봐야 몰라.
맨 마지막에 나오는 애치고 시험 잘 보는 애 없다, 이 말이다.
“뭔 생각을 또 그렇게 하나? 설마 죄수들 대상으로 혈압 재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니지. 음…… 그건 괜찮은 생각일는지도 모르겠어. 확실히 볼만하겠는데.”
“아니, 아니. 그럼 안 되죠.”
볼만하다니…….
사람 피 튀는 걸 보면서 할 말이냐?
나는 비난 가득한 눈으로 리스턴을 바라보았고, 리스턴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왜 안 돼?”
“네?”
“비소 드레스는 되고 이건 왜 안 되나?”
“아……. 그건 비소가 위험하다는 걸 밝히기 위함이었잖아요. 명분이 있었다고요.”
“하하. 혈압도 명분은 있지. 궁금하잖아. 사람 혈압은…… 사람 피는 과연 얼마나 솟구칠까? 말이나 개하고 얼마나 다를까?”
그러곤 꽤나 설득력 있는 말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혹할 뻔했다.
리스턴의 표정이 너무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지만 않았어도 해 볼까 할 뻔했어.
“그건 나도 궁금하네.”
블런델도 끼어들었기 때문에 사실 하고자 하면 할 수 있을 터였다.
우리 셋이 하자고 하면 경찰이나 제이미 경 등, 런던의 유력자들 또한 움직일 것이 뻔해서 그랬다.
심지어 피 분수라니…….
광장에서 수술 대결까지 유흥으로 삼는 시대에 극악무도한 놈들 이용해서 분수를 만든다면 아마 좋아 죽긴 할 거다.
어쩌면 광장 한가운데에 상설 관람이 가능하게, 런던의 명물이자 명소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어.
‘아니, 안 되지. 뭐 이렇게 상상을 자세하게 하고 자빠졌냐, 나는.’
마음에 마구니가 끼었나 보다.
나는 고개를 털어 내고는 의식적으로 머리도 꾹꾹 누르고, 아까 수술하느라 잔뜩 굳었던 팔뚝 근육도 눌렀다.
리스턴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힘이 덩달아 좋아져서 그런가 팔뚝이 하얘질 정도로 꽉꽉 누르는데도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음. 음?”
“왜 그러나 또.”
하얘진다.
뭔가 뭔가다.
뭔가 떠오를 거 같아.
“왜 그러냐고.”
“형, 잠깐만 조용히.”
“아이, 이놈이 또.”
“아니, 리스턴. 조용히 해 봐. 평이…….”
“아…… 아아. 주님이 오셨나!”
눈을 잠시 감았다.
온전히 내 생각으로만, 그러니까 내 온전한 능력만으론 해결이 안 된다는 걸 잘 알아서 그랬다.
회상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을, 그러나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지식을 떠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딘가 있을 거다.
주워들었건 스쳐 지나가듯 공부를 했건…….
혈압계의 원칙을 내가 단 한 번도 알아보지 않았을 리는 없다.
‘하얘진다는 건…… 피가 안 통한다는 것…….’
확실히 혈압을 재는 원칙에 대해 공부를 한 적은 없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배운 현대적인 지식들을 종합하면…….
적어도 19세기 사람들이 맨땅에 헤딩해서 알아내려는 것보다는 훨씬 쉬울 수밖에 없다.
‘그 말은 곧 내가 누르는 힘이…… 너무 강해서 혈관이 눌렸다는 거야. 혈관이 버티는 힘은 혈액이 혈관을 누르는 힘이지. 그렇다는 것은 곧.’
알 것 같다.
그래, 그렇지.
혈압 잴 때 팔을 꽉 누르잖아.
그거 왜 누르겠어.
어, 그래 피 안 통하게 하려고 누르는 거지.
근데 그걸 왜 괜히 피를 안 통하게 하겠냐고…….
‘피가 안 통하기 시작할 때 우리가 준 힘이 바로 환자의 혈압이다. 그래.’
시발…….
나 진짜 천잰가 보다.
아무리 미래 지식이 있다고 해도 이거 딱히 공부한 적도 없는 거 같은데 팔뚝 마사지하다가 뚝딱 맞힌다는 게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야?
“흐흐.”
“이것도 주님인가? 사탄 웃음소리 같은데.”
“네가 주님 웃음소리 들어 봤냐? 어떻게 알아.”
“근데 오늘따라 좀 빙의가 긴데…….”
“그새 실력이 늘었나?”
웃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귓가로 이상한 말이 들려오지만, 그래도 괜찮다.
아니, 실은 안 괜찮아.
얘들이 상식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놈들이었다면……!
그랬다면 얼마든지 자랑해도 좋았을 텐데…….
아는 게 없는 놈들이다 보니 그럴 수가 없는 게 한이다.
아무튼, 나는 눈을 떴다.
“혈압계 만들어야겠습니다.”
“가, 가셨어?”
“누가요, 아 주님?”
“어어.”
“가셨어요. 근데 계시는 주셨습니다. 관 안 꽂아도 되니까…… 빨리 가서 대장장이랑 이런 거 잘 만드는 놈들 잡아 오세요.”
“내 주님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잡아 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