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69)
검은 머리 영국 의사-269화(269/505)
269화 수도원이야 수용소야? [2]
‘그냥 죽게 둘 걸 그랬나?’
‘그게 사람한테 할 소린가?’
‘얘기는 안 했잖아요.’
‘아…… 그건 그렇네. 그건 그렇고…….’
리스턴은 잠시 요리사에게서 눈을 떼고 수도원 아니, 수용소 내부를 바라보았다.
상당히 충격받은 얼굴이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비록 아오지 탄광이라든지 굴라크라든지 요덕 수용소와 같이 악명 높은 곳에 가 본 것은 아니긴 한데…….
이곳이라면 그것들 옆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도 되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저…… 저분은 돌아가신 거 같은데요?”
“으응? 그렇네. 이봐, 끌어내.”
“네!”
심지어 방치된 시신까지 있다.
못 알아봤을 거 같진 않은 게…….
벌써 부패가 시작됐다.
근데도 그냥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시신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말해 주니까 치우긴 하는데…….
“궁금한 게, 이 사람들은 죄수인가요?”
“하하.”
런던 죄수들도 이러한 처우를 받진 않는다.
아, 뭐…… 내가 가 본 감방이 하나뿐이다 보니 단언할 수 없긴 하다.
수치를 보면 보통 1년 이상 수감 하게 되면 사형이나 다름없더라고.
21세기 사람을 붙잡아다 가두는 게 아니라 19세기 사람, 그것도 감옥에 가둘 만큼 나쁘고 독한 놈들을 가두는 것이니만큼 강인하기 짝이 없는 놈들일 텐데 픽픽 죽어 나가는 걸 보면 확실히 엉망이긴 할 거다.
‘군의관 때 봤던 훈련병 숙소도 충격이었는데…….’
그 정도만 후져도, 그 정도만 사람들이 몰려 있어도 20대 청년들이 때아닌 폐렴에 걸릴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죽기도 한다.
인간이란 강인한 듯하면서도 나약한 존재다, 이 말이다.
아무튼, 죄수에 준하거나 더한 벌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수도승에게 물어봤다.
저 사람들이 죄를 지은 건지 뭔지에 대해.
그러자 수도승은
껄껄 웃으며 답했다.
“주님 앞에 우리는 모두 죄인이죠.”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그리고 이들은 더 큰 죄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귀신이 들릴 수 있었겠습니까?”
“아.”
귀신 들렸다.
이 말을 듣고 나니 딱 알겠다.
인식이 이러하니…… 사람들을 이토록 괴롭힐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달까?
“그럼 귀신 쫓는 행위도 하십니까?”
“하죠.”
이번엔 리스턴이 물었고, 수도승은 자신이 차고 있던 몽둥이를 툭툭 두드리는 것으로 대답을 갈음했다.
미친…….
그러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에 대한 치료라는 게 이 막사에 가둬 두고 패는 것이라는 얘기 아닌가?
요리사를 돌아보니 이미 별로 먹지도 못했던 주제에 토악질을 해 대고 있었다.
수도승은 그런 요리사의 등을 두드려 주며 인자하게 웃었다.
“벌써 조금씩 나오는구만, 나쁜 것이!”
표정을 보아하니 진심이다, 저거.
‘교화가 가능할까?’
되겠냐?
안 되지.
어설프게 시도하다가는 이단으로 몰릴 수 있다.
물론 내 편견과는 달리 19세기 런던에서는 더 이상 마녀사냥이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지 않을 거라는 얘기는 또 아니었다.
얼마든지 가능하다, 죽는 건.
수도승쯤 되면 남의 목숨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을 수 있는 신실한 사람들을 꽤나 구할 수 있을 테니까.
‘이 사람만 빼내죠, 일단.’
‘그래, 그게 좋겠네.’
리스턴이 한편이니 요리사는 빼낼 수 있을 것이었다.
어떻게 빼냐고?
돌벽도 부수는 게 리스턴이다.
이런 나무 막사 정도는…….
아예 허물지 않는 선에서 구멍 내는 게 어렵지, 부수는 게 어려울 일은 없다는 얘기다.
그렇게 의견을 일치한 우리는 수도승을 따라 듣는 둥 마는 둥 나머지 공간도 둘러보고는 마차에 올랐다.
하룻밤 자고 가라는 것을 극구 만류하고서였다.
“좋아. 밤이 깊었네.”
“좋아요.”
물론 런던으로 향하진 않았다.
애초에 하룻밤 사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다.
우리는 마차를 총으로 무장한 마부에게 맡기고, 수도원으로 향했다.
경비 병력 같은 건 없었다.
일단 19세기 사람들이 수도원을 털 작정을 할 수 있겠나?
신에게 저주받을 텐데?
게다가 이 수도원에 속한 사람들, 후원하는 사람들 모두 뒤가 켕기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게 뻔했다.
귀신 들린 사람들을 무상으로 치료해 주는 것뿐인데 뭔 잘못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대안이 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야.’
정신과 질환에 대한 편견은 21세기에도 존재한다.
마냥 편견이라고만 볼 것도 아닌 것이…….
조현병과 같이 망상이 있는 질환 환자가 치료받지 않고 방치될 경우엔 위험한 것도 사실 아닌가?
그렇다면 약이 있나?
없다, 지금 당장은.
내가 정신과가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20세기 중반 이후에나 나올 거다.
이걸 어떻게 아냐고?
20세기 초중반까지 정신질환자들 대상으로 전두엽 절제술을 했었거든…….
셔터 아일랜드라는 영화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뭔 생각을 그리하나?”
“아…… 저 사람들이 좀 보기 그래서요.”
“요리사 말고?”
“아.”
보아하니 리스턴은 우리의 요리사만 측은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하긴 이게 19세기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이긴 할 거다.
그러니 뭐 어쩌겠어, 내가.
일단 요리사나 구하자.
그리고…….
‘폐병 환자들…….’
그들은 사정이 좀 나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이 나은 건 아니었다.
일단 인구 밀도가 너무 높았다.
아니, 기침하는 사람 옆에 기침하는 사람이 우글거리더라니까?
그렇게 되면 낫다가도 또 걸릴 거다.
‘폐병 환자들을 위한 요양원을 하나 만들어 볼까……?’
말이 폐병 환자지 결핵이다, 결핵.
별명이 화이트 페스트, 즉 백사병인데…….
그도 그럴 것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얄궂게도 산업 혁명이 꽤나 진행된, 그러니까 19세기 선진국들 사람들이 더더욱 고통을 받고 있다.
결핵이란 병은 호흡기 질환이면서 동시에 아주 천천히 퍼지는 병이다 보니 아무래도 인구 밀도가 적은 농경 사회보다는 산업 사회에서 치명적이라 그렇다.
당연히 노동자들이 훨씬 더 많이 희생당하고 있지만, 귀족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호흡기 질환이니까.
“저길세. 지키는 사람도 없군. 그리 어렵지 않겠어.”
“근데…… 족쇄를 채워 놓던데, 그건 어떻게 하죠:?”
“족/쇄 만들면 되지.”
“아하.”
상념에 빠진 사이 우리는 요리사가 갇혀 있는 건물에 도달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지만…….
콱.
리스턴이 잽을 날리니까 빗장 쳐져 있던 부분이 박살 났다.
“우우우우우!”
“으으으으으!”
밖에 있을 때부터 들려오던, 아직 잠들지 못한 병자들의 신음과 비명이 더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수도승들이 올 거다.
온다고 해서 우리가 잘못되진 않겠지만…….
리스턴에게 맞을 수도승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이건 생각 못 했는데.”
“그냥 튈까요?”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자고? 왜 이렇게 사람이 무정한가.”
“아니, 위험해 보이니까…… 아.”
후달렸지만, 역시나 괜한 걱정이었다.
리스턴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휘두르자 창살이 잘려 나갔다.
족쇄?
족쇄 또한 단칼에 잘렸다.
“으…….”
요리사는 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맛이 가 있었다.
아까 가둘 때 어디다 가두는지 봐 놨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알아보지도 못할 뻔했다.
아무튼, 리스턴은 체격이 좋은 편에 해당하는 요리사를 단숨에 어깨에 메고는 튀기 시작했다.
“음, 형님?”
“왜.”
그렇게 마구 내달리다가, 뒤를 돌아봤는데 의외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수도원 쪽에서 누구 하나 나오지도 않았다.
“아무도 안 따라오는데요?”
“그래? 하긴…… 이 사람들이 돈을 내는 것도 아니긴 하지.”
“누가 돈을…… 아, 우리가 냈지?”
헌금이라고 해야겠지?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또 요리사를 맡기는 비용이라고 생각해서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했더랬다.
“그래. 와 보고 낼 것을 그랬네. 뭐 잘된 일이야.”
“네? 그냥 생돈 뜯긴 건데요?”
“아니지. 아무리 봐도 우리가 빼 갔을 거라고 생각할 텐데…… 우리는 이미 돈을 냈잖아? 문제 삼을 리가 없지.”
“아……. 근데 우린 줄 어떻게 알겠어요.”
“아까 자네가 호들갑을 떨어서 칼질할 때 평소처럼 힘을 줘 버렸어.”
“그게 무슨……?”
“이 세상에 그렇게 깔끔하게 쇠를 자를 수 있는 검수는 나뿐이야.”
“아…….”
의사의 말이라고 하기엔 좀 이상한 말이긴 한데…….
검성 리스턴이지 않나.
그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끙.”
하여간, 우리는 마차 가까이에 와서 요리사를 내려 두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정신을 차린 것인지 그는 연신 감사 인사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가둔 게 우린데 이런 인사를 받아도 되나 싶긴 했지만…….
‘나 같아도 감사 나오지.’
거기에 갇혀 있다가 풀려났다고 생각해 보면 과한 건 아니었다.
“근데 어쩐다, 이 사람을?”
“그러게요. 아이씨…… 미아즈마를 퍼뜨리긴 할 건데…….”
“그냥 여기서 보내 줄까?”
“그…….”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도망치게 해 주는 거라 이해하겠지만 상대는 리스턴이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어느 틈엔가 다시 꽂아 넣었던 칼을 쥔 채로.
어떻게 된 게 방금 쇠를 적어도 두 번이나 자른 거 같은데 이가 하나도 나가지 않았다.
“히, 히이익. 사, 살려 주십쇼. 제가 뭐든 하겠습니다! 정말! 뭐든!”
죽음을 떠올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요리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잠깐 사이에 수척해진 그는 눈물 콧물을 흘려 대고 있었다.
불쌍하긴 한데 저기에 장티푸스균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니까 찝찝함이 더 크게 몰려오고 있었다.
그때 리스턴이 요리사 앞에 다가가 무릎을 굽혔다.
여전히 칼은 쥔 채였다.
“정말 뭐든지 할 수 있나?”
“네? 네! 정말입니다. 어차피 가족도 없습니다!”
“런던에 돌아가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아야 할 텐데…… 그래도 괜찮다고?”
“네!”
나 이런 거 어디서 본 거 같다.
범죄도시나 무간도 같은 느와르 장르 영화에서.
분명히 리스턴은 의산데…….
그것도 명읜데 어째서 이러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걸까.
“막내 들어오겠구만그래.”
그리고 우리 마부 아저씨는 왜 이렇게 갱단 같은 말을 하는 걸까.
아니…….
‘우리 설마 진짜 갱단인가?’
생각해 보니까 리스턴이 개인적으로 부리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다들 인상이 그렇게까지 좋지 못했다.
마부도 그랬다.
총도 들고 있고…….
‘잉?’
내가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리스턴은 요리사와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좀 더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래, 각오가 대단하군. 그럼 받아 주지.”
“가, 감사합니다!”
“이봐 평.”
“어, 네.”
그러다 말고 갑자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약간 무섭기도 해서 즉시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해부 실습실 담당자가 필요했잖아. 피도 빼야 하고, 시신도 지켜야 하고.”
“아, 그렇긴 하죠.”
시신 도둑이라는 게 있다, 런던에는.
지금까지는 나나 리스턴 또는 제자들이나 블런델이 돌아가면서 지켰는데…….
요리사가 해 주면 좋긴 할 거다.
“어차피 시신은 미아즈마에 걸리지 않으니까, 이 친구가 좀 만져도 되지 않겠어?”
“그쵸.”
“요리사니까 칼도 좀 다룰 줄 알 거고. 도둑놈들 오면 써먹기 좋겠지.”
“그…… 그렇죠.”
그렇게 식구 하나가 늘었다.
직급은, 시신 지킴이 정도가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