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68)
검은 머리 영국 의사-268화(268/505)
268화 수도원이야 수용소야? [1]
몽둥이는 리스턴이 보기에도 대단해 보일 만큼이나 균형 잡힌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무인인가?’
‘네?’
‘손잡이부터 끝까지 무게 중심이 딱…… 사용자에 맞춰서 떨어져. 하루 이틀 휘둘러서는 저렇게 맞춤형 무기를 구비하기 어렵지…….’
‘그래요?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몸이 너무 멀쩡한데요?’
저 몽둥이로 간간이, 그러니까 기도할 때 잠깐이나 죄지을 때 잠깐 때리는 거면 몰라도 노상 때린다면…….
지금쯤 반병신이 되었어야 할 것 같았다.
헌데 지금 눈앞에 있는 수도승은 너무 건장했다.
‘뭔 소리야?’
‘아니…… 저걸로 회개하면서 자기 때리는 거 아닐까요?’
‘무슨…… 뭣도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어. 저 무기에 남은 흔적을 보게나. 당연히 다른 사람을 패는 거지.’
‘수도승이 남을 왜 패요?’
‘잘못한 놈이 있으면 패겠지?’
‘그게…… 법적으로 허용이 됩니까?’
‘살생도 아닌데, 뭐.’
‘아.’
맞다, 여기 19세기지.
게다가 리스턴이잖아?
무기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하여간에 사람 패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이다, 이 말이다.
지금 하는 말이 틀릴 리가 없다는 뜻인데…….
“이쪽에 원장님 계십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길.”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원장실이었다.
원장실 내부는…….
내가 생각했던 수도원하고는 상당히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가구 하며 바닥에 깔린 카펫도 그렇고 뭣도 모르는 내가 봐도 딱 아, 이거 사치품이구나 싶을 정도로 화려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졸부 같은 느낌이 없었다.
리스턴네 집은 솔직히…… 진짜 아, 이게 졸부구나 싶거든?
근데 여긴 근본 있는 부잣집에 놀러 온 느낌이다.
심지어 뒤에 깔린 술병들도 하나같이 고급이다.
“아…… 명성 많이 들었습니다. 검성 리스턴 그리고 이쪽은…… 피영-신이죠?”
“네, 원장님.”
“그…… 네.”
영을 영이라 하지 않고 여엉으로 끄니까 느낌이 더 묘해진다.
일부러 그런다고 하기엔 한국말을 모를 게 뻔한 데다가, 웃고 있는 얼굴이 참으로 인자하다 보니 의심을 거둬야 맞긴 할 텐데…….
“이분이 그…… 저주받은 사람이군요?”
하여간에 원장님은 우릴 보다가 이내 요리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표정이 싹 바뀌는데 나는 무슨 사이코 드라마 보는 줄 알았다.
그 위압감에 요리사 또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허나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느 틈엔가 그의 뒤쪽으로 몽둥이 들고 있던, 건장한 수도승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랬다.
“저주라기보다는 그냥 미아즈마가 나오는 사람입니다.”
“그 미아즈마라는 것이 결국, 저주 아니겠습니까. 죄가 많은 분인가 봅니다.”
“아니, 아니.”
잠깐…….
왜 이러는데…….
내가 생각하는 종교인이랑 왜 이렇게 느낌 다른 건데…….
‘평, 아무래도 요리사 죽을 거 같은데?’
‘그렇……죠?’
왜 원장님까지 저렇게 육중한 몽둥이를 자연스럽게 꺼내 드는 걸까?
그것만 해도 충분히 괴기스러운데 왜 손바닥을 착착 치고 있는 걸까?
머리는 이유를 찾느라 정신이 없지만 가슴으로는 알 거 같다.
-으아아아아!
사실 아까부터…….
어디선가 비명 같은 게 들려오거든?
나는 숲이라 바람 소리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몽둥이를 두 개나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닥터 리스턴, 피영신. 두 분 다 뛰어난 의사시죠. 하지만 의술만으로 모든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병은 죄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니까요.”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하면 나도 맞으려나?
내 명성과 지위가 있으니 당장 그럴 거 같진 않지만…….
런던으로 돌아갔을 때 상당한 애로 사항이 꽃필 거 같은 예감이 팍 들었다.
“가벼운 죄라면 의사들의 도움만으로도 벗어날 수 있겠지만, 세상에…… 미아즈마가, 독기가 사방으로 번지는 사람이라니요? 얼마나 큰 죄를 지었겠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저희가 이 어린 양을 책임지고 ‘교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교정?
교정이 아니라 살해가 될 것 같다.
아니, 죽이지 않더라도 상당히 고통스러워질 거 같다.
그렇게 해서 정말 수도원장 말대로 환자가 나아진다면 또 모르겠는데…….
‘그럴 리가 있냐!’
세상에 맞아서 좋아지는 보균자가 어디 있냐.
아니, 맞아서 좋아지는 병이란 게 있나?
보통은 맞으면 나빠진다.
물론 맞아야 될 것 같은 사람도 있긴 한데…….
우리는 그런 사람을 죄수라고 한다, 환자가 아니라!
“원장님?”
내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스턴이 원장님을 불렀다.
내가 요새 평신이니 뭐니 하면서 상당히 명성을 빠르게 쌓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런던 리스턴, 검성 리스턴 하면 서유럽 전역에 명성이 자자한 사람 아닌가.
그의 부름에 원장님은 진중한 얼굴이 되어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 반응이 좀 이상해 보이긴 했을 테니 더더욱 그럴 터였다.
“네? 설마 여기가 마음에 안 드신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아, 여기 평신이 표정이 좀 좋지 않아서.”
“마차 타고 오느라 그런 걸 겁니다. 하하. 아무튼, 여기서 한다는 교정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아……. 그거 좋죠. 하하. 적어도 런던 주변에서는 우리 수도원의 교정 시설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하. 이봐, 대니. 소개 좀 해 주게.”
“보는 김에 이 친구도 같이 가도 될까요? 어떤 치료를 받을지 보면 좋으니까.”
“아아……. 그러시죠.”
그러나 이어지는 리스턴의 말에 원장님은 껄껄 웃으며 대니, 그러니까 처음 우리를 맞이해 주었던 깡패 같은 수도승과 함께 우리를 내보내 주었다.
대니는 우리를 오던 길 그대로 이끌다가 중간쯤에서 옆으로 틀었다.
‘형님, 어쩌려고요?’
‘혹시 안 때릴 수도 있지 않나?’
‘아……. 형님은 때린다고 낫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음? 당연한 거 아닌가? 말이 되나? 우리가 여태 확립한 미아즈마에 대한 이론을 부정하는 셈이지 않나.’
보아하니 꽤 오래 걸을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신기가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비명만 들어도 알겠어.
아스라이, 멀리서 들려온다.
이 건물도 아닐 거 같다.
하긴, 상식적으로 제정신 박힌 사람이면 고문하는 곳에서 생활을 하진 않을 것 같긴 하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난 김에 나는 리스턴과 의견을 교환했다.
참으로 다행이게도 리스턴은 수도원장의 지침에 동의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죠, 그렇죠! 그럼 어쩌실 거예요? 저 요리사?’
‘수도원에서 팬다면…… 빼내야겠지.’
‘아하.’
‘아무래도 빼내야 될 거야. 아주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거든.’
그래, 이 비명…….
심상치 않다.
그리고 나도 익숙해진 지 오래다.
리스턴하고 다니다 보니까 사람이 어떻게 맞으면 어떤 비명을 지르는지 딱 알게 되어 버렸다.
“으…….”
앞을 보니, 수도승에게 끌려가는 요리사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을 거다.
아닐 수도 있는데, 그거까진 내가 알 수가 없는 일이고.
아무튼,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비명이 선명해지고 있다.
“자아……. 저쪽이 폐병, 저쪽이 정신병입니다.”
그즈음 우리는 수도원장이 있던 건물에서 빠져나와서 두 개의 건물을 마주하게 되었다.
수도원장이 있던 건물, 그러니까 수도승 등이 밥 먹고 자고 하는 곳은 빈말로도 허름하다고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일단 외벽부터가 상당히 정성 들여 쌓은 돌벽이었고, 안에도 아늑하기 짝이 없었다.
방마다 벽난로도 있고 가구도 상당히 좋고, 무엇보다 간간이 보이는 식기가 은이었다.
그에 비해 이건…….
“이 친구는 어디로 가게 될까요?”
“아, 정신병 쪽이죠, 아무래도. 미아즈마를 풍기는 병이라니……. 하하. 아무래도 무서운 저주 아닙니까?”
폐병 환자들이 있다는 곳은 그래도 좀 나아 보였다.
나름 마당에 하얗게 질린 사람이 나와서 해도 맞고 있고 그래.
그래 봐야 영국 해고, 프랑스나 이런 데 해에 비하면 허약하기 짝이 없겠지만…….
그에 비해 정신병 환자들이 있다는 곳은…….
‘차라리 런던 감옥이 낫겠다…….’
건물이…….
구멍이 숭숭 나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런던은 추운 나라인데, 저 지경이라니.
안 때리고 가둬 놓기만 해도 아마 꽤 죽어 나갈 거 같다.
“그럼 정신병 쪽을 볼까요?”
“네, 그러시죠.”
그런 곳을 담당하는 사람 주제에 수도승은 참으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랬는데, 너무나도 푸근한 미소와 함께 저벅저벅 걸어가서는 건물 벽면을 쾅쾅 쳤다.
그러자 안쪽에서 들려오던 소음이 확 줄었다.
‘뭐지?’
‘훈육의 결과로군. 상당히 혹독했을 거 같은데…….’
리스턴마저도 표정이 굳어지는 상황에서, 수도승은 껄껄 웃으며 안쪽을 가리켰다.
“이놈들은 말로 안 됩니다. 때려야 말을 듣죠. 다행히 지금 있는 놈들은 어느 정도 교정이 된 놈들이니, 말썽은 없을 겁니다. 이봐! 안으로 들어가!”
“으…….”
그는 웃던 얼굴 그대로 요리사를 안에 집어넣고는,
“자자, 오시죠.”
우리를 불렀다.
그렇게 들어간 건물 안은…….
‘시발…….’
‘여기야말로 미아즈마의 소굴이겠군그래.’
현세에 펼쳐진 지옥이었다.
내가 19세기 와서 지옥이란 말을 너무 남발하는 거 같긴 한데…….
이건 진짜다.
반성이 막 절로 나올 정도다.
고작해야 19세기 병원 가지고 지옥 운운했다니…….
진짜 지옥은 바로 여기 있었거늘.
“흐에에에.”
“으으으으으.”
“으아아아아!”
“조용히 해! 이 새끼가 돌았나!”
우선 널찍한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바닥엔 짚이 깔려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물이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 듯했다.
21세기 애송이들이야 영문을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알지.
아무튼, 그 사이로 창살이 달린 문들이 있었다.
문 안에는 사람이 하나씩이 아니라 여럿이 갇혀 있었다.
어떤 방에는 사지가 결박된 채 주저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누워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들어올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거 같은데, 갈아입기는커녕 세탁도 안 한 것 같았다.
똥오줌마저 그대로 말라붙어 있을 지경이니 뭐…….
찍찍.
그 사이로 쥐가 다녔다.
부스럭.
벌레도 다니고…….
끼익.
시발 깜짝이야.
그때 문이 열렸다.
“아, 마침 식사 시간이로군요. 이것들에게 줄 밥이 참 아깝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다 주님의 자식인 것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말이라도 해 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주님의 자식에게 이렇게 하고 있는 걸 문제 삼아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손수레에 커다란 냄비를 싣고 온 수도승이 주걱으로 안에 든 것들을 방 안쪽으로 퍼서 던져 주기 시작했다.
“밥 먹어라, 이놈들아!”
이따위 말을 하면서였다.
나나 리스턴도 공황에 빠지기 직전인데…….
“히, 히이이익!”
요리사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미안하네, 이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죽이자는 걸 괜히 살려서 여기로 끌고 왔나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