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66)
검은 머리 영국 의사-266화(266/505)
266화 독살이라기보단 [4]
“손은 어디서……?”
덩치 큰 요리사는 덩치에 비해 굉장히 유순한 편이었다.
뭐 전에 경관들이 둘러쌌을 때 파이팅 자세부터 취했던 것을 보면 유약한 건 아니겠다만…….
19세기를 살아가면서 그 정도 뽜이팅도 없으면 그냥 죽는다.
“물 없는데.”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뭐, 경찰이 구라치는 거 같나?”
“아…… 아닙니다.”
물론 어지간한 놈들도 19세기 경찰서에서는 껌뻑 죽는다.
껌뻑 죽지 않으면 진짜 죽거든.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여기 경관 나리들 사람 한둘 죽어 나가는 건 신경도 안 쓴다.
21세 상식으로 보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 19세 시대라고.
“그…….”
“뭐.”
“아닙니다…….”
해서 요리사는 손을 못 씻고 요리에 돌입했다.
요리라고 해 봐야 그에게 주어지는 재료는 감자와 소금이 다다.
“이걸로…… 뭘 하라는 건지……?”
“요리.”
“감자 그냥 삶으라는 거 아닌가요?”
“그게 싫으면 똥 싸고 와 봐요.”
“아니, 그거 바르려고!”
“그럼 한 방에 끝난다니까, 이 고생도?”
당황하는데, 사실 그럴 만한 일도 아니다.
벌써 며칠째거든.
그런데 늘 이렇게 나오는 거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니긴 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요리에 진심이라고 해야 하나?
‘근데 어쩌나…….’
이제 그 요리만큼은 포기해야 할 거다.
뒷구녕으로 알아보니까 결혼도 했었더랬다.
근데…….
아내가 죽었다.
열이 오르다가 마지막에는 설사를 하면서 죽었다는 기록이 무려 우리 병원에 남아 있었다.
닥터 제멜이 남긴 건데 그 자식이 사혈에 미쳐서 그렇지, 나름 이 시기의 명의다 보니 기록은 열심이었다.
물론 죽은 요리사의 아내에게 한 치료는 비소 먹이기와 사혈이었으니 사실상 장티푸스가 범인인지 아니면 제멜이 범인인지 헷갈리는 지경이긴 하지만.
“으음……. 내 이럴 줄 알고…….”
“으응?”
하여간, 오늘도 그냥 삶은 감자를 맨손으로 나눠 주게만 시키게 되려나 했는데 이 양반이 기름을 가져왔다.
“튀겨 주는 건 되죠?”
“튀겨……? 그럼 너무 맛있어지지 않나.”
이번에 끼어든 것은 서장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던 그가 오늘 내려오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요리사가 서빙을 맡은 사형수가 무려 22명인데, 그중 하나가 오늘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거든.
뭐…….
“쿨럭, 쿨럭.”
“으…….”
“제발…… 그냥 죽여…….”
런던 감방이라는 곳은 굳이 뭘 안 해도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이긴 하다.
여기보다 파리 쪽 감방이 더 열악하다는데 거긴 그럼 진짜 지옥인가 싶을 정도다.
일단 냉난방……?
그건 일반 집도 안 되는 거니까 넘어가도록 하자.
찍찍.
쥐?
방금도 눈앞으로 휘리릭 지나갔는데, 저것도 넘어가도록 하자.
병실에도 돌아다니는 친구들인데 감방에 좀 더 많다고 호들갑 떨 일은 아니잖아?
생각보다 우리 인간은 강력해서 저따위 작은 포유류에게 지지 않는다.
다만 이제 문제가 되는 건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점, 그리고 따로 배설물 처리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점, 먹는 것도 보통 감자인데 그마저도 경관들이 삥땅 치는 바람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죄수복도 모자라게 된 지 한참이라 죽은 선배의 죄수복을 물려받고 있다는 점 정도가 다 더해지면, 지옥 비슷한 무엇이 된다.
“맛있는 거 먹는 게…… 문제가 됩니까, 서장님.”
“누누이 말하지만 죽어 마땅한 놈들일세.”
“그건…… 저도 익히 들어 압니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 주님께서도 포기한 놈들이야. 마음 같아서는 다 불태워 죽이고 싶다네.”
사형수가 총 22명인 것은 아니었다.
전체 사형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
정치범이나 이런 사람들은 제외한 숫자가 그렇다.
그런 분들은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 갇혀 있다더라고.
여기 있는 놈들은 시대착오적인 해적이나, 살인범들이었다.
해적이나 살인범이나 사람 죽이고, 강간하고, 폭력 행사하고 강도질하는 건 같으니, 정말 말 그대로 불타 죽어도 될 놈들이다, 이 말이었다.
“그…….”
“하지만 자네가 직접 그 손으로 먹여 준다고 하면 내 허락하지.”
“아? 정말입니까? 헌데 왜 굳이……?”
“우리는 자네 손에 미아즈마가 있다고 믿거든.”
아까 사형수 하나가 열나기 시작했다고 할 때, 서장이 얼마나 좋아했던가.
드디어 사형수가 그가 지은 죄에 준하는 벌을 받게 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그것보다는 아마 자신의 추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터였다.
진짜 엄청 좋아하더라고.
‘뭐…… 그럴 만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 시대에 각각의 사건을 이상하다고 여길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정말 대단한 일 아니겠나.
아직도 저 인간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가 신기할 지경이다.
아마 나도 장티푸스 메리를 몰랐다면 이렇게까지 진행을 하지 못했을 거다.
뭐…… 장티푸스 메리는 보균자 개념을 배울 때 계속 배우는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서프라이즈나 의학의 역사 같은 야매 유튜브 채널에서도 다루던 거다 보니 모르기가 더 어렵긴 하겠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해 보자는 얘길세. 어려운 얘기도 아니지 않나?”
“알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그럼 해 보게.”
서장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요리사는 장작에 불을 피우고 기름을 올린 후에 감자를 튀기기 시작했다.
고소한 냄새가 사방천지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이게 한국이었다고 해도 상당한 파급력이 있었을 텐데, 여긴 영국이지 않나.
맛있는 음식하고는 담쌓은 곳이다, 이 말이다.
헌데 감자를 튀기고 있으니 이게 뭐…….
“햐…….”
“우리도 먹어 보면 안 되나?”
경관들이 하나둘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슨 좀비떼처럼.
무리는 아니다.
아까 점심에 뭔 이상한 정어리 파이 같은 거 먹더라고.
맨날 먹던 것일 텐데도 중간중간 구역질하는 경관도 있는 걸 보면…….
어쩌면 신께서 대영제국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지을 죄에 대한 벌로 음식을 내린 게 아닌가 싶다.
반대로 저런 음식을 먹다 보니 사람들이 강인해지는 동시에 비뚤어져서 세계사가 그 모양이 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안 돼.”
“미쳤어? 저거 미아즈마 덩어리라고.”
여하간에 서장과 리스턴이 그런 불쌍한 이들을 막아섰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그러니까 비슷한 직급의 경관이었거나 하다못해 블런델쯤만 되었어도 벌써 얻어맞고 내쫓겼을 기세였다.
하지만 서장과 리스턴을 어찌 팬단 말인가.
한쪽은 사회적으로 다른 한쪽은 물리적으로 무리다.
“으읏.”
“대체 죄수, 그것도 사형수들에게만 저런 걸 주는 게 말이나 됩니까?”
“우리도 감자 튀김 먹고 싶습니다!”
문제는 너무 절박하다는 거다.
더 큰 문제는.
“평.”
“네. 형님.”
“나도 먹고 싶다네.”
리스턴도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형…… 한 명 열나기 시작했잖아요.”
“난 강하잖아. 아직 우리끼리 얘기지만 사람마다 미아즈마에 견디는 힘이 다르지 않던가?”
그냥 흔들리기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면역력의 개념까지 들고 올 정도로 필사적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리스턴은 강하긴 하니까.
하지만 근력과 체력이 강한 것과 병원균에 대해 강한 것은 의외로 다르지 않던가.
오히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감염되었을 때 괜히 면역 반응이 너무 강해서 잘못되는 경우도 있다.
뭐 대개는 노쇠한 사람이 훨씬 잘못되기 쉽긴 하지만…….
“미아즈마를 의심하고 있는 건데, 그건 강하건 말건 다 가지 않을까요?”
“그런가……. 그럼 대신 이거 끝나고 피시앤칩스를 먹으러 가세.”
“그거야 뭐.”
다른 데서 먹는 거야 오히려 좋은 일 아니겠나.
그렇지 않아도 나도 슬슬 배가 고프다.
밥이랍시고 비린내 나는 무언가를 내밀었을 땐, 상대가 경관이고 나발이고 간에 두들겨 팰 뻔했다니까.
‘슬슬 부모님을 이쪽으로 모셔야겠어…….’
밥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쪽으로 생각이 튀니까 너무 후레자식 같은데…….
너 효자 하고 영국 밥 먹을래 후레자식 하고 한식 먹을래 하면 나는 후레자식이 되고 싶다.
“이보게들! 이따 내가 쏠 테니까, 지금은 참아.”
“와아아아! 검성 리스턴!”
하여간 리스턴은 명성에 걸맞은 통 큰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과들의 불만도 어느새 수그러들고 있었다.
딱히 나중에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만은 아닐 터였다.
“아까 열나던 놈, 구토도 하기 시작했다더구만.”
“격리해 두었죠?”
“응, 어차피 내일 교수형 예정인 놈들이 있어서…… 그놈들 다른 곳으로 옮겨 놓으면서 방이 비었네.”
“그렇군요.”
“확실히…… 자네 말처럼 되어 가는군그래.”
요리사의 감자를 먹은 놈이 장티푸스에 걸렸다.
감방 전체를 통틀어 설사하던 놈도 없었고, 열이 나던 놈이야 있긴 했지만 다 폐병쟁이였다.
이전의 서장이나 경관들이었다면 다 같은 병 아닌가 싶었겠지만…….
이들은 우리와 작당한 지도 꽤 오래된 놈들이니만큼 의학적으로 상당한 진보가 있었더랬다.
“정말인가…….”
“어찌…….”
“저주인가.”
그렇다 보니 요리사 때문에 죄수가 장티푸스에 걸렸다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논리의 비약이 있는 얘기조차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몇몇 경관들의 수군거림을 제외하면 침묵만이 가득한 요리사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얼굴로 감자를 튀기고 있었다.
여전히 맛있는 냄새가 사방으로 번지고 있지만, 더 이상 군침 도는 냄새로 여기는 이는 없는 듯했다.
오히려 불길한 냄새라 생각하는지 경관들은 부리나케 사라졌다.
아무리 우리가 미아즈마는 접촉으로 번지는 거라 해 봐야 소용이 없다, 이 말이다.
여전히 미아즈마는 독기, 즉 악취로 번진다는 이론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잔뜩 지배하고 있다.
“이런 제길…….”
요리사는 무섭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눈물마저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요리사라는 본분을 아직은 잊지 않았는지 눈물을 훔치고서 요리를 계속했다.
‘잘된 건가?’
똥보단 덜해도, 저 눈물에도 장티푸스균은 있을 터였다.
너무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런 일은 오히려 빨리 증명이 되어야 쓸데없는 희생자들을 줄일 수 있다.
일단 카펠 백작가가 제일 위험하다, 지금은.
아편 전쟁 일으키려고 하는 놈을 꼭 살려야 하나 싶기도 하긴 한데…….
뭐가 되었건 간에 눈앞에 죽을 사람이 뻔히 보이는데 가만히 두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으…… 으아…….”
“배가, 배가 너무 아파…….”
눈물이 효과를 보인 건지, 아니면 요리사가 여기 오기 전에 똥 싸고 손을 안 닦은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우리가 실험을 시작한 지 불과 열흘이 채 지나기 전에 22명 중 20명이 장티푸스에 걸렸다.
그중 두 명은 벌써 죽어서 매립지에 버려졌고.
일이 이쯤 되고 나니 어쩌겠나.
“그게 정말인가?”
폴 카펠 백작을 불러야지.
그는 믿기 어렵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가, 이내 내 명성을 떠올렸는지 일단 내 손부터 붙잡았다.
“고, 고맙네. 자네가 내 생명의 은인이로군그래.”
인생 잘 풀려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