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79)
검은 머리 영국 의사-279화(279/505)
279화 효도 중입니다 [1]
“아하……. 그런 뜻이로구만. 하긴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
아버지.
그러니까 이번 삶의 아버지는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야 껄껄 웃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얼굴 전체에 걱정이 아주 그냥 덕지덕지 붙어 있더니…….
하긴 뭐 이해는 간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 별명이 다른 것도 아니고 병신이라는데…….
“병을 고치는 신 뭐 그런 거니? 그럼?”
아무튼, 아버지는 굴레에서 벗어났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문제였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신…….”
“그럼 너무 불경스러운 거 아니니. 이 어미가 그래도 한때는 수녀를 꿈꿨었단다.”
“그, 그렇긴 하죠. 근데…….”
“그럼 그냥 신처럼 병을 잘 고치는 병신으로 하자.”
“그…… 그래요. 병신으로 하죠.”
오래가지는 않았다.
내가 담담히 내가 병신임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덕분이라고 하자.
많이 양보한 거니까.
“그건 그렇고…… 너 별명이 더 있던데.”
게다가 현실적인 이유로 병신같이 마일드한 별명은 빨리 넘어가는 것이 좋았다.
나를 둘러싼 별명이 많기도 한데, 또 하나같이 이상하잖아?
하지만…….
이 자리에서 단언하건대 모두 오해요, 음해였다.
나는 한바탕 해명을 하다가 말고, 문득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19세기는 해가 강한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노화가 정말 빠르다.
우리 부모님 기껏해야 마흔이거든?
근데 아버지나 어머니나 중늙은이가 따로 없었다.
‘닥터프렌즈인지 나발인지 하던 애들이 마흔 즈음 아니었나?’
머리카락 좀 부족한 친구까지 포함해도 다들 어려 보였더랬다.
카메라 아니라 실제로 보면 더 그랬다.
물론 그분들이 상대적으로 동안이긴 했다.
그래도…….
20년 넘게 차이 나 보이는 거, 실화냐?
‘놀랄 일이 아니긴 해…….’
정확한 통계는 모른다.
그나마 대영제국이다 보니 행정력이 미쳐 버려서 나름 파악이 되긴 하는데, 빈민가 쪽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라 그렇다.
아무튼, 평균 수명이 대충 45세 정도 된다.
퉁치면 우리 부모님 수명이 5년밖에 안 남았단 얘기가 되는데…….
이게 의학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그치만.
‘인간 수명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었는데…….’
학자들이 다들 그렇지 않나.
현장이 아니라 책상 앞에서 깔짝이는 놈들이 뭐 다 알겠어?
하나도 모르지야 않겠지만, 응?
얼굴 봐라.
육십이라고 해도 믿겠어.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건강검진 좀 하십시다들.”
“응……?”
“그게 뭐냐. 나는 싫다. 병원은 싫어.”
불안해진다.
내가 뭐 유독 나쁜 자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효자라고 볼 수 있을 거다.
특히 유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더더욱 그렇다.
자식의 입신양명이야말로 효도일진대, 그런 거로 치면 만리타향에서 조선인의 몸으로 이만한 성공을 거두었으니 대단하지.
지금도 봐라.
우리가 머무는 숙소는 런던에서도 이제 꽤나 잘나가는 거부의 집이다.
심지어 우리는 식객 수준이 아니라 동업자이자 생명의 은인으로 머물고 있는 거다.
“무서운 거 안 해요. 아들 못 믿어요?”
“너야 믿지만…….”
“내가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게 있어 그런다.”
허나 자식 된 입장에서 부모가 하루라도 더 건강히 사는 것을 바라는 것처럼 숨 쉬듯 당연한 일이 또 있겠나?
할 수 있는 일이야 여럿 있을 텐데…….
의사로서 단언하건대 조기 검진이야말로 최고의 효도다.
그래서 그것 좀 하려니까 저항이 장난이 아니다.
“에헤이, 괜찮다니까. 오늘 내가 특별히 빌려 온 사람도 있어요.”
“빌려? 사람을?”
“네, 제이미 공작님 개인…… 비서예요, 비서.”
“공작님의 비서를 빌릴 수 있다고? 너 정말…….”
“아들 성공했다니까. 아무튼 자자, 이 컵 하나씩 받아요.”
“컵?”
하여간 두 분은 내가 건네드린 유리컵을 들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도 두 분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아, 맞다, 맞어.’
우리 센터에서야 컵 주면 소변 받아 오는 게 보편적인 상식이 되어 버린 지 오래라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그게 아니지 않나.
해서 나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두 분의 저항이 있었다.
“그걸 왜…….”
“조선에서는 용변 보는 것을 남들 앞에서 하지 않는 것이 예의란다.”
“그거야 세계 어딜 가도 예의고요.”
“런던은 아니지 않니?”
“그러니까 말이다. 얘가 좀 물들었네.”
“아니, 아니. 여기서 보라는 게 아니라 가서 받아 오라니까요?”
과연 유교다 싶었다.
아니, 두 분 다 신부, 수녀를 꿈꾸던 분들 아닌가.
근데 대체 왜 뼛속 깊이 유교가 박혀 있단 말인가.
“받아 오시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게 다 훌륭한 진료입니다.”
“아…….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알겠습니다. 아유, 남사스러워라.”
그래서 그런가?
리스턴 교수님의 말은 또 잘 들었다.
하긴 뭐, 딱히 유교 때문이 아니라도 리스턴 말은 잘 들을 수밖에 없긴 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어디…… 응? 개길 마음이 들겠냐?
“자, 여깄다.”
“여기. 에휴.”
아무튼, 나는 곧 부모님의 소변을 받을 수 있었다.
‘발색 좋고…… 건더기도 없고. 좋아.’
유리컵인 이유가 있다.
아무래도 검사가 미흡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아닌가.
21세기에서야 종이 하나 띡 대면 피, 단백질, 당 다 나오지만 여긴 그게 안 된다.
“좋으시네.”
“네. 그래도 맛은 또 모릅니다.”
“뭐라는 거냐……?”
“맛이라니? 소변 먹이는 자가 진짜였니?”
해서 이렇게 잘 보기라도 해야겠다.
적어도 심각한 수준의 성병은 감별이 되거든.
다행히 뭐가 없어서 히죽 웃고 있으려니 부모님이, 특히 어머니가 안색이 상당히 어두워진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여간 별명이 문제다.
술꾼 새끼들 언제 한번 싹 털어야지.
“그런 게 있습니다.”
나는 대충 둘러댄 후, 제이미 경의 개인 비서에게 소변 컵을 두 개 건네주었다.
“그…… 부탁드립니다.”
“네, 물론이죠.”
예전 그 죄수였다.
제이미 경의 탄원에 의해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대가로 매일매일 소변 맛을 봐야 하는 신세가 되긴 했지만…….
원래 같았으면 안에서 비참하게 뒈졌을 운명이었으니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뭐, 이 양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미안합니다.”
“아유, 당연히 할 일이죠. 피영시인의 부모님 소변이라니, 영광입니다.”
이런 말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겠나?
물론 이 양반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감옥에서 풀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피영시인 아니었으면…… 변까지 먹게 되었을 거 아닙니까…….”
“그건…… 제가 막았으니 걱정 마세요.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하면 저한테 말해요. 제 말은 그래도 제이미 경이 들어주니까.”
“네, 네. 감사합니다.”
소믈리에에서 변믈리에로 전직할 뻔했는데 막아 줬잖아.
“음……. 쓰네요.”
“쓰기만 합니까?”
아무튼, 조금 기다리는 사이 소믈리에 선생이 일단 아버지의 것부터 음미했다.
유리컵인 데다가 심심치 않게 맥주나 화이트와인 등을 마시는 문화권이다 보니 그냥 보면 꽤 그럴싸해 보였다.
무엇보다 소믈리에 선생의 태도가 참으로 경건했다.
“아뇨. 쌉쌀하다고 해야 할까……? 건강한 맛입니다. 별문제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하는 말도 꽤 그럴싸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시기는 영국이고 나발이고 어디건 간에 공교육이라는 개념이 부족하다 보니 말만 들어도 지식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는데…….
괜히 사기로 잡혀 들어갔던 것이 아닌지 입을 잘 털었다.
“어머니도 그렇네요.”
“좋아. 다행입니다.”
“도움이 되어 좋군요. 한 달에 한 번 정도면 되겠습니까?”
“검진 목적으로…… 네, 그렇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물론이죠. 그럼 이만.”
그렇다 보니 제이미 경의 총애도 대단해서 개인 마부도 딸려 있을 지경이었다.
옛말에 ‘지치득거’라는…… 왕의 치질을 핥고 수레 다섯 대를 받았다는 고사가 있는데, 딱 그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하루 몇 번 소변 먹는 것을 대가로 저만한 호사를 누릴 수 있다면, 적어도 19세기 런던에서는 상당히 성공한 인생일 터였다.
“좋다네요.”
“이런 숭악한 일을 다 봤나.”
“헛소문이라더니…… 진짜로 저분이 내 소변을 마신 거니?”
저 양반이 하는 말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런던에 내놓으라 하는 소믈리에들이 몇 더 있다곤 하지만, 그래도 최고거든.
죄수 출신임에도 저기까지 올라갔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자, 이번에는…….”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여보, 평이가…… 런던이 바빌론 같은 곳이라더니…….”
나는 아직 건강한, 그러니까 적어도 당뇨는 없는 부모님의 대화를 들으며 껄껄 웃었다.
어째서인지 그 웃음에 더욱 기함하는 두 분이었지만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할 게 많아서 그랬다.
“아, 이게 그 혈압계로구만.”
“실패작이 많았죠. 근데 이젠 아닙니다.”
“생긴 것만 봐서는…… 이게 뭐 하는 물건인지도 모르겠구만그래. 아무튼, 혈관에 관 꼽는 방식은 아니라는 거지?”
“당연하죠. 그랬으면 어떻게 부모님한테 해 보겠어요. 아니, 사람한테 하면 안 되는 일이죠.”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리고 리스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블런델을 바라보았다.
리스턴이 시끄러운 미친놈이라면 블런델은 조용한 광인 아니던가.
그런 놈에게 수혈이라는 상당히 예민한 사업을 넘겨주었던 것이 실수였을까?
몇 번 사고가 있었다.
뭐…… 의도는 좋았다.
원래 헌혈하려면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지 않던가.
그중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건 체중밖에 없어서 그거나 재라고 했더니 헌혈 이후 어지럼증 또는 실신하는 일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자, 아버지. 팔 내밀어 봐요.”
“괘…… 괜찮은 거지?”
“이상한 일 안 한다니까요.”
“방금 소변 먹였잖아.”
“그 사람은 그게 직업이에요. 제가 만든 신종 직업이죠.”
“하나님이 두렵지 않니?”
그때 내가 지나가는 말로 ‘혈압이 원래 낮거나 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했는데 그걸 듣고 나서 가서 혈압을 잰 모양이다.
전통적인 방법…….
그러니까 피 분수 높이를 재는 방식으로.
“이게 정말 되는 건가?”
“그렇다니까요.”
그렇게 몇 번 실패를 겪은 블런델은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내가 아버지 혈압 재는 것을 바라보았다.
다른 놈들이라고 해서 허튼짓이나 하고 있는 놈들은 없었다.
19세기 의학은 낙후되었을지 몰라도 열정만큼은 원탑이니까.
‘혈압을 재 어디다 쓰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보면 이것도 내 복이지.’
열심 내는 놈들 가르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지 않겠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재는데…….
“150……에 100.”
이런, 혈압이 높다.
하긴 아버지…….
이 시기 영국인답지 않게 혈색이 좋다.
부유하지는 않아도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어서 그렇다.
무엇보다 맛대가리 없는 영길리 놈들 음식이 아니라 맛있는 한식을 먹고 있으니 더 살집이 있다.
“와아. 높네.”
“건강하시네.”
“부럽다. 괜히 노블 킴가가 아니구만.”
그런 내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에 있는 의사 놈들은 아버지에게 축하를 건네고 있었다.
“어, 하하. 네, 뭐.”
아버지는 쑥스러워하고 있었고.
갈 길이…….
진짜 존나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