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86)
검은 머리 영국 의사-286화(286/505)
286화 군납 [2]
“수익 분배는 걱정 말게. 아들놈까지 데려간다는데…… 오히려 더 후하게 해 줌세.”
우리가 떠나는 건 몇 개월 후의 일이다.
21세기에서도 그랬지만 19세기는 정말이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시대이지 않나.
오늘 웃으며 헤어진 사람이 당장 내일 아침에 죽어서 발견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선배 아버지더러 죽으라고 하는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 이 말이다.
“네, 제가 아저씨는 믿을 수 있죠.”
“그럼그럼. 말마따나 자네나 리스턴 무서워서 사기 치겠나? 아, 사기를 칠 수 있으면 쳤을 거란 얘기는 아니니 저주는 내리지 말게.”
이것도 아저씨식 농담이다.
결코 내 저주를 진짜 두려워하는 건 아냐.
약간 손을 떠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
나야 내가 첫째니까 아버지가 갓 마흔이지만 여긴 쉰이니까.
어휴…….
이때 쉰이면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게다가 전 세계를 오가면서 고생까지 했으니 안 늙고 배기나.
“근데 말일세.”
“네.”
“자네들 없는 동안 여기가 제대로 돌아가긴 해야 하지 않나.”
“그거야 그렇죠. 책임지고 애들 가르쳐 놓겠습니다. 통제야 뭐…… 경찰이랑 군인들 모두 협조하겠다고 했으니까 문제는 없을 거예요.”
“하하, 그거야 걱정할 거 없겠지. 경찰이니 군인이니 하는 것들보다 자네들이 더 무서운데.”
아저씨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군납에 성공했으니까.
그것도 독점으로.
어차피 우리밖에 못 만드는 물건이니 당연히 독점이 되기야 하겠지만…….
매독약을 만들자마자 경찰과 선원 그리고 군인들 대상으로 실험 아닌 실험을 해서 효용성을 바로 확인하고, 그걸 넘길 수 있게 된 것은 천운이라는 말로 밖엔 설명이 불가능하긴 했다.
“자……. 인사드려.”
하여간, 후학 양성을 해야만 했다.
내 직속 부하들은 데리고 갈 작정이다 보니, 약간 반가라 제자들을 만들어야 된다는 건데…….
“아, 안녕하십니까!”
“영광입니다!”
“피영시인……의 제자가 된다니!”
“으읏……. 리스턴…… 눈빛이 마치 잘 벼려진 검과도 같다더니 명불허전…….”
21세기에도 어쩌다 보니 외과가 기피 과가 되어 버렸는데…….
이 시기에는 사실 더하다.
제자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이 말이다.
리스턴쯤 되면야 조지프네 아저씨처럼 돈 싸 들고 와서 제자로 받아 주십사 하는 사람들도 생기는 법이지만…….
그거야 사실 업턴 촌놈인 데다가, 내가 동양인이다 보니 좀 특별했던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대개는 돼지 치는 애 앞에서 댁의 아들이 똘똘해 보이는데 의사로 키우면 어떨지 등등 입을 털고 또 숱한 거절을 겪어야만 제자를 들일 수 있는 직업이다.
그게 맞는데…….
‘얘들은 딱 봐도 좀 똘똘해 보이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내 직속 부하 놈들보다도 훨씬 똘똘해 보이는 녀석들이 왔다.
리세마라에 성공한 기분이랄까?
아니, 아니지.
의리가 있지.
지금껏 조지프, 앨프리드, 콜린과 함께한 세월이 있지 않나.
게다가 내가 걔들한테 뭔가 먹이고 때리고 넣고 했던 걸 생각하면 확실히 걔들이 직속으로 남는 게 맞다.
뭐, 얘네도 키우고 걔네도 키우면 되겠지.
“음, 그래. 반갑네. 이렇게 둘은 내 밑. 이렇게 둘은 형님 밑으로 가서 배워. 어차피 같은 센터 안에서 배우는 거라 말이 나뉘는 거지, 다 같이 배우게 될 거야.”
“네!”
“영광입니다!”
일단은 속성으로 당뇨약 쓰는 법에 대해서만 가르쳐 줄 요량이다.
어차피 아직까지 우리 병원 당뇨 환자들은 개인 소믈리에를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보니, 효과 확인은 그들이 해 줄 수 있어서 그리 부담이 크지도 않다.
전문가들이 있다, 이 말이다.
‘뭐…… 당뇨에 대해 제대로 가르칠 것도 아니고.’
우리 직속 제자들 아니라 리스턴도 솔직히 잘 모르는 게 당뇨지 않나.
혈당 수치라는 개념도 모르고…….
당화 혈색소야 뭐 있는지도 모를 것이고.
무엇보다 인슐린 저항성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죄 20세기, 21세기에 들어서야 정립된 것들이지 않나.
지금 우리가 하는 건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자연 상태에 있는 걸 갈아다가 우연히 치료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럼 뭐 2달 정도면 넉넉하지.’
날 무시하는 상황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눈을 너무 빛내는데, 얘들.’
초롱초롱하니 그냥 내가 죽으라고 하면 적어도 죽는시늉까지는 할 거 같다.
아니, 19세기니까 진짜 죽을 수도 있다.
청나라 주술사 피영시인은 죽은 사람 심장을 찔러 되살린다는 소문이 상당히 진지하게 퍼져 나가고 있거든.
“그래, 이름이 뭐냐?”
“네, 톰입니다.”
“존 스노입니다.”
“으음.”
톰이야 뭐…….
흔한 이름이니까 넘어가자.
톰 소여도 있고, 강화도에 가면 톰 아저씨 통나무집도 있잖아?
하지만 존 스노는…….
‘서자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이름이잖아, 이거.
스타크 가문이라도 있었다면 영락없는 북부 가문의 서자인데…….
내가 나름 의사 중에서는 그래도 잡학다식한 편이었거든.
그렇다 보니 그 외에도 아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얘 천재 아닌가?’
존 스노.
아직 병원균이라는 것이 정립되지 못한 시대에 이미 수인성 감염병의 가능성을 밝혀낸 전설적인 영국의 의사.
그걸 토대로 하수구의 대대적인 개편을 의회에 요구했으나 영국 의회 특유의 ‘아닌 거 같은데’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요절해 버린 천재.
동명이인인가 싶기도 한데…….
눈동자만 봐도 아이큐가 보이는 느낌이다.
‘이 친구는 내과 쪽으로 잘 키워 봐야겠다.’
나도 물론 똑똑한 편이다.
그 경쟁 심한 대한민국에서 전교 1등 하고 제일 좋은 의과대학 들어가서 교수 자리까지 갔으면 천재 정도는 아니더라도 수재 소리는 들어 마땅하지 않겠나?
하지만…….
리스턴이나 존 스노와 같이 시대를 바꾼 거인들과 비교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
‘좋아…….’
그런 놈들이 하필이면 내 손아귀에 떨어진다는 게…….
아니, 아니지.
이건 좀 너무 악마스러운 말이잖아.
그냥 내 곁에 있다고 하자.
“그래. 이리로 와 봐.”
“아, 네.”
이런 애들은 안 가르쳐 줘도 스스로 깨닫는 게 많을 거다.
그런데 가르치기까지 하면 어떻게 될까?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깨닫는…….
그중에서는 심지어 내가 모르는 것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답은 아는데 풀이를 몰라서 하지 못하는 것들 말이다.
“지, 집에는 안 가시나요?”
“응. 안 가. 니들 가르쳐야지. 왜 힘들어?”
“아, 아닙니다!”
두 달 동안 성심성의껏 가르치고 나서 청나라 갔다 오게 된다면, 과연 그때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약간 복권 긁는 느낌이 벌써부터 들기 시작한다.
해서 나는 최선을 다해서 가르쳤다.
밤낮없이.
어차피 날밤 까는 거야 대학 병원에서 일할 때 지겹도록 하지 않았나?
그래서 젊은 나이에 병 걸려 죽은 거 같긴 한데…….
지금의 나는 10대잖아.
후후.
10대에 교수라니.
“이보게 평.”
보다 유능한 노예를 키워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조지고 있던 어느 날, 리스턴이 나를 불렀다.
“네?”
“자네 열정에 학생들이 다 죽어 가고 있네.”
“안 죽어요. 이 정도로는.”
바쁜 사람 불러다 세워 놓고 뭔 얘기를 하려고 하나 했더니만 하잘것없는 얘기나 하고 있다.
죽긴 뭘 죽나.
21세기 10대도 이 정도로는 안 죽을 텐데…….
19세기 십 대가 이런 걸로 왜 죽어.
“그……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건데. 이제 곧 배 타야 되는데 준비는 안 하나?”
해서 개무시를 했더니 이번에는 좀 쓸모 있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배…….
항해라…….
그래, 생각해 보니까 좀 두렵긴 하다.
“아.”
게다가 1주일밖에 안 남았으니 사실 뭔가 준비를 해야 할 타이밍이긴 했다.
부모님이야 용돈 효도의 맛을 알게 된 후로는 아주 대만족 중이시니 따로 신경 쓸 건 없고…….
사실 우리 존 스노와 그 외 기타 등등 제자들도 당뇨 케어 정도는 이미 한 달 전부터 제대로 할 수 있게 된 참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내 앞길이나 걱정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범선이에요?”
“범선이지. 뭐 노 젓는 갤리선이라도 타고 싶은 겐가?”
“아니, 아뇨. 증기선이요.”
“아…… 증기선. 하하. 대체 그걸 어디서 들은 건지…….”
“없어요?”
“있긴 하지. 근데 너무 비싸잖아. 게다가 석탄까지 싣고 아프리카 돌아서 청나라까지 가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아…….”
일단 범선 타야 하는 이유를 하나 납득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까 범선은 바람의 힘으로 가는 친환경 배다 보니 따로 연료가 안 들지 않나.
그 말은 곧 배 안을 싹 다 화물이나 병사 또는 포탄 등으로 채울 수 있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증기선은 그 자리에 석탄을 채워야 하니…….
뭐 대신 선원들이 편하긴 하겠지만 그거 뭐 선주들이 알 바인가?
자기가 직접 고생하는 것도 아니고, 선원이 하는 거잖아.
“아무튼, 꽤 오래 걸릴 거란 말일세.”
“오래 걸리……겠죠?”
“게다가 아프리카는…… 가 본 적 없어 모르겠지만 엄청 덥다고 하더구만. 옷도 그에 맞춰서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아, 그렇겠네요. 근데 그럼 가는 동안 내내 배에만 있어요?”
“그야 모르지. 내가 선원도 아니고.”
“하긴, 그렇긴 하지.”
리스턴이면 왠지 의학적인 거 말고는 다 알 거 같은 느낌이지만…….
이 친구도 의사는 의사지 않나.
그렇다 보니 세상 물정 모를 때가 좀 있다.
나야 21세기 사람이라고 치지만 19세기 사람인데, 그것도 대영제국 사람인데 배 타는 일은 좀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뭐 우리는 귀빈 대우를 해 준다고 한 데다가, 군함이라 전에 탔던 것 보다는 훨씬 좋긴 할 거야.”
“그럼 그냥 있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그냥 있자니. 명색이 명의로 가는 건데…… 가면서 아픈 사람들 있으면 싹 고쳐야 하지 않겠나?”
“고치는 게 딱히 뭐 준비가 있어야 되나……?”
군의관 시절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훈련이 필요하지 않은 직군이라는 생각을.
사실 군대에서 유일하게 내내 실전을 겪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심지어 대학 병원에서 수련받은 전문의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사실상 군대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 우리가 의학적으로는 훨씬 우수했다.
지금도 딱히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전문의 딴 사람들인데 어디다 던져 놔도 치료야 잘하지.
“웁.”
그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배에서 치료를 할 수 있어야 해! 그러려면 이걸 견뎌야 하네!”
“그, 그 전에. 우웁.”
리스턴의 방식은 좀 남다른 점이 있는데…….
이 미친놈은 태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수술을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우기고 있었다.
“이때 제일 많이 다칠 텐데, 당연한 얘기 아닌가!”
나도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듣다 보니 그럴싸하긴 해서 같이 연습을 했다.
“지금 날씨에 또 나가자고요?”
불쌍한 선장 하나를 협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나가서 또 칼 휘두르시려고……?”
“그래.”
“하이고…….”
“뭐 여기서 휘둘러 드려? 범선을 범/선으로 만들어 봐?”
“아닙니다요. 가십시다…….”
미호크도 아니고 배를 자를 수 있나 싶을 수도 있는데…….
아마 가능할 거다.
그만큼 큰 칼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