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62)
검은 머리 영국 의사-262화(262/505)
262화 혈압이다 [3]
리스턴은 그길로 밖으로 나가 말을 타고 달렸다.
마차가 아니라 말이다.
엄청 잘 타는데…….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의대 정규 과목 중에 승마가 있거든.
리스턴이야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하는 놈인데 배우기까지 했으니 뭐…….
“빠르네…….”
“리스턴이 일등이었거든. 뭐…… 실전도 많이 겪었지.”
“실전이요?”
“리스턴이 설마 처음부터 런던 바닥에서 해 먹었겠나. 실력이 좀 부족할 때는 작은 마을 돌면서 수술했는데 그때는 아무래도…… 많이 죽었지.”
“아.”
그러니까 내가 처음 볼 때보다 더 죽었다는 소리이렷다?
그 말은 거의 살인 기계였다는 소리니 말을 저렇게까지 잘 타는 것도 이해가 간다.
오히려 말을 못 타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기다리는 동안 뭐라도 할까?”
“뭐 할까요?”
“카드라도 하지. 좋은 게 들어왔어.”
“좋은…… 거?”
“전에 파리 갔을 때 친구 좀 사귀지 않았나. 그중에 하시시 클럽 기억나나?”
“아.”
아무리 말을 잘 탄다 해도 런던 바닥이 넓다 보니 순식간에 왔다 갔다 하는 건 절대 무리였다.
그저 넓기만 한 것도 아니고 구불구불한 데다가 사람도 많아 혼잡하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시간이 뜬다 이 말인데, 그동안 잡담이나 할까 했더니만 블런델이 음흉한 미소와 함께 상자 하나를 꺼냈다.
이 양반도 수혈이니 뭐니 하는 사업 나눠 받아서 이제 제법 돈을 만지게 되지 않았나.
그렇다 보니 상자도 꽤나 고급스러운 상자였는데 안에 든 물건 또한 심상찮아 보였다.
아니…… 보이기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심상찮은 물건이었다.
“하시시……예요?”
“응. 이거 좋더라고. 삭 이완이 되는 것이.”
이완이…… 되기는 할 거다.
마약이라고 해서 다 각성되고 흥분하는 건 아니거든.
딱딱 나누기는 뭐하긴 한데, 필로폰이나 코카인이 각성제 스타일이고 대마는 안정제 스타일이다.
“그래서 그런가 자꾸 생각이 나.”
아, 그리고 대마는 중독이 안 되네 어쩌네 하는데…….
된다.
이게 의미가 좀 다르긴 한데, 블런델 봐라.
벌써 표정이 뿅 가 버렸잖아.
하시시가 일반적인 대마에 비해 더 강력한 놈이다 보니 뭐 그럴 수밖에 없기는 할 텐데…….
나중 가면 다 마약으로 엄격하게 규제되지 않나?
지금이야 담배 같은 문제없는, 아니 오히려 좋은 기호 식품의 일종으로 여겨진다지만.
“아니, 근데. 교수님. 형님.”
“응? 왜.”
블런델은 벌써 하시시를 꺼내 칼로 끄트머리를 툭 하고 자르고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기계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내 조수 새끼들 또한 불을 옮겨 오고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불을 피웠나 했더니만 조지프가 내 눈을 피해 성냥 하나를 발로 비벼 끄고 있다.
백린이다.
미친놈들이…….
어?
납 페인트에 하시시에 백린 성냥까지!
“이거 하면 정신이 오락가락하지 않습니까?”
“그런가? 그냥 기분이 좋아지던데.”
“그러니까…… 이유 없이 좋아지면 뭔가…… 우리 이제부터 혈압을 재 볼 생각인데 그게 잘 되겠어요?”
“아, 아아. 하하. 난 또 뭐라고.”
혼미해지는 기분을 애써 부여잡고, 나는 설득을 시전했다.
기대는 반반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포기했을 텐데, 그래도 이제는 많이 개화되었을 거잖아.
언제까지고 19세기 그 자체의 인간으로 살지는 않을 거잖아.
그래서 말했더니만 블런델은 같잖다는 듯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혈압 그거 진짜 궁금증 해소 말고는 의미가 없다네. 물론 이론적으로는…… 의미가 있겠지만 말이야.”
“아니…… 혈압이 낮아지고 높아지고 하는 게 의미가 없을 수가 없을 거 같은데요?”
“하하하하! 자네는 방금 주님과 만나 놓고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만그래.”
주님 만난다는 말이 제일 이상하지 않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부터 계속 쳐 나갈 구라를 떠올리며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블런델이 이번에도 호탕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주님께서 우리 몸을 만들 때 어떻게 만드셨나.”
“으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일세. 혈압이 변한다는 건 뭔가 상황이 바뀌니까 그에 따라서 바뀌는 것일 거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아니…….”
“아무튼, 나는 별로 관심 없네. 자네들은 어떤가?”
블런델의 말에 나는 일단 할 말을 잃었다.
이게…… 19세기 과학 상식이라는 것이 묘한 면이 있다 보니…….
그러니까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 보니 막 뭐라고 하기가 어려워서 그랬다.
동시에 나를 제외한 모두, 즉 내 제자들은 하시시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몸은 솔직해서 조지프와 앨프리드는 이미 하시시를 집어 들고 있었다.
저래서 마약이다.
“저, 저는 혈압이 궁금합니다.”
그 유혹을 이겨 낸 용자는…… 콜린뿐이었다.
진짜 넌 대단하다.
대단한 놈이야!
기특해서 어깨를 마구 두드리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아까 호언장담한 대로 사람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에잇, 시발. 이거 뭔 냄새야.”
옆방에서 풍겨 오는 대마 냄새에 인상을 쓰면서였다.
욕이 나올 만했다.
풀 타는 냄새인지 뭔지 하여간에 역한 냄새였으니까.
담배 진짜 싫어하는데 이것보다는 차라리 담배 냄새가 나을 거 같다.
“히익.”
“사, 살려 주십쇼.”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라 욕을 한 것이지만 잡혀 온 입장에서는 그저 무섭기만 할 터였다.
나는 둘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임으로써 안심시키고는 리스턴에게 물었다.
“왜 둘이에요?”
“하, 하나만 살려 주는 겁니까?”
“저는 병든 노모가!”
중간에 이상한 말들이 낑겨 들어왔지만 일단 무시했다.
리스턴의 말이 중요해서 그랬다.
“아, 하나는 무두장이고, 하나는 대장장이야.”
“아하. 그래. 좋아요. 좋아.”
생각해 보니까 둘이 필요하긴 할 터였다.
역시 리스턴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둘을 돌아보았다.
어쩐지 아까보다 더 무서워하는 거 같다.
이유는…….
‘시발…….’
알 것 같다.
나 때문이지, 뭐.
나를 둘러싼 소문이 좀 많아야지.
물론 그중에서 제일 유명하고 의미 있는 별명은 평신이긴 하다.
욕처럼 들릴 수도 있을 텐데, 실제로는 엄청 좋은 뜻이다.
그렇게 쓰이고 있기도 하고.
허나 귀족들이나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일반인들이나 슬럼가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소문이 훨씬 더 많이 퍼져 있었다.
‘심장 강탈자는 대체 뭐냐?’
청나라 갱이라든지, 주술사니 하는 건 이제 옛말이다.
비소 살인마라는 말도 번지다가 말았다.
제일 핫한 건 심장이다.
아무래도 그날, 그러니까 미래의 트래펄가 광장에서 사람 심장에서 피 뽑은 게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뭐 끔찍해 보일 수 있는 장면이지 않겠나?
나는 이해심이 남다른 사람이다 보니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억울하기도 했다.
‘사람이 그래서 죽었냐? 살았잖아. 내가 죽인 사람이…… 있긴 하구나.’
여기 와서 ‘죄다 살리기만 했잖아’라는…….
의사로서는 당연한 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 한이다.
아무튼, 나는 역시나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둘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로 두 분을 모신 이유는 어떤 물건을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무, 물건이요?”
“어, 어떤 겁니까.”
물건이라는 말에 둘은 여전히 말을 더듬긴 했지만, 그래도 두려움이 많이 가시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왔다.
그와 동시에 평생 양치라고는 안 한 입에서 풍기는 역한 입 냄새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히익.”
“살려 주십쇼.”
언제 한번…….
양치도 건들긴 해야겠다.
나야 뭐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닦고 있으니 망정인데, 사실 이 둘뿐만이 아니라 그냥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딱히 양치에 신경을 쓰지 않잖아?
칫솔도 칫솔인데 치약이 있나 모르겠다.
없을 거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 아니. 진짜 물건만 만들면 됩니다. 돈도 드려요.”
“네에?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속고만 사셨나. 제가 언제 돈 떼어먹었단 말 들은 적 있습니까?”
“하, 하긴 그러고 보니…… 목숨을 떼어 드셔도. 아니, 아닙니다!”
목숨도 떼어먹은 적은 없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나.
더 중요한 것은 솔직히 말해서 나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는 물건을 이 둘에게 만들라고 시키는 일이었다.
시간이 꽤나 걸렸다.
한 시간, 두 시간.
하시시에 취한 블런델이 비틀거리며 집에 가고도 남은 이 시간.
“아시겠어요?”
“이해했습니다!”
“네, 저도요.”
“뭘 만드는 건데요?”
“죽여 주십쇼.”
“이해 못 했습니다!”
암만 설명을 해 보려 해도 소용없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나도 모르잖아!
최종적인 형태의 혈압계는 어떻게 알지만…….
그걸 전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대체 알 게 뭐냐.
“가만가만.”
절망에 빠져 있으려니 콜린이 끼어들었다.
리스턴과 함께 뭔가 막 떠들고 나서의 일이었다.
얼굴이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는데…….
“이거 이렇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이렇게요.”
“아…… 이렇게.”
녀석이 설계한…….
설계라기보다는 얼기설기 만들어 본 혈압계는 참으로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었다.
그냥 가죽 풍선으로 팔을 둘러싸고, 거기에 공기를 밀어 넣고…… 안에 들어가는 압력을 수은 관을 통해 잰다.
동맥에서 압력이 사라지는 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잰다.
그러니까 맥박을 느끼고 있다가 없어졌다 싶으면 그때 혈압을 잰다, 이말이다.
‘이거 할 때마다 계속 바뀔 거 같긴 한데…….’
그렇긴 한데 내 머리로는 당최 다른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세상에 대체 우리 시대의 혈압계는 누가 어떻게 만든 걸까.
존경합니다, 천재님들…….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 같다.
뭐…… 개선이야 누군가 하겠지.
“그래, 이거 좋은데. 이건 해 볼 수 있겠어요?”
“아…… 네. 저야 뭐.”
무두장이는 가죽 풍선만 만들면 되니 표정이 밝았다.
다 죽어 가는 얼굴이 된 것은 역시나 대장장이였다.
“그러니까 이걸 수은으로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압력을 재라는 거지.”
“압력은 또 뭔지…….”
칼 만들다가 혈압계 만들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의뢰자라는 놈이 설계도는 안 주니 죽을 맛이긴 할 터였다.
어지간한 놈이면 안 된다고 하고 말 텐데 우리가 어지간한 놈은 아니지 않나?
나랑 리스턴이라고 하면 사실상 지금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듀오다.
“압력 전문가를 잡아 와야겠군. 그놈이랑 협력해서 만들어 보게.”
“아, 네. 그렇게만 해 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그렇다 보니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말이 잡아 오는 것이지, 우리는 늘 돈을 충분히 주기 때문에 딱히 문제가 생기는 일도 없었다.
중간에 대강 들어 보니까 그럴싸해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게 생겼는데…….
그렇게 여유롭기만 하면 19세기인가?
그럴 수는 없지.
“오랜만일세.”
경찰 서장님이 찾아오셨다.
“아, 장모님 다리는 좀 어떠십니까?”
“자네가 잘라 준 뒤로는 문제없네. 거울 치료? 그거 하고 나서는 통증도 없고.”
“하하, 잘됐군요. 또 자를 사람 있으면 의뢰 주시죠.”
“내 반드시 그러지.”
언제 들어도 좀 이상해 보이는 덕담을 나누고, 본론에 들어갔다.
“최근 런던에 독살로 의심되는 사건이 있네. 혹시 알고 있나?”
날 보면서였다.
나 설마…… 용의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