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72)
검은 머리 영국 의사-272화(272/505)
272화 코카인 [1]
여름은 북반구의 경우 6월에서 8월에 해당하는, 4계절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계절이다.
태양과 가장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가장 기온이 높다.
이곳 런던에서조차 후덥지근함을 느낄 수 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여름…….
“뭔 생각을 하고 있나? 이거 두 건 다 대박인 거 같은데.”
내가 진짜…….
19세기 와서 어지간한 일은 다 겪었다고 자부하거든?
업턴에서 보냈던 유년 시절도 지금이니까 그냥저냥 하다고 말하는 거지, 막상 그 시절에는 지옥으로 느껴졌다.
일단 겨울에 난방 안 되고, 여름에 냉방 안 되고…….
씻으려고 하면 너 그러다 죽는다고 호들갑 떨고.
겨우 익숙해져서 런던 왔더니 광장에서 마취도 없이 사람 다리 자르고…….
해부 실습실 갔더니 죄 썩은 시신들 널려 있고, 쥐 다니고, 파리 날아다니고, 구더기 있고.
아, 파리랑 구더기는 아직도 있다.
진짜 청소 열심히 하는데 19세기 새시는 내가 알던 새시랑 많이 달라서 그런가. 거의 자연 발생하는 거 같다.
“뭔 생각하냐고. 미안하네. 평이 가끔 이렇다네.”
“하하, 익히 알고 있죠. 저브시인? 뭐 그런 거 아닙니까?”
“그래, 접신. 자네도 명예 조선인 다 되었구만. 언제 한번 증서를 주지.”
“증서요? 그런 게 있습니까?”
“제이미 경과 함께 만든 건데, 앞으로 조선이란 나라에 가고 싶어 할 사람이 많아질 거라 예상하고 있네. 조선 주술사, 심장 강탈자, 똥오줌 먹이는 자, 아편 애호가 평신의 고향이지 않나.”
“하긴, 그렇겠군요. 저도 부지런히 조선어를 배워 둬야겠습니다. 아무튼, 이게 빨리 끝나야 할 텐데. 비소 화합물도 화합물인데 코카인은 말씀드릴 게 너무 많습니다.”
“궁금하군그래.”
아무튼, 거기에 더해 시신 납품업자에, 살인에, 강도에…….
불알을 자르질 않나.
똥물 퍼먹고 콜레라가 번지질 않나.
진짜 별의별 일을 다 겪었잖아?
내심 나쁘게만 여기진 않았다.
그만큼 내 멘탈을 흔들 수 있는 일은 없을 테니까.
헌데…….
내가 만든 내 연구소에서 코카인이 탄생했다고?
‘어떻게 한 거여…….’
아니, 그것보다 대체 왜 만든 거냐.
나는 코카의 ‘ㅋ’ 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물론 약이 될 만한 것들이 있으면 알아서 찾아서 연구해 보라고 하긴 했다.
하지만, 그전에 버드나무 잎이라든지 개똥쑥이라든지 하는 이미 21세기에서 증명된 약들의 원료로 알려진 것들부터 해 보라고 했다고.
근데 왜…….
“왜……?”
“아, 돌아왔네.”
“뭔가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까?”
“아니, 아니. 일단 들어나 보죠. 아까 비소 화합물부터 다시.”
외면하고 싶다, 솔직히.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일단 내 연구소에서 만들었다 보니 내 책임하에 있는 일이라서 그렇다.
더 큰 문제가 있다면, 나 혼자 세운 곳이 아니라 여러 유력자들과 함께 세운 곳이란 점이다.
덮고 싶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덮을 수도 없는 일이란 얘기다.
“아아, 그거. 네. 매독 타깃으로 만든 것인데…… 확실히 매독을 어떻게 하는 거 같아.”
“무슨 말이 그래요?”
“실험을 많이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니까…… 그러니 확실하지가 못하지.”
“많이 못 해? 그럼 하긴 한다는 겁니까?”
동물 실험, 인체 실험이라는 말이 정식으로 존재하지 않는 시대다.
물론 19세기 사람들이라고 해서 양심이 없는 건 아니다 보니 대개의 경우에서는 동물을 이용했다.
주로 개.
하지만 당장 종두법을 개발한 제너만 해도…….
이론적인 근거는 없는 상황에서 냅다 웬 어린애한테 우두 종양에서 짠 거 찔러 넣고, 나중엔 천연두 환자 종양에서 짠 거 찔러 넣었잖아?
그러니 실험이라는 말에 인체 실험을 떠올리는 게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
내가 괜한 억지를…….
“하긴 하지. 닥터 리스턴과 제이미 경이 주로 도움을 주고. 뭐…… 경찰에서도 오고.”
“경찰……?”
“우리는 돈을 주잖아? 치료를 해 주면서.”
“실험을 하면 줘야죠.”
“하하, 말이 실험이지. 막말로 그냥 두면 다 죽을 사람인데 인류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건데. 돈까지 주면 어마어마한 거지. 인기 엄청 많아. 근데 이게 원장님이나, 앨프리드, 콜린네가 좀 쪼잔해서. 돈 주면서 하는 걸 싫어해.”
쪼잔해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비소 화합물 마구 먹일 뻔?
뭐…… 이 양반 말대로 치료 안 하면 죽을 사람들이 태반이긴 한데…….
“아무튼, 해 보니까 확실히 응? 잘 죽어.”
“매독이요, 사람이요.”
“사람은 원래 죽었지. 근데 매독도 죽는다니까?”
“아.”
“뭐 사람이 덜 죽는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자네가 해 준 말이 있지 않나. 약이 잘 듣는 거 같다고 해서 막 팔면 안 되다면서.”
“그렇죠.”
당연한 얘기다.
원래 사람 몸에 쓰는 건 그게 뭐가 되었건 간에 신중해야만 하니까.
허나 아직 그런 인식이 퍼지기엔 무리가 있는 시대다.
당장 이 런던 바닥에서 생산하는 대부분의 물건이…….
안전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있잖아?
납 페인트, 납 지붕, 납 와인…….
되는 대로 시부리는 거 같지?
다 있다, 실제로.
“일부 동의하네. 확실히 얼마만큼 써야 하는지 이런 건 알아봐야지. 근데 이걸 알기 위해서는 실험이 필요하다네. 그렇지 않나?”
“그건…… 맞죠.”
“다행히 우리 대영제국에는 죽일 놈들이 아주 많지.”
“그것도…… 맞죠.”
“뭘 그리 대견해 하나. 다 자네에게 배운 건데.”
“뭘요?”
“당뇨.”
“아.”
그래, 내 업보가 있긴 하다.
우리 죄수들…….
나 때문에 소변 먹고, 인슐린 맞고 했지.
근데 비소는 독이잖아?
사실 비소 화합물 중에 매독 치료제로 쓰였던 것도, 이름은 마법의 탄환이니 뭐니가 붙었고 실제로 노벨상도 받았지만…….
매독을 더 잘 죽이는 약이었을 뿐, 근본이 비소였다 보니 사람도 죽였다.
페니실린이 나온 다음에는 당연히 사장되었다.
‘그치만…… 죽일 놈이 많긴 하지.’
게다가 비소를 안 썼나?
썼다.
누가?
내가.
음.
잠시 내 행적을 돌이켜 보니 괜히 악명이 붙는 게 아니긴 하다.
“그래서 정식으로 요청하는 바네. 자네랑 리스턴 두목이 지시만 내려 주면, 죄수들 줄줄이 데려와서 공짜로…… 아니, 그래, 공짜지. 아무튼, 대량 실험을 해 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해서 매독 치료제를 만들기라도 하게 되면 어찌 되겠나!”
“대박이죠.”
“그래! 우리는 모두 돈방석에 앉게 되는 거야!”
“그…… 돈보다는 인류의 진보에…….”
“하하하하하하하! 개소리!”
기분 나쁘긴 한데, 개소리 맞긴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 놈치고 돈에 미친놈 아닌 놈이 없으니까.
나 포함해서 하는 소리다.
돈이다, 돈!
“그래요, 그건 좋아요. 근데 코카인은……? 이거 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들게 된 겁니까?”
“응? 뭔지 아나? 코카인이라는 이름은 그냥 내가 붙인 이름인데.”
“왠지 느낌이 와서요. 코카 잎…… 아닙니까?”
“여…… 역시! 약을 사랑하는 평신이구만그래.”
“아니,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
“하하하하하! 개소리!”
기분 나쁜 거 맞고, 개소리도 맞다.
약…… 안 좋아한다고…….
물론 가끔 아편팅크인지 나발인지 하는 음료가 생각날 때가 있긴 하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하이’를 느끼기 위함은 아니다.
그냥…….
시발 놈들이 나한테 강제로 먹여서 그렇게 된 거잖아.
사혈할래 약 먹을래.
지금 생각해도 숨 막히는 양자택일이다.
“코카 잎이라면 나도 좀 아는 게 있는데…… 정확히 효과가 어떤가?”
기가 막혀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부리나케 물어 왔다.
누가 누구한테 약쟁이니 뭐니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화학자 아저씨는 껄껄 웃었다.
감히 리스턴의 질문에 답하지 않을 수는 없다 보니 부지런히 입을 놀려 가면서였다.
“스페인 놈들이 신대륙 정복했을 때, 거기 원주민들이 밥을 안 먹어도 코카 잎만 씹으면 힘을 냈다는 말이 있었죠?”
“그랬지. 근데 그 잎 그거…… 건너오다가 다 썩지 않던가.”
“이제는 아닙니다. 나름 밀봉도 하거니와 항해술이 발전했으니까요.”
“그렇구만. 아무튼, 그래서? 코카인이 그걸 정제한 건가? 아편을 정제해서 모르핀을 만든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하는 말이라기엔 참으로 비유가 적절하다.
대체 인간은 왜 저렇게 안 좋은 부분에 있어서 더 빠른 걸까?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다.
아니, 원래 저러다가 문명이 발전하고 그러는 건가……?
나 여기 오기 전에, 그러니까 21세에도 어떤 학자들은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유가 마약 재배를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그랬잖아?
똥 싸는 동안 유튜브에서 본 거니 기억도 희미하고 근거 자체도 미약하긴 하겠다만.
“그렇죠. 알칼로이드 성분이 있는데, 독일 놈들이 이런 거 잘하지 않습니까. 닥터 요제프 통해서 구했죠.”
“그 미친놈을 통해서 구했다고?”
“네, 제이미 경이 힘을 좀 썼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닥터 요제프는 어떻게 됐지? 여기 남아서 복수한다고 하더니.”
“모르셨어요?”
“모르지.”
“저는 두목이 명령 내린 줄 알았는데. 멀리 갔습니다.”
“아하.”
멀리 떠난 게 몸일까 영혼일까.
굳이 물어보고 싶지 않다.
사실 여기서 도망치고 싶은데, 그냥 있는 거다.
이 자식들…… 그리고 리스턴도 코카인의 효능에 대해 들으면 눈이 돌아갈 게 틀림없거든.
그건…… 말려야 한다.
안 돼, 이건.
“암튼. 뭔 얘기 하고 있었죠?”
“코카인.”
옆으론 경찰들이 지나쳐 가고 있다.
아마…… 19세기 이후론 경찰 앞에서 코카인 얘기를 이렇게 당당히 꺼낼 수 있는 시대가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화학자 아저씨는 내가 우려했던 대로 코카인의 효능을 아주 자세히 늘어놓고 있었다.
고양감과 자양 강장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나간 전능감 등등…….
‘생각보단 약한데……?’
중독이니 뭐니 하는 것에 대한 얘기는, 의외로 없었다.
이유는 대화 나누는 아저씨를 보니 알 수 있었다.
‘아, 코로 흡입한 게 아니라 먹었구나. 하긴…… 그걸 보자마자 코로 흡입할 놈은 없겠지.’
어찌 보면 다행이다 싶다.
이렇게 되면 보다 말리기가 쉬울 테니까.
“비소 화합물은 뭐 쓸 일이 없을 거 같아서 안 들고 왔는데, 그건 들고 왔습니다.”
“오. 근데 왜 이게 꽉 차 있질 않지?”
“원래 제일 먼저 이쪽으로 왔다가…… 분위기 이상해서 다른 후원자들부터 찾아갔죠.”
“아…… 그래, 그게 도리지.”
아니…….
다른 후원자들한테 먼저 갔다고……?
이거 이렇게 되면 나가리다.
특히 제이미 경은 쓸데없는 데서 용감하지 않나?
그 인간 그거…….
“형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응? 갑자기 왜?”
원래는 여유 있게 말로 조지고 말리려고 했는데…….
이 미친놈이 벌써 뿌렸다면 도리가 없다.
-희대의 마약상 김태평과 리스턴.
교과서에 이딴 식으로 남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설명은 나중에! 일단 제이미 경에게 갑시다!”
“뭔 지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