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77)
검은 머리 영국 의사-277화(277/505)
277화 이것은 회의인가 지옥인가 [2]
“자, 그럼 다음 안건으로…… 피믈리에는 어떤가?”
산 넘어 산이라고 했지.
여기선 똥 넘어 피다.
시발…….
내가 욕이라고는 학창 시절 이후론 입에 달아 본 역사가 없는데 여기서는 그냥 막…….
입만 벌리면 욕이 튀어나올 거 같다.
“피…… 흠. 문제가 있죠.”
“어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 블런델 교수가 입을 열어서 블로킹에 나섰더랬다.
“일단 피를 멎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 그냥 구멍 내고 누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긴 한데, 구멍이라는 게 그냥 막 내다가 미아즈마라도 들어가게 되면 큰일입니다.”
“어……. 그게 그럴 수도 있나?”
“있죠.”
블런델.
리스턴에 밀려서 그렇지, 피지컬 말고 머리 써서 해야 하는 기괴한 일에는 거의 블런델이 엮여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거짓 음해가 아니라 진짜 그렇다.
“수혈 쪽을 제가 맡고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블런델은 경찰서장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서장을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내가 출세를 하긴 했구나 싶었다.
아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실상 런던 실세들 아니야.
근데 이 양반들이랑 우리가 같이 일을 하고 있다니, 이게 참 대단한 일이 아니면 뭐가 대단한 일이겠나.
“수혈…… 이게 저도 만병통치라고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지?”
“이것도 우리 평신이 힌트를 주긴 했는데, 수혈로 살아난 사람 중에 원래 없던 병…… 특히 매독 같은 것이 생긴 사람이 꽤 있습니다.”
“매독이 원래 있었는데 몰랐던 것은 아니고?”
“신부님도 계십니다.”
“아, 아아. 그래.”
제이미 경은 자신도 모르게 탈룰라 한 것에 당황했는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머릿속으로는 신부라고 해서 한 번도 안 해 봤을 리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을 공산이 크긴 할 거다.
이게…….
성욕이라는 게 참는다고 참아지는 게 아니긴 하거든.
뭐,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나는 사람도 있긴 할 텐데, 안 그런 사람이 더 많다.
게다가 19세기는…… 유혹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안 걸릴 거란 유혹이 너무 많다.
실제로 신부님 중에 진짜 권력자들이 많기도 하고.
“그래서 수혈을 어지간하면 안 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죽기 직전에 몰린 사람들만 하고 있어요, 지금은.”
“아……. 그렇군. 근데?”
“그 피에 뭔가 있을 수 있단 말씀을 드린 겁니다, 공작 각하.”
“아아. 으음.”
블런델의 말에 제이미 경이 다시금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러니까 내가 훨씬 순수했던 시절이었다면 왜 저러지 했을 거다.
근데 이젠 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 하고 있을 거다.
귀족 피를 평민이 맛을 본다는 거…….
그거 대단한 영광 아닌가?
그걸 통해서 도움도 줄 수 있다면 다시 없을 만한 영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다.
그 대가로 돈도 받는데, 대신 좀 아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뭔 문제지? 할 거라는 얘기다.
평민, 또는 빈민의 목숨과 대영제국 귀족 또는 의원의 건강을 맞바꿀 수 있다면 당연히 바꿔야 한다고 생각할 거란 얘기다.
“그리고…….”
헌데 블런델의 말이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쩐지 뭔가 켕기는 눈으로 나를 보면서 입을 열고 있었다.
긴장해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19세기 의사는 어지간한 일로는 켕기지 않거든.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도 마찬가지다.
끔찍하게 죽어도 그렇다.
다만 수가 많거나 하면 좀 저렇다.
“사실 피믈리에…… 이 발상은 제가 먼저 했던 거 같습니다.”
“으응?”
“수혈하기 전에 어차피 피를 살짝 빼서 교차 검증을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아아. 그렇지. 그게 원칙이라고 들었네.”
“근데 그렇게 뽑은 피를 다 환자 피랑 섞어 보고 버린다는 게 너무 아까운 겁니다. 그러다 어떤 케이스에서는 피와 함께 미아즈마…… 병이 같이 간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그래서…… 맛을 보게 했구만, 자네.”
“그렇습니다.”
아.
이미 했구나.
했어.
시발…….
“그래서 어떻게 됐나?”
“지금 피믈리에로 자원했던 사람들 다 아픕니다. 그것도 크게 아파요.”
“아하. 얼마나 됐는데?”
“한 달?”
“그럼 안 되겠군. 세상에 피가 소변보다 위험할 줄이야. 신기하구만.”
“네. 피믈리에는 시도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 같습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
블런델이 미친놈이지만, 또 상식이 있는 미친놈이긴 하거든.
아마 다른 의사들이 했다면 사람들이 죽건 말건 자신이 처음 실험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뚝심 있게 밀어붙였을 게 뻔하다.
환상통 때도 그랬지 않나.
안 아프다고 할 때까지 팔을 계속 자르고…….
물론 이번에 수용소 아니, 수도원 가서 알게 된 건데…….
팔이라도 자른 놈들은 그래도 환상통이라는 게 실제로 있다고 믿어 준 놈들이다.
거기 갇혀 있는 사람들 중에 환상통 환자들이 또 꽤 있더라고…….
“좋아. 그럼 변믈리에, 피믈리에는 포기하도록 하고…….”
아무튼, 똥, 피는 해결되었다.
나는 이만 끝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우리 성과가 너무 대단했다.
“두통에 대해 머리 여는 수술 말인데…… 이거 열고 싶다는 사람들 문의가 좀 있네.”
제이미 경이 입을 다물자, 이번에는 원장님이 나섰다.
나는 귀를 의심하게 되었다.
뭔 소리야.
“머리를 열고 싶다고 한다고요?”
“그래. 만성 두통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나? 그중에는 말일세, 사혈이나 기절, 전기치료 다 효과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네. 헌데 이번에 의원이 대번에 나아 버리지 않았나.”
그 사람…….
그 의원님 예후가 아주 좋긴 하다.
사실 머리 열면서 나도 좀 정신을 차려서 점점 불안해지긴 했었거든?
멸균 수술방에서 수술 가운에 장갑까지 다 끼고, 제대로 된 마취하고 드릴로 열고 해도 이게 위험한 수술이거든? 개두술이라는 게.
물론 화학자 아저씨가 해 준 말에 따르면 코카 잎의 원산지인 안데스산맥 일대에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머리를 열었다고는 하는데, 그래서 뭐 얼마나 살았겠어.
그리고 대체 왜 연 건지도 모르겠다.
“그…… 우리 의원님은…….”
아무튼, 중요한 것은 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거다.
설득을 해야 한다 이 말인데…….
‘우연히 치료된 겁니다라고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지금은 결과가 좋으니까 넘어가 주겠지만, 나중에도 그럴까?
자다가 평신 새끼가 내 머리를 열었던 게 그냥 우연을 노리고 했던 거라고?
뭐 이런 생각이 한 번이라도 들게 되면 상당히 곤란해지지 않을까?
“딱 다친 곳이 있었고, 그 부위에 부기도 있었던 데다가 경과 자체도 피가 차 있을 경과였으니까 치료가 된 겁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네?”
“머리에서 사혈을 직접 한 거 아닌가. 그 소문 때문에 말일세, 벌써 어떤 병원에서는 이런 걸 만들었어.”
원장님은 내가 쥐어짜 낸 명답을 들으면서도 귓구멍을 닫기라도 했는지 이상한 물건을 꺼냈다.
아니, 신기한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수동 드릴이라고 해야 할 거 같다.
돌돌돌 돌리면 꽝꽝꽝 두개골을 뚫을 거 같아.
아니, 같은 게 아니라 그렇게 생겼다, 이거.
“이걸…….”
“그래. 아무 데나 뚫어서 피를 뽑으면 되는 거 아니겠나?”
“아니,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이거 지금 하고 있다고요?”
“그래. 다른 병원에서는 벌써 시작했어. 다행히 집도의가 자네나 리스턴이 아니다 보니 고위층은 안 가고 있지만 몇몇 용기 있는 사람들은 그쪽으로 가고 있어.”
“머리 열러요?”
“그래.”
“죽은 사람은?”
“아직 모르겠네. 물건 빼 오느라 환자 정보는 못 빼 왔어.”
아니…….
상식적으로 환자 정보부터 빼 와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거 어떻게 보면 제2의 도살자 해리 사태 아닌가.
아니, 아니다.
자발적으로 불알 떼는 게, 자발적으로 머리 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
그것도 사람이 사람한테 할 짓은 아니지만…….
그리고 결국, 상당수 죽게 되긴 하겠지만…….
머리는 그냥 여는 것만으로도 죽는다고.
게다가…….
‘아니겠지. 설마…….’
이 새끼들은 피가 없으면 피를 내서 뽑았다는 시늉 또한 충분히 할 수 있는 놈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해부학이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지 않나?
특히 머리 쪽은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가까운 놈들이 해부를 기깔나게 해 놔서 큰 동맥이나 정맥의 위치 정도는 다들 잘 알고 있다.
그거 하나 쭉 째서 피 난다! 성공이다 하면…….
성공인데 사람 죽어 나간다는 게 이상하겠지만, 19세기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는데 환자가 잘못해서 죽었다는 말이…….
정론이다, 이 말이다.
“다쳐서 피가 난 것이고, 그걸 제거한 거예요…… 넓게 보면 사혈이지만…… 일반적인 사혈이 아니란 말입니다.”
“허어, 이걸 어쩐다. 그럼 우리는 못 한다, 이 말인가?”
걱정이 되는 게 고작 그겁니까?
다 여는데 우리는 못 여는 게 걱정이야?
“다 못 하게 하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황당해서 원장님을 보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나섰다.
이 또한 내가 원했던 말은 아니긴 했다.
다 못하게 한다는 것이 내가 원하는 일이긴 한데…….
리스턴의 뉘앙스는 어떻게 봐도 의학적인 토론과 가르침을 통해 납득시키는 방식일 리가 없거든.
“리스트를 주시죠. 사보타주하겠습니다.”
“아아, 그래 주겠나. 서장님?”
“묵인하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돕죠. 이번에 이스트엔드 쓰레기들을 몰아내는 데 리스턴이 너무 큰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에 경찰 내에서도 한 번쯤 보답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근데 어떻게든 해결이 되긴 했다.
경찰과 깡패가 야합해서 인류의 안전을 지키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정말이지…… 몇 번을 봐도 가슴이 막 웅장해지고 그런다.
“다음은…….”
또 있나 싶은데…….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내가 좀 잘났어야지?
너무나도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으니, 19세기 사람들로서도 머리가 깨지긴 할 거다.
“코카인입니다.”
아, 이건 내가 잘나서 생긴 일이 아니라…….
“드럭 마스터 평신의 말에 따르면 굉장히 유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정력이 엄청 좋아진다고 하던데?”
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원장님이었고, 지금 반론을 펼친 사람은 놀랍게도 얌전한 편에 속하던 대미언 경이었다.
해리한테 넘어가지 않을 만큼이나 조심성 있던 사람이 지금은 눈이 살짝 돌아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이나 대영제국이나 ‘정력’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이렇게 되긴 하는 모양이었다.
“화학자의 말입니까?”
“그렇네. 그 친구가 그거 사용한 날 세 번이나 했다던데…… 딱 봐도 정력적으로 생기진 않지 않았나?”
세 번 했다라…….
그 몸으로…….
‘곧 죽겠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을 들었다.
역사상 최악의 나르코로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면 여기서 반전을 이끌어 내야만 했다.
적어도 내가 주도적으로 뭘 하면 안 된다, 이 말이다.
다행히 그건 그리 어렵진 않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