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85)
검은 머리 영국 의사-285화(285/505)
285화 군납 [1]
앨프리드 선배네 아저씨는 이제 거상이다.
콘돔도 팔지, 당뇨병 치료에 투자도 했지…….
나 몰래 다른 것도 만들어 파는 거 같은데, 그건 알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하고 있다.
아무튼, 그런 양반의 인사이트란 역시 상당한 모양이었다.
“안녕하시오.”
찰스 엘리엇이라는 사람이 사촌 형 조지 엘리엇이라는 사람과 함께 병원에 찾아왔다.
둘 다 딱 군바리 냄새가 나는데…….
그나마 찰스라는 양반은 최근에 전역한 건지 뭔지 자신은 군인이 아니라는 걸 필사적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어떤 방식이었냐면, 각 잡힌 채 서 있다가 이내 짝다리를 짚는 식이었다.
내가 군대 다녀온 경험이 없다면 모르겠는데 3년 2개월이나 군 생활을 해 본 입장에서, 상대가 군인이거나 군인 출신이라는 걸 못 알아보는 건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그, 네. 안녕하십니까.”
아마 런던 온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다면 되게 쫄았을 거다.
일단 동양인이라는 거 자체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시기라서 그렇다.
그래 봐야 경찰만큼 무섭진 않았을 거 같다.
이 시기 경찰이란 거의 공적 깡패라는 느낌이 강하거든.
헌데 이제는 숫제 런던의 유지 정도는 되지 않나, 나도?
해서 당당히 마주 보고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제이미 경과 함께 긴밀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찰스 엘리엇은 후후 웃으며 의미심장해 보이는 말을 했다.
긴밀한 일이라는 말도 수상쩍은데 거기에 제이미를 끼얹으면 어찌 될까.
뻔하다.
‘아편 전쟁…….’
찰스 엘리엇이 아는 이름은 아니다.
아편 전쟁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 해 봐야 그 의의와 향후 벌어지는 일 정도 아니겠나.
수능 보려고 공부한 게 다인 나로서는 그 안에 있던 세세한 역사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어째 전개가 빠르다는 건데, 그런 걸 감안해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눈앞의 이 사람은 원 역사에서는 전혀 다른 일을 했던 사람일 수도 있다.
“앞으로 큰일을 앞두고 있는데…… 그것에 수혈과 이 매독 치료가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그래, 맞네.
큰일이라면 전쟁일 거다.
군바리 냄새 풀풀 풍기는 사람이 와서 말하는 큰일이 달리 뭐가 있겠나.
“저는 뒤에서 조율을 할 예정이고, 실제 작전은 여기, 제 사촌 형님이 도맡아 할 겁니다.”
“안녕하십니까! 피영시인.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여간, 그가 어깨를 툭 치자 조지 엘리엇이라는 친구가 각 잡힌 태도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기분이 썩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영광이라잖아?
딱 봐도 그렇게 낮은 사람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아, 네. 저도 영광입니다. 태평 킴이라 합니다.”
“소개를 제대로 해야죠.”
“아, 네. 조지 엘리엇입니다.”
“하하. 이래 봬도…… 로열 네이비의 대령입니다. 앞으로 장군까지 오를 것이 틀림없는 인재 중의 인재죠.”
“아…… 네네.”
대령…….
곧 청나라 갈 분이구나 싶었다.
이제 진짜 전쟁이 난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근데 이렇게 빨라도 되나 싶었다.
‘지는 거 아니야?’
청나라가…… 응?
아무리 그래도 17세기, 18세기까지는 세계 최강대국 아니었나?
강희, 옹정, 건륭제로 이어지는 강건 성세가 딱 18세기 말까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뒤로 화신인지 나발인지 하는 간신배가 날뛰고 가경제가 훅 간 다음에 도광제가 맡게 되면서 국운이 기울긴 하지만…….
“해서 도움을 좀 받으려고 합니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그런다고 대화를 이어 나가지 않을 수는 없지 않겠나.
뭐 내가 쉰다고 해서 일이 틀어지진 않을 것 같긴 하다.
왜?
옆에 리스턴도 있고, 제이미 경이 보내온 비서도 있으니까.
소믈리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비서이니 걱정은 없다.
그래도 뻔히 나를 보면서 말하고 있는데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인 데다가, 대화도 자연스레 이어지고 있는 마당인지라 나는 급히 입을 열었다.
“어떤 도움을 말씀하시는지……?”
“우선 매독 치료제. 이거 생산이 얼마나 가능합니까?”
“아……. 아직 대량 생산은 어렵습니다만,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런던만 해도 수요가 어마어마해서요.”
우리가 개발한 매독 치료제, 즉 비소 화합물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
해 보니까 대략 5% 내외에서 용량과 관계없이 사망하거나 그에 준하는 합병증을 겪을 수 있다는 말이다.
허나 매독을 그냥 두면 어찌 되는가?
절반 이상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쓰는 게 안 쓰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거다.
페니실린이 훨씬 안전하고 효과도 좋긴 하겠지만…….
언제까지 기도 메타로 기다리나?
당장 눈앞에서 사람들이 자꾸 죽어 나가는데.
“그걸 잠시 군에서 독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으음…….”
전쟁 앞두고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는 말을 하는 게 정상인가 싶었다.
보통 그런 말 하고 전쟁 낸 사람이나 국가치고 쉽게 이겼던 역사가 있나 싶었고.
일단 나 여기 오기 좀 전에 푸틴이라는 사람이 우크라이나 침공하면서 입을 털었었거든?
근데 1년 넘게 지지부진하더라고?
그 이후 경과는 여기 와 버려서 잘 모르겠는데, 어쩌면 러시아로 역침공 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뭐……. 청나라가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거 같진 않지만…….’
제아무리 세계사에 대해 잘 모르는 나지만, 임칙서라는 이름은 안다.
망해 가는 나라에도 인물은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사례인 셈인데…….
개전이 빨라졌다는 건 그만큼 청에서도 대비할 시간이 부족하단 뜻이지 않겠나.
뭐 그만큼 일찍 준비를 시작했을 수도 있는데…….
애초에 영국이 청나라를 조질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질질 끈 거라기보다는 청의 전력에 대한 정확한 가늠을 못 해서이지 않을까?
“인원은요?”
“대략 5천에서 6천 정도 될 겁니다.”
“오…….”
적다.
청나라랑 전쟁하는데 5천에서 6천 명으로 되나 싶을 정도로.
왜냐면 삼국지에서는 5천 명 정도면 그냥 정찰병이잖아?
‘다 알아서 하는 거겠지.’
그렇다고 여기서 ‘청나라를 우습게 보지 마십쇼’ 하면 어떻게 될까?
역시 얼굴 노랄 때부터 알아봤네, 청의 첩자네, 주술사네 하는 놈들 나올 거 같다.
그렇지 않아도 요새 내가 너무 잘나가니까 시기 질투하는 것들이 있다고 들었거든.
“그렇군요. 그 정도면…… 사실 한 달 정도 말미를 주시면 준비될 거 같습니다.”
“한 달. 딱 좋군요. 연말…….”
“아, 형님. 그건.”
“아아. 그래.”
연말에 전쟁이구나.
지금 다 준비 끝난 거 같은데 되게 늦다 싶지만…….
영국에서 직접 군대를 파견하는 거라면 사실 연말도 빠르다.
그냥 가는 것만 해도 오래 걸릴 거야.
가장 가까우면서 거대한 식민지인 인도에서 간다고 하면 연말 정도가 딱 맞을 거 같긴 한데…….
“아무튼, 그럼 한 달 안에 준비가 된다는 거죠?”
“네. 그렇죠.”
“그럼 이건 됐고…… 다음은 수혈인데요.”
“수혈, 음.”
“이건 수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같이 가면 좋겠는데요. 보수는 섭섭지 않게 드릴 예정입니다.”
나는 그 말에 리스턴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 좋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싱글거리는 게 징글맞아 보였으니까.
“음음.”
리스턴은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는지, 내내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
“닥터 블런델이라고, 우수한 친구가 있소.”
“아……. 그렇지 않아도 그분이 지금 경찰 쪽이랑 같이 담당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분이 같이 가 주신다면 너무 좋을 거 같습니다. 병사들 사기도 엄청 오를 것이고요.”
“그 정도인가……?”
“그럼요. 죽을 게 뻔했던 경찰들 중에 산 사람이 몇인데요. 알 사람은 다 압니다.”
내 아이디어와 방법으로 명의가 되고 있었다, 이 말이렷다.
그럼 몰래 팔아먹어도 할 말이 없을 거 같다.
약간 괘씸하기도 하고, 또 섭섭지 않게 대우를 해 준다고 했으니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설마하니 대영제국의 로열 네이비가 사기를 칠 리는 없지 않겠어?
“마지막으로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용무입니다.”
“네? 아까는 두 개라고.”
“아…….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었나요? 하하 너무 긴장했나 봅니다, 대단한 분들을 앞에 두고 있으니…….”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별거 아닌 용무 말할 때는 뒤로 물러나 있던 찰스 엘리엇이 나섰다.
그 능글거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이 양반이 군인 관두고 외교관 같은 것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제이미 경과 뒤에서 전쟁 같은 음습한 거 만지작거리는 놈이 음흉하지 않으리라 믿는 건…….
“두 분이 런던 아니, 세계 최고의 외과 의사시지 않습니까?”
“하하. 그렇긴 하지.”
나는 싸한 느낌에 입을 다물었지만 리스턴 형님은 칭찬에 약한 사람이니만큼 남의 속도 모르고 껄껄 웃고 있었다.
“아시겠지만…… 우리 로열 네이비들도 전쟁을 치르게 되면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겁니다.”
“그렇겠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네, 영국의 훌륭한 젊은이들인데…….”
그 젊은이들 매독 걸리는 거 방치하던 놈들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리스턴은 이미 애국자 모드로 바뀌었는지 연신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제멋대로 매독약 깎아 드려? 이 지랄까지 하는데 때릴 수 있으면 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뒈질 수도 있으니 닥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리스턴은 양날의 검이다.
“거기에 우리 외과 의사분들이 함께해 주시면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불충한 생각을 잠시 해 봤습니다. 거절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부탁은 드려 보겠습니다. 혹…… 10월쯤 출항하셔서 내년 초까지만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그러문요. 가야죠!”
다 알겠지만 ‘네?’가 나고, ‘그러문요’는 리스턴이다.
나는 리스턴을 노려보다가, 그의 뒤에 있던 비서가 빙그레 웃다가 무표정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했다.
‘유다가 여기 있었네!’
제이미…….
이 새끼가 은혜를 원수로 갚아?
스스로 불알 자른 새끼 불쌍해서 며느리도 무리해서 살려 주고, 소 췌장 만져 가면서 당뇨병 치료해 줬더니 어?
“역시, 역시 애국자들이십니다. 그 대신이라고 하면 뭣하지만…… 작위도 내려질 예정입니다.”
“네?”
“하하, 이거야 원.”
이번에도 ‘네?’는 나다.
아까랑은 좀 다른 느낌의 ‘네?’긴 하다.
작위……?
그거 독이 든 성배라지 않았나?
“닥터 피영시인의 걱정은 저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제이미 경께서 벌써 내리려고 하시다가 속 좁은 놈들의 공격을 걱정해서 만 적이 있는데…… 이번 전쟁은 대영제국의 행보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일을 돕는데 대가로 기사 작위를 주는 데 거품 무는 자가 있다? 그자는 대영제국의 적이 될 겁니다.”
“오…….”
역시 제이미…….
공작쯤 되면 사람이 공명정대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인가 보다.
세상에…….
내가 대영제국의 귀족이 된다니.
그럼 배 정도는 얼마든지 탈 수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