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74)
검은 머리 영국 의사-274화(274/505)
274화 코카인 [3]
제이미 경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스턴이 쥐고 있는 술잔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거 내놓게!”
“하하하!”
다행인 것은 제이미 경에 비해 리스턴이 훨씬 큰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거기에 완력까지 고려하면, 거의 성인 남자와 어린아이 수준으로 차이가 나는 편이었다.
뭐…….
요새 제이미 경이 운동을 좀 하긴 하지만, 그래 봐야 타고난 체격이 어디 가겠나?
게다가 제이미 경은 노인에 당뇨에 셀프 고환 절제자이고 리스턴은 머리만 좀 없어졌을 뿐, 여전히 팔팔한 30대다.
심지어 리스턴 또한 최근 들어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뭐 쓰면 쓸수록 약해질 수도 있다느니, 이런 반복적인 근력 쓰는 행위가 정말로 근력 향상이나 근육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게 맞냐느니 하더니만 경험적으로 느끼는 것이 생기자 멈추지 않게 되었다.
“이, 이! 내놓게! 지금 대영제국의 공작을 놀리려는 겐가!”
“거기 있는 술을 드시죠.”
“이건…… 이건 그 맛이 안 난단 말일세!”
“허어…… 이거 정말 고약한 물건이로구나.”
사실 이 또한 리스턴의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혼자 남성 호르몬이 뿜뿜하는 건지 뭔지, 다 같은 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근 성장이 달랐다.
남 몰래는 아니고 그냥 2, 3년 전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 온 나로서는 허탈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세상엔 내 1년보다 리스턴의 한 달이 훨씬 효과가 좋을 줄이야.
남몰래 수탉 고환이라도 갈아 먹나 싶었지만…….
일반적인 19세기 사람은 이제 아니게 되었으니 그럴 일은 없을 거 같다.
아니, 수탉 고환을 갈아 먹거나 찔러 넣기 위해서는 ‘호르몬’에 대한 원시적인 이해가 필요한 만큼 그럴 생각도 못 했을 거다.
“평, 자네 말대로네. 이게 아편보다 무서운 거 같은데? 제이미 경 같은 귀족조차 당해 내질 못하는 듯하니 말일세.”
“그렇다니까요? 효과가 이상하잖아.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아니, 아닙니다.”
아까 화학자 아저씨 눈에 핏발이 좀 서 있었던 거 같다.
그거…… 내가 알기론 코카인과 연관이 있는 증상인 거 같은데…….
아, 이런 걸 내가 어찌 아나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을 거다.
나도 원래부터 잘 알았던 건 아니다.
나 학생 때까지는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이었거든.
근데 어느 순간부터 청정국은 개뿔, 경찰한테 걸리는 걸 감수할 용기만 있다면 서울 시내 어디서건 20분 내로 마약을 배달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다른 문제라면 좀 천천히 두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마약은 그게 아니지 않나?
비단 장기적인 폐해만 일으키는 놈도 아니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더라고…….’
펜타닐 같은 놈만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다.
코카인이 천연 물질에서 유래한 마약이고 비싸니까 좋아 보이겠지만…….
이 자식 이거 작용 시간이 빠르고, 짧은 데다가 혈관을 수축시키는 놈이다 보니 급사의 가능성이 엄청 큰 놈이었다.
오죽하면 기저질환 없는 20, 30대 환자가 심장마비로 오면 코카인부터 의심하게 되었겠나.
‘아저씨도 한번 관리 들어가긴 해야겠네.’
아무튼, 그 아저씨는 웃음 가스도 남용하는 놈이니만큼 제이미 경 정리하면 어떻게든 하긴 해야겠다.
유능한 사람인데…… 오래오래 부려 먹어야 하지 않겠나?
“으음…… 음.”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제이미 경은 나이와 질환 그리고 고환 등을 고려했을 때 말이 안 될 만큼이나 날렵하게 움직였더랬다.
아마 상대가 리스턴이 아니라 나였으면 잡혔을 거 같다.
하지만 리스턴은 아주 여유롭게 피해 다녔고, 그 결과 제이미 경은 더 알코올과 코카인을 섭취하지 못한 채 지쳐 버렸다.
말이 자양강장제이지 실제로 없던 힘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힘든데 힘든 줄 모르게 만드는 각성제이니만큼 그 역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으…… 왜 이렇게 몸이 처지지.”
다 깨고 난 제이미 경은 그 몇 분 사이에 한 10년, 20년은 더 늙은 것처럼 보였다.
막말로 지금 당장 숨이 멎어도 딱히 이상하지 않을 거 같단 생각도 들었다.
‘이대로 몇 번 더 먹었으면 그대로 갔겠군…….’
원래도 수명이 그리 오래 남았을 것 같진 않은 사람 아닌가.
동년배인 대미언 경에 비해 제이미 경의 노쇠함은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본인 인생 본인이 꼬았기 때문인데, 이번에 그 화룡점정을 찍을 뻔했다.
아무튼, 제이미 경은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가 아까…… 왜 그랬지?”
그러곤 똑똑한 사람이니만큼 방금 전의 자신의 모습에서 이상한 점을 금세 발견해 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건 아니로군요.”
“그…… 뭔 소린가. 내가 뭐에 당했나? 독?”
“거의 독인 거 같습니다. 지금 보니까요.”
리스턴은 그런 그의 앞에 앉아 아까 뺏어 갔던 술잔과 하얀 가루를 보여 주었다.
그러자 제이미 경은 금세 그 하얀 가루가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화학자 놈?”
동시에 눈에 살기가 돈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잔인무도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들었다.
친구인 대미언 경의 말이니만큼 조금 걸러 들을 필요가 있긴 한데…….
내가 봐도 범인은 해리다.
감옥에 처박혔다가, 제이미 경의 명에 의해 비참하게 죽어 버린 놈.
그놈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다.
상대가 해리 같은 놈이라면야 백번 천번 죽여도 될 거 같은데, 화학자는 안 된다.
해리보단…….
나은가?
코카인을 만들고 남들한테 뿌리고 다닌다는 점에서 더한 놈 같기도 한데…….
“나쁜 뜻은 아니었을 겁니다. 제가 보니까 지도 쓴 거 같거든요?”
“아, 그런가?”
“기껏해야 아편 정도 되는 물건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아, 아아. 그러고 보니 약간 그런 느낌이 있었네. 흐음…… 그렇군.”
뭐가 되었건 내 부하 포지션이다 보니 실드를 좀 쳐 주었다.
자식…….
감사해라.
내가 살려 줬다.
독살이 아니라 아편 유통업자 정도로 정리해 줬다고.
내가 말해 놓고도 좀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피영신.”
“네?”
그렇게 사람 생명 하나 살렸다는 생각으로 뿌듯해하고 있으려니 제이미 경이 나를 불렀다.
뭔가 좋지 못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어떤 얼굴이냐고 하면…….
바로 아편 전쟁 운운할 때 그 얼굴이다.
뭐, 아직 아편 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진 않았지만.
“자네 이거 해 봤나?”
나는 제이미 경의 앙상한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 끝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리스턴이 쥐고 있는 하얀 가루 뭉텅이가 있었다.
미친…….
내가 이걸 왜 해 본단 말인가.
약은 절대로 안 된다고!
괜히 마약의 마가 ‘痲’, 즉 마비된다는 뜻이 아니란 말이다.
아니, 사실 마비만 되면 다행이다.
죽어!
“아뇨. 안 해 봤습니다.”
“너무 즉각 답하니까 더 의심스럽군그래.”
게다가 이 대화는 좀 이상하지 않나?
방금 현장 적발된 놈이 그거 말리고 살려 준 놈한테 해 봤냐고 추궁하는 꼴이라니.
아무리 신분제 사회라고 해도 그렇지…….
어?
공작이면 다냐?
“아닙니다, 각하. 정말 아닙니다.”
다긴 하다.
공작이면…….
그것도 대영제국의 공작님이면 뭐 지멋대로 멀쩡한 사람 범인 만들어도 되는 사회다.
법 위에 있는 사람이거든.
지금 무슨 SNS가 있길 하나 유튜브가 있길 하나.
어디 가서 누구한테 뭘로 폭로할 건가?
“그래? 뭐…… 그렇다고 해 두지. 하지만, 직접 해 본 입장에서 이건…… 이건 쓸 만하겠구만.”
“어떤 말씀이신지?”
“자네한테 할 만한 말이 아니긴 한데…… 그래도, 뭐. 우린 한배를 탄 사람들 아닌가. 자네 덕에 요새 쏠쏠하다네.”
“아직은 쓰는 게 더 많지 않으세요?”
“그야 그렇지만, 나 정도 되는 위치에 있다 보면 멀리 보는 게 습관이 되어 놔서 말이지. 아무튼…… 아편에 이거까지 유통시키면 청이 어떻게 될 거 같나?”
“아.”
미친…….
훅 들어오네.
아편 전쟁이 아니라 아편-코카인 전쟁이 된다 이 말인가.
-청나라를 망친 희대의 악마, 김태평.
-조선인의 수치, 의사의 탈을 쓴 마약왕 김태평.
돌아간다, 돌아가.
헤드라인 돌아간다!
이건 안 된다.
코카인 퍼지는 거 막으려고 온 건데, 이거 이러다 옴팡 뒤집어쓰게 생기지 않았나.
‘어차피 나 그때 되면 죽은 지 한참일 텐데, 떼돈 벌면 좋…… 아니, 아니지! 내 몸에서 썩 물러나라, 19세기의 망령아!’
잠깐 좋지 못한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나는 대단하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이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나 김태평과의 차이다.
후후.
“왜…… 왜 그렇게 웃나. 그렇게 좋은 생각 같나?”
“아, 아뇨. 이건…… 어려울 거란 말씀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왜?”
글쎄.
왜 어려울까?
그건 이제부터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주어진 시각은 초 단위.
째깍째깍…….
“그…….”
“뭐.”
“그…….”
“뭐.”
“아.”
“아?”
이래저래 시간 끌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시간이었겠지만…….
구라 마스터 김태평에게는 충분했다.
다행이다.
맨날천날 공부만 한 건 아니라.
잠깐 나는 시간에 유튜브 보면서 노닥거렸던 나 칭찬해!
“코카나무는 안데스산맥에서만 자생하는 나무입니다.”
“으응? 코카나무가 뭔가?”
“아, 이게 코카 잎에서 추출한 겁니다. 그곳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코카 잎을 씹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씹으면 힘이 나고, 뭐 그런다는 얘기가 아주 오래전부터 돌았습니다.”
“그렇군…… 그럼 그 성분을 추출한 건가? 아편이 모르핀이 된 거랑 같은 맥락이야?”
“네. 오, 역시 공작 각하. 대단하십니다.”
“하하. 맨날 병원 가는데 나도 이제 익숙해졌지.”
본 기억이 있다.
어지간한 내용이면 까먹었을 거다.
하지만 엄청 재밌게 본 기억이 있어.
솔직히 내 기준 유튜브 콘텐츠 중 고티다.
그거 이상 가는 영상을 본 적이 없어.
준비한 내용이면 내용, 편집 퀄이면 퀄, 리액션도 좋고.
살짝 광고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 19세기 김태평과 유튜브가 뭔 상관이 있겠나.
“아무튼, 그렇다 보니 아편처럼 근처에서 생산이 안 될 겁니다. 안데스면 신대륙인데. 거기서 청까지 가려면…… 남극해를 돌아 태평양을 뚫고 가야 합니다. 그것도 제조를 거기서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으음…… 단가가 안 맞는다?”
“네. 엄청 비싸게 팔아야 할 텐데…… 그게 될까요? 생산이 가능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렇군. 역시 자네야. 드럭 마스터 피영시인.”
“아니, 아닙니다. 저 진짜 아니에요!”
“대외적으로 그런 이미지가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면, 존중하겠네.”
“아니…….”
그냥 유튜브에서 본 거라니까?
그래서 비싼 거래!
좋아서 비싼 거가 아니라!
라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나.
“아무튼,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어렵겠군. 뭐…… 지금 들어가는 것만 해도 충분하긴 하다네.”
다행……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내 말에 제이미 경은 코카인 전쟁을 일으킬 생각은 접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이다.
“드럭 마스터 김태평. 입에 쫙쫙 붙는군그래.”
별명 하나 더 생긴 건 좀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