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82)
검은 머리 영국 의사-282화(282/505)
282화 마법의 탄환? 아니, 아직 비소다 [1]
부모님과의 즐거운 런던 관광은 결국, 런던의 심각한 대기 오염에 대한 고찰로 끝이 났다.
뭐 부모님이야 그냥 냄새가 좀 퀴퀴하고 시야가 좀 적고, 기분이 찝찝하고, 이따금 기침 나는 것 정도의 불편감이 있구나 하고 있었지만…….
나도 그렇게 마음 편히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대기 오염이라는 게…….
사실 엄청 심각한 거 아니던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미세 먼지 경보에서 보통 이상만 떠도 KF94 마스크를 끼던 게 나다.
왜?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으니까.
아니, 그보다…….
‘만성 호흡기 질환 환자들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니까…….’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각종 질환자들을 다 보기 마련인데, 사실 병이라는 게 무엇 하나 더 힘든 질환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긴 했다.
심각해지면 다 힘들다.
그렇긴 한데, 그중에서도 저 병만큼은 피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이 있다.
주로는 두경부암이나 호흡기 질환이 그렇다.
특히 호흡기 질환은 남은 평생을 반쯤 익사하는 기분으로 살아야 할 수도 있지 않나.
‘나 왜 지금까지 이걸 전혀 자각하지 못했지.’
1952년 런던 그레이트 스모그.
그때 며칠 동안이더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하여간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수천 명이 죽고, 10만 명 이상이 후유증에 시달렸던 건 안다.
단기적인 영향이 그 정도였으니 장기적인 영향까지 고려하면 아마 당시 런던에 살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때의 영향으로 인해 수명이 좀 줄긴 했을 거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아무래도…… 100년도 더 전이니만큼 그때보단 나은 것 같다.
일단 자동차도 없고, 무엇보다 인구도 훨씬 적잖아?
하지만…….
‘아니, 그러고 보니까 이 미친 새끼들은 왜 난방할 때 석탄만 쓰는 거야. 나무를 태우면…… 나무는 좀 낫긴 한가?’
석탄보단 나을 거 같다.
생각해 봤는데, 완두콩 수프라는 귀여운 이름이 붙은 우리 런던 스모그…….
그거 이산화 황이 노란색이니까 그게 보이는 거 아니겠나?
나무는 태워도 황은 없지 않나 싶었다.
그래 봐야 수백만이 모여서 나무 태우고 있으면 그것도 안 좋긴 하겠지만…….
‘천연가스…… 부질없지.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는데.’
이제부터라도 마스크를 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술할 때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오, 평신. 어디 털러 가나?”
문제는 이 시기 마스크라는 게 사실상 천 마스크밖에 없다는 데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마스크 끼는 게 일반적인 일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대개는 얼굴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만 쓰이고 있다.
내 모습을 본 리스턴이 정말이지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인사하는 데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이 말이었다.
“아니…….”
“좋은 데 있으면 공유 좀 하게.”
“형님 돈 많잖아요, 이제.”
“자네도 많은데 털 생각이 들었다면 어지간한 곳 아니겠나.”
“그런 게 아니라…… 공기가 좀 안 좋은 거 같아서.”
“하하하! 런던 공기가 그럼 다 이렇지. 그래도 다행 아닌가?”
“네?”
뭐가 다행이야?
나는 우리가 켄싱턴에 마련한 병원 안으로 들어가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진짜 이제 19세기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근데 전혀 감이 안 잡힌다,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
심지어 내가 어제 웃으면서 부모님한테 스모그를 우리 런던의 명물 완두콩 수프라고 했다니까?
그 지경이 되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
“전에는 그래, 합리적이지 않은 불안이 있었지.”
“으응……?”
부연되는 설명이 있는데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아닐세. 다 자네 덕이야.”
“제 덕이요?”
여기서 왜 내 덕이니 뭐니 하는 말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제는 모르겠다는 생각만 드는 게 아니라 슬슬 좀 불안해진다.
이미 코카인으로 내 미래 평판은 나가리 났는데…….
여기서 또 뭔가 나온다고 하면 좀 그렇잖아.
“독기론은 사실상 폐지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나? 물론 멍청한 놈들이 아직도 그걸 믿고 있기는 하다만…… 적어도 우리 병원은 이제 그 무지몽매한 세계에서 벗어났지.”
“아, 독기론.”
오랜만에 듣는다.
냄새가 나쁘면 병에 걸린다는 이론이었지.
완전 틀린 말이긴 한데…….
리스턴이 부정을 하니까 또 이게…….
“생각해 보게, 평. 저 공기라는 게 결국, 석탄 태워 발생하는 연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겠나.”
“그렇죠.”
맞는 말이 뒤섞여 있을 때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왜냐면 이 시기 과학자들이란 절대로 자연 현상을 다 아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사실 21세기에서조차 모든 비밀이 풀린 것은 아니었는데, 19세기는 어떻겠어.
“거기에 미아즈마가 있을 수 있겠나? 우리가 소독할 때 쓰는 게 석탄산인데? 그리고 저 석탄 태울 때 옆에 있어 봤나?”
“아뇨. 굳이……?”
“엄청 독하다네. 어떤 미아즈마도 살 수가 없어요!”
“그, 그렇긴 하겠죠.”
근데 우리 인간이라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조금 무서운 생각이 떠올라서 말을 잇진 않았다.
-오, 석탄 태우는 가스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거 같다, 이 말이지?
-그걸 어찌 증명하지?
-해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 가스실을 만들어 보게.
나치보다 먼저 가스실을 개발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진 않다.
사실 이미 여러 사형수들 가지고 실험을 하긴 했는데…….
가스실은 좀 그렇잖아.
너무 본격적인 살인 공장 느낌이다.
그걸 실제로, 심지어 뭘 증명하려고가 아니라 순수하게 한 민족을 말살시키려고 돌린 나치 놈들은 대체 뭐 하던 놈들일까.
“그러니까 저 공기는 그냥 좀 불편할 뿐, 어떤 병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 증명이 된 셈일세. 하하.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지 뭔가.”
“아…….”
독기론을 믿고 있는 놈들은 냄새만 주의하면 되니까 소독을 안 한다.
그나마 런던 병원들은 그렇게 했더니 여전히 환자가 죽는 데 반해 우리 병원은 환자가 적게 죽으니까 장사가 안된다는 이유로, 독기론을 믿는 사람들조차 소독을 슬금슬금 하고 있긴 한데…….
여전히 다른 지역 또는 나라에서는 독기론을 신봉하고 있다.
그걸 어떻게든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독기론을 부정하게 되면 또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걸 방금 알았다.
‘후후. 19세기…… 역시 만만치가 않구만.’
내가 선택한 19세기라면 악으로 깡으로 버티겠는데 그것도 아니잖아.
여기 이렇게 띨룽 보낼 거면 상태창이라도 줘서 보냈어야지.
“자네도 가끔 보면 귀여울 때가 있다니까. 하하, 이런 얘기 사람들이 들으면 우습게 여기겠지만 말이야. 세상에. 평신이 귀엽다니. 내 정신 좀 봐.”
내가 잠시 스턴인지 실의인지에 빠져 있는 동안 리스턴은 내 마스크를 보면서 뭐라 뭐라 떠들어 댔다.
진짜 내가…….
전X시의 유X혁 같은 개복치였잖아?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중꺾마의 화신이지.
남은 문제만 보고 있으면 진짜 답도 없다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해결해 온 수많은 문제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심지어 내게는 무림 고수 리스턴도 있다.
“아, 왔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멘탈이 간신히 돌아왔다.
해서 멀쩡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우리의 화학자 아저씨가 도착해 있었다.
코카인에 빠져서 제정신 못 차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한 경고가 효과가 있었던 걸까?
‘아니…… 아마 제이미 경이 사람을 보냈을 거야.’
제이미 경은 내 덕에 이 코카인이라는 게 몹쓸 물건이라는 걸 진작에 알아차리지 않았나.
그렇다고 해서 굳이 규제하려고 하는 거 같진 않았다.
어쩌면 나 모르게 사업을 벌이고 있을 수도 있다.
국가 단위로.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냐고 한다면, 눈을 들어 아편 전쟁이 벌어질 곳을 보라고 하겠다.
영국은 할 수 있다.
아니, 했다.
‘그래도 이 아저씨는 유능하지. 돈이 되잖아?’
아편 전쟁을 준비하면서, 나중에 마약이란 이름이 붙을 이 망할 약들의 해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 바로 제이미 경과 그 일당들 아니겠나.
사람을 어떤 식으로 망가뜨리는지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고 있다, 이 말이다.
그러니 유능한 인재는 보호하는 게 마땅했다.
그 과정에서 상당히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을 거 같긴 한데…….
뭐가 되었건 서울로 가면 된 거 아냐?
마약 끊었으면 된 거다.
“오, 웬일이에요?”
“웬일은 무슨. 그 비소 화합물 때문에 왔지.”
“아, 아아. 맞다.”
“경찰에서도 사람 보내오기로 했을 텐데…… 그거 오늘 아닌가?”
“오늘 맞아요.”
“그렇군.”
화학자 아저씨는 뻔히 리스턴도 같이 있는데 나하고만 대화를 나눴다.
리스턴은 그런 아저씨에게 딱히 뭐라 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때 봤지 않나.
사람들 조지는 거.
그걸 보고 나서도 리스턴과 마주 보고 대화를 하려면 어지간한 담력이 있어야 했다.
“흉악한 놈들이라고는 하던데…….”
“여전히 세 개인 거죠?”
“그렇지. 여기서 더 좁힐 수가 없어. 사실 비소라는 게 어떻게 해도 매독을 죽이긴 하거든? 문제는 개도 죽인다는 건데…… 이 세 개는 그래도 그 빈도가 적단 말이지.”
“그렇겠죠.”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비소는 애초에 독이니까.
실제 역사에서도 비소 화합물로 만든 매독 치료제인 살바르산은 그 공로로 노벨상도 받긴 했지만 부작용이 심각하지 않았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페니실린이 등장하고 나서는 완전히 사장되었다고 알고 있다.
‘문제는…….’
썩은 빵은 더 위험하다는 데 있다.
심지어 치료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어.
랜덤 뽑기로 있는 놈도 있고 없는 놈도 있는데, 어지간히 급할 때만 썼다지만…….
그걸 정기적으로 환자에게 쓸 만큼 나쁜 놈은 아니다, 내가.
“계십니까.”
잠시 후, 경찰서에서 사람들이 왔다.
곧 철창 달린 마차에서 죄수들이 우르르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강력 범죄 많기로 유명한 런던에서조차 흉악범으로 분류된 놈들이었다.
이쯤 되면 좀 쫄 법도 하겠지만, 우리 병원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지 않나.
의사들은 물론이거니와 간호사들이나 일 돕는 다른 직원들 또한 그저 보고 있을 뿐이었다.
“에그 불쌍한 놈들…….”
“어쩌다 피영시인한테 찍혀서…….”
“예끼, 이 사람. 함부로 나불대다가 자네도 찍히면 어쩌려고.”
“왜. 피영시인은 좋은 말인데.”
“아, 하긴 그렇군.”
오히려 불쌍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나?
나는 반반이었다.
경찰서장을 통해 이놈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소가 살인이고, 더 나쁜 놈들은 거기에 더해 다른 죄를 몇 개 더 저질렀다.
원래 같으면 교수형감이다, 그리고 이 시기 교수형은 높은 데서 떨어뜨려 목을 부러뜨리는 게 아니라 20, 30분간 질식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방식이다 보니 어쩌면 비소가 더 인도적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가려 받길 다행이야.’
처음엔 오죽하면 사형 선고를 받았을까 해서 다 죽이겠다고 했다가, 좀 찜찜해서 죄목이나 보자고 했더니 이 미친놈들은 별별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단순 절도, 밀렵, 말 훔치기 등등으로도 사형 선고가 되더라고.
죄는 죄지만 죽을죄는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구명 활동이야 못 하겠지만.
“이보게 평.”
“네?”
“슬슬 시작하지.”
“아, 그러죠.”
뭐가 되었건 이놈들을 대상으로는 해도 될 거 같다, 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