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71)
검은 머리 영국 의사-271화(271/505)
271화 여름이었다 [2]
쾅.
보통 뭔가…….
싸움을 벌일 때는.
그러니까 일대일 말고 이렇게 수십 명 단위의 싸움을 할 때는 작전을 짜고 그러지 않나?
아닌가?
내가 너무 삼국지에 절여져서 그런가?
서양 놈들은 멍청하게, 정정당당하게 앞으로 튀어 나가나?
“뭐, 뭐야!”
한밤중이다.
제아무리 빈민가인 이스트엔드라 해도 이만한 인원이 한 손에는 횃불, 다른 한 손에는 칼이나 총기를 들고 움직이고 있으면 경찰이 움직여야 옳았다.
아, 움직이고 있긴 하다.
우리랑 같이!
“어, 어! 리스턴이다!”
하여간에 우리는 납품업자 소굴 중 가장 메인이라고 알려져 있는 건물에 들이닥쳤다.
빈민가에 있는 건물치고는 상당히 육중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리스턴이 톡 치니까 쾅 하고 부서지더라고.
리스턴이 너무 강해서도 있겠지만 불량이기도 할 거다.
영국 놈들이 그렇지 뭐.
“뭐, 뭔데! 시발! 피영시인도 있어!”
너는 뭔데 시발거리냐.
언제 배웠어.
하고 보니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얼굴이다.
저놈 처음 대학 들어왔을 때 시신 납품하던 놈이다.
지금이야 뭐 경찰이랑 독점 계약했으니 볼 일 없지만, 아무튼.
“아일랜드 갈 놈들은 오른쪽으로 가서 서라. 몸 성히 나갈 수 있어.”
리스턴은 맨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한 손으로 진압용 봉을 들고서였다.
아, 모양만 같지, 저건 철제다.
그냥 철 덩어리다, 이 말이다.
원래 진압봉도 잘못 맞으면 뒈지는데, 저건 잘 맞아도 뒈질 게 뻔하다.
아마 지금 마주하고 있는 놈들도 그러한 사실을 모르진 않을 거다.
“거, 검성…….”
“지, 지랄 마! 병신아! 검도 없는데 뭔 놈의 검성!”
“뭐, 뽑길 원해?”
“아, 아닙니다!”
떠밀리듯 맨 앞으로 나와서 허세를 떨던 놈이, 리스턴이 남은 손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두드리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그에 따라 대략 3분지 1 정도가 리스턴이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리스턴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쪽 인원도 꽤 많다 보니 저런 모습도 당연해 보일 수도 있는데…….
얘네 19세기 갱이다.
그중에서도 악질이라고 알려져 있는 시신 납품업자들.
“역시…… 형님이다.”
“과연…… 리스턴.”
“역시 평신이다…….”
“피영신…….”
뒤에 섞여 있던 도살장 쪽 갱단과 경찰들이 저마다 감탄하고 있었다.
그래, 이건 순전히 리스턴 개인의 힘이다.
중간중간 이상한 말도 있는데, 개소리 아니겠나?
내가 암만 악명이 높아도 저렇게 험악한 놈들 무릎 꿇게 할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나 죽이러 오겠다는 놈들 아냐.
“그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남은 놈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말은 진짜 나로서는 상상도 못 했을 말이었다.
“권주를 마다하니 벌주를 내려야겠군그래.”
갖고 왔다는 책이 무협진가?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그러니까 정말 눈 한 번 깜짝할 새에 리스턴이 상대편 진영에 난입했다.
붕.
그와 동시에 봉이 날아든다.
그리고 둘이 날아간다.
콱.
뭔가 좋지 못한 소리와 함께였다.
“으.”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고 있으려니 뒤에서 경찰이 다가와 말했다.
“이따가 숨 붙어 있는 놈들은 좀 살려 주시죠.”
“아…… 죽었을 거 같은데…….”
“리스턴한테 맞은 놈들 말고.”
“아아, 그럼 가능하죠.”
긴장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는 진짜 좀 무섭기도 했거든?
그렇잖아.
내가 뭐 언제 싸워 봤겠냐고…….
학창 시절 내내 선생님 말대로 공부만 했다고.
병원에서도 말싸움만 붙어도 심장이 막 두근두근했을 정도라니까.
근데 사람 죽이겠다고 온 싸움에서 어떻게 안 떨리겠나?
‘어? 그러고 보니까, 그렇게까진 떨리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고?’
하도 험한 꼴을 많이 봐서 그런가.
아무튼, 나만 긴장한 게 아니라 뒤에 있는 베테랑 갱들이나 사실상 갱보다 더 거친 친구들인 경찰들도 긴장했었다.
허나 지금은…….
콱.
그래, 저게 추풍낙엽이다.
리스턴이 봉을 한번 휘두르면 다들 날아간다.
옛 고서의 항우나 리처드 왕이 딱 저러지 않았을까?
체격도 큰 편인데, 체격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완력과 순발력 그리고 기술이 있다.
대체 왜 의사가 저런 기술을 체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있는데, 아무튼…….
콱.
진짜 대단하다.
혼자 와도 될 뻔했다.
아니, 뭐 그랬으면 눈먼 칼이나 총에 당했을 수도 있는데.
아무튼 불과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분위기가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왔다.
아까 일찌감치 왼쪽으로 넘어가 있던 애들이 대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정도다.
“후.”
그렇게 한 10분 정도 더 지나고 나자 대들었던 놈들은 다 누웠다.
누운 놈들 절반은 리스턴의 작품인데 정작 리스턴은 산책이라도 한 것처럼 상쾌해 보일 뿐이었다.
땀이 아예 안 난 건 아닌데…….
뒤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던 나보다는 안 났다.
‘그러고 보니까…… 나만 넘어왔으리란 보장이 있나?’
나는 현대에서, 이 인간은 무협지에서 넘어온 거 아니야?
그래, 그거다.
그거라면 다 설명이 된다.
그 말도 안 되는 무심함과 강력함…….
“뭔 생각하나?”
“아, 아닙니다.”
나중에 술이라도 한잔하게 되면 진짜 진지하게 물어봐야겠다.
“하여간, 이것들 다 치료하려면 그것도 일이겠구만.”
“네? 다 죽었잖아요.”
“응? 안 죽었어. 죽일 생각이면 칼 뽑았지.”
“잉……?”
“다 조절해서 때린 거야. 내가 미쳤나? 다리만 부러뜨렸지.”
“어……?”
말을 듣고 보니 정말이었다.
다들…….
다리만 부러졌다.
오히려 경찰이나 갱 녀석들의 설익은 몽둥이찜질에 죽은 애들이 있을지언정, 형님이 친 놈들은 다 살았다.
“아이고, 이거…….”
“뭐, 보통 일은 아닌데. 대충 치료해 주지.”
“네? 아니, 그래도.”
“잊지 말게. 이놈들 법정에서 증명이 안 되어서 그렇지 다 시신 팔던 놈들이야. 너무 멀쩡해지면 아일랜드 가서 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아…… 네. 어차피 뭐…….”
골절.
21세기에서는 사실 별거 아닌 질환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젊은 사람들이 운동하다가 사지 부러지는 건 뭐……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나이 든 사람들한테 발생하는 고관절 골절 같은 거야 사망률이 어마어마하지만…….
어긋난 뼈를 견인해서 깁스가 되었건 나사가 되었건 고정할 수만 있다면 나을 수 있다.
허나 지금은…….
‘내가 최선을 다해도 이게 뭐 되겠나?’
골절은 병원에서 보지도 않는다.
아니, 보기는 하는데 내 기준에서 보면 의사가 아니라 장의사들이 본다.
환자 상대로 실험과 같은 자신의 로망을 펼쳐 보는 놈들이나 본다 이 말이다.
그럼 다친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교회로 간다.
교회에서는 기도를 해 준다.
이상하다고?
결핵에 대해서도 왕의 손이 효과가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던 게 얼마 전까지의 일이다.
내가 수용소 아니, 수도원 갔다 와서 결핵에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겨 들여다보니까 유전질환으로 알고 있더라고.
그러니까 죄를 지어서 그렇게 된 거고 왕의 손으로 치료해야 된다고 믿다가, 수백 년 동안 그래도 안 나으니까 이제는 수도원에 가두고 가끔 패는 걸로 치료하는 거다.
“읏차!”
“후.”
한계가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난 의사다.
눈앞의 환자가 나쁜 놈이라도 일단 치료는 해 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마침 리스턴이라는 무협 고수가 있다 보니 견인도 힘들지 않았다.
사실 이게 다리는 근육이 많아서 견인하기가 정말 어렵거든.
근데 리스턴은 다리가 되었건 어디가 되었건 그냥 읏차 하면 당겨진다.
뭐, 그래 봐야 부목 대고 붕대로 묶어 주는 게 고정의 다이니 치료가 잘 되진 않을 거다.
우리가 그렇게 치료에 열중하는 사이에 도살장 놈들과 경찰들은 나머지 놈들을 아일랜드로 보내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근데…….”
“응.”
“아일랜드도 사람 사는 땅 아닙니까? 거기로 저런 놈들 그냥 막 보내요?”
“아…… 그렇긴 한데, 보다 정확히 말하면 같은 사람이 사는 곳은 아닐세.”
“응?”
“빠게뜨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되네.”
“아…….”
범죄자들을 아일랜드로 보낸다고 해서 의아했는데, 듣다 보니까 기억이 난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일랜드 사람들이 영국을 진짜 미워한다고 했었지.
이제 보니 괜히 그런 게 아니라 차별이 어마무시한 모양이다.
심지어 아일랜드 대기근 때 무려 200만 명이 사망했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 영국 탓이 있다고 들었더랬다.
‘아일랜드는 가면 안 되겠군.’
조선계 영국인.
와…… 뒈진다, 진짜.
뭐 리스턴과 함께라면야 상관없을 거 같긴 한데…….
설마하니 그 먼 곳까지 갈 일 있겠나?
적어도 한동안은 높으신 분들 당뇨 치료 때문에라도 어디 못 가게 할 거다.
“저…… 피영시인?”
그렇게 딴생각하면서 치료하고 있으려니, 누군가 나를 불렀다.
활약한 건 리스턴인데 어쩐지 나도 어려워하고 있었다.
아무튼, 갱단 놈이었다.
췌장 운반하는 걸 돕는 놈이다 보니 얼굴이 참 익숙했다.
“어, 왜?”
“네, 그…… 연구소분이 오셨습니다. 긴히 하실 말이 있으시다고.”
“어어. 그래. 어딨지?”
“저기 계십니다.”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니 화학자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아, 그래 아까 봤었지.
사람 패는 거 보다가 잊었다.
“형. 연구소에서 사람 왔대요.”
“오. 뭐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는데.”
“그…….”
왜 조선 속담을 이 양반이 이렇게 유창하고도 시기적절하게 쓰는 걸까.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저씨에게 갔다.
나는 그렇다 쳐도 리스턴은 여기저기 피가 튄 상황이다 보니 아저씨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래 봐야 별 소용 없었다.
우리의 한 걸음이 더 크니까.
“무슨 일이죠?”
“어어.”
게다가 리스턴과 앨프리드네 아저씨, 콜린네 아저씨, 제이미 경 등등 연구소랑 엮인 사람들 때문에라도 켕기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해서 정신을 차린 화학자는 내게 두 개의 문서를 건넸다.
뭔가 복잡한 게 쓰여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봐도 모른다.
설명을 들어야 한다.
“두 건이 성과를 보이는데…… 하나는 아직 좀 애매하고, 하나는…… 진짜 미쳤어.”
“애매한 거부터 들어 보죠.”
좋은 소식은 나중에 듣자.
이 양반이 미쳤다고 할 정도면 진짜 대박일 테니까.
“비소 화합물 있지 않나. 전에 매독에 쓰라고 알려 줬던.”
“아, 아아. 그래요. 그거 설마?”
“후보군으로 세 개가 남았는데…… 확실히 매독을 죽이는 거 같아. 문제는…….”
“문제는?”
“사람도 자꾸 죽네.”
“그럼 뭐예요.”
“근데 전보단 확실히 적게 죽는 거 같아. 실험을 해 봐야 할 거 같은데…….”
“인체 실험을 어찌합니까?”
“경찰서에 줄이 있지 않나. 사형수들 중에 매독 많을 텐데…….”
“음.”
뭐라고 하기엔 이미 나도 멀리 왔다.
아니, 어찌 보면 내가 제일 멀리 왔어.
해서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보다 이게 애매한 거면 좋은 건 대체 뭘까가 너무 궁금하기도 했다.
설마…… 페니실린?
페니실린이냐!
“나머진 뭐죠?”
기대감 가득 찬 얼굴로 물었고, 아저씨는 그에 응하듯 실로 뿌듯한 얼굴로 답했다.
“코카 잎에서 코카인을 추출했네!”
아.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