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9)
검은 머리 영국 의사-29화(29/505)
29화 웃음 가스 파티 [2]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나도 가스에 노출이 되긴 했다는 것.
당연한 일이긴 했다.
그 앞에 있었잖아.
“야야, 그러다 죽어. 하하하!”
조지프가 내 곁에 다가와서 깔깔 웃었다.
“아니…… 여기 의사가 사람 죽인다!”
앨프리드도 깔깔 웃었다.
그래서 보니까 몽둥이에 살짝 피가 묻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콜린 새끼를 치다 보니 신이 났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생각했던 것보다 힘이 과하게 들어간 모양이었다.
‘어우?’
가슴이 서늘해져서 콜린을 돌아보았다.
좀 패 줄 생각은 있었지만 죽일 생각은 없었으니까.
아니, 어디 부러지기라도 했어 봐.
꽤 권력자일 텐데, 지금의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음…… 아. 여기 긁힌 거네.’
해서 살펴보니 다행히 그냥 살갗이 조금 벗겨진 게 다였다.
한 가지 특이한 건 내가 살펴보느라, 또 취하기도 해서 부주의하게 상처를 만졌음에도 불구하고 콜린이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머리를 후려쳤던가?’
긴가민가하기는 했다.
약 때문에 통증을 못 느끼는 걸 수도 있는데, 내가 후려쳐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을 테니.
‘그래도…… 가능성은 있어.’
진통이 아닐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때리는데 움직이지 못했다.
이거 하나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움직이지만 않아 주면…… 차분히 수술할 여력이 생기지?’
그렇다고 내가 예전에 했던 수술, 그러니까 휘플(췌장암 수술)이나 플랩(이식 수술)처럼 복잡한 수술을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하찮은 질환으로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예를 들면 맹장염.
보다 정확히 말하면 충수돌기염으로 픽픽 죽어 나가는 시절이었다.
이건 진짜 수술만 하면 되는데…….
“여, 눈 떠보게나.”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여간 눈앞에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이 서 있었다.
멀쩡해진 얼굴을 하고서였다.
“네네, 떴습니다!”
분명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눈을 뜨지 않으면 뺨이라도 한 대 맞을 게 뻔해 보여서 부리나케 답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어쩐지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시고는 몸을 일으켰다.
“떴네.”
진짜 맞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조지프와 앨프리드의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어우.”
보아하니 콜린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녀석은 자기 똘마니 하나에게 부축을 받고 있었다.
혹시 기억을 제대로 하나 싶어서 빤히 바라보았는데, 놀랍게도 놈은 나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병신.’
존나 때렸는데 기억 못 하는구나.
아니면 기분이 너무 좋아서 사리 분별이 안 되거나.
“후후.”
“이 자식 가스에 약하네.”
그런 생각이 드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웃었다.
웃다 보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이래서 웃음파티구나 싶달까?
‘이거 분명히 엄청 강한 약이야…….’
물론 나는 천생 의사이기에 웃으면서도 속으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 잘 자라.”
“어?”
생각을 하다 보니 침대였다.
방에 도착했다.
드문드문 기억이 툭툭 끊겨 있다, 이 말이었다.
아니, 기억이 끊긴 건지 아니면 잠이 들었다가 깬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파티에서 썼던 그 가스…… 그건 연구해 볼 가치가 있었다.
“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머리가 별로 안 아프다’였다.
술에 취했어도 지금쯤이면 머리가 아파야 할 텐데.
“흠…….”
어제 그 가스가 생각보다 몸에 많이 남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사실 남아도 상관없었다.
생으로 수술하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까.
솔직히 말하면 아편이라도 쓰고 싶다고.
‘아편을 쓰면…… 호흡이 억제되니까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 이건 좀 너무 나갔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아침을 먹자마자, 언제나 그러하듯 선배와 조지프와 함께 학교로 향했다.
“나는 잠시 도서관 좀 갈게.”
“응? 왜? 수업 안 듣고?”
“뭐…… 딱히 체크 안 하시잖아? 블런델 교수님은.”
“그렇긴 한데…… 책보다는 강의 듣는 게 도움이 되지 않아?”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블런델.
그 새끼…….
아는 게 없다고.
물론 너네보다야 낫긴 하겠다만…….
“나 너무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래. 대신 강의 시간에 들은 거 나중에 알려 줘.”
“음…… 알겠어.”
그런 소리를 했다간 난리가 날 테니, 대충 얼버무렸다.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어제 콜린을 후려칠 때부터 가스의 정체부터 해서 모든 것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설마…… 이 새끼들 떡하니 마취 가스가 있는데 그런 짓을 해 온 건 아니겠지?’
나온 지 얼마 안 되었기를 바랐다.
‘아니지.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으면…… 연구가 아예 안 되었을 거잖아?’
아니, 나온 지 꽤 되었기를 바랐다.
‘근데 또 그랬다면, 이 인간들이 너무 한심해서 죽고 싶어질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시대가 그랬다.
시벌놈들.
왔다 갔다 대중이 없어.
아는 거 같은데, 모르고.
모르는 거 같은데 진짜 뭣도 모르고…….
-아산화질소일세.
하여간 나는 어제 오는 길에 교수님께 들었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산화질소.
질소.
‘수술할 때 쓰던 마취제에도 질소가 들어가지 않나……?’
마취과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 이름조차 제대로 생각나는 게 없지 않나?
그 와중에 성분명이 생각날 턱이 있나.
‘마취과 욕할 시간에…… 한 글자라도 볼걸.’
사이도 별로 안 좋다 보니 욕만 했더랬다.
우리야 맨날 급한 수술이니 빨리 걸어 달라고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잖아.
“옳지, 여깄네.”
아무래도 대학이 거의 종합 대학을 표방하고 있다 보니 화학 관련한 책들도 꽤 있었다.
도서관이 엄청 크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이 책들 중 대체 어디에 아산화질소 얘기가 있을까.
알 수는 없었다.
이 시대에는 검색 기능이 없다 보니 그냥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책은 얇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한 일이 있다면, 책들이 다 얇다는 것이었다.
아는 게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여기 없다고 해서 세상에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는 건데…….
“흐음…….”
책을 팔랑팔랑 넘기며 아산화질소를 찾았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볼록판(목판·활판)이나 오목판(조각 오목판·에칭), 평판(석판) 따위나 사용하는 시대다 보니 종이나 인쇄 수준이 영 별로였다.
심지어 지들끼리 눌어붙은 페이지도 있었다.
망할 19세기 같으니라고.
“못 찾겠네…….”
시벌.
몇 시간을 뒤적거려도 이게 나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공부가 됐냐? 그것도 아니었다.
일단 나는 화학자가 아니다 보니 딱히 관심도 없을뿐더러, 배경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19세기 과학을 공부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보니 열심히 보지도 않아서 그랬다.
틀린 지식을 욱여넣었다가 사고라도 치면 어쩐단 말인가.
‘아니, 가만. 가만 있자.’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의학에 있어서…… 그러니까 현대 의학에서조차 근거 중심 의학이 딱 자리를 잡은 건 20세기 후반에 이르렀을 때 아니었나.
그전까지는 전문가 의견이 가장 중요한 취급을 받았다.
가령 한 30년은 있던 교수님이 ‘마, 내 생각이 이렇다는데 토를 달아?’ 하면 다들 그렇게 했더랬다.
그때는 ‘저 꼰대는 대체 왜 저러고, 왜 그렇게 미개한 시대가 있었나’ 했는데 여기 와 보니까 알 거 같았다.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잖아?’
근거 중심?
지랄하고 있다.
근거를 찾을 수 있어야 말이 통하지 않겠나.
자료가 애초에 글러 먹었는데 근거는 무슨 얼어 죽을 근거.
‘공장…… 그 화학자.’
사실 여기 교수님을 찾아가는 게 더 빠를 것 같긴 하지만…….
그건 우리 잘나신 영국 백인들에게나 가능한 일 아니겠나.
내가 사전 고지도 없이 갔다간 아니, 잘 모르는 길로 들어섰다간 어떤 범죄에 휘말릴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을 써먹기도 애매했다.
깐부를 맺기는 했는데 어디까지나 나만 맺은 거 같거든.
뭘 하더라도 일단 마취제부터 던져 주고, 해부학적인 발전을 좀 더 이룩해 놓고 나서야 뭐가 될 거 같다는 얘기였다.
“선배, 선배.”
해서 나는 책을 덮고 강의실로 달렸다.
마침 블런델은 강의를,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치고 밖으로 향한 다음이었다.
“어우, 너무 어렵네.”
“네? 뭐가요?”
“아…… 오늘은 압력에 대해 배웠는데…….”
“압력?”
압력을 배울 게 뭐가 있지?
반사적으로 떠오른 단어는 혈압이었지만,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이 시대는 늘 그렇다시피 상식을 많이 빗나가 있거든.
괜히 내가 이세계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혈압을…… 시발.’
동맥에 바늘 꽂고 피 튀는 걸로 재는 게 혈압이냐.
그건 살인이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하여간.”
그 생각을 오래 하면 마음이 또 어지러워지고, 종래에는 어제 빨았던 웃음 가스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 같아서 화제를 돌렸다.
다행히 앨프리드는 강의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는지 딱히 말이 없었다.
그냥 멍청한 눈으로 서 있었다.
“일단 나갑시다.”
“응? 해부는?”
“아, 해부. 그거 이따가. 잠깐만 공장 갔다 와요.”
“왜? 장갑 찢어졌어? 그거 칼로 찢으려고 해도 안 될 것 같던데.”
그래, 그렇지.
너무 질겨서 탈이었다.
그만큼 경화가 심해서 완전히 내 뜻대로 움직이지도 않았거든.
써 보니까 단순히 감각이 잘 전달 안 된다는 것 외에도 그런 문제가 있더라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박사님께 질문할 게 있어서요.”
“아…… 도서관에서 못 찾았어?”
“네.”
“그렇지. 책에서 배울 게 뭐가 있냐.”
야…….
아무리 책이 후진 시대라고 해도 그렇지, 나름 학자를 표방하는 놈이 그게 할 말이냐.
물론 나는 마차 얻어 타는 주제에 뭐라고 할 만큼 개념 없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요.”
“좋아. 다녀오자. 어차피 어제 너 하는 거 보니까…… 우리가 먼저 하는 건 의미가 없겠더라.”
게다가 선배는 이런 사람이었다.
일 년이나 늦게 들어온 놈이 두각을 나타내도 질투보다는 그냥 순수한 감탄만 하는 사람.
개인적으로는 두각을 나타내는 것만큼이나 이것도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드드드드.
하여간 마차가 달리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공장 앞에 멈춰 섰다.
사실 거리가 그리 먼 건 아니라서 서울이었으면 걸어서 왔을 텐데 런던이라 마차를 탔다.
대낮에 죽어서 시신으로 해부 실습실에 짠 하고 나타나고 싶지는 않거든.
“아산화질소에 대해 알고 싶은데요.”
“응? 아산화질소?”
“네.”
그렇게 위험한 길을 지나 공장 안으로 들어간 나는 심드렁한 얼굴의 화학자를 눈앞에 둘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마주한 채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그 오래된 별 볼 일 없는 기체는 알아서 뭐 하려고 그러나.”