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76)
검은 머리 영국 의사-276화(276/505)
276화 이것은 회의인가 지옥인가 [1]
피믈리에, 변믈리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진다.
애초에 이 새끼들이 왜 ‘믈리에’를 자꾸 붙이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느낌이 어쩐지 빠게뜨어 같은데…….
여기 있는 인간들, 프랑스에서 박해받아 떠나온 위그노인 원장님 포함해서 죄 안티 빠게뜨 아니었냐고.
“피보다는 변에 관심이 가는군그래.”
내가 스턴에 걸린 동안에도 여전히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원래 서양 토론이 이런 분위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죽이 딱 맞아 가지고 막 어……?
“아무래도 그렇죠. 피는 매번 뽑아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게.”
“그보다 변은 매일 보는 거 아닌가? 그러니…….”
“그것도 그렇죠. 게다가 조선에서 이미 검증이 되어 있습니다.”
“검증이라…… 내 아주 궁금하군그래.”
리스턴을 돌아보니 이 친구 이거 아주 진지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좀 궁금하긴 했다.
뭐…….
대변 검사를 하긴 하지 않나?
현대 의학에서도 대변으로 건강 상태를 나름 평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뭐…… 장내 미생물 쪽으로 가면 숫제 미래 의학의 방향이기도 했고.
‘어……? 리스턴이 진짜 천재라서……?’
생각을 해 보니 확실히 뭔가 있긴 하다 싶었다.
조선…….
의외로 진짜 의료 선진국이었던 것인가.
잠시 잊고 있었던 국뽕이 차오르는 기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얘넬 맨날 봐서 별 감흥이 없어진 것이지. 사실은 대영제국의 실력자들 아닌가.
우리야 딱히 대영제국과 직접 엮인 역사가 거의 없다 보니 느낌이 약할 수 있는데, 직접 와서 보니까 확실히…… 괜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니 뭐니 했던 건 아니다.
그 영향력으로 21세기까지 먹고살 정도니 뭐.
‘일단 잠자코 들어 볼까.’
그래, 들어나 보자.
개소리하는 거면 좀 말리면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지금 당장은 리스턴이 너무 흥분한 상태다 보니 물리적으로도 무리였다.
해서 가만히 있었고, 리스턴은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우선…… 조선에서 임금을 보는 의사를 어의라 합니다.”
“어으이?”
“발음이 어려운데, 어의요.”
“으음……. 아무튼, 그래서?”
제이미 경의 말에 리스턴은 숫제 몸을 일으켰다.
워낙 덩치가 큰 양반이다 보니 단지 그것만으로도 이목을 끄는 힘이 있었다.
안 그래도 변믈리에란 단어 때문에라도 이 방 안에 있는 모두가 흥미가 있던 상황이었다 보니, 말 그대로 숨소리를 제외하면 잡음 하나 없었다.
“그중에서 임금의 변을 먹어 보는 사람을 시양분직이라고 합니다.”
“썅분직?”
“시양분직.”
“썅분직.”
“그…… 네. 아무튼, 방법을 보면 냄새부터 맡아 본다고 하더군요. 생각해 보면 변 냄새가 매일 같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컨디션에 따라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더군요.”
상분직…….
리스턴이 설마 조선에 다녀온 건가 싶을 지경이었다.
나도 어디서 주워들은 게 다고, 심지어 방금 전까지는 까먹고 있던 단어잖아.
이걸 런던에만 있던 놈이 대체 어떻게 알겠냐고.
‘축지법을 쓰나?’
이상하게 리스턴을 두고 상상을 해 보면 불가능한 일이 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일단 사람 팔다리를 그딴 식으로 깔끔하게 자를 수 있다는 거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야.
두개골 열거나 하는 거야 두말할 것도 없고.
“그다음에는 형태를 본다고 합니다. 묽은지 된지. 커다란지 작은지.”
“허어……. 세세하니 더더욱 관심이 가는군그래.”
“네, 그다음으로는 색을 본다고 합니다. 황금빛 변을 으뜸으로 치는데, 이 경우에는 냄새도 고소하고 놀랍게도 맛도 그리 역하지 않다고 합니다.”
“아니,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조선에서 그렇다고 하는데 제가 뭐 별수 있겠습니까.”
“하긴. 하하. 조선은…… 그런 나라지.”
제이미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양반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리스턴은 껄껄 웃었다.
가끔 미치는 양반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래서 다른 색은?”
근데 원장님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빨리 말하게!”
블런델도 그렇고…….
당신들은 지식인이잖아.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변을 먹이겠다는 발상을 떠올리면 보통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소변 먹이는 자에게 이런 말 할 자격이 있겠나 싶을 수도 있는데, 대변과 소변은 엄연히 다르다.
대변은 일단 균도 있다고.
그리고…….
아니, 시발…….
너무 자세히 떠올렸나, 갑자기 구역질이 나올 거 같다.
“녹색이 있습니다. 대개 너무 식물을 많이 먹으면 이렇게 된다고 하는데, 변이 아주 묽으면서 녹색 변을 본다면 뭔가 건강에 안 좋은 거라고 하더군요. 너무 붉거나 하면 피가 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치질 같은 걸 의심할 수 있죠.”
“아하. 그렇구만. 사리에 맞는 듯해.”
“검은 똥도 상서롭지 않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차차 더 연구를 해 봐야 할 듯합니다.”
“그래, 그거야 뭐. 우리 대영제국에서 하면 될 일이지. 또?”
“회색 변이 있다 하는데, 이 경우에는 곧 죽을 수 있으니 잘 봐야 한다고 하고요.”
“허어. 변 색이 이토록 중요했단 말인가? 대체 조선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지혜로운 나라로고.”
상상이 아닌 회상의 타격에 의해 잠시 말을 잊은 동안에도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조선에 대한 칭송이 계속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근데 왜 이상하게 기분이 안 좋지…….’
아무튼, 내가 별로 아는 얘기도 아니긴 했다.
듣다 보면 당연한 소리긴 한데, 태어나 단 한 번도 변에 대해 이처럼 깊은 사유를 해 본 경험은 없어서 그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맛이 남습니다.”
“오오.”
“일단 비린 맛이 있으면 최악이라 합니다.”
“비리다 함은……?”
“아무래도 피비린내가 아닐까 하는데요.”
“허어, 일리가 있구만그래.”
“시큼 텁텁한 맛도 별로라 합니다.”
“변에서 그런 맛도 날 수 있나 보구만.”
“먹어 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는데…… 기록은 그렇습니다.”
내가 진짜…….
19세기 와서 비위가 참 많이 좋다졌다고 자부하거든.
이전 같았으면 벌레만 봐도 응? 깜짝 놀랐던 내가 이제는 쥐새끼를 봐도 그냥 저기 털 달리고 꼬리가 긴 생물이 있구나 한다고.
오물이나 구정물에 대한 내성도 장난이 아니다.
이스트엔드 같은 뒷골목 슬럼가에 가면 그냥 사방 천지가 그렇거든.
노숙자?
서울역에 가면 좀 있었지.
여긴 그냥…… 한 구역 전체가 그렇다고 봐도 무방하다.
거기 한복판에 가 있어도 더러운 게 힘들진 않게 된 지 오래다.
위험할까 봐 무섭긴 하지만, 옆에 리스턴을 두고 있다면 그것도 괜찮다.
‘으…….’
근데 이건…….
이건 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아니, 대체 우리 조상님들은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충성심 깊은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왜 그걸 보고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맛까지 보고 그걸 기록까지 남기셨냐고…….
“제일 좋은 것은 살짝 쓴데, 그 끝에 고소한 맛이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고소한 맛이 날 수 있다니. 이건 저도 좀 궁금하긴 합니다.”
“허어…… 이거 근데 맛에 상당히 예민해야 할 거 같은데?”
“그렇죠. 그리고 사람이 변을 이게 언제 어떻게 볼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나이가 드니까 더더욱 그런 거 같긴 하네.”
“맛에 예민하고, 늘 같이 다니는 사람…… 제이미 경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
둘의 시선이 벽에 기대서 있던 한 사내에게로 향했다.
반성할 만한 일인데, 나도 그제야 그 사람을 돌아보았다.
나로 인해 빈민가에서 벗어나 나름 먹고살게 된…….
소믈리에 아저씨다.
“자네 얼굴이 왜 그러나?”
“그러게, 몸이 안 좋나?”
제이미 경과 리스턴은 그 아저씨를 보면서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친놈들이다 싶었다.
소변까지야 응?
먹을 수 있지.
근데 대변은 좀 그렇잖아.
그래, 이제야말로 내가 나설 때다.
“잠시…….”
“아, 우리 전문가가 납셨군그래!”
“직접 맛을 본 적도 있나? 있을 거 같은데!”
슬며시 몸을 일으키자, 사람들이 무척 반겨 주었다.
분위기가 이상한데, 촉이 비상하게 된 나는 이 일을 그냥 두면 어떻게 될지 보였다.
-먹어 보게, 평.
미친놈들이 이럴 게 뻔했다.
내가 주저하면 이렇게 말하겠지.
-똥물은 먹이지 않았나?
할 말이 없다.
진짜로…….
그러니 미리 나서야 한다.
‘돌아라 머리!’
다행히…….
떠오르는 게 있다.
펠로우 때 바빠 뒈지겠는데 학회 유튜브 찍으라고 했던 적이 있거든.
그때 주제가 조선 왕 수명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의학 수준 때문에 수명이 떨어지던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때 했던 얘기가 운동 안 하고 과로하면 왕도 일찍 죽으니까 그러면 안 된다, 뭐 이런 얘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구라 마스터다.
“조선 왕의 평균 수명이 영국 왕의 수명보다 짧습니다.”
“으응?”
“뭐라?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조선은 의료 선진국인데!”
일단 의료 선진국도 아니다.
뭐…… 19세기 영국 의료에 비하면 그냥 침놓고 약 주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치료만 하는 조선 의료가 낫긴 할 거 같다.
여긴 사실상 인간 백정이잖아.
아마 의사 손에 의해 사망한 사람 수를 세어 보면 이쪽이 압도적으로 많기는 할 거다.
“이게 다 상분직 때문입니다.”
“시양분직?”
“썅분직?”
“네. 변 먹는 게 이게…… 그렇게 효과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변을 보고 냄새 맡는 건 의미가 있을 거 같긴 하다.
하지만 먹는 건 아니다.
“그런가……?”
“아니, 근데 수명이 어떻길래 그러나.”
“조선 왕은 대개 마흔 살쯤 돌아가십니다.”
“허어…… 너무 젊은데.”
“우린 그래도 한 50은 사는 거 같은데.”
“네, 그렇죠.”
실제로 유럽의 왕들은 대개 마흔 후반이나 오십 정도는 사는 편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의료 수준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선 왕은…….
좀만 멀면 가마 타고 해서 일단 운동을 못 했다.
거기에 더해 업무가 진짜 많았는데, 실제 정무뿐 아니라 유교 공부와 토론도 해야 했다.
그 와중에 자식을 낳아야 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빈번한 성행위를 해야만 했다.
사실 마흔 살쯤까지 살 수 있었던 것도 놀라운 일이다.
이성계가 타고난 무골이라 그 핏줄이 이어져서 가능했던 일 아닌가 싶다.
“이게 다 변 먹은 의사들이 이상한 소리 해서 그렇습니다. 사실 변을 먹은 의사들 또한 일찍 죽고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허어, 그런가?”
“네, 조선에서는 똥독이라는 말이 있는데…… 똥에는 독이 있다, 이 말입니다. 그 독을 먹은 의사들이 제대로 된 처방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허어…… 그런 말은 또 처음 들어보는군그래.”
“오히려 조선은 동네 의원이 어의보다 뛰어났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게 다 그 때문입니다.”
“그렇구만……. 그럼 변믈리에는…… 아쉽지만 없던 걸로 할까?”
제이미 경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나를 칭찬했다.
‘이 짧은 시간에 똥독을 엮어 낼 생각을 하다니. 역시 19세기로는 내가 왔어야 맞다.’
오직 나만이 19세기 의료를 교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