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75)
검은 머리 영국 의사-275화(275/505)
275화 코카인 [4]
화학자한테도 갈까 하다가…….
이미 버린 몸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에 내일 가기로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너무 힘들었다.
리스턴이야 무공을 익힌 사람이 분명한 만큼 전혀 피로해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무공도 내공도 뭣도 없는 일반인이지 않나.
오전에 당뇨 치료하다가 오후에는 시신 처리하는 거 보다가 갑자기 납품업자 갱단 하나 몰살시키고, 코카인 때문에 제이미 경까지 다독거려 주고 왔다.
“흐아아아.”
앨프리드 선배네 와서 침대에 딱 눕자마자 신음이 새어 나온다.
이럴 때 진짜 따끈한 물로 샤워라도 한바탕 하면 그게 극락인데…….
샤워는 불가능하지 않나.
해서 따로 마련한 것이 있다.
나도 돈을 잘 버는 데다가, 아저씨도 나 때문에 슬금슬금 돈을 잘 벌기 시작한 마당이다 보니 가능해진 건데 개인 욕실이 있고, 거기애 물 받아 주는 사람이 있다.
물 받는다고 해서 21세기처럼 물 그냥 틀어 놓으면 되는 게 아니라 상수도에서 나오는 물을 끓였다가 식혀서 놓아야 하는, 나름 중노동이 필요하다.
뭐…… 갱단에서 은퇴하고자 하는 아저씨들 중에 힘 잘 쓰고 충직한 사람이야 넘쳐흐르는 상황이다 보니 쓸 만한 사람 구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다.
“준비됐습니다, 보스.”
“아, 네.”
준비된 욕탕에 들어간 나는, 아까 화학자 아저씨가 건네준 가루를 꺼내 보았다.
코카인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생겼다는 걸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다.
말로 듣거나 매체에서 보는 게 다지 뭐, 내가 어디서 봤겠나.
급성 중독 때문에 실려 오던 환자들도 늘고 있긴 했는데…….
그러고 보니 요새는 더 많긴 할 거 같다.
세상에 어쩌다 마약이 판을 치게 되어 가지고.
‘여기서 나온 게 리도카인이지.’
의사다 보니 마약으로 인한 폐해를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
애초에 지금 내 상황에 마약을 찾게 되면 그것도 이상한 일 아니겠나?
19세기라는 것만 제외하면 사실 전생보다 훨씬 잘 나가고 있다.
이 나이에 벌써 센터장이라니.
심지어 말이 센터지 분원이나 마찬가지란 것을 감안하면 원장이다, 원장.
뒤로 줄줄이 늘어선 백은 또 어떻고.
“마실 거라도 대령할까요?”
“아, 와인이나 한잔하죠.”
“네!”
지금 나간 사람도, 사실상 내 개인 비서 내지는 하인인데…….
전생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호사이지 않겠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죽 주머니에 든 하얀 가루를 들여다보았다.
혹여라도 바람에 날려 코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난리가 날 테니 진짜 살짝만 봤다.
아니, 이젠 안 보고 있다.
생각해 보니까 꼭 보고 있어야 생각이 가능한 것도 아니라 그랬다.
‘이걸 잘 가공하면…… 리도카인이 나온다, 이 말인데. 어떻게 하는 거지?’
사실 코카 잎에서 코카인을 정제하는 것도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마 19세기 놈들도 몰랐을 거다.
근데 어떻게 했냐고?
-어떤 물질은 물에 녹고, 어떤 물질은 기름에 녹는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또 어떤 물질은 산에 녹고 또 어떤 물질은 알칼리에 녹죠.
아, 나 때문인가?
근데 이제 와 후회하고 싶진 않다.
실제로 자연 물질에 있는 약물 성분을 정제해서 쓰려면 녹여야 될 거 아니야.
게다가 나는 코카인의 ‘ㅋ’도 얘기하지 않았다고.
약이 될 만한 물질들을 다 녹여 보라고 하긴 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이걸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을 좀 해 봐야 할 거 같긴 한데…… 아닌가? 이거 괜히 판도라의 상자만 열리는 거 아닌가?’
고민을 이어 나가다 보니 갱단 아저씨가 술을 들고 왔다.
순수한 유리가 아닌 뭔가 섞인 잔이다 보니 오히려 와인을 따라 두자 그 빛이 좀 더 영롱해 보였다.
어쩌면 그냥 천장에 달린 가스등 불빛이 애매해서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나는 그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신기하게 달았다.
와인인데 달아.
와인 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걸까?
‘전에 납 어쩌고 했던 거 같기도 한데…….’
설마 농담이겠지.
와인에 납을 담그겠나?
‘아니…… 아니야.’
이 새끼들 충분히 담글 수 있다.
대체 왜 와인에 납을 담글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고민은 무용하다.
인류사에 있어 이해 못 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따지고 보면 인종차별부터가 비합리적인 일이다.
그거에 비하면 납 정도 담그는 건 뭐,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게 와인을 달게 만든다는 속설은 왜 생긴 건지 모르겠는데…….
‘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술맛이 뚝 떨어졌다.
혹시 모를 일 아닌가.
내가 무슨 술 못 먹어서 안달 난 사람도 아니고…….
해서 그냥 내려 두었다.
코카인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 보니까 마침 내일 센터 발전 모임이 있어서 그랬다.
말이 좀 어려울 수 있는데, 그냥 투자자 및 후원자들까지 다 모여서 우리 센터가 나아갈 길에 대해 떠드는 자리다.
‘지금까지는 대충 술이나 먹고 말았지만…….’
내일은 어쩐지 뭔가 달라질 거 같다.
일단 연구소에서 뭔가 성과도 있었고.
당뇨 치료에 대한 소문 또한 어마어마하게 번지고 있다 보니 환자가 팍팍 늘어서, 슬슬 조수들을 더 써야 할 시점도 오고 있거든.
거기에 더해 원장님 제외한 나머지, 그러니까 사실 의사가 아닌 사람들까지도 요새 뭔가 의학에 발을 걸치고 있단 생각을 하게 되어서 그런가 간혹 이런저런 의견을 내기도 한다.
‘그래, 내일 얘기를 해 봐야겠다.’
코카인.
이건 일단 사장시키자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싹 편해지는 것이 잠도 솔솔 오기 시작했다.
이 안에서 잠들었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보니 서둘러 밖으로 나와 물기부터 닦았다.
감기…….
걸리면 진짜 죽을 수가 있다.
단순히 항생제를 비롯해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냥 우리 동료들이 나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나는 빠르게 식어가게 될 거란 강한 믿음이 있다.
많이 계몽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혈에 대한 개념이 바뀌지 않고 있거든.
오죽하면 머리통 열고 혈종을 빼내는 술기조차…….
사혈의 일종이라고 여기겠어.
“음.”
그렇게 생각 많아지는 밤을 보내고, 오전 일과까지 다 마치고 나서 센터 2층에 있는 회의실에 들어갔다.
안에는 최근 들어 너무 바빠진 나머지 모습을 비추지 않던 제이미 경까지 해서 우리 병원의 유력자들이 거의 다 와 있었다.
콜린네 아버지는 안 보이는데, 그 양반이야 무역가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 다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해 보죠. 일단 결산부터.”
“네, 그건 제가 발표하겠습니다.”
대신 앨프리드네 아버지는 있었다.
우리 중에 그나마 숫자에 능한 사람이 그여서 그랬다.
매출이 얼마고, 인건비, 재료비를 제한 순익이 얼마인가 정도만 밝히는 것이긴 한데, 그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아니, 그가 아니었으면 법인도 세우지 못했을 거다.
아, 놀랄 일인데 여긴 벌써 법인 개념이 있더라.
주식회사 개념도 있고…….
선진국은 선진국이다 싶었다.
“와. 우리 돈 잘 버네?”
“그러니까요. 연구비로 그렇게 소모를 하고 있는데도 돈이 이렇게나 남다니.”
“당뇨 치료는 확실히 확대를 해야겠어요. 아, 그 도살장 갱단 쪽은 확실하게 밀어주고 있나?”
원장님 말에 리스턴이 우쭐거렸다.
“네, 밀어줬죠. 이제 런던에서 따라갈 만한 갱단이 없습니다.”
“역시 검성이구만. 좋아. 그럼 인력 충원은 내가 알아서 하지. 면접만 자네들이 보고 정하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대답이 끝나자, 대강 건설적인 얘기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약간 탁상공론이다.
아니, 내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의견의 향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짜 무슨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라도 된 것처럼 개소리를 하더라고.
아예 아는 게 없어서 그런가, 상상력의 제한이 없어.
“자, 그럼 앞으로 연구소와 병원이 나아갈 길에 대해 지혜를 나누어 주시죠.”
원장님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제이미 경이 손을 들었다.
바쁜 와중에 왜 왔나 했더니 할 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네, 공작 각하.”
원장의 말에 그는 달달한 와인을 한 모금 홀짝이고는 말을 이었다.
“괜찮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만한 소믈리에를 고용하게 되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이 되었지 않나?”
누가 공작 아니랄까 봐 말이 꽤 멋들어졌다.
약간 어디서 들어 본 듯한 느낌도 있긴 한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보니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내가 런던 바닥에 고용을 창출한 사람이지.’
소변 맛보는 게 직업이라고 하면 되게 끔찍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런던 공장에서 일할래 소변 먹을래 하면 진짜 백이면 백 소변 먹는다고 할 거다.
진짜다.
물론 소변 먹는 거, 그거 보통 일이 아니긴 하다.
기분도 좋진 않을 것이고.
하지만 딱히 공장에서 일한다고 기분이 좋지도 않을 것 같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어떤 공장에서는 1년도 못 버티고 죽을 수도 있다.
백린이나 납, 수은, 비소 등을 다루는 공장들이 엄청 많거든.
아까 리스턴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좀 뿌듯해져서 뻐기고 있으려니 제이미가 말을 이었다.
“소변으로 건강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건 상식이 되었다는 말이지. 안 그런가 평신?”
“아, 네. 그렇죠.”
내가 했다.
바로 내가.
“내가 한 가지 궁금해진 것이 있네.”
“뭔가요?”
“아무래도 피가 우리네 생명과 더 연관이 있지 않나? 그럼 피믈리에를 만드는 것은 어떤가?”
“네?”
뿌듯해하던 감정은 어느새 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 내 머릿속을 차지하게 된 것은 ‘?’ 이었다.
뭔 소리지?
“내가 하하. 공부를 해 보았네. 듣자니 소변이 신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던데? 맞나?”
“맞긴…… 합니다.”
“그 재료가 되는 것이 피라는 얘기가 있던데, 그것도 맞나.”
“아, 공작님 그건 아직 완전히 확인되지는 않은…….”
원장님이 끼어들었는데, 사실 맞긴 하다.
진짜 19세기는 혼란하다.
과학적인 사실과 비과학적인 주장이 한데 뒤섞여서 전혀 엉뚱한 결론이 나오는 곳이니까.
“그거야 해 보면 알겠지.”
“그건 맞습니다.”
아, 거기에 인권이나 연구 윤리도 없다.
뭘 해 보라는 건진 몰라도 아마도 인체 실험일 거라는데 내 목숨도 걸 수 있다.
“아무튼, 그럼 피 맛을 봐서 달다면, 소변이 단 것보다 더 명확한 증거가 되지 않겠나?”
“오.”
이걸 어떻게 말려야 하나 싶었다.
피를 맛본다는 게 끔찍하기도 하고 또 별 의미가 없어서이기도 한데,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소변은 놀랍게도 신장에서 걸러 주기 때문에 요로감염이 없다면 멸균이다.
하지만 피는…….
특히 이 시기 사람들의 피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균이 있겠나.
감염의 위험이 너무나도 크다.
근데 내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입을 연 놈이 있었다.
바로 리스턴이었다.
말리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몇인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마 평이도 알고 있을 겁니다. 전문가일 수도 있죠.”
내 머리채 잡고 들어갈 줄은 몰랐는데…….
“조선에는 임금의 건강을 담당하는 어의들이 있다 합니다.”
“오호…… 있기야 하겠지. 의료 선진국 아닌가.”
“그 어의들이 왕의 건강을 어찌 확인하는지 아십니까?”
아잇, 시팔.
하지 마.
그거 하지 마!
“모르네.”
“변 맛을 봅니다.”
“오호! 변믈리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