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70)
검은 머리 영국 의사-270화(270/505)
270화 여름이었다 [1]
여름은 여러모로 짜증 나는 계절이다.
원래도 습한 런던 날씨가 더 습해지기도 하거니와 기온도 조금이나마 더 올라가니 당연한 일이었다.
뭐 그래 봐야 한국 여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한데…….
이게 19세기다 보니 참 그랬다.
“형님, 형님.”
아, 이거 나 아니다.
“어, 왜?”
수용소 아니, 수도원을 하루라도 겪어 봐서 그럴까?
아니면 그냥 이게 적성에 맞는 걸까.
뭔지는 모르겠는데…….
요리사는 아주 훌륭한 깡패가 되어 있었다.
시신 지킴이를 하다가 시신을 생산하기도 하는 놈이 되었으니, 깡패란 수사를 붙임에 있어 딱히 억울한 일은 없을 터였다.
“이것 좀 보십쇼. 피영신 형님이 알려 주신 대로 하는데 피가 잘 안 빠지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도살장 쪽 애들하고 했던 회식 때 힌트를 얻었습니다.”
“아, 게네. 순한 애들이지.”
순해서 사람 죽여다 돼지 밥 만들고 그런다.
내가 그거 알게 된 이후론 여기서 돼지고기 안 먹는다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유대인인 줄 알 거야.
아, 나 동양인이지, 참.
유대인 말고 무슬림인 줄 알겠어.
아, 이건 적어도 런던에서는 그렇게 좋은 일이 아니지, 참.
“그래서 이렇게 걸어 봤더니, 보십쇼. 피가 막 빠집디다.”
“뭐야, 오…… 괜찮은데?”
“그러니까요. 하하. 피영신 형님 말씀대로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래, 조선말이 생각보다 지혜롭다니까.”
나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해부 실습실 옆에 마련된 작은 방에 와 있다.
병원이랑 같은 건물은 아니다.
전에는 여기 건물이 비싸기도 하거니와…….
시신 도난 등의 보안 이슈 때문에 그냥 작게나마 병실 옆에 해부 실습실을 뒀었는데 몇 달 사이에 돈을 더 벌기도 했고, 우리 요리사가 시신 지킴이 노릇을 톡톡히 해 주고 있는 덕에 아예 작은 건물을 매입해 해부 실습실로 쓰고 있다.
아무튼, 그 작은 방에는…….
‘하…….’
시신들이 갈고리에 걸려 있다.
경정맥에 구멍이 난 채, 거꾸로.
이게 뭐 일부러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하려고 이렇게 해 둔 건 아니긴 했다.
적어도 피는 제거해야 포르말린 처리를 했을 때 꽤 오랫동안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알아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근데 내가 뭐 피를 제거해 봤겠나?
그런 거 본 적도 없다.
그나마 경정맥을 열거나 해야 어디 피가 몰리는 일 없이 제거할 수 있을 거란 아이디어를 냈을 뿐이다.
“보게나, 평. 이제 더 오래 가겠어. 확실히 교육용 해부 시신은…… 그렇게까지 많이 필요치 않게 되겠는데?”
“그…… 그렇죠.”
그걸 우리 시신 지킴이가 저기 도살장 애들이랑 이렇게 저렇게 해 가지고 개선한 것이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다.
끔찍하다.
그렇긴 한데…….
확실히 리스턴 말대로다.
이렇게 깔끔하게 피를 제거하면 확실히 오래 갈 거다.
애초에 해부학 자체는 슬슬 완성이 되어 가고 있지 않나?
미세 해부학이야 생리학과 같은 학문이 같이 발전해야 밝힐 수 있는 일이니 그냥 둔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대다수의 수술에 필요한 지식은 이미 가지고 있다.
그걸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건데, 이전엔 썩기 전에 급하게 해야 하다 보니 대강대강 쑤셔 박는 식의 지식이 많았다.
그러다 사고 나면, 그러니까 시신의 미아즈마에 노출이 되면 골로 가는 거고.
“사업 하나가 저물겠구만.”
“네?”
그런 게 개선되는 시기다, 이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눈앞의 그리 좋지 못한 광경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교육도 잘되고, 시신 요구량도 줄고…….
물론 수술 연습을 위한 시신이야 여전히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되면 윈윈 아니겠나?
하고 있는데 리스턴이 영문 모를 소리를 해 대고 있었다.
해서 물어보니, 이번에는 이름 잃은 자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는 시신 지킴이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번에 시신 강탈자들에게 칼빵 먹은 것 때문에 생긴 얼굴의 흉터가 말할 때마다 꿈틀거리는 것이 진짜…… 한 10년 굴러먹은 깡패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피영신 형님을 노리는 놈들이 있다는 소문이 돕니다.”
“소문이 돌아요?”
본인은 오히려 좋아했다.
외출할 때마다 혹시 요리사, 즉 장티푸스 보균자라는 게 걸릴까 두려워 변장을 해야만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다면서였다.
사실 칼빵 없어도 어지간한 눈썰미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인상이 많이 변하긴 했는데…….
아무튼, 칼빵 생긴 뒤로는 보다 서슴지 않고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더랬다.
“네. 시신 납품업자들 중에 험악한 놈들도 있지 않습니까.”
“아…….”
명색이 시신 납품업자인데 험악하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 않나?
아무튼, 납품업자 얘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리스턴이 했던 사업이 저문다는 말이 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물론 이게 단숨에 저물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마부가 실직하게 되고, 타자기가 보급되면서 사라진 필경사처럼 포르말린이 보급되면 시신 납품업자들도 대부분 실직하게 될 터였다.
“그놈들이 형님을 노린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런 망할.”
“이건 보통 일이 아니군그래.”
입은 ‘망할’이라고 하긴 했지만, 옆에 리스턴이 있다 보니 든든했다.
헌데 리스턴이 보통 일이 아니라고 하니 솔직히 좀 쫄렸다.
“왜요?”
“자네가…… 진짜 단기간에 명성도 쌓고 돈도 벌지 않았나?”
“그렇긴 하죠.”
“그래서 가끔 강도도 들지 않나. 다행히 앨프리드네 집이 경호가 괜찮아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을걸.”
“사실 좀 모자란 거 같아서 애들 풀어 놓긴 했죠.”
“그래. 그렇지. 헌데 납품업자 놈들은 좀 달라. 일단 사람 시신 팔아먹겠다고 작정한 놈들이 제정신이겠나?”
19세기 런던은 마굴이다.
괜히 찰스 디킨스 같은 사람들이 런던을 바빌론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아니란 얘기다.
진짜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를 여기 와서 보면 명백해진다.
하지만…….
리스턴의 말마따나 하고 많은 일 중에 하필이면 사람 시신 판매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놈들이 제정신일까?
“그럼 어쩌죠?”
내 말에 리스턴은 잠시 말이 없었다.
이런 경우는 상당히 드물기도 하거니와 나라고 해서 지금 상황에서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어서 가만히 있었다.
지킴이?
이 친구야 뭐 우리 허락 없이는 입도 벙긋 안 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리스턴이 입을 다물고 있는데 감히 떠들 수 있는 강심장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조선말에 선수필승이라는 말이 있다 들었네.”
그렇게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고 있던 리스턴이 입을 열었다.
황당한 말이었다.
내용보다는…….
“그런 건 대체 어디서 듣는 겁니까?”
“아, 지금 청이랑 분위기가 심상치 않잖아. 그래서 오히려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아. 거기 통해서 책을 하나 받았네. 속담?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말이라는데, 맞나?”
“그…… 그렇긴 한데.”
이제 곧이구나 싶었다.
조선 팔아 쌓은 명성이 들통나게 생겼다, 이 말이다.
다행한 것은 그사이에 우리가 쌓아 놓은 유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거다.
지금도 봐라.
사실 놈들이 노리는 건 나 하나라는데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있잖아.
‘잉? 그러고 보니 포르말린 특허 낸 거 나랑 리스턴 둘인데 왜 나만 노려?’
깊이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일이긴 한데…….
원래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다.
모든 게 너무 깊이 생각하면 좀 그래.
그리고 그게 리스턴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마침 정리 좀 할 때가 되기는 했어.”
“네? 뭘요?”
“갱단 말이야. 너무 많잖아.”
“그…… 근데 그걸 왜 우리가 해요?”
“이봐, 평.”
“네, 네. 형님.”
분위기가 삽시간에 느와르가 되었다.
사실 시신 여러 구를 천장에 걸어 놓은 데다가, 밖에는 그렇게 피 빼낸 시신들이 누워 있다.
그나마 누워 있는 시신들은 포르말린 처리를 해 놓았다지만, 21세기와는 달리 얼굴을 가리거나 하지 않았다.
-뭐 하는 건가!
-사람 얼굴을 왜 가려?
-그…… 무섭…….
-허어! 대영제국의 시민이 어찌 무섭다는 말을 하는가.
-고추 떼고 싶어서 이러나?
리스턴, 블런델 등이 지랄해서 그렇다.
둘만 그러는 게 아니라 원장님도 그렇고 별 상관도 없는 제이미 경이나 대미언 경 등도 그랬다.
미친놈들…….
아무튼, 시신이 사방 천지에 있다 보니 신세계, 무간도 저리 가라였다.
“우리가 소 췌장을 공짜로 들고 오고 있지 않나?”
“그렇죠.”
“몇 달 됐지?”
“거의 반년 됐죠.”
“그걸로 돈 많이 벌고 있지?”
“어마어마하죠.”
배포가 작아서 함부로 ‘어마어마’라는 표현을 쓰는 게 아니다.
진짜 미쳤다.
봉이 김선달이 강물 팔아 돈 벌었다는데, 우리는 버려지던 소 췌장 들고 와서 떼돈을 벌고 있다.
몇몇 병원에서 우리의 비밀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제조해 내고 있긴 한데, 귀족들이 원조한테 오고 싶지 짭한테 가고 싶겠나?
게다가 런던 근교에서 가장 커다란 도살장에서 췌장을 우리한테만 독점 공급하고 있다 보니 상대가 안 된다.
“그게 설마 완전 공짜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도살장 애들 착하잖아요.”
“사람 죽이는 놈들 보고 착하다니…… 조선 사람이라 그런가? 전투 민족이라 그래?”
“우리한텐 착하니까…….”
“다 바라는 게 있는 거지. 경찰하고의 관계, 그리고 나.”
“형?”
“그래. 나.”
리스턴은 어느새 검을 뽑아 들고 서 있었다.
스릉 소리도 못 들었다.
“검성 리스턴.”
“아니…… 그래서 대신 납품업자 쳐 준다고요?”
“납품업자 놈들이 슬금슬금 밀수에도 손을 대고 있다더구만. 그렇지 않아도 한번 치려고 했어.”
“아…….”
“근데 마침 자네를 노린다고 하니, 뭐. 겸사겸사 잘됐지.”
“아무리 그래도 혼자 가요?”
“응? 왜 혼자가. 자네도 가야지.”
“제가 뭘 할 수 있다고. 저 싸움 못해요!”
“악명을 떨치고 있지 않나. 대충 피 묻히고 분위기만 잡아. 분명히 자네 보자마자 오금 지릴 놈들 꽤 있을 거야.”
리스턴은 칼을 이리저리 휘두르다가 아쉽다는 얼굴이 되어 칼집에 넣었다.
제아무리 검성이니 뭐니 해도 대놓고 사람 토막 치러 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의사는 의사니까?
해서 그가 꺼내 든 것은 경찰 진압용 몽둥이였는데, 사실 저것도 훌륭한 둔기라고 보면 되었다.
“형님!”
“피영신 님!”
밖에 나오자 도살장 애들이 모여 있었다.
평소와 같은 모양새를 하고서였는데, 도살장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큰 칼과 총을 차고 있다 보니 확실히 갱은 갱이다 싶었다.
“자, 가자!”
“와아아아!”
그렇게 우리는 납품업자를 치러 가게 되었다.
‘아니…… 뭐야, 이게?’
나는 완전히 얼떨결에 가게 된 셈인데…….
멀리 구석에 화학자 아저씨가 보였다.
손에 든 것을 보아하니 뭔가 성과를 낸 모양이었다.
시벌.
궁금한데…….
사람 죽이러 가게 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