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67)
검은 머리 영국 의사-267화(267/505)
267화 독살이라기보단 [5]
“저는……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요리사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아니, 주눅이 들었다기보다는 서글퍼 보인다고 하는 게 맞았다.
처음 몇 명 발병했을 때는 그래도 기운이 넘쳤더랬다.
이거 아니라고.
여기가 너무 더러워서 생기는 거라고 그랬었는데…….
22명 중 20명이 아프고, 그 아픈 양상이 자신이 일했던 집안의 사람들과 똑같다는 걸 확인한 후에는 내내 저 모양이 되어 있었다.
“사형에 처해야지.”
지금 얘기를 꺼낸 건 나 아니다.
리스턴도 아니고…… 서장님이다.
“저기.”
말려야 한다.
뭐…… 저 사람 때문에 사람들이 죽은 건 맞긴 하다.
그것도 런던 바닥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죽어 나갔다.
마지막에 일하고 있던 곳은 백작가였고, 거기가 잘못되었으면 진짜 큰일 났을 거다.
당장 전쟁 준비 중인데 그 핵심 인력이…….
“왜. 이 인간이 죽인 놈이 몇 명인데.”
아직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이 있기도 전이다 보니,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보다 중요한 사람을 죽였다는 건 가중 처벌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러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죽은 건 죽은 거지. 그리고 앞으로를 생각해 보게. 이 사람이 계속 밖에 나돌아 다니면…… 어떻게 되겠어?”
어떻게 되긴.
요리만 안 하면 된다.
사실 똥 싸고 손만 잘 닦아도 이런 참사는 없을 거다.
아직 비누가 대량 생산되기 전이긴 하지만 사람 죽는 걸 방지하는 차원에서라면 얼마든지 사 쓸 수 있을 정도로는 가격이 내려왔다.
“요리사 못 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거 감시는 누가 하고?”
“어디 뭐 올려놓으면 안 되나요?”
“뭘 올린단 말인가. 막상 이 사람이 자기 신분 속여도 알 방법이 마땅치가 않아.”
“아…….”
하긴 아직 데이터베이스가 없겠지?
그런 시대가 아니긴 하다.
그렇다고…….
죽여?
죽인다고?
“그냥 죽이는 게 속 편한 일이긴 하죠.”
이번에 말한 건 리스턴이다.
미쳤나 봐.
의사가 사람 죽이는 게 속이 편하다고…….
“이러다가 미아즈마가 유행이라도 하게 되면 큰일이야. 사람이 대체 얼마나 죽을지…….”
아, 뭐…….
당연하겠지만 속에 대의는 품고 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뭐 이런 건데…….
이 시기에는 진짜 그런 일들이 숨 쉬듯이 벌어진다.
“어디 가둬 두는 건 어떻습니까? 관리가 안 될 거 같으면.”
“가둬?”
“돈 드는 일인데.”
“아니, 제발! 저 정말 요리 안 하겠습니다!”
내 말에 서장도 리스턴도 심지어 당장 죽게 생긴 요리사도 반발하고 나섰다.
솔직히 말하면 좀 어이가 없었다.
사형하자는 거 말리는 건데 거기서 댁이 반발을 하면 어쩌냐고.
뭐…… 나도 보균자를 가둔다는 발상이 썩 내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장티푸스 메리…….’
전례가 있지 않나.
아니, 뭐 아직 이 역사에서는 벌어지지 않은 일이니 예언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사람…… 요리하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가명까지 써 가면서 요리사로 취직하는 바람에 사람 여럿 더 죽었다.
뉴욕에서 그랬는데, 만약 19세기 런던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거 평신 잘못이다!
-평신이 마녀와 결탁했다!
이제 와서 이럴 것 같진 않은데…….
훌리건의 민족이다 보니 아주 0%에 수렴할 것 같지도 않다.
불안해요, 내가 아주.
“감옥 같은 데가 아니라 인구가 적은 곳에 격리를 하자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모두에게 위험성을 알리면 요리 같은 건 못 하게 하겠죠.”
“하하……. 그게 되겠나? 아마 미아즈마 얘기 들으면 맞아 죽을걸? 그렇게 고통스럽게 가느니 차라리 그냥 여기서 교수형에 처하는 게 낫지. 아니면 비소나 이런 걸로 보내거나.”
“때려죽이지 않을 만한 곳으로 보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미아즈마 옮긴다는 사람을 때려죽이지 않을 만한 곳이 어딨나?”
글쎄.
어딨을까?
사실 아까 잠깐 떠오른 곳은 업턴에 있는 우리 집이었다.
양조 과정 말고 술병 나르라고 하면 되지 않나 싶었더랬다.
우리 아빠야 애초에 그렇게까지 힘이 센 사람이 아니고, 아저씨는 나이가 들어 그런가 탈장이 생겨서 요새 뭐 옮길 사람이 마땅치 않다더라고?
‘아니, 아냐…… 그러다 괜히 옮기라도 하면…….’
내로남불이라고 욕할 수도 있는데…….
어차피 내 19세기 컨셉이 오락가락이지 않나?
우리 집에 보내는 건 좀 그렇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 보낼 생각을 하니 확실히…… 맞아 뒈질 거 같긴 하다.
우리 영국 사람들이 자기 위험을 감수한다?
이상한 일이다.
바로 죽이지.
“거봐 자네도 하하.”
아니, 아니다!
여기에도 훌륭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 있긴 하다.
거기에 더해 거의 감금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수도원…… 어떻습니까?”
“수도원? 아…… 음. 수도원?”
“네. 수도원. 거기에는 자초지종을 설명을 해도 죽이진 않을 거 같은데요?”
“죽이진 않겠지…… 확실히. 흐음…… 도망 나오려 해도 마땅치 않을 것이고.”
“그러니까요.”
“마침, 내 아는 곳이 하나 있긴 한데.”
나와 서장님 그리고 리스턴의 눈빛이 요리사에게로 꽂혔다.
요리사는 여전히 울상이었다.
홀몸이라 어디 가는 데 큰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믿음이 그렇게 훌륭해 보이지도 않는데 대뜸 수도원에 가야 한다고 하면 당연히 울고 싶긴 할 것 같다.
하지만…….
“여기 있으면 죽겠죠?”
“어, 반드시.”
“죄목은…… 뭐가 됩니까?”
“아무거나 붙여야지. 살인죄 아니겠나? 내 권한으로 죽이겠네.”
“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장이 죽이겠다고 공언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이었다면 바로 SNS에 뜨고 난리가 나겠지만, 여긴 19세기 런던이다.
죽이겠다고 하면 죽인다.
문제?
그런 게 생기겠나?
애초에 백작부터가 저 새끼 저거 죽여야 된다고 하고 돌아갔는데?
“가겠습니다…….”
그렇게 요리사는 수도원으로 가게 되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자네가 같이 가서 설명을 해 주게나. 아무래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네가 제일 잘 알지 않나? 예수님이 종종 접신도 하는 몸이니 수도원 가면 좋을 거 같은데?”
“그…….”
“귀찮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알지 않나. 런던의 치안이 점점 나빠지고만 있어. 경관들을 밖으로 빼돌리는 건 어려운 일이야.”
그 경관들 지금 도박하고 있는 거 내가 다 아는데…….
일단 서장부터가 딱히 치안에 관심이 없지 않나?
아니, 관심이 있긴 한데 주로 높으신 분들 치안에 관심이 있다.
빈민가 사람들이야 맞아 죽든 굶어 죽든 신경도 안 쓴다.
그렇다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못 하지…….
“알겠습니다.”
“나도 가지. 자네 혼자 가면 위험할 거야.”
“감사합니다, 형님.”
그래도 다행인 것은 리스턴과 함께 가게 되었다는 거다.
아닌 게 아니라 노상강도 수준이 아니라 산적도 출몰하는 것이 19세기 런던 시골길 아닌가.
수도원이라는 곳은 예나 지금이나 구석에 틀어박혀 있기 마련이다 보니, 완전 깡촌에 있었다.
그 말은 곧 가는 길이 더럽게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그닥.
당연하지만 나도 리스턴도 요리사도 하물며 마부도 좋아서 가는 길은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말발굽 소리를 제외하면 거의 조용했다.
이따금 오가는 대화도 나랑 리스턴이 나누는 것이 다였다.
“그나저나 이런 시골길은 또 처음이네요.”
“그렇겠지. 자네는 뭐…… 더더욱 그렇겠구만.”
“업턴이면 시골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거기는 그래도 작은 도시 정도는 되지. 아무튼…….”
리스턴은 그로서는 말끝을 흐리면서 요리사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출발하고 내내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자고 있을 리는 없어 보였다.
자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렇게 덜컹거리는 마차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을 수가 없어.
“자네는 지금 가는 수도원이 어떤 곳인지 알고 저 사람을 보내는 건가?”
“네?”
“역시 모르고 한 소리였구만. 요새 거리에 또 소문이 돌고 있는데, 그건 억울하게 생겼어.”
“무슨 소문이 도는데요?”
“악랄하다 이거지. 자네가 좀 악랄하긴 하잖아? 근데 이번만큼은 좀 억울하겠어.”
“아니…….”
뭔 소리여.
수도원에 가는 건데 왜 악랄하단 말인가.
수도승들이 있는 곳이니만큼 성스러운 곳 아닌가?
영문을 모르겠다.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껄껄 웃었다.
“가 보면 알 텐데, 거기 뭐 이상한 사람들이 엄청 많다네.”
“이상한 사람들이요?”
수도승이 좀 이상한 사람들이긴 할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외진 데 틀어박혀서 수행하겠어?
하지만 나도 19세기인이 된 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어간 시점이지 않나.
절대 그런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설마.’
나 같은 생각, 그러니까 ‘수도원에 사람 맡기면 그 사람이 어지간히 문제가 있어도 죽이진 않겠지’란 생각을 나만 했을까?
19세기 놈들이라면 더 많이 하지 않았을까?
“정신 이상자들이 제일 많은 곳이 수도원이야. 멀쩡한 사람도 거기 가면 미쳐 버린다는 말이 있다네.”
“아니…… 그런 사람밖에 없어요?”
“아, 아니지. 그렇지는 않지.”
“그, 그렇죠?”
“폐병쟁이들도 많이 있지.”
“아…… 이런.”
폐병쟁이라 하면 아마도 결핵일 거다.
다른 폐병도 많기는 한데…….
이 시기 의학 기술로는…….
결핵 말고는 오래 살 수 있는 폐병이 없거든.
일반적인 폐렴이라면 아예 나아 버리거나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리거나 둘 중 하나다.
그리고 결핵은…… 같이 지내는 사람에게 병을 옮길 확률이 대단히 높다.
‘그래서 낯빛이 하얗게 되었었구나.’
나는 요리사를 힐끔 바라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좀…… 다른 대우를 해 주고 싶었다.
아무리 봐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이거든.
하지만…….
런던에 있으면 죽는다.
사형 아니더라도 그렇게 될 거다.
왜?
저 사람이 장티푸스를 퍼뜨린다는 사실을 서장 외에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아 버렸거든.
아마 경찰들이 죽일 거다.
심지어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거기서 얌전히 잘 지내면 수도원장이 일상생활에 복귀해도 좋다는 추천서를 써 주기로 했으니까…….”
“뭐, 그렇긴 하지. 안 죽으면?”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말고요. 저 사람 안 자요.”
“나도 알아. 근데 알 건 알아야지.”
알 권리를 너무 챙겨 준다, 리스턴은.
나는 어쩐지 눈물이 고인 듯한 요리사를 보다가, 이내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부가 이제 다 왔다고 해서 그랬다.
런던 길도 솔직히 돌바닥이라 덜컹거리는 편인데 여긴 숫제 흙길이다 보니 슬슬 엉덩이가 아프다 못해 짓무를 것 같던 마당이었다.
요리사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제쳐 두고 나는 마차에서 내릴 수 있음에 기뻐했다.
“휘유. 살았다.”
“요리사한테 미안해하던 거치고는 지나치게 표정이 밝군그래.”
리스턴이 바로 그런 모습을 지적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뭐, 기왕 왔으니 여긴 어떤가 한번 보죠.”
“그러지. 나도 얘기만 들었지 처음이긴 해.”
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요양원 느낌 아니겠나?
뭐 그런 생각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인상 좋아 보이는 수도승 한 분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왜인지 모르게 몽둥이 같은 것을 들고 있었는데, 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예수님의 고통을 알기 위해 자기 몸을 때리는 사람이구나.’
순간 감동해서 나는 그를 향해 합장을 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