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84)
검은 머리 영국 의사-284화(284/505)
284화 마법의 탄환? 아니, 아직 비소다 [3]
선원.
21세기에서의 인식을 들고 와서 보자면, 역시나 만만한 직업이 아니다.
그냥 힘들기만 한 게 아니라, 배에서 일하려면 이런저런 숙지해야 할 일들이 많지 않겠나?
따로 대학까지 있을 정도니…….
나야 잘은 모르지만 일종의 전문 직종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이건…….’
그거랑 같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사실 의사만 해도 21세기 의사랑은 느낌이 많이 다르거든.
나름 과학자고, 나름 중산층 이상의 대접을 받고 있긴 하지만…….
공부만 잘한다고 될 게 아니라 무력이 상당히 중요한 느낌이라서 그랬다.
헌데 이건…….
21세기 선원과 19세기 선원의 차이는…….
“흐하하하!”
“역시 사내라면 어? 배를 타야지!”
“하하하하! 이 친구, 이거 누가 보면 여러 번 타 본 줄 알겠어?”
“근데 저는 어떤 배에 타게 되는 겁니까?”
“범선이지!”
“아, 범선!”
난 아직도 왜 증기선이 주류가 아닌지 잘 모르겠다.
근데 그거야 뭐…….
내가 이해할 문제는 아니지 않겠나?
중요한 건 눈앞에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이게…… 19세기 뱃사람이구나.’
진짜…….
갱단보다 더 험악해 보인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 어어. 검성 리스턴? 피영시인까지! 오랜만입니다!”
“누, 누구시더라?”
“그…… 하하! 여기서 아는 척하긴 좀 그런가요? 그 왜…… 제가 몇 번인가.”
“아, 아아.”
시신 납품업자다.
납품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제대로 된 직업인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그 앞에 붙는 시신이라는 단어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시신을 정기적으로 납품하는 사람을 달리 뭐라 하겠나.
갱단이다, 갱단.
“제가 이제 새 출발을 하려고요. 여기 아우들이랑.”
“아…… 그렇구나.”
갱단이 왔다!
선배네 배 이제 큰일 났다 싶어서 가서 아저씨에게 알려 드렸다.
“응? 그래?”
헌데 반응이 어째 시큰둥하다.
‘그래서 뭐’라는 투라고 해야 할까?
아마 나니까 이 정도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되게 뭐라고 했을 거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해서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하고 있으려니 아저씨가 하하 웃으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 맞아. 조선 사람이지? 하하. 자네는 이제 훌륭한 대영제국 시민 같아서 말이야.”
“시민은 맞는데요.”
“아, 아아. 그렇지. 아무튼…… 갱단 놈들 없으면 사실 신규 선원 모집이 어렵다네.”
“네?”
“저 정도면 아주 괜찮은 편이야. 경찰에서 괜히 배 도착하면 여기부터 뒤지는 게 아니거든. 전과자에 살인자에 그런 놈들 다 제쳐 두면 뽑을 놈이 없어.”
“아…….”
“그러니까 걱정할 거 없어. 우리 배에 저놈들보다 더한 놈들 쌔고 쌨어. 아, 선장을 한번 보면 걱정이 확 사라질 거야. 이봐! 마크!”
아저씨는 그러니까 선주다.
쩐주라 이 말이고, 플레이어는 선장이라고 봐야 하는데…….
마크라 불리는 아저씨가 오셨다.
“와…….”
“아, 그 유명한 피영시인이로구만.”
“아, 네. 그…… 반갑습니다.”
“하하. 반갑네, 반가워.”
리스턴만큼이나 험악한 인상이었다.
일단 팔이 한짝 없는 게 포인트인데…….
거기에 달린 후크는 날을 세우셨나…….
번쩍번쩍하는데 걸리면 바로 뒈질 거 같았다.
“어떤가.”
“걱정 없겠네요.”
“근데 왜 얼굴이 그래?”
“군인 쪽도 비슷한 거 아닌가 싶어서요.”
“하하. 별다른 거 없겠지. 고생하는 걸로 치면 둘 다 비슷하지 않겠나?”
“그거야 그럴 거 같긴 한데…….”
원래도 그럴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군인이라고 해 봐야 뭐 육군이 있나?
거의 다 해군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심지어 해군이 이끄는 배 중에서도 범선이 많았다.
범선이랑 증기선이랑 뭔 차이냐고 할 수도 있다.
바다 나가면 다 같이 고생 아니냐 싶을 수도 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죠.’
나는 잠시 도버 해협을 건너던 때를 떠올렸다.
하필 날씨가 개판인 데다가, 바람도 안 불어서 원래 같으면 하루도 안 걸릴 거리를 사흘이나 걸려서 갔었다.
-이거야 원. 수영이 더 빠르겠군그래.
리스턴이 했던 말도 떠오르는데 완전 농은 아닐 것 같다.
아무튼, 그게 범선이었는데…….
사람의 힘으로 가는 게 아니라 바람의 힘으로 가는 거 아닌가.
그래서 노 저어서 다니던 때보다 훨씬 더 멀리, 바야흐로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인데…….
이게 바람의 힘으로 가는 것이다 보니 바람이 부는 방향에 맞춰서 돛을 돌려야 한다는 명확한 단점이 있었더랬다.
심지어 바람이 부는 시간에 일을 해야 하는데 바람이 뭐 인간 사정 봐 가면서 불겠어?
그냥 제 마음대로 부는 거지.
‘새벽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하고…….’
그렇다 보니 말 그대로 밤낮이라는 게 없었다.
선장이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서 당기라고 하면 돛 당기는 거다.
그렇게 고되게 일하면 밥은 잘 주냐고 하면…….
우리는 잘 먹었다.
이미 리스턴 형님이 팔다리 엄청 자르고 다니던 시절이라 돈깨나 있었거든.
근데 우리 선원들은…… 너무 짜서 바닷물에 씻어 먹어야 할 거 같은 말린 고기에 감자나 먹더라고.
그나마 라임 주스라도 먹는 게 다행인 수준인데…….
그마저도 주스 외에 주어지는 액체는, 그러니까 물 대용으로 먹는 건 술이었다.
도수가 낮긴 해도, 술을 주더라고.
-아, 아아. 물은 썩지 않습니까.
이유는 간단했다.
원래 선원들은 다 물 대신 술을 먹는다더라고.
어쩐지…….
코가 다 빨간 게…… 우연은 아니었다.
군인도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들자 나중에 병원에 오는 사람들만 봐야겠다는 쪽으로 사고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아, 그 전에 이 사람들이 왜 병원에 오게 될는지가 궁금했는데 답은 상당히 간단했다.
“응? 어렵게 살던 친구들한테 선수금을 주면 어떻게 되겠나.”
“저축……?”
“저축? 하하하하하! 농담도. 당연히 다 쓰지! 돈 모으게 두질 않지! 우리가.”
아저씨는 내 말에 호탕하게 웃었다.
뭔가 무서운 말을 하면서였다.
“네?”
“술, 여자! 도박! 이거 피해 갈 수 있는 사내가 또 어디겠나. 배 타기 전에 백이면 백 다 탕진이야. 안 그런 놈이 있긴 한데 그런 놈은 잘 보다가 승진시켜 주곤 하지.”
“근데 그러다가 안 나타나면요? 떼먹히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하.”
이번에도 웃긴 했는데 좀 음산하게 느껴졌다.
내 착각만은 아니었다.
19세기 사람치고 무서운 면이 없는 사람은…… 아예 없다고 봐도 되기에 그랬다.
특히 돈푼깨나 만지고,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라면 다 그랬다.
아저씨라고 해서 예외일 거라 믿는 건 너무 순진한 발상일 터였다.
“신상 명세서가 다 있는데 어떻게 도망을 가나. 대영제국의 행정력을 얕보지 말게나.”
“아…….”
“게다가 선배 선원들이 대부분 따라다녀.”
“근데 그럼 병에 걸리긴 하나요?”
“당연하지. 런던 매춘부들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쟤네들이 품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뭐, 하하.”
진짜 악당이 여기 있었다.
갱단이고 나발이고…….
‘아니, 모르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근데 그냥 이렇게…….
어?
자기 선원이 될 사람들인데.
“아무튼, 그렇게 빚을 지게 되면 배 타서 생각보다 너무 힘들단 생각이 들어도 어쩌겠나. 내릴 수가 없지! 돈을 갚아야 하니까.”
“아……. 근데 그러면 다음엔 안 탈 거 아니에요.”
“응? 하하. 아니지. 자네는 배를 오래 타 본 적이 없지?”
“없죠.”
악행에 치를 떨고 있는 와중에도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병원 일 하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든 한 줄기 이성은 남아 있게 되는데 다 그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모르지. 망망대해에서…… 죽을 고생 하다가 뭍에 내리게 되면 미래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동안 참았던 걸 풀기 바쁘게 된다네. 비단 런던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항구에 가서도 매한가지야. 그러다 보면…… 오히려 배를 타면 탈수록 빚만 늘게 되는 놈들도 있다네. 영원히 내 밑에서 일을 해야 된다, 이 말이지.”
“아…….”
악마인가?
아니, 사탄도 교수님, 교수님 하면서 따라다닐 거 같다.
그러면서도 표정에 한 점 부끄러움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게 19세기 런던 선주들의 관행인 모양이었다.
신나서 떠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좀 미안해질 정도인데…….
‘어쩌겠어……. 매독이나 고쳐 줘야지.’
가뜩이나 개고생할 사람들인데 매독이라도 고쳐야 하지 않겠나.
게다가 지금 아저씨 말대로라면 들르는 항구마다 사람을 만날 거라는 얘기가 되는데…….
매독 걸린 채로 다니면 살아 있는 숙주 그 자체 아닌가.
요리사가 아니라 선원들을 가둬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뭐, 요리사는 높으신 분들을 죽일 수 있고 이 양반들은 그게 아니니 경찰이나 그 윗선이나 전혀 관심은 없겠지만…….
“알겠습니다. 그럼 환자 생기면 바로바로 보내 주세요.”
“그래, 그래. 나도 선원들 건강하면 좋지. 근데 말이야.”
“네.”
“나보다도 군 쪽에서 관심이 아주 지대하다네. 군인들이야 우리보단 좀 더 규율이 엄한 편이지만…… 사람 사는 게 막상 부딪쳐 보면 그렇게만 될 수가 없는 법이거든. 오히려 당장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놈들인데 무작정 안 된다고만 할 수가 있나.”
“아…… 엄청 많겠네요.”
“그럼. 전투 많이 치른 병사들일수록 더더욱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이거 어쩌면 군납 쪽으로 풀릴 수도 있어.”
군납.
전통적으로 가장 좋은 돈 버는 방식이지 않나.
군인들이란 어쩔 수 없이 소비만 하는 집단이면서 동시에, 거기에 돈 쓰는 걸 인색해하기도 어려워서 그렇다.
심지어 대영제국은 실시간으로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전투 중이지 않나.
전쟁 중인 군인들에게 돈을 안 써?
미친 거다, 그건.
“보통은 중간에 떼먹히거나 하는 게 문제가 되는데, 우리 사업에는 자네 덕에 제이미 경이 있지 않나. 걱정이 없지. 돈방석에 앉게 될 거야.”
“오…….”
“그러니까 성심성의껏 치료를 해 보라고. 알고 보면 다 불쌍한 친구들이니까 말이야.”
“그…… 알겠습니다. 네.”
돈도 벌고, 불쌍한 사람들 돕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렇게 되지 않아도 될 사람 꼬셔다가 구렁텅이에 내모는 느낌도 있긴 하지만…….
내가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누군가 이득 본 사람이 범인이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이 경우에 나는 정말로 억울하다.
나는 의사의 본분에서 벗어나 행동한 적이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없으니까.
뭐 약간 거칠어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다 필요에 의한 거다.
다 내가 너 생각해서 소변도 먹이고 똥도 먹이고 하는 거다, 이 말이다.
‘크……. 이것이야말로 부모의 마음…….’
나는 그만 나 스스로 뿌듯해져서 껄껄 웃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여전히 2층에는 죄수들이 우글거렸다.
안전 용량 확인 때문이었다.
그에 더해 매독 잠복기가 지날 무렵…… 그러니까 한 열흘쯤 지나자, 신규 선원 및 신병들로 센터가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다.
“무엄하다, 이놈들!”
그마저도 오전에는 귀족 나리들 당뇨 치료를 해야 하는데 그때 이런 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안 된다고 해서 오후에만 보다 보니 진짜 시장 바닥이 따로 없었다.
엄청 힘들다, 이 말이었다.
그럼에도 보람이 있었던 것은…….
“이게 진짜 되잖아?”
“허어…… 매독을 치료한다니…… 그것도 사람이 안 죽고!”
우리의 비소 화합물이 효과를 보이고 있단 점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