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7)
검은 머리 영국 의사-27화(27/505)
27화 해부의 신 [2]
“이건 실로 신이 내린 재능이로구만!”
“주여. 감사합니다.”
“허허. 정말이지 신실한 청년이로구만!”
“하하, 과찬이십니다.”
내 재능을 꿰뚫어 본 로버트 리스턴 박사는 껄껄 웃으며 신을 찾았다.
평소 교회를 정말 열심히 다니는 거 같더니만 역시나 내 말에 홀랑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주님께서 교수님과 저를 이 자리에서 만나게 해 주신 것은 아닐까요?”
해서 용기를 얻은 나는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더 나가 보았다.
중세에 태어났다면 지금 들고 있는 리스턴 칼이 아닌 진짜 칼 들고 사람 목을 여럿 베었을 사람 아니던가.
타고난 기사.
아마 촌부로 태어났어도 기사가 되었을 거 같은 인간인데…….
이런 인간을 내 편으로 확실히 만들면 어찌 되겠나.
‘아무도…… 우리 앞을 막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너의 힘과 내 머리가 합쳐지면 여포와 진궁보다 백 배는 강한 시너지가 날 거다!
뭐 이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런 내게 살짝 죄책감이 들게 하는 얼굴이 된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이 입을 열었다.
“과연 신의 뜻이로고.”
아마 해부학실만 아니었으면 무릎을 꿇었을 터였다.
진짜로 그랬을 거 같은 얼굴이었다.
“하여간…… 좋아. 그런 걸 구분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면, 언제고 수술에 도움이 될걸세.”
“네, 용맹정진하겠습니다.”
“그래. 하하. 다음 수술엔 보조로 와 보게.”
“네? 저는 아직……”
“이런 재능에 학년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라면 오게.”
“어…… 네.”
물론 신에 심취한 얼굴이라고 해도, 로버트 리스턴 박사의 얼굴은 전도보다는 회개시키는 데 유리한 얼굴이었다.
진짜로 개무서웠다.
그런 사람이 오라고 소리치는데 안 온다고 할 수 있을까.
말로는 할 수 있다고 소리치던 놈도 막상 앞에 서면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터였다.
나도 그랬다.
이런 망할.
‘그 살인 행위에…… 내가 동참을 하게 된다…… 이 말인가?’
별걱정이 다 들기 시작했다.
아직은 해부만 하고 싶단 말이다.
마취제를 누군가 만들어 주면 그때 하고 싶다고…….
아니, 소독의 개념이라도 확실히 잡히고 나면 그때 하자.
‘그보다 나도 죽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세균들이 덕지덕지 붙은 그 커다란 칼에 베이기라도 하면…….
내가 앨프리드에게 치료해 준 것처럼 누가 해 줄 것도 아니고.
누가 치료해 주겠다고 나서면 그것 때문에라도 더 빨리 죽게 되지 않겠나.
너무 무서웠다.
“일단 더 해 보게.”
“아, 네.”
나를 잡념에서 건져 준 것은 냅다 잡념 속으로 집어 던져 버렸던 로버트 리스턴 교수님이었다.
딱히 인도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그냥 해부나 하라고 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저 얼굴로 말하면 안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섭다고.
“칼…….”
어차피 더 할 생각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시신 상태가 좋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우리 뒤에 놓인 시신처럼 되지 않겠나.
나조차 저런 시신으로 해부하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헷갈릴 거 같았다.
썩어 버린 지 오래다 보니 안의 구조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되기 전에 최대한 많이 봐야 했다.
‘아니지. 내가 보려고 하는 건 아니지.’
나야 지금도 해부학적 구조라면 눈 감고도 슥슥 그려 낼 수 있을 정도로 통달해 있는 사람 아닌가.
딱히 배만 그런 건 아니었다.
사지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이중에서는 군계일학이라는 말도 부족했다.
이 새끼들한테는 닭도 과분하니까.
지이익.
하여간 나는 가죽을 돌려 완전히 벗겨 냈다.
이것 하나만큼은 포르말린으로 처리한 시신보다 훨씬 수월했다.
포르말린은 부패를 방지하는 것 외에도 경화 작용도 있지 않나.
그에 비해 이건 완전 생이라, 숙달된 외과 의사인 내게는 일도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와아…….”
“이렇게 생겼구나.”
“허어…….”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위팔 쪽 근육에 모두가 감탄하고 있었다.
일단 시신이 젊은 남자였기에 근육의 형태가 썩 괜찮기도 했거니와, 나처럼 완벽하게 레이어를 벗겨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나.
모르긴 해도 얘들은 처음 보는 광경일 터였다.
‘델토이드(Deltoid, 삼각근)…… 펙토랄리스 메이저(Pectoralis major, 대흉근). 흠…… 이 밑으로 가는 게 바이셉스(Biceps, 이두근).’
나?
나야 익숙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보자마자 눈에 띄는 근육 이름이 슥 돌아가는 정도?
‘뒤로는…… 역시 델토이드가 덮고 있고……. 밑에 삼두, 그리고 옆으로는…… 브라키오라디알리스(Brachioradialis, 상완요골근). 와…… 역시 난 천재네.’
뒤도 같았다.
“와…….”
난 여전히 감탄하고 있는 조지프와 앨프리드, 그리고 갑자기 불안한 기색이 느껴지기 시작한 콜린과 그의 똘마니를 뒤로하고 칼을 집어 들었다.
델토이드, 즉 삼각근 때문에 뭐가 잘 안 보이지 않나.
이걸 좀 잘라내야 안쪽을 볼 수 있을 터였다.
해서 칼을 막 가져다 댔더니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이었고, 나는 덫에 걸린 쥐처럼 딱 멈추었다.
여기서 감히 손을 더 움직일 수 있는 박력의 소유자는 아니니까.
“어…… 네. 교수님.”
“이렇게 깨끗하게 드러났던 적이 드문데…… 일단 드로잉이라도 하는 게 어떤가. 내 아는 화공이 있으니 바로 연락하겠네.”
화공이라.
사진도 아니고 이걸 그림으로 그리겠다, 이건가.
시대상을 떠올려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1831년.
최초의 카메라가 등장하긴 했다는데…… 그걸로 찍은 사진은 그냥 ‘와 사진이네’ 싶은 수준에 그쳤다.
해상도가 너무 떨어져서 학술적 가치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얘기였다.
그러니 지금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의 말도 일리가 있다 이 말이었다.
‘다른 놈이 하는 말이면 씹을 텐데…… 뭐라고 한다…….’
거절하고 싶지만 명분이 필요했다.
어쩐다.
‘주여…….’
하늘을 바라보니 보이는 건 어둑한 천장이었다.
희끄무레한 것들이 점점이 움직이고 있었다.
구더기들이었다.
저것들이 곧 여기서도 창궐하지 않겠나?
그럼 아마 제대로 된 모양을 보지 못할 터였다.
‘역시 주님이 주신 지혜를 활용해야겠군.’
초조해진 난 아까 질렀던 천재 메타를 한 번 더 활용하기로 했다.
그냥 말로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이상한 수작도 부렸다.
“음…… 흐으음.”
“뭐 하는 건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억이라니?”
“이 형태를 외웠습니다.”
포토 메모리인지 나발인지 하는 소리도 있지 않나.
나름 머리 좋다는 놈들 다 모이는 의대에서나 병원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어쩐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몇 개 안 되는 댓글에서조차 존재한다는 전설 속 용어인데…….
하여간 나는 그걸 차용하기로 했다.
“외워? 이걸?”
“네. 어릴 때부터 뭐 외우는 건 잘했습니다. 특히 이런 건 자신 있습니다.”
내 말에 조지프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새끼.
닥치고 있어라.
내 바람과는 별개로, 조지프는 닥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감히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이 대화 중인데 끼어들 수 있는 존재는 없을 테니까.
아마 여왕님 정도나 되어야 눈치 안 보고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있다라…… 흠……. 천재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래도 안 되네. 이 밑으로 뭐가 더 있는 것도 아닐세. 기껏해야 근육 몇 개랑 혈관이나 좀 있는 게 다지.”
“아…….”
나라고 별수 있나.
안 된다는데 뭐라고 하겠어.
‘근육 몇 개라고 했냐? 이 밑으로 회전근이 몇 개가 더 있는데! 너 그거 기능이랑 생김새 알아?’
머릿속으로는 여포에 빙의해서 외치고 있었지만, 고개가 절로 숙여진 지 오래였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딱 예상했던 반응인지 로버트 리스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평생 이 반응이 아니었던 적이 없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방금 뭐 신이 연결해 주신 관계 어쩌고 했던 게 마음에 걸리긴 하는지, 평소와는 달리 칼을 내려놓고 있는 나를 보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음.”
뭔가 하고픈 얘기가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좀 곤란한 말인 듯했고.
무슨 소리건 간에 난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니, 네라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자네, 런던에 와서 파티에 가 본 적이 있던가?”
오.
근데 이건 예상을 확 넘어선 이야기였다.
파티라니…….
그건 인싸들만의 문화 아닙니까요.
저 같은 노란 얼굴을 대체 누가 불러 주겠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한 번도?”
“네.”
“아니, 어떻게…… 요새 파티 시즌인 거 몰랐나?”
이러한 생각은 비단 나만 떠올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조지프와 앨프리드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생각보다 19세기 영국의 인종차별은 어마어마하거든.
아는 사람들끼리야 좀 나은데…….
모르는 사람은 진짜 대놓고 지랄하기 일쑤였다.
대영제국 시절이니 아마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도 더할 터였다.
하여간 뭐라 할 말이 없어 닥치고 있다 보니 우리 박사님도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말을 이었다.
“뭐…… 나랑 가면 불미스러운 일은 없을 걸세. 어차피 젠체하는 파티도 아니고, 내 아는 지인들끼리 하는 조촐한 파티야. 나름 괜찮은 사람들이니…… 알아 둬서 나쁠 건 없을 걸세.”
이건 배려였다.
아니, 기회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막 마음이 내키는 건 아니긴 했다.
인종차별을 당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거 여간 기분 드러운 일이 아니거든.
‘박사님하고 같이 가고…… 소개를 박사님이 시켜 주는데 뭐라 할 사람이 있을까……?’
허나 로버트 리스턴의 초대 아닌가.
만약 함부로 대하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대영제국의 중추쯤 될 터였다.
차별 좀 당해도 얼굴 한번 보는 게 이득일 터였다.
‘좋지, 뭐.’
사실 대놓고 뭐라 할 놈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거 같았다.
‘감히’라는 말이 절로 떠올라 막.
“네, 그럼 가겠습니다. 제 친구들도 가도 될까요?”
“얼마든지. 이 팀에 있는 친구들은 다 따라오게.”
아.
콜린이랑 그 똘마니는 아닌데.
하지만 이 분위기에서 아니라고 하면 뒈지겠지…….
“네, 감사합니다.”
“네, 교수님.”
같은 생각을 콜린도 했는지, 최대한 예의 바른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나를 째려봤다.
나도 째려봤다.
새꺄.
어쩌라고.
나도 싫어.
“자, 그럼 가지.”
화공은 리스턴 박사님의 부름을 받자마자 달려왔다.
어쩐지 굉장히 후달려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겁먹은 얼굴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네, 교수님.”
하여간 그렇게 끝이 난 후 우리는 교수님을 따라 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누구 집이라고 했는데 그건 기억나지 않았다.
어차피 가면 소개도 해 주겠지, 하고 왔는데…….
“워후.”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파티라고 해 봐야 의사들도 가는 파티니 만큼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밖에서부터 웃음소리가 장난 아니게 들려오고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
뭐 엄청 재미난 사건이라도 터졌나 해서 열린 문 틈새로 안을 봤는데, 그럴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아저씨들 셋이 앉아 있었다.
진짜 재미없게 생긴 아저씨들.
근데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으려니, 교수님이 말했다.
“아, 웃음 가스라는 게 있네. 그걸 마시면 기분이 좋아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